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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태생적 우울함의 일관된 진행...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백혁현 |2008.06.30 00:06
조회 106 |추천 0


  “... 나는 부유하는 먼지로 가득한 세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종국에는 바스러지고 마는 지루한 존재의 비밀스러운 표정에 대해서 생각했다. 멋있는 행동과 세련된 말이 존재하지 않는 삶의 사소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삶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을 뿐이지 언제나 압도적인 사실로 존재한다. 비주류적 세계의 질서 같은 게 있다면,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 그걸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 소설이 의도한 게 있다면 이 정도다.”


  소설의 뒤에 따라 붙는 말은 잘 읽지 않지만 작가의 말은 그래도 챙겨보는 편이다. (보통 작가의 말은 두세 페이지 정도로 짧다. 겸손한 것이거나 소설 쓰느라 너무 피곤한 탓일 것이다.) 작가는 이미 소설의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거대한 주류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소한’ 비주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세상을 구동하는 핵심적인 부품처럼 행사하는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구동하는 주력이 되는 대다수의 핵심적이지 못하다 폄훼되는 이야기에 연정을 품고 있는 듯하다.


  “선재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루하고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썹과 코가 달아난 문둥이의 자식, 육욕 때문에 법을 깨뜨린 파계승의 아들이 별수가 있을까...”


  모두 여든 아홉 개의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의 가장 큰 줄거리는 선재를 통해 전개된다. 출가를 결행하여 수행 중이었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수행 중이던 절에 드나들던 보살 사이에 맺어진 인연으로 태어난 선재는, 그러나 이후 천형과도 같은 문둥병에 걸려 소록도로 보내져야 했던 어미, 그 일이 있은 이후 집을 나서버린 아비라는 설정은 그야말로 신파적이다.


  그리고 이 선재라는 주인공에 바짝 맞닿아 있는 것은 (선재와 소라가 묶는 방이 벽 하나로 구분되는 것처럼) 젊은 남편을 군대에 보낸 소라이다. 이르게 세상을 떠난 어미와 어미를 잃은 이후 생을 팽개쳐 이제 뇌졸중 환자 신세로 누워 소라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하는 아비로 구성된 소라의 신파도 만만치 않다.


  그런가 하면 군대에 있는 선재의 동생 선규는 군대에 간 소라의 남편 영표의 직속 상관이고, 어미를 잃은 이후 방황하는 소라의 동생 호준은 선재가 다니는 학원의 젊은 여선생인 미진과 섹스 파트너이니 이들의 엮임은 꽤나 드라마틱(?)하다. 마치 오래전 우리들 드라마의 단골 게스트였던 달동네 사람들의 그로테스크하고 우울한 현대적 버전에 다름 아니다. 


  “...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얘기하는 건 아주 쉽고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닌가. 왜냐하면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엄정한 도덕적 입장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어느 정도까지 나를 옹호할 것인지, 아니면 비판할 것인지 그 수위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에둘러 간다. 그런 준비 없이 자기 자신과 막다른 골목에서 맞부딪치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는가. 자신의 검은 치부를 홀로 들여다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여기에 학원 원장인 철중, 철중의 사촌동생이며 부원장인 철민, 학원 선생이며 원장과 성을 주고받는 미진, 학원 선생이지만 임용고시를 통해 학원 탈출에 성공하는 희태, 부원장인 철민을 짝사랑하는 비만 몸매의 선생 선숙, 학원 버스를 몰며 자폐아 쌍둥이와 병든 아내를 보살펴야 하는 ‘얼룩진 인생’ 진호가 있고, 선재의 친구이며 시인으로 성공한 인명과 선재의 여자친구였던 은이 간간히 등장한다.


  주인공의 태생이 우울하기 그지없고, 이들의 삶의 연혁을 비롯하여 현재의 삶 또한 우울하기 그지없으며, 예상 가능한 이들의 미래도 우울하기 그지없고, 이들의 과거에 포진했고 현재에 포진하고 있으며 미래에 포진하게 될 것이라 예측되는 인물들의 면면도 우울하기 그지없지만, 근래 본 국내 소설 중 가장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그러나 조금은 산만해 보인다.


  밝은 면만을 보여주며 밝은 면을 이야기하고 어두운 면만을 보여주며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일은 오히려 이야기의 응집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철저하게 우울 일변도로 쏟아져 내리는 여든 아홉 개의 이야기들은 이야기를 읽는 이의 감성의 일관성을 유지시키는 데에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읽는 이의 감성에 고저를 주는 데에는 실패한 듯 보인다. 사실 도무지 나아질 기미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의 편린에 짜증이 나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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