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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최진혁 |2008.05.29 20:35
조회 103 |추천 2


Del Piero's Favorite

알렉스는 마이클 잭슨, U2, 에로스 라마조티, 필 콜린스, 벤디티, 풀몬티, MIB OST등의 음악을 듣거나 소설(주로 호러물)을 읽으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 집안의 정원을 가꾸는 것, 그리고 드라이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취미들이다.
그는 많은 여성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배우로는 샤론 스톤, 데미 무어와 같은 육체파 여배우들을 좋아하며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쉬퍼, 신디 크로포드등의 모델들에게도 관심이 있다.
가장 존경하는 축구 선수로는 미셸 플라티니를 꼽는다. 유벤투스의 역사적인 영웅으로 꼽히는 플라티니는 델 피에로가 현재 입고 있는 비안코네리(Bianconeri)의 10번 유니폼을 입고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프랑스 출신의 플레이메이커다. 그리고 AC 밀란 소속으로 세리에A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누렸던 마르코 반 바스텐 또한 델 피에로가 존경하는 축구 스타 중 한명이다.
그는 캐쥬얼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고, 프렌치 프라이와 코카 콜라, 그리고 Tagliatelle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이탈리아인답게 파스타 또한 즐기는 편이다. 축구 이외의 스포츠로는 농구와 테니스, 배구를 선호하는데 특히 NBA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시카고 불스와 LA 레이커스를 주로 응원한다. Story

2001년 2월 18일,유벤투스는 최약체인 홈팀 바리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선두 로마를 승점 6점차로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승부는 치명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무득점의 상황은 후반전까지 이어지고, 답답해진 안첼로티 감독은 후반 17분에 델 피에로를 교체 투입한다. 그러나 이번만은 유벤투스의 골든보이에게 많은 기대를 가질 수가 없었다. 델 피에로의 시즌 전반기는 좋지 못했다. 유로 2000 대회의 결정적 실수로 인해 그는 미디어가 벌이는 마녀 사냥의 희생양이 되었고, 연이은 슬럼프와 부상, 이적설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나마 후반기 시작과 함께 지난 라운드에서는 골을 기록하면서 슬럼프에 탈출하는 듯 했으나, 며칠전 부친상을 당하면서 팀훈련에도 제대로 참가하지 못한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희망의 빛은 최악의 상황에서 더욱 더 밝게 빛났다.
후반 36분, 교체 투입된 델 피에로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상대의 왼쪽 페널티 박스를 파고들었다. 견제하던 상대 수비수를 재치있게 따돌린다. 골문에 접근하는 델 피에로를 향해 바리의 골키퍼가 달려들지만, 순간 델 피에로는 사각에서 가벼운 왼발 슈팅을 날리고, 이내 공은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결승골이다!
델 피에로는 두 주먹을 불끈 지고 우는 듯 기뻐하는 듯 알 수 없는 모습으로 표효한다. 이는 며칠 전 돌아가신 부친이 계신 하늘을 향해 날리는 메시지였고, 핀투리키오의 부활을 알리는 외침이었다. 이토록 델 피에로의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사는 극적인 드라마처럼 전개되어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시작은 축구를 너무나 좋아하는 소년의 꿈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 북부지방인 코넬리아노에서 태어난 델 피에로는 평범한 가정의 소년으로서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지역 연고팀에 속해 있다가, 13세가 되는 해에 파도바 유소년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프로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파도바에서 많지 않은 경기를 뛰었지만 델 피에로가 뛸 곳은 더 큰 무대여야만 했다. 1993년에 유벤투스는 델 피에로의 재능을 알아본다. 델 피에로 또한 유벤투스 행을 주저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가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벤투스의 유니폼을 입은 첫 시즌에 델 피에로는 주로 유소년팀에서 훈련을 하였다. 그러나 어린 나이이지만 뛰어난 재능 덕분에 간간이 성인 팀에 차출되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델 피에로의 Serie A 데뷔는 18살의 나이에 이루어진다.
1993년 9월 12일 포찌아 팀을 상대로 출전하면서 델 피에로는 Serie A 무대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다음 경기인 레찌나 팀과의 경기에서는 그의 첫 번째 골을 기록한다. 그러나 델 피에로의 진정한 데뷔무대는 다음 해에 이루어진다. 1994년 3월 20일 유벤투스는 강팀 파르마를 상대하게 되는데, 주전 선수들의 공백으로 감독은 부득이 신출내기 델 피에로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시종일관 상대를 유린한 델 피에로는 헤트 트릭을 기록했고, 팀은 4-0의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그는 19세의 나이였다.
유벤투스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맞이한 1994/1995 시즌에 델 피에로는 축구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4년 12월 4일 유벤투스는 라이벌 피오렌티나와의 결전을 벌였다.그러나 유벤투스는 2실점을 하면서 끌려갔다. 가까스로 지안루카 비알리의 악착같은 2득점으로 경기는 무승부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승부의 갈림길에 델 피에로가 있었다. 경기 종료 직전, 델 피에로는 등뒤로 길게 날아오는 롱패스를 그대로 골로 연결하면서 극적인 역전골을 일구어 내었다. 이는 그가 위대한 축구 선수로 가는 첫걸음이었으며, 유벤투스가 맞이하는 새로운 황금기의 시작이었다.
델 피에로의 활약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모든 이가 사랑하던 바지오의 부상 공백으로 인해 많은 출장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라바넬리, 비알리와 함께 공포의 공격진을 이루었다. 그해 유벤투스는 11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델 피에로는 29경기 출장에 8골을 기록하면서 팀 우승에 공헌을 하였다. 또 각종 컵 대회에서도 두 자릿수의 출장을 하면서 입지를 넓혀 나갔다. 어린 나이에 스쿠데토를 가슴에 단 델 피에로의 시선는 이미 유럽을 향해 있었다.
95/96 시즌, 델 피에로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5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바지오가 나타났다'라는 찬사를 받았고, 유벤투스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었다. 1996년 유럽 슈퍼컵에서 그는 2골을 넣으면서 트로피를 획득하였고, 남미와 유럽의 클럽 챔피언이 겨루는 인터콘티넨탈 컵(도요타 컵)에서도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자신의 소속팀인 유벤투스를 세계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또 델 피에로는 96/97 시즌에 두 번째 리그 우승을 맛보고, 유벤투스는 2년 연속으로 챔피언스 컵 결승에 오르게 된다.
다음 시즌에는 델 피에로의 독보적인 활약이 더욱 더 두드러졌다. 이때는 그의 가공할 만한 득점력이 빛을 발했다.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두 자리 수 득점을 하였고 팀을 챔피언스 리그 결승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10골을 작렬하면서 대회 득점 왕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다섯 시즌동안 델 피에로가 보여준 화려한 선수생활은 불운으로 인해 지속될 수가 없었다. 1997/1998 시즌 챔피언스 컵 결승전에서 당한 부상의 후유증으로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것은 불운의 시작이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을 하루 앞둔 1998년 11월 8일 우디네제 전에서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1998/1999 시즌을 모두 날려버린다.
부상에서 돌아온 99/00 시즌에 델 피에로는 나름 데로 성공적인 제기를 한다. 팀을 꾸준히 상위권에 유지시키는 데에 공헌을 하였지만 리그에서 고작 1개의 필드골을 기록하는 데 그치면서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후에 맞이한 2000년 유럽 선수권 대회(유로 2000)를 통해 국제 무대에서의 명예회복에 나선 델 피에로였지만 결승전에서 두 번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이유로 이탈리아의 역적으로 몰리면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이때부터 델 피에로는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2000/2001 시즌 후반기에는 모두에 언급한 바리 전을 계기로 기적적인 부활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2001/2002 시즌에는 자신의 소속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델 피에로로서는 4번째 리그 우승이었다.
이 시기에 델 피에로는 그간의 선입견과는 달리 대표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2002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마지막 헝가리와의 경기에서는 멋진 프리킥 결승골을 작렬하면서 팀의 본선 행을 확정지었다. 특히 월드컵 본선 멕시코 전에서 자신의 월드컵 1호골이자 이탈리아를 구하는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면서 국제 무대에서의 징크스를 말끔히 떨쳐버린 바 있다. My Opinion about Alex

델 피에로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이 바로 '판타지스타(fantasista)' 라는 말이다. 다재 다능한 예술가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는데 축구와 관련해서는 보통 슈팅, 드리블, 패스능력을 고루 갖춘 환상적인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는 델 피에로의 스타일을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열거한 능력을 고루 갖춘 선수들은 세상에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델 피에로가 이탈리아식 판타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바지오의 뒤를 잇는 판타지스타의 적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델 피에로를 테크니션으로 분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뛰어난 기술은 자신의 신체 조건에 대한 보완재이자 자신을 특징 지우는 요소이다. 그 테크닉의 일부로서 그가 보여주는 드리블 능력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가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델 피에로도 스피드와 뛰어난 순간 가속력을 이용한 돌파력을 보여주지만, 그런 치고 달리는 식의 드리블이 전부가 아니다. 속도 경쟁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과정에서 델 피에로의 진가는 드러난다. 즉, 보다 빠른 속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보편적인 원리이겠지만, 델 피에로는 스피드를 버리고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최소한의 여력만을 남겨둔 채 자신의 속력을 미련 없이 내던지는 순간 상대수비수의 스피드는 무의미한 상태에 이르면서 급격히 무너지게 되는데, 그때야 비로소 상대를 제압할 수 있게 된다.
순간적으로 마치 슬로우 모션을 연출하는 듯한 급격한 몸 동작의 속도 변화에서 우아한 아름다움이 창출된다. 그것은 델 피에로가 보여주는 예술 그 자체이다. 특히 밀집 지역에서 보여주는 볼 컨트롤은 뛰어나다. 완급 조절을 적절히 해가면서, 때론 빠르게 때론 반 박자 늦추어가면서 양발 드리블로서 상대 수비진을 유린하는 기술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델 피에로는 상당히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플레이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일찍이 그에게 '핀투리키오'라는 화가의 이름을 딴 별명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델 피에로는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의 드리블이 독창적이기는 하나 너무 즉흥적인 감이 있어서 정형화된 안정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는 안정적인 볼 키핑력이 좀 부족하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델 피에로는 소속팀에서 전문 킥커로 나설 정도로 뛰어난 킥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다양한 종류의 슈팅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다만 그에게 강력한 중거리 슛 능력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슈팅의 정교함은 이를 능히 극복하고도 남는다. 특히 왼발사용을 무리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또 다른 장점인데, 득점장면에서 왼발잡이로 느껴질 정도로 정확한 킥 능력을 보여준다.
그래도 역시 델 피에로가 가지는 슈팅력의 정수는 감아 차는 오른발 인프런트 킥일 것이다. 델 피에로의 커리어를 쌓아 가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골 장면의 대부분이 그의 오른발에서 터져 나왔었다. 상대의 왼쪽 페널티 박스 진영에서 반대쪽 포스트로 날아가는 공이 남기는 잔상의 곡선미는 보는 이에게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델 피에로의 능력은 프리킥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델 피에로는 직접 프리킥에 있어서는 일가를 이룰 만큼 많은 득점장면을 연출 해왔고, 프리킥을 잘 차는 선수중의 하나로 명성을 얻고 있다. 간접프리킥이나 코너킥에서도 적합한 상황을 제공하기 때문에, 팀에게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자산이다.
여기에 더해 델 피에로가 뛰어난 패스 능력을 가지고 있음은 그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때로 공격형 미드필더의 자리에 기용될 정도로 그의 패싱력은 널리 인정을 받고 있다. 힘이 묵직하게 실리는 롱패스 능력은 평범해 보이지만, 상대의 허를 찌르는 균형 잡힌 쓰루 패스와 측면에서 날리는 크로스 패스 능력은 위협 그 자체이다.
이렇듯 델 피에로는 다양한 재능을 보여주는 선수이고, 그것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방면에서 고른 재능을 가진 공격수라는 말을 뒤집어서 보면, 딱히 자신의 전문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적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어차피 축구가 11명의 기능적인 역할 분담으로서 팀을 이루는 스포츠임을 생각하면, 한 선수가 팔방미인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한가지 뚜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 의식이 델 피에로를 둘러싸고 있다. 델 피에로는 셰도우 스트라이커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왔고, 그 자신도 항상 자신은 셰도우 포워드임을 강조해왔다. 그 포지션이 판타지스타로 일컬어지는 델 피에로의 능력을 구체화시키는데 가장 적합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말 그대로 '그림자' 역할에 그치는 공허한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할 수가 있다.
그런 유형의 선수들이 팀 전술을 위해 무시할 수 없는 공헌을 하고 있긴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미드필더도 아니고 포워드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공로가 부당하게 묻혀지기 쉽고 자칫 '계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근래 대표팀에서 그가 자기 몫을 찾지 못하는 어려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을 델 피에로도 감지했던지 그 스스로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득점이다. 유로 2000 대회 이후부터 델 피에로는 각종 인터뷰에서 골에 대한 강한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는 자신을 좀 더 부각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 할 수 있다. 그 동안 어시스트는 물론 기록으로 나타나지 않은 활약으로 팀을 각종 우승에 이끌었던 델 피에로였지만, 이제는 좀 더 가시적인 성과물인 골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에게 셰도우 스트라이커라는 위치상의 제약과 그가 전형적인 득점 기계로 길러진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 어려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가 가진 천재적 축구 감각이라면 득점수의 증가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좋다. 그가 어떤 변화를 거치더라도 그가 보여주는 판타지는 언제까지나 유효할 것이다. 최고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밑바닥의 어려움과 시련을 이겨내고 결국 팬들 앞에 돌아온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예술을 즐길 시간은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PROFILE

성명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Alessandro Del Piero) 생년월일   1974년 11월 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   173cm / 73kg 포지션   FW(포워드) 클럽   유벤투스(이탈리아) 주요경력   94/95, 96/97, 97/98, 01/02 리그 세리에A 우승
  94/95 리그 이탈리아 컵 우승
  1995, 1997, 2002 이탈리아 슈퍼컵 우승
  95/96리그 챔피언스컵 우승
  1996 유럽슈퍼컵 우승
  1996 도요타 컵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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