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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아피아가도와 카타콤베

민상기 |2008.05.22 16:00
조회 828 |추천 0
그리스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7월 30일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부풀게 만드는 단어인가!   아마 나의 서고에도 가장 많은 관련서적들이 바로 로마에 관한 도서들이 아닌가 한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로마에 관한 도서들이 너무 많아서   그중에 몇권을 골라서 읽어보았다.   평소에 꾸준히 읽었던 로마인 이야기(한길사)나 로마제국 쇠망사를   기반으로 하여 로마에 대한 자료들을 섭렵하였다.   기원전 753년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전해지는 로마제국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식상할 수 있다.   그래서 여행에서 보았던 풍물이나 유적들을 위주로   사진한장 한장에 간단히 이야기를 담아 볼까 한다

 

 

피우미치노 공항(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이라고도 함)!

그리스를 떠나 이곳 공항에 도착했다. 날씨는 고온건조한 편이었다.

이곳 공항은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30Km정도 떨어져 있다.

A,B,C 3개의 터미널이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녁식사로 한식을 먹었다.

그런데 식당 벽에서 이러한 글귀를 발견하였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소주를 이곳 식당에서 먹다가 걸리거나

빈병을 두고 가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소주! 우리나에서는 그냥 흔하디 흔한 국산술이지만 그곳에서 엄연히 물건너간

양주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음식맛이 참 뭐라고 할까...

 

김치찌게는 김치스푸? 오이무침은 오이에 고추장 찍어먹기?

 

육개장 국물은 쇠고기 스푸 정도의 맛? 그래도 밥은 3공기 먹었다.

 

오해 마시라! 밥을 담다가 말았기에 3그릇이다. 한국으로 한면 한공기 반정도?
 

 

3일동안 잠을 잠을 잤던 숙소!

 

지금도 벽에 걸렸던 우울한 액자와 벽지, 그리고 간질나게 만들었던 에어콘이 생각난다.
 

 

 

다음날 31일 드디어 로마에서의 첫 공식일정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궁금하다. 첫날의 일정에서부터 가이드 선상님은 왜 질문에 대답들을 하지 않았는지...
 

로마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고 한다.

 

3일 동안 본 사람 : 다 봤다.

 

3개월 동안 본 사람 : 더 있나?

 

3년을 본 사람 : 아직도 볼 것이 많다.

 

 

먼저 첫날 차를 타고 시내를 거쳐 첫 목적지로 가는 동안에 솔직히

 

문화적인 충격을 조금 받았다. 길가에 널려(?)있는 문화재와 유물, 유적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온전하게 보호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들의 의식도 있었지만 정복자로서의 오랜 군림이 또 다른 이유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처음으로 들린 곳이 이곳 세마포 기념관이다.

 

또리노 튜린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세마포를 사진 찍어서 보관하는 곳이다.

 

예전에 "과학이 해결한 세마포의 신비" 라는 글을 읽었는데 바로 이 세마포였다.

 

이 세마포의 혈흔은 AB형이기에 예수님의 혈액형을 AB형으로 짐직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많으나 세마포에 묻은 먼지와 기타 다른 입자들을 떼어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그중의 일곱 종류는 친염성(소금을 좋아한다) 식물로서 사해(死海)와 같은 염분이

 

많은 지역에서 자생(自生)하는 것들이었고, 기타 다른 종류들은 팔레스타인과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중동지방의 삼종류로

 

수의는 천을 짜기 전에 표백한 것으로서, 역시 고대인들의 방법 그대로였다고 한다.


그리고 끝자락에 검정 부분은 화재로 인해 조금 타다가 만 부분이란다.
 

 

레이저로 세마포를 조사했는데 위 부분에 이러한 형태의 얼굴이 나타난다.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리실 때 못을 박았는데 대못을 저 부위에 박았다고 한다.

 

십자가형의 고통은 익히 아는바 결국은 질식사로 사망을 하는 것인데

 

우리가 처형하는 방법 중에서 아는 "박살"이나 "육시" 못지 않게 잔인한 형벌이라고 한다.
 

 

기념관은 성당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실내 분수주변에는 성화가 많았다.
 

 

예수님의 초상화 앞에 선 두분 권사님들!

 

이곳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한가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 교육중에 만난 불가리아 사는 "할리"라는 화가가 예수님 초상화를 하나 그려줘서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데 우리가 많이 봤던 예수님 얼굴과 달라서 조금 낯설었는데

 

이곳에 와서야 그 그림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피아 가도!

 

로마의 대화재를 핑계로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오는 베드로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신다.
 
 

베드로는 깜짝 놀라서 묻는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도미네 쿼바디스)라고!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 로마로 간다"고 대답을 한다.

 

이에 베드로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로마로 돌아가서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하게 된다.

 

베드로의 심정으로 무릎꿇고 기도해 본다.

 

"주여!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였다.

 

목사님은 이곳에서 반나절을 서성이다가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나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길은 로마에서 카푸이를 거쳐 부룬디시움까지 약 570Km에 이르는 길이다.

 

아피아란 명칭은 감찰관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에쿠스에 의해 BC 312년에 만들어져서

 

그의 이름을 따라 지었다고 한다. 도로 폭은 약 4m로 로마당시에는 현무암으로 포장된

 

중요한 군사와 산업의 도로였다. 유럽은 강이 밑으로 흘러서 석회가 많아 대리석이 발달되었고

 

이러한 도로들이 건설되어 군량미를 조달하기도 하고 약탈품을 실어오기도 했다.

 

 

바울은 나폴리만의 보디올에 도착한 후(행 28:13) 그곳에서 32Km 떨어진 카푸아의 

 

아피아 도로에 도착한 후 압비오 저자와 삼관을 거쳐 로마까지 약 21Km를 육로로 여행했다.

 

일각에서는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끌려올 때 이곳을 지났다고도 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가까이에 있는 도미네 쿼바디스 교회를 들리지 못한 점이다.


 

점심 식사를 위해 스파게티 식당에 들렸다

 

실내가 온통 적색분위기로 이곳에서는 꽤나 유명한 식당이란다
 
 

점심 식사를 한 스파게티 식당!

 

분위기 있고 음식맛 좋은 곳에서 오랫만에 이탈리아 스파게티를 맛 보았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왜 이나라는 이렇게 식당들이 어둡고 음침하게 느껴지는지...

 

한 낮의 식당안은 전등까지 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밝지를 않았다

 

그리고 식당에서 에어컨을 켜고 있는 곳을 들리지를 못했다.


 

식당에 진열되어 있는 와인들!

 

이쪽에는 전혀 아는바가 없어서...


 

식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하여 건너편으로 건너왔는데   도로에 이런 대리석 기둥들이 받치고 있고 인도는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좋았다.   이런 가게와 어우러져 사는 집들도 오래된 곳들이 많다고 한다

 

 

 

카타콤베를 방문하다

 

식사를 하기 전에 이곳에 들렸지만 직원들이 식사시간이어서

 

다시 우리도 식사를 하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가이드하는 양반에게 한 소리를 했다.

 

"이곳 점심시간은 정해 졌을 터인데 가이드가 그것도 모르고 안내를 하는냐"고...


 

입구에서 본 카타콤베의 모습이다.

 

고등학교 시절 본 "벤허"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벤허(찰스 헤스톤)가 누이 틸자(캐시 오도넬)와 모친 밀리엄(마이사 스콧트)를 찾아

 

지하 무덤으로 찾아가던 장면이다. 그 장면을 이곳에서도 떠올려 보았다.


 

로마 정부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교인들이 비밀리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지하동굴교회다.

 

원래는 교인들의 매장지였는데 "로마성 안에는 시신을 매장할 수 없다"는 고대 로마법 때문에

 

카타콤은 모두 성 밖에 있었다.


 

지하 무덤으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붙어있는 조각들


 

도미딜라  카타콤에 있는 지하교회는 길이 31m, 폭 17m가 되는 크기라고 한다.


 

시신을 매장하던 곳이다.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순교자들을 안치함으로 인해 더욱 신성시 되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로마군인들이 습격해 오면 이곳 지하묘지 미로에 숨고는 했다고 한다

 

어떤 믿음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곳에서의 성찬식은 아마 평생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그 순간의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벅차서 시 한편을 읽음으로 대신할 까 한다.

 

카타콤베, 카타콤바.

난 널 무어라 불러야 할까?

천상을 숨쉬기 위해 크게 벌린 땅의 입인 너.

죄와 죽음이 하등 힘 못쓰는 곳.

육신의 한계를 한껏 다해 세월의 휘장을 뚫고 무한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승강역.

 

듣는다, 난.

옹색히 누워 삭아가던 육신들의 안도를!

그 살과 뼈는 동료들이 떨군 눈물로 절구어져 얼마나 잘 몰약되었던가!

 

볼 수 있다, 난.

어둠 속에서 댕기곤 하던 그 작은 등잔들.

그리움들과 함께 깨어있느라 용을 썼던 너의 몸부림의 기도들이 향처럼 타올랐구나

광야의 메마른 땅을 지나던 내 가슴에서 이리 기쁜 눈물이 다시 또 흐를 줄이야

깜깜한 세상을 잊게 하는 또 다른 빛 부신 세상.

끊임없이 타오르는 순교의 산.

늘 마음으로 떠올릴 나의 히브리서.

맘 속 한 켠을 덜컥 차지한 너를, 자주 눈감고 쓰다듬고 더듬으리라.

좁은 이 골목, 층층계 저 모퉁이, 부자 가족의 채색된 널찍한 공간,

가난한 작은 방, 복도 많아 방문자들을 위한 예배단이 놓인 곳,

그리고 ‘어찌 몸 하나 눕혔을꼬’ 너무 작은 초라한 저 구멍...

그리도 좋았을까 주님의 세상

그리도 좋았을까 주님의 말씀이...

 

어디에서인가 발견하고 가기 전에 적어 논 시인데 출처를 몰라서 밝히지 못한다

 

 

우리나라처럼 위에서 파고들어가서 밑에 매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인들은 지하 공간을 확보, 드나들 수 있는 길부터 미리 내고

 

좌우 공간에 석관을 밀어넣는 매장관습을 지녔기에, 묘역을 계속 확장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성 세실리아' 묘는 유명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마귀족 가문의 딸이었던 그녀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했는데

 

뜨거운 수중기로 쪄죽일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목을 쳐서 죽여는데

 

순교 당시 목이 잘리면서도 손가락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표시하며

 

하나님 품에 안겼다고 한다.


 

 

이처럼 벽화의 성화들은 대부분 성경 내용을 주제로 담고 있다.

 

 

참고로 이곳 카타콤의 사진들은 두 장을 제외하고는 다 인터넷에서 받은 것이다.

 

그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촬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몰래 할 수도 있었지만 망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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