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Mos Def

황인근 |2008.04.17 23:28
조회 47 |추천 1


Mos Def 끊임없이 진화하는 차세대 네이티브 텅의 선두자 모스 뎁(Mos Def)이라는 존재, 아니 그 이름의 가치는 너무나 빠른 시간 내에 수많은 힙합 매니아들의 머리 속을 점령해버렸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뉴욕의 브룩클린 출신으로 뉴욕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텔레비전 단역 배우로 시작했던 그의 커리어는 업종을 변경한 그 시점부터 10년도 채 못 되어서 이 바닥의 위대한 아티스트 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위치로 격상되었다. 탈립 콸리(Talib Kweli)와 디제이 하이텍(DJ Hi-Tek)과 함께 한 그의 첫 번째 정규앨범이었던 [Black Star (1998)]는 힙합 청자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소중한 앨범이 되어 버렸고, 이듬해 발표한 솔로 데뷔작 [Black on Both Sides (1999)]까지 평단과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으면서 음악적 라이벌이자 동료인 탈립 콸리와 함께 위대한 힙합 집단 네이티브 텅(Native Tongue)의 뒤를 잇는 뮤지션이라는 찬사까지 얻어냈다. 사실 그들이 거리에 대한 거친 삶을 읊어대거나 파티를 위한 찬가를 불러대던 힙합의 전형적인 모델을 벗어나 사회, 문화, 정치까지 아우르는 의식 있고 진중한 가사를 특성으로 하는 네이티브 텅 패거리(De La Soul, ATCQ, Brand Nubian, Bush Babees 등으로 구성)의 미래적 진화라는 팬들의 맹목적인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것은 이전의 네이티브 텅 선배들과의 활발한 활동에서 비롯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모스 뎁이라는 뮤지션이 가진 깊은 의식 세계와 지적인 부분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의 놀라울 만한 성공은 업종 변경 후 내어놓은 단 두개의 앨범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사실 그의 이력은 단순히 그의 디스코그라피 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98년 [Black Star]로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이전인 1994년부터 자신의 큰 형인 DCQ와 여동생 Ces와 함께 얼반 썰모다이나믹스(Urban ThermoDynamics)라는 그룹을 만들어 활동한 이력이 있다(이 앨범은 절판되어 이제는 구할 수 없다). 또한 러셀 싸이먼스(Russell Simmons)의 또 다른 사업체 Def Comedy Jam에 의해 제작되고 HBO에서 방영되는 ‘Def Poetry’라는 그의 이름을 건 쇼의 호스트로써 활약하며 성공을 이끌어 냈으며, 델 라 소울, 부쉬 베이브스(Bush Babees) 등의 네이티브 텅 선배들의 앨범에는 물론이고, 룻츠(The Roots), 커먼(Common), 하이 엔 마이티(High & Mighty),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등의 힙합 앨범들과 로니 조던(Ronny Jordan), 비럴(Bilal), 메이시 그레이(Macy Gray) 등의 알엔비, 소울 뮤지션들의 앨범에도 활발히 참여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갔다. 심지어 대표적인 일본계 뮤지션인 디제이 혼다(DJ Honda)와 디제이 크러쉬(DJ Krush)는 물론이고 하우스/클럽 디제이 토와 테이(Towa Tei)와 디제이 하세베(DJ Hasebe) 등의 앨범에도 참여하며 일본 시장으로의 투자도 아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그의 정력적인 활동은 이 ‘모스 뎁’이라는 양질의 네임벨루가 그의 치밀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 졌음을 보여주는 근거이다. 이렇듯 축복받은 재능과 열정적인 행동력을 가진 아티스트 모스 뎁은 음악을 통해 쌓아올린 인지도를 통해 본업이었던 배우로써의 활동에도 박차를 가했는데, 이 때 그가 즐겨듣는 노래는(제 2의 네이티브 텅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팬들에게 충격일 법한) 힙합이 아닌 락(Rock) 뮤직이었다. 사실 줄곧 노래도 부르고 다양한 라이브 악기들(베이스, 드럼, 키보드, 비브라폰, 콩가 등)도 직접 능란하게 연주를 하기도 했던 그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힙합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음악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드러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락 뮤직이라니 그의 골수 팬들조차 놀라울 법한 일이었다.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블랙-힙합, 화이트-락’으로 굳어져 버린 청자들의 인종적 분배는 그의 두 번째 도전에 있어서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결국 힙합 씬의 동료들과 함께 여러가지 작업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꿈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블랙 잭 존슨(Black Jack Johnson) 프로젝트’이다. 버니 워렐(Bernie Worrell of Parliament/Funkadelic), 닥터 노우(Dr. Know of Bad Brains), 윌 칼혼(Will Calhoun of Living Colour), 그리고 덕 윔비시(Doug Wimbish of the Sugarhill Gang, Grandmaster Flash, Living Colour)와 같은 위대한 선배 뮤지션들과 함께 한 블랙 잭 존슨 라는 락 그룹은 그 구성원들의 이름만으로도 ‘블랙 락’에 대한 가능성을 설파했던 여러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프로젝트 그룹인 블랙 잭 존슨을 통한 활동만으로는 혈기에 가득 찬 그룹의 젊은 피 모스 뎁에게는 기다리기 힘든 고충이었나 보다. 2004년 Geffen 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The New Danger]에는 블랙 잭 존슨의 멤버들이 대거 참여하여 거친 기타 사운드로 가득 찬 락을 들려준다. 두 개의 사로 다른 음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는 모스 뎁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본 작은 완성된 결합이 아닌 절반의 락과 절반의 힙합으로 나뉘어져 구성되어 진 어정쩡한 모습으로 발표되었고 그 이름값에 비해 초라한 반응만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져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스 뎁이 그의 커리어에서 스스로 증명했듯이 확실히 그는 축복받은 뮤지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언제나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구하며 자신의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그는 이제 이 바닥에 발을 담근 후배 뮤지션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롤 모델(Role Model)일지도 모른다. 짧디 짧은 생명력으로 유명한 ‘힙합 뮤지션’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음악인으로써 네이티브 텅 선배들만큼, 아니 더욱 발전된 모델로써 그가 오랫동안 우리의 곁에 남아주길 바란다. 락이던 힙합이던 ‘모스 뎁 음악’을 가지고 말이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