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원님은 말씀을 참 잘하십니다. 그런데요, 말씀하실 때 양심을 좀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래,
토론에 부적절한 발언 맞다.
인신공격성 발언 맞다.
그런데 어쩌나?
저런 말을 대놓고 해준 게 너무나도 고마운 걸.
조경태의원.
나경원의원의 세련된 말투와 깔끔한 문장력에 대비되는
그의 거친 사투리와 쉽게 흥분하고 마는 성격.
냉정히 말해서 토론을 잘 하는 분이라고는 못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보신당과 노회찬, 심상정을 지지하고 있고 진중권의 짱팬이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그들의 토론스타일을 좋아한다.
정치인에게 따뜻한 정이나 아버지같은 사랑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며,
정당한 분배 실현을 정치적 목적으로 하는 진보적 성향의 인사들에게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
-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그다지 진보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심상정 의원도 나와서 여느 때처럼 잘 해주셨다.
그런데 오늘 새벽엔 심상정의원이 아닌 조경태의원 덕분에,
잠시나마 -기대하지도 않았던-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다.
조경태의원에게서 유시민이 보였다.
탄핵정국 시절, 유시민의원이
마치 아버지를 욕한 사람과 싸우는 것처럼
눈에서 불을 뿜어가며 토론하는 모습은
재밌기도 했지만,
내가 봤을 때 유시민은 퍽 신기한 생명체였다.
호불호를 떠나서, 유시민이라는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아는 게 많은 사람이다.
보통 지식인이라면 축적된 지식이 제시하는 '이상'을 좇게 마련인데,
그는 '이상'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가치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정치적 목적'보다는 '의리'를 지킨 것도,
'인간'으로서는 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흠으로 남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권력을 위한 이합집산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대통령을 "아버지"에 비유하며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은 전력이 있다.
총선이후에는, 낙선했으면서 뭐가 그리 행복한지 쏟아지는 빗속에서
너무나도 환하게 웃으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허리가 굽어져라 인사를 했었다.
얼마 전 '시선집중'에서 의보민영화에 관한 인터뷰 중
"뭐가 필수고 뭐가 선택이죠? ...사람이 아프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라는 말을 했는데,
말의 내용보다는 진심으로 화를 내는 그의 목소리가 더 와닿았다.
사람이란 많이 알 수록 머리와 가슴이 차가워지고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예외는 있었다.
온정주의를 우상화할 생각은 없다. 조폭들 사이에도 온정주의는 있다.
그런데 노무현, 유시민, 조경태..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이야기하고,
'국민'을 위하고 있다.
그 '정'의 방향은 동료 의원도, 지지집단의 이기도 아닌 국민을 향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태도에서는 확실히 진실성이 묻어난다
-나경원의원을 향해서도 끝까지 '진정성'을 물고 늘어지지 않던가-.
물론 그 의욕만으로 결과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재집권 실패도 거기에서 기인했다.
조경태의원도 역시 민주당 국회의원.
그들의 진화능력, 변화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20대 초반의 대학생인 나보다도 훨씬 순수해보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나.
제발 그가 그 순수함을 잃지 않길,
그리고 그 열정에 걸맞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길 바랄 뿐이다.
'많이 아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다, 라는 통념이
틀리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는 나경원의원을 보면서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지식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
교육수준도 중요하지 않다.
그 지식을 어떻게,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그 사람의 신념과 가치체계가 어떤지가 중요하다.
내로라 하는 대학 나오고, 무한경쟁을 뚫고 소위 '성공'했다는 현 정권 인사들이
그 '능력'을 가지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란 해악을 넘어 재앙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나도 20대지만)현재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이 재앙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준비한다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인생만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 되어버린 자신들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일제시대에 친일을 하며 살아남은 지식인들은 전자에 치중했고,
독재권력에 투항하여 부당한 정권의 나팔수로 살아남은 지식인들도 그랬으며
당시의 어용 관제 언론으로서 지금까지 끈질긴 명줄을 이어온 조중동도 그랬다.
"촛불시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라고 말하는 20대들이 그대로 나이를 먹어
기성세대가 된 세상이 아름다울 리 없다.
광신적인 반공을 기치로 내건 폭압적 권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지지하며,
그저 나와 내 가족 먹여살리기 위해 목숨을 부지해온
현재의 장년과 노년층을 보라. 추하지 않은가.
그들이 지지하는 세력, 그 세력이 망쳐놓고 있는 세상을 보라. 추하지 않은가.
노무현과 유시민, 조경태같은 정치인들.
'가슴이 따뜻한' 보수라고 해야 하나.
'개혁적 성향의' 보수라고 해야 하나.
한국의 상황적 텍스트에서 떼어놓고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이들은 진보라고 하기도, 보수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실 요즘은 이런 구분짓기마저 사치스러운 형국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기득권으로 태어나 기득권으로 성장한 '엘리트' 나경원,
그리고 10년간 '서러운 야당생활'을 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간 온갖 투기와 초법, 불법, 탈법, 편법으로 내장지방을 불려온
한나라당과 현 정권을 위시한 수구세력.
그들은 '양심'이라는 단어가 뭔지 모른다.
그 똑똑한 머리로 이 두 글자 단어를 정의내릴 수 없다.
'국민'이란 그들에게 표밭이고 밥줄일 뿐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
양심. 도덕성.
어느 순간 우리 사회가 도외시해버린 가치.
아예 '도덕성'의 대립각으로
'능력'을 외치며 등장한 현 정권의 경악스러운 '무능력'.
당해봐야 안다는 말이 맞다.
현재 상황은 절망스럽지만 그만큼 반성해야할 것도 많고 배워야할 것도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도덕성=능력' 이라는 명제
(적어도 공직자에 한해서는 성립한다)를 이미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나경원의원님, 양심을 좀 갖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토론 중 조경태의원이 뱉은 말.
맞다. 양심 갖고 살아야 되고 양심 갖고 투표해야 한다.
'양심'은 나경원의원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유권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일테다.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뒤에 역시 양심적이지 않은 유권자가 있었다는 방증인 셈이다.
그러니 어떤 '양심'을 가져야 할 지 고민해봐야겠다.
시대가, 사회가 요구하는 양심은 늘 변화한다.
일제치하에서는 항일투쟁이,
독재체재에서는 민주화운동이 시대적 양심의 발현이었을 것이고,
2008년 지금 요구되는 양심은 또 다른 성질의 것임이 분명하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계속,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한
실수는 계속될 것이다.
...
어쨌든 토론, 난 재밌게 봤다.
답답한 부분도 많이 있었지만
지극히 '감정적인' 조경태의원의 일갈이 통쾌했고
그 말의 함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도 해봤다.
심상정의원 토론하는 모습도 봐서 좋았고...
시간대는 좀 어떻게 안 될까. 시간대가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