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io Vivaldi (1678~1741)
<Il Cimento dell Armonia e dell’Inventione> Op.8
[Le Quattro Stagioni]
Concerto No.1 ('La primavera') in mi maggiore, RV 269
I. Allegro
Europa Galante
Fabio Biondi (Baroque Violin & Conductor)
개별적인 연주를 다루기 이전에 판본 문제를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사계>의 다양한 해석은 상당부분 그 악보에 원인이 있기 때문이고, 흥미롭게도 매우 믿을만한 인쇄보와 필사본이 함께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사계>의 판본은 크게 두 가지가 중요하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사계>는 1725년 암스테르담의 미셀 샤를 르 센이 출판한 비발디의 12개의 협주곡집 작품 Op.8 (작품 번호 8번) <Il Cimento dell’Armonia e dell’Inventione>(화성과 창의의 시도)에 첫 네 곡으로 포함되어 있고, 이것이 흔히 말하는 르 센 판본으로 그 동안 가장 중요한 판본이었다. 르 센 판본은 말리피에로가 편집한 리코르디의 구 비발디 전집을 비롯, 젠킨스의 오일렌부르크 판, 안젤로 에프리키안, 비토리오 네그리와 클라우디오 시모네의 연주용 에디션 같은 많은 현대 에디션의 기초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1970년대에 영국 맨체스터 시 도서관의 음악 부분인 헨리 왓슨 음악 도서관에서 발견된 다수의 비발디 필사본에 포함된 악보로서 흔히 맨체스터 판본이라고 부른다. 본래 이 필사본들은 음악가들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오토보니 추기경의 소유였고, 나중에 핸델의 대본 작가였던 찰스 젠넨스가 일련의 이탈리아 작품들을 수집 했을 때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맨체스터의 비발디 필사본은 그 연대를 1720년까지 소급할 수 있는데 확실히 맨체스터 필사본의 <사계>는 르 센 판본보다 이전의 것이며, 이 사실은 비발디가 모르찐 백작을 위해 쓴 op.8의 헌정문에서 “오래 전부터 유명한 <사계>를 다시 보시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 것”이라고 쓰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맨체스터 필사본은 비발디 연구에 새로운 빛이 되었다. 많은 음악학자들은 맨체스터 판본이 르 센 판본에 비해 비발디의 의도를 더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르 센 판본의 세세한 오류들은, 현대 편집자들이 대부분 교정해놓기는 했지만 맨체스터 판본을 참고함으로서 좀 더 역사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르 센 판본을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맨체스터 버전은 발견 직후부터 특히 기존 현대 에디션에 비판적이었던 원전악기 연주자들에 의해 연구되었고 70년대 후반부터 연주도 시도되었다.
맨체스터 필사본에 기초한 현대 에디션으로는 마이클 탤보트가 교정한 것이 리코르디의 신 비발디 전집으로 출판되어 있고,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교정한 것이 베렌라이터에서 출판되어 있다. 맨체스터 판본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르 센 판본과 차이가 있는데 르 센의 경우 소네트에 숫자와 알파벳을 병기하여 악보 사이사이 적당한 위치에 표기해 둔 것과 대조적으로 맨체스터 필사본에는 소네트의 상세한 지시가 되어 있지 않다. 반면 맨체스터 필사본은 각 파트의 리듬과 아티큘레이션이 좀 더 까다롭고, 연주 효과를 노린 음악적 장치가 곳곳에 있다. 이를테면 나중의 르 센 판본에서는 간단하게 유니즌으로만 처리된 <봄> 1악장 새 우는 소리 다음의 투티는 맨체스터 판본에서는 1, 2바이올린의 화려한 상행 스케일 에코로 짜릿한 느낌을 준다. 파비오 비온디는 맨체스터 판본의 차이에 대해 “열병과 같은 자유로움으로 생동하는 혼을 일깨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요즈음 들어서 일부 음반 수입상 등을 중심으로 마치 맨체스터 판본으로 연주한 것만이 정격연주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연주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호도하고, 맨체스터 판본이 오래 전부터 연주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음반을 광고하면서 마치 최초로 연주했다는 식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맨체스터 판본을 사용한 초기의 중요한 연주 가운데 하나인 사이먼 스턴디지와 트레버 피노크의 아르히프 녹음은 벌써 20년도 더 넘었다.
그리고 르 센 판본과 맨체스터 판본은 똑 같은 권위를 가지고, 똑같이 가치가 있다. 르 센과 그것을 재판한 르 클레르크의 악보는 18세기에 실제로 널리 판매, 연주되었다. 비록 소소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르 센의 악보는 충실하게 제작되었고 그 인쇄, 출판 과정에 비발디가 직접 감독했다는 증거도 있다. 르 센 판본을 쓸 것인가, 맨체스터 필사본을 쓸 것인가라는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에 따른 연주자의 선택과 의지의 문제이다. 만약 맨체스터 판본만이 옳고 나머지는 그르다라고 한다면 이미 정격연주의 정신을 잃어버린 독단이 될 것이다.
닐스 에릭 스파르프, 카를로 키아라파, 고트프리트 폰 데어 골츠의 연주는 맨체스터 필사본을 사용하지 않은 훌륭한 원전 악기 연주이다. 현대 악기 연주이면서, 음악학적으로 새로운 면을 많이 보여준 이 필라르모니치의 연주는 물론 탁월한 절충주의적 연주인 체헤트마이어와 카메라타 베른의 연주 역시 맨체스터 판본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르 센 판본과 그것에 기초한 현대 에디션을 사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