은 캐스팅부터 주목받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본인의 말처럼 '군대를 시끄럽게 다녀온' 송승헌과, 드라마 에서 이뤄지지 못한 송승헌과의 재결합이 이뤄진 권상우. 마찬가지로 제대 후 첫 작품을 찍은 지성. 김해곤 감독 역시 의 감독 또는 의 작가로 영화판에서 그 이름을 쌓아온지라 은 제작 당시부터 조용히 진행될 수는 없는 영화였다. 그리고 이름에 걸맞게 은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선두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다음은?
의 시놉시스에서 의 잔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관람한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으로 이 와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 또한 일치한다. 이 모든 관객들을 호구로 보았을 리 없는 감독이 이와 같은 작품을 내놓았다는 것은 이 와 다른 길을 가려는 의도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왜 와 같이 네 친구의 과거지사를 한두 장면으로 때우려 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영화는 애초에 그런 것을 언급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화의 제목이 친구나 프렌드 따위가 아닌 '숙명'인 것 만큼이나 당연하다.
숙명과 운명은 영어로는 거기서 거기라지만, 실제로 느끼는 어감의 차이는 상당하다. 운명은 개척할 수 있지만 숙명은 그럴 수 없다는 의미 아닐까. 우민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 조직을 비롯한 암흑 속의 인생과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오직 은영만 제외하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심정은 영화의 도입부부터 강렬하게 제시된다. 그러니까 요는 네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점에서 와 유사함이 느껴지지만 동수와 준석에게 대등한 비중을 할애한 와 달리 은 결정적으로 '우민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 결말은 동수를 살해한 준석이 사형을 언도받아 마침내 파국에 이르른 네 친구의 현재를 보여주게 되지만 의 결말은 오직 우민이 이 끈질긴 숙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에 성공하느냐를 조명하면 족하다는 의미다.
영화에 대한 변호는 여기까지로 마칠 셈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와의 연계점을 부인한 상태에서도 이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정적으로 영화는 캐릭터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영화는 사실 123분의 긴 러닝타임만큼이나 잡다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령 뜬금없이 철중이 조직의 중간보스 격인 영욱의 하우스를 습격하는 장면은 '철중이 두만에게 공개적으로 버림을 받는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 존재가치가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갈 곳 모르고 헤매는 서사의 흐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강화된 캐릭터의 힘인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캐릭터에게 그 이상의 것을 계속해서 부여하고 있는 점이다. 김해곤이 그려온 과 , 등의 작품들이 철저히 계산된 캐릭터에 의해 지탱되었듯이 그는 인물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결과적으로 플롯에의 집중을 막아버린다. 도완은 사실 김인권의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에 집중해서 보면 최종 시퀀스를 제외하면 불가결의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 그 한 장면을 살리기 위해 도완의 이야기는 철중만큼이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캐릭터의 설계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물론 덕분에 김인권의 연기가 빛났고 최후의 한 장면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환의 캐릭터는 무엇인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지성이 개봉 시점에서는 특별우정출연으로 롤을 교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영환은 우민과 철중, 도완이 강섭과 함께 카지노 습격사건을 계획할 때도 두만의 편에 서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는 계속해서 우민을 돕고, 철중을 돕고, 도완을 돕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서사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환의 캐릭터는 마치 드라마 주인공의 친구처럼 아무런 기반이 없다. 말하자면 도구와 같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 단점을 정확하게 부언하자면, 캐릭터의 비중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민이 지긋지긋한 어둠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는 끈질긴 숙명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마침내 최종의 결전을 준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면, 우민에게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영환과 도완, 철중에 이르기까지 엇비슷한 파이가 주어져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철중의 사업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장면을 중언부언하고, 도완이 계속해서 지리한 인생을 사는 모습을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그 와중에 영환이란 캐릭터는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차라리 철중의 조직에 있지만 우민, 도완과 생활을 함께하는 그 똘마니 콤비에게 실없는 이야기를 부여할지언정 말이다.
이 이와 같이 와의 차별화를 꾀하다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송승헌은 실질적으로 영화를 혼자 이끌어나가는 역할이지만 별탈없이 무거운 비중을 소화한 듯 하다. 권상우는 그간 계속된 발음 논란의 최절정을 보여주었지만 그와 같은 대사 처리의 미흡함을 제외하면 능력은 부족하지만 야망으로 가득 차 악에 받친 어려운 캐릭터를 맡아낸 것을 높이 사고 싶다. (개인적인 첨언으로, 철중의 캐릭터에서 의 필호를 연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고의 히어로는 역시 김인권일 것이다. 지나친 약물중독으로 정신적인 붕괴에 이른 도완은 사실 이야기에서 맡은 역할에 비해 부단히 어려운 인물이지만 그 섬뜩한 일면을 처절하게 살려낸 포장마차 신은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