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그댄, 행복한가요(기독인들에게)

정성민 |2008.04.25 14:13
조회 52 |추천 0

그댄 행복한가

- 절망의 시대, 희망을 말하다2


 

슬픔의 맑은 힘

‘슬픔의 맑은 힘’을 믿고 그것을 ‘우울의 영성’이라 부르는 내게 ‘긍정의 힘’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불편한 가르침 중의 하나입니다. 따뜻하고 듣는 이들을 편안하게 하는 힘을 가진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것은 아마도 내 삶의 여정이나, 독특한 성품탓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자위해왔었지요.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한 부류의 사람으로 불릴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불가능의 가능성

조금 더 시대와 사회에 눈을 떴던 20대 중반에는 ‘선지자적 비관주의’를 운운하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손가락질이나 비웃음과 함께 ‘제깐게 무슨’이나 ‘기도하세요’같은 반응들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얼마전 강원용 선생의 라는 책을 통해 선생이 사랑했던 라인홀드 니버의 신학을 접했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요. 그분은 이러한 내 입장을 ‘불가능의 가능성(impossible possibilty)’이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불가능안에 가능이 열린다는 믿음입니다. 긍정하거나 낙관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 그러나 그 한계와 연약함을 향해 있는 주의 소망이 있는거지요. 그래서 나는 이 시대에 유행하는 적극적 사고의 신학(positive thinking)이나 가능성의 신학(possibility thinking)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전에 언급한 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회․경제적상황이 어떻게 다음 세대를 절망속으로 밀어넣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쟁이란 이름으로 미화된, 세대와 가족, 지역, 계층내에 존재하는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없기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점점 더 고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절망입니다.

 

는 그러한 사회적 구조가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기아인구는 8억 5천만명, 3초에 한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부의 세계적 총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말이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부조리입니다. 그렇게 모든 희망을 제거당한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들이 세계곳곳에 있는 이들과 우린 무관하게 오늘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유명 브랜드 커피와, 향기좋은 번(bun)과 함께 하는 하루입니다.


그댄, 행복한가

그래서 난 묻습니다. ‘그댄 행복한가’ 소유와 소비를 향해 질주하고 성취하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직장동료들에게는 차마 물을 수 없으나 그대에게야 비로소 묻는겁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이 시대와 세계에서 일어나는 절망적인 상황을 두고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실 전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과 ‘나’사이에 분리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이 조금은 낯섭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에게 각성과 일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지난기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상실시키는 시대의 구조속에서도 ‘나와 우리가족’의 안위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성경을 들고 크고 예쁜 교회로 걸어 들어가는 멋있는 분들을 한 사람씩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었습니다. 자신의 부, 명예 혹은 생존을 담보로 총체적으로 부패된 사회구조를 긍정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냐고 묻고 싶었던 겁니다.

 

부정의 힘, 고통에의 연대

부정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고 도전하는 부정의 힘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합니다. 적어도 그것은 기독인들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누가 소외되고 굶주린 이들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까. 절망에 포위당한 난장이들의 이웃은 과연 누구입니까. 적어도 이 시대의 교회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말처럼 교회는 이미 자본주의에 접수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그를 통한 폐해를 부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극복해야할 현실이지, 미래의 대안이거나 이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상황, 구조적인 문제를 부정해야합니다. 이것이 늘 당연하게 있어온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하는 패배주의를 주의해야 합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고통에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초코파이 하나 주는 것으로 전도와 선교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느슨함을 경계해야합니다. 고통의 원인과 그 배후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바로잡는 노력이야 말로 시대의 긴급한 요청입니다.

 

다시, 책이야기

추전하고자 했던 는 아이와의 대담형식이라 읽기 편합니다. 저자인 장 지글러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아동구호와 식량문제를 처리하는 식량특별조사관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와 세계전체를 조망하는 탁월한 안목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비슷한 논의를 가진 도 추천합니다. 이 책은 강대국들과 국제경제기구(IMF와 세계은행, WTO)를 통해 강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얼마나 몹쓸 것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무역이 그렇게 효과가 없다고 조목조목 논증합니다. 사실은 지금 강대국들이 보호무역을 통해 엄청난 국부를 형성했으며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그런 부를 축척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다리 걷어차기’수법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은 이곳, 대학의 시험기간이 끝나는 날입니다. 가엾은 우리 ‘88만원세대’들은 과연, 진실을 향한 위대한 모험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