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 코미디 / 69분 / 감독: 찰리 채플린
(★★★★★)
'찰리 채플린'은 188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77년 88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2살 때 극단의 아역배우를 시작으로 유리공, 이발사, 팬터마임 배우 등을 전전했으며 네번 결혼과 한번 약혼에서 열명의 자녀를 생산했다. 1910년 팬터마임 배우로 미국에 발을 디딘 뒤 40여년간 미국에서 살다가 47년 할리우드의 '빨갱이 사냥'에 걸려 52년 추방당했다. 평생 동안 그는 81편의 작품에 관여했는데 이중 70여편이 자신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겸한 것이었다.
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지금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다. 가 자본주의가 이미 자리를 잡은 도시의 쓸쓸한 풍경이자 돈과 인격에 관한 수채화라면 는 황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헤매는 인간들을 그린 흑백사진이다. 가 자본과 권력에 대한 비판의 시작이라면 는 공격을 위한 몸풀이다. 채플린의 5대 희극 안에는 이 세편 외에 와 가 추가된다. 그리고 이 희극 5편은 채플린 최고의 영화들 속에 포함된다. '채플린'은 삶과 사회에 대해 지극히 비관적이었던 대신에 그것을 묘사하는 무기로 웃음을 선택한 셈이었다. 물론 그가 웃음을 택했던 것은 불우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거부했던 심리와 철벽같은 세상에 대한 전술이었겠지만 이 속에 상업주의적 타협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밝은 화면과 또렷한 사물들, 그리고 사건 위주의 단순한 이야기 구조 등 그의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의 모두가 그랬듯 예술보다는 상품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채플린의 영화들, 특히 가 세상을 향해 내쏘았던 질타는 사회비평적 모범으로서 이후의 영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과 더불어 우리는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한 많은 현대영화에서 채플린 영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찰리는 지독한 굶주림 때문에 구두를 삶아 먹으며 구두창의 못을 뼈다귀처럼 핥고 찰리의 상대편에 있는 사람은 찰리를 닭으로 착각하고 덤빈다. 금광을 발견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싸우지만 현실(눈사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찰리는 어느 오두막에 들어가 고달픈 육신을 달래지만 이제 그에게는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고 현실은 언제나 초라했으며 욕망은 항상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그래서 찰리로 나온 채플린은 웃음으로, 엉뚱한 댄스스텝으로, 초라함과 낭만이 가득찬 풍경으로 그것에 대항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채플린이 금광을 발견한 사람의 동료가 되고 게다가 아름다운 주점 무용수를 품에 안고 행복한 웃음으로 키스를 나누려는 장면으로 끝난다. 원래는 우수와 비애로 가득한 사회비판적 영화였는데 채플린 역시 할리우드 사람답게 할리우드의 고색창연한 행복한 결말의 관습을 이어받았다. 상업주의와 야비하게 타협한 셈이었다.
'채플린'은 그뒤 에서 최대의 서정으로 현대를 그린 뒤 에 가서 구체적인 비판을 시작한다. 이것은 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짧은 콧수염의 '히틀러'와 '찰리', '찰리'는 꽉 죄는 윗도리와 헐렁한 바지, 그리고 군함만한 구두와 대나무 지팡이로 '히틀러'에 대항했다. 남들은 현재에 안주할 나이, 쉰살 때의 일이었다.
이런 '채플린'이 두번째 부인 '리타 그레이'와 몰래 결혼하고 를 만들 때, 절망한 독일의 영화 예술가들은 을 만들거나 필름 느와르의 원조격인 등을 만들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나운규'가 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가 이제 막 근대영화의 진입단계에 다다랐을 때였고 그뒤 각 나라의 영화역사는 나라 사정에 따라 제각기 걸음을 내딛었다. 는 이러한 영화역사의 비극성과 현대의 비극성 모두를 예고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