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세계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을 보며,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를 대하는 기업의 안일한 방식에 깊은 쓸쓸함을 느낍니다. 혹여 제가 광주 출신이기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故 박종철 열사의 희생이 깃든 '책상에 탁'하는 문구까지 활용된 것을 보며, 어쩌면 광주뿐 아니라 부산을 비롯해 역사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은 아닐지 깊은 우려가 듭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실무자의 ‘마케팅 사고’라는 프레임으로 덮기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 문화를 대하는 기업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위험한 지표로 읽힙니다.
1.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
문제가 터지자마자 실무자만 해고하며 여론을 잠재우는 모습은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로 보입니다. 물론 실무자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마케팅 안건은 실무자부터 팀장, 임원까지 결재 체계를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도 이 안건이 여과 없이 통과되었다는 건, 조직 내에 그 단어가 가진 위험성을 필터링할 시스템이 아예 없었음을 대중에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실무자 몇 명을 희생양 삼는다고 조직 전체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 기업의 ‘무지’라는 변명
기업은 ‘무지’를 변명으로 내세우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마케팅하는 기업이라면 5·18 이라는 역사의 무게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기업은 마케팅을 위해 시장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정서를 분석하는 전문적인 팀을 운영합니다. 대중의 역사적 정서를 사전에 파악하고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마케팅의 기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탱크’와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마케팅 카피로 썼다는 건, ‘무지’를 넘어 ‘역사적 감수성의 결여’ 혹은 ‘의도적인 무시’로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대중의 분노를 노이즈 마케팅의 재료로 생각하거나, 역사를 그저 ‘지나간 옛날이야기’로 치부하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거대한 기업이 사회의 아픔을 이렇게 가볍게만 보는데 이 정도의 인식을 가진 기업이 외치는 ‘윤리 경영’의 진정성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사태를 단순히 ‘마케팅 사고’로 보는 것은 역사적 사건을 굉장히 축소해 보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3. 대중이 분노하는 지점은 ‘단어’가 아니라 ‘의도’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을 두고 단순히 특정 단어 하나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중이 진정으로 분노하는 것은 그 단어를 선택할 때 누군가 낄낄거렸을 ‘의도’를 직관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조직 일부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나 조롱을 허용하거나 방치해온 분위기가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느껴지며 이것이 실무자 일부에게는 그저 ‘반사회적이고 저급한 조롱 문화 속 놀이’였을 수 있다는 점이 대중이 분노하는 지점입니다.
특히 이번 사태를 그저 ‘일베식 혐오와 조롱 문화’를 마케팅의 재료로 삼아 소비한 실무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특정 정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가 그들의 희생 덕분임을 새기는 일이며,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우리 역사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유희의 대상에 불과했는지, 진심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성원 개인의 정치적 견해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이가 우리 사회가 지켜온 현대사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조롱하는 수준의 역사적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직업적 전문성을 떠나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인식이 공적인 마케팅 채널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는 사실입니다. 공식 채널은 기업의 얼굴이자 그 기업이 공유하는 가치를 대변하는 창구입니다. 이곳에 혐오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는 기본적인 검토 과정조차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실무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채용 단계에서부터 조직 문화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필터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경영진의 관리 부실이 더 근본적인 책임으로 지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4. 숫자 뒤에 숨은 모멸감
기업은 숫자를 보고 달릴지 모르지만, 그 숫자를 소비하는 대중은 역사를 살아가는 중이기에 느껴지는 불쾌함은 단순한 단어 선택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내 가족과 공동체의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낄낄거리는 유희로 소비되었다는 '모멸감', 그 본질을 ‘마케팅 사고’라는 이름으로 축소하려는 기업의 태도에 비참함을 느낍니다.
오늘날 기업들은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아우르는 윤리 경영을 앞세워 소비자와 신뢰를 쌓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비극을 상업적 도구로 이용하는 기업에 과연 '사회적 책임'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숫자를 지향하는 경영 전략이 공동체의 가치와 충돌하는 순간, 그 기업은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마케팅의 성공은 숫자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서 기업이 잃어버린 윤리적 정당성은 그 어떤 이윤으로도 복구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음 세대로 전하려는 이들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가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의 고통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그 뒤틀린 시선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윤리 경영을 말하고 싶다면, 그 시작은 최소한 타인의 아픔을 유희로 소비하지 않는 것부터여야 합니다. 역사를 조롱하며 얻는 이윤이 정말 브랜드를 빛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마케팅은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과정이지, 사회적 갈등과 비극을 소비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거대 기업의 마케팅 뒤에 숨겨진 천박한 역사 인식은 기업이 마땅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마저 의심하게 만듭니다.
누군가는 이번 논란을 그저 '스쳐 가는 해프닝'이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를 조롱해 얻은 이윤으로 경영을 이어가는 태도는, 결코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며 반복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 역사가 혐오의 재료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소비자로서는 이제 소비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심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진정한 반성과 책임 있는 조치가 뒤따를 때까지, 오늘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어떤 가치가 담겨 있는지 스스로 물으며 현명한 선택을 이어가야 합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 것인가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 역사가 더 이상 혐오의 재료로 이용되지 않는 사회, 그 당연한 가치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