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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실시한 국제개발협력체험수기에서 저와 같이 우수상을 받았던 강성원씨의 글을 싣습니다. 강성원씨는 제가 지구촌공생회에서 근무할때 처음으로 아프리카로 파견하였던 학교후배이면서 동료활동가인데, 학교를 졸업하자마자(성균관대 사회복지) 개발NGO활동가로서의 비전을 가지고 아프리카 개척사업을 맡기 위해 홀홀단신 케냐로 갔었습니다. 현재 2년째 현장근무하며 "물의 전쟁"이란 제목으로 현장에서 겪고 있는 이야기들을 지인들에게 보내오곤 했는데 이번에 수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김동훈]
물의 전쟁
지구촌공생회
강성원 Project Manager
“탕 탕 탕”
육중한 기계소리가 굉음을 내며 땅을 뚫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눈에는 호기심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기계는 부드러운 흙을 만나면 무리 없이 땅을 파들어 갔지만 단단한 돌을 만나면 굉음을 내며 힘들게 파들어 갔다. 가끔 기계는 단단한 돌을 부수며 굉음을 토해냈는데 그때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그 소리에 놀라 달라나곤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리고 자기 내들도 그 모습이 웃기는지 키득키득 거리며 웃었다.
아프리카 케냐의 경우 물 층이 대부분 지표에서 150~200m정도 깊은 곳에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땅을 뚫기 전에 물이 어느 지점에 어느 정도 깊이에 있는지 지질조사를 해서 분석을 마치면 그때서야 땅을 뚫게 된다. 이 지역 지질조사 결과 지하 40~70m 사이에 물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60m정도 파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100% 정확하지가 않다. 얼마 전에 어느 선교사님 두 분이 지질조사를 해서 확인된 지점에 땅을 뚫었지만 200m를 뚫어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물을 뚫는 업자들도 물이 안 나온 경우를 많이 경험했는지 계약조건에 물이 안 나왔을 경우 기름 값만 받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비록 우여곡절 끝에 땅을 뚫고 있지만 이곳에 물이 나온다는 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여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반듯이 물이 나올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나도 그들의 기대가 어긋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지하 22m 정도 들어가니 약간의 물기 묻은 돌과 흙이 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약간은 풀리는 듯했다. 진흙의 점성이 너무 강해 유연제를 구멍 안으로 계속 넣으며 작업을 했다. 30m 정도부터 다시 마른 흙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이 있다는 층까지는 10m밖에 남지 않았는데 약간 풀렸던 마음이 다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의심이 드는지 나에게 그리고 기술자들에게 물이 나오는지 계속 물어보았다. 지질조사 결과 물이 있다고 했던 40m가 지나가면서도 물이 나오지 않자 나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물이 안 나왔을 경우 계획된 깊이보다 더 파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장소를 탐사해서 팔 것인가? 그렇게 되면 측정된 예산이며 이 후 계획들은 다 틀어져 버리게 된다. 그것보다 더 타격은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실망감 이것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의 조급함은 더 밀려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흙탕물이 나의 몸을 덮쳐왔다. 그리고 몇 초가 흘렀을까.
“마지 있고 마지 있고(물이 나왔다 물이 나왔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뚫고 있는 곳을 보니 흙탕물이 거짓말처럼 뿜어져 나왔다. 비록 기계의 압력에 의해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긴 했지만 얼마나 반갑던지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다고 해도 이렇게 반가울까 모여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의심의 빛이 가시고 기쁨의 웃음이 가득했다. 2007년 4월 물 부족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마음을 내고 머나먼 땅 아프리카 케냐에 온지 8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아프리카는 참으로 거대한 대륙이다. 이 지구상에서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이 바로 아프리카다. 이 아프리카는 53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 인구가 9억 2400만 명이고 앞으로 2050년이 되면 10억 이상의 인구가 늘어 19억 9400만 명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지구상에서는 3초마다 한 사람씩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를 계산해보면 4년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아프리카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이뿐이랴. 에이즈와 말라리아 풍토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케냐의 나이로비에는 가장 빈곤한 대륙 아프리카의 최대 빈민가인 키베라(Kibera)에는 80만 명의 빈민들이 살고 있다. 이미 빈민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 마을에 들어서면 악취가 코를 찌른다. 좁은 골목을 두고 비라도 오면 금방 진흙탕으로 변하는 흙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뱀처럼 이어진다. 이곳이 케냐 아니 아프리카의 한 모습이다.
혼자 처음으로 아프리카 케냐에 들어와서 많은 것이 낯설었다. 그 중에서도 온통 거리를 가득 메운 검은 물결들이 나에게는 너무 낯설었고 나를 압박해왔다. 대학시절 인도, 중국, 몽골 등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자원활동을 해왔던 나로서는 아프리카의 검은 물결이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두려움도 잠시, 수많은 빌딩,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는 자동차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하루 장사를 위해 가게를 준비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 주인, 책가방을 매고 학교로 분주하게 가는 학생들, 한명의 손님을 더 태우려고 목청껏 외치는 마타뚜 안내양 등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였다. 외계세계가 아닌 사람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다. 다만 다를 뿐이었다. 얼굴색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거리를 지나가면 얼굴색이 달라 많은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러면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지금은 그냥 씩 웃어준다 그러면 보던 사람도 웃음으로 답례한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닫혀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열려갔다. 이렇게 나의 문제가 해결되니 주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고 무엇을 어떻게 할지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우선 오래전부터 오지마을에서 활동을 해 오셨던 선교사님들을 찾아갔다. 대부분 선교사님들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짓고 학교, 보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활동을 하고 직접적으로 주민들을 만나면서 활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살고 있으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떤 특성이 있는지 알고 계셨다. 그런 정보들이 내가 활동하는데 아주 큰 힘으로 작용했다. 내가 찾아간 지역은 수도 나이로비에서 남쪽으로 120km떨어진 마사이족들이 살고 있는 카지아도 룸부아 지역이다.
마시이족은 원래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국경도 없이 그냥 물 있는 곳을 찾아 이동을 했다. 1963년 독립을 하면서 국경이 생기게 되고 더 이상 마음대로 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1994년 정부에서 일정한 지역을 지정해 주면서 살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지역이 킬리만자로 산 주변을 지정해 주었다. 하지만 킬리만자로에서 내려오는 물이 일부지역으로만 흘렀다. 그리고 강이 있지만 대부분의 강이 우기에만 흐르는 강이라 건기에는 물 부족이 극심했다. 그래서 마사이족이 사는 지역이 예전부터 물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특이한 점은 집들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님께 여쭈었더니 마사이족은 가축을 기르기 때문에 목초지 확보를 위해 모여 살지 않는다고 하셨다. 마사이들의 삶의 모습이 궁금해서 가정집을 한번 방문해보기로 했다. 여기서는 범아(마사이 전통가옥)라고 불려졌다. 차를 타고 숲속을 달려 15분 쯤 가니 집이 몇 채 보였다. 집은 흙으로 지어졌다.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발라서 만들었다. 그런데 집 크기가 너무 작았다. 2~3평 남짓 되어보였는데, 그곳에 6식구가 잠을 잔다고 했다. 마시이족들은 전통적으로 유목민이라 집을 작게 짓고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똥으로 집을 지었다.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미로처럼 입구가 코너로 되어있었다. 외부로부터 동물들의 칩임을 막기 위해서 코너로 만든다고 한다. 내부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을 피우는지 연기가 집안에 가득했고 눈이 매워서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앉으라고 나에게 말을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창문이라고는 손거울처럼 아주 작게 만들어져 있었다. 파리,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창문을 작게 만든다고 한다. 눈이 너무 매워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아낙들이 한 바가지도 안 되는 물을 가지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온통 파리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 얼굴에도 파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이런 환경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TV에서만 보던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이 직접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순간 막막했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켠에 자그마하게 텃밭을 가꿔놓고 있었다. 옥수수를 심었는지 제법 커가고 있었다. 그리고 양철지붕으로 빗물을 받을 수 있도록 약간의 장치를 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식수로도 부족해 보이는 물이 옥수수에게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이 지역의 전체적인 문제는 물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니 10~15km떨어진 지역에 우물이 있어 그곳까지 여성과 아이들이 매일 물을 기르러 간다고 했다.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펑펑 나오는 곳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다시 선교사님 이 운영하는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에서는 식수를 위해서 땅을 파놓았다. 180m를 파서 제너레이터를 설치해서 물을 퍼 올리고 그것을 탱크에 담아서 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주변 소수의 지역주민들이 이 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이 지하 깊은 곳에 물 층이 있어 이런 장치를 통해서만 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길로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중앙 수도국(Maji House)을 찾아가 물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에 대해 정보를 얻었다. 수도국에서는 키투이, 마차코스, 무윙기, 마쿠에니, 그리고 방문했던 카지아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이 지역들을 방문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조사해보기로 했다. 나는 다시 각 지역에 있는 지방 수도국을 찾아가 물 부족이 심한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수도국 직원과 함께 마을을 방문했다. 대부분 마을에서는 룸부아에서 보았던 모터펌프를 이용한 식수공급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설들이 고장 나 있었다. 2002년부터 많은 국제 NGO단체에서 아프리카 지역 식수공급을 위해 모터펌프, 제너레이터를 설치해 놓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전체 80% 정도가 고장이 나 있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모터펌프와 제너레이터를 작동하기에 교육수준이나 의식수준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함부로 사용하고 약간의 수리로 고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지나쳐 큰 고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NGO단체에서 단순히 시설만 지원 해주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시설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어서 고장이 나도 누구하나 고쳐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리곤 다시 10~15km 떨어진 지역에 가서 물을 길러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왜 고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돈이 없고 당신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이 답변에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었다. 식수만 놓고 볼 때 NGO단체들이 해 놓은 일들이 이들의 자립을 도와준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바라는 마음, 의지심만 더 키운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 하나가 활동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이렇게 지역조사를 통해 결정한 지원방향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치 그리고 그 장치에 대해 스스로 관리하고 수리 할 수 있는 교육 및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본부와 논의 끝에 카지아도 지역에 우리나라 재래식 우물형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우물은 사람의 손으로 물을 기르기 때문에 어떠한 장치들이 필요 없었다.
카지아도 지방정부의 소개로 한 지역을 방문했다. 그 지역은 주민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서 곳곳에 웅덩이를 파 놓았다. 하지만 그 웅덩이가 주변 오염물에 노출 되어있어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욱이 우기에는 빗물이 주변 오염물질을 안고 우물로 들어와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역 보건소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우기와 우기가 막 끝난 시점에 수인성 환자가 늘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유목을 하는 관계로 가축에게 물을 먹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문제는 하나의 식수원으로 가축도 마시고 사람도 먹는다는 데 있다. 가축들이 물을 먹기 위해 웅덩이로 들어가면 배설물 및 분비물이 물로 유입되면서 오염된다. 하지만 식수원이 이것 밖에 없는 마을주민들로서는 차선책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역에 시범적으로 재래식 우물을 지원해보기로 했다.
우선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마을주민들을 모았고 우물프로젝트에 대한 의의와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한창 설명을 하고 있는데 주민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왜 모터펌프와 제너레이터를 지원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을 지원하게 되면 버턴만 누르면 편리하게 물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답사를 했던 경험들을 그들에게 이야기 하고 지금 우리가 지원하는 방법의 장점들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100% 동의를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우선 해보자는 데 다들 동의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역할과 우리 NGO의 역할에 대해서 논의를 했고 협약서를 작성했다.
협약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NGO 단체에서는 돈이 많이 드는 자재, 가령 시멘트, 목재 등을 제공하고 마을사람들은 땅을 판다든지 돌을 나른다든지 큰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 노동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작업현장을 체크하는 것, 매주 마을미팅에 참석하는 것, 위생교육에 참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협약서의 핵심은 마을사람들이 우물지원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이 협약서에 동의했고 우물 공사는 시작되었다. 우물을 만들기 위해 땅 파는 작업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노동자 임금을 마을사람들이 모아서 내기로 했다.
우리는 모토도 하나 만들었다. Maji ni Uwai Sawa!! Sawa!! (물은 생명이다. 맞아!! 맞아!!) 작업을 시작할 때 끝날 때 그리고 미팅하기 전에 끝날 때 항상 외치게 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재미있어 하면서 힘차게 외쳤다. 아이들도 재미있었는지 나만 보면 모토를 외치곤 했다. 이것을 보면서 앞으로 위생관련 여러 가지 내용들을 모토로 만들어서 재미있게 해보면 자연스럽게 전파가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또한 플랜카드를 적어 마을 입구에 걸어 놓고 주민들이 길을 오가다 그 문구를 보고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더불어 매달 3가지 행동지침을 만들어 위생교육을 받고 그것이 실지로 생활에서 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적용해 볼 생각이다. 이렇게 이들이 위생에 대해서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직접 생활에서 녹아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을미팅도 매주 일요일 진행이 되었다. 미팅의 핵심은 노동자에게 지급할 임금을 어떻게 거두냐는 것이었다. 처음 몇 주간은 사람들도 잘 모이고 돈 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도 돈을 내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어느 날 미팅에 참석한 사람가운데 한 사람이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NGO 단체는 모든 것을 지원해주는데 왜 이 단체는 안 해주냐는 불만이었다. 나는 다시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 우물은 나의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다만 보조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루는 일요일에 마을 전체 사람들이 모여 돌을 모으기로 했다. 여기서 또 불만들이 나왔다.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서 하면 되지 왜 우리가 이런 힘들 일을 해야 하는지 불만을 이야기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다시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돈을 써서 모든 것을 처리해버리면 쉽게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버리면 이들은 항상 이렇게밖에 살 수 없을 것이다. 항상 누군가가 도와주기만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다만 이들이 스스로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그 후 그들 스스로 마을개발을 하는 것 왜냐면 이곳은 그들이 살아가는 그들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작년엔 가뭄이 심해서 가축들도 많이 죽었다고 한다. 한 예로 마을주민 중 270마리 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16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마사이족들은 가축을 사육해서 양식을 얻는다. 때문에 가축이 죽는 것은 이들에게 양식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나 병원이 모두 20km정도 떨어진 도시에 있어서 이들은 거의 해택을 못 받고 있었다. 흙탕물을 먹고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해도 병원에 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죽은 아이들도 몇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아프리카의 다른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찾던 곳을 찾아서 기쁜 마음이 든 반면에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만약 내가 빌딩숲속에만 있었다면 한국에만 있었다면 이런 현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일을 하면서 물을 지원하는 일이 꼭 물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바로 그들에게 희망, 그리고 삶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일, 이것이 바로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그들과 함께한다.
[출처] [해외봉사수기] 케냐에서의 물의 전쟁 (국제개발아카데미) |작성자 김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