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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더 리퍼 (Jack The Ripper)

이희재 |2008.07.07 09:10
조회 335 |추천 0
역사상 가장 악명 높고 불가사의한 연쇄살인범으로 일컬어지는 잭 더 리퍼. 그는 1888년 장장 10주에 걸쳐 잔인하기 그지없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런던 일대는 공포에 휩싸였으며, 잭 더 리퍼는 최초로 신문이 주목한 희대의 살인마라는 명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무성한 소문과 공포를 만들어 냈던 살인마 잭 더 리퍼는 끝까지 체포되지 않았으며,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아직까지 수많은 이론과 루머만이 난무할 뿐입니다(심지어 잭 더 리퍼가 악마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잭 더 리퍼는 영국 경찰에 거의 잡힐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순경이 살해 현장에 도착했을때 범인이 도망가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떠나서는 안된다' 라는 원칙 때문에 결국엔 놓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살인 행각이 중단되었지요.



 

잭 더 리퍼 (Jack the Ripper)



잭 더 리퍼는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연쇄살인마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가장 ‘현대적인’ 연쇄살인범의 범주에서는 최고 고참이다. 19세기 말 빅토리아 후기의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 희대의 인물은 근대사회의 총아인 대중 매체를 통해 전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최초의 ‘스타’ 살인마였다. 또한 지문 채취나 혈액/체액 채취 추적 같은 근대적 수사방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법의학적 수사망은 해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자행된 리퍼의 예술(!) 살인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서 범인 추적에 난항을 겪었다. 당시의 법의학, 제도, 수사망 등 국가 장치들을 훨씬 앞질러 가며 조롱을 던진 리퍼에 대한 연구는 미국 역사를 통틀어 대통령에 대한 저서를 더한 숫자보다 많을 정도로, 리퍼 케이스에 대한 관심은 아직까지도 만만치 않다. 학문적 연구에서 단순한 호기심까지, 리퍼 케이스가 이토록 매혹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리퍼 케이스는 끝내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으로, 연구 자체가 ‘누가 저질렀는가?’라는 고전적인 추리소설(whodunit)의 형태를 띌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21세기에 살고 있는 법의학자나, <프롬 헬>을 통해 호기심을 가지게 된 관객이나, 리퍼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리퍼 케이스가 가진 최고의 매력인 셈이다.


리퍼의 연쇄 살인은 그 시발점에서부터 분분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1888년 8월 31일 살해되어 런던 이스트엔드의 창녀 밀집 거주지역이었던 화이트채플(whitechaple) 거리에 방치된 채 발견된 메리 앤 니콜스(43)를 리퍼의 첫 번째 범죄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리퍼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드러나기 이전 유사한 창녀 살인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종종 이 첫 번째 희생자에 대해서는 엠마 스미스 등의 다른 피해자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후 메리 켈리(25)까지 5명의 창녀가 리퍼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이야기되어지는데, 이 다섯 명으로 압축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당시만 해도 극심한 하류층에 속한 창녀들이 살해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따라서 단지 창녀만을 살해했다는 이유만으로 리퍼 케이스를 규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 리퍼 케이스를 규정해 주는 것은 바로 리퍼의 살인방식 (Modus Operandi). 5명의 창녀들은 각자의 정도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대범하고 정교하게 사체를 유린당했다. 대개의 사인인 칼로 목을 따는 과정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행되었으며, 그 이외에도 사체 유린 역시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깨끗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은 당시 런던 경찰이 인체와 해부학에 능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로 용의망을 좁히는데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희생자들

 

첫 번째 희생자인 메리 앤 니콜스는 1888년8월31일 새벽 4시경, 우연히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된 후, 경찰에게 신고되어 알려졌다. 잭 더 리퍼에 의해 살해된 첫 번째 창녀라는 점 때문인지, 다른 4명의 피살자들에 비해 가장 그 정보가 적은 것으로 알려진 그녀의 사인은 귀 밑에서부터 목 아래 부분을 칼로 깊게 절단된 상처였다. 최초 발견 당시 목 아래의 상처에서는 아직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사체의 눈은 크게 떠진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사체는 다른 4명의 사체의 상태와 비교해보았을 때 그 잔인성은 가장 약하다고 전해진다.

 

풀리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메리앤 니콜스는 자물쇠장이인 윌리엄 니콜스와 결혼했지만, 이혼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매춘을 시작하게 된 중년 여성으로, 당시 매춘부들의 전형적인 인생 역정을 보여주지만 쾌활하고  인간성 좋은 여자였다고 한다. 한편 범행 장소에는 범인을 추측할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체의 일부분이 따뜻한 상태로 남아 있어 사체가 발견되기 얼마전에 살해 당한것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증인이나 흉기는커녕 수사에 도움이 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것, 따라서 니콜스 사건에 대해 런던 경찰이 추측했던 용의자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서, 주위에 살고 있는 도살업자나 갱단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리퍼의 정교한 살인 방식은 하나의 패턴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다. 니콜스 사건부터 프레데릭 조지 앨버린 수사관이 수사의 총괄을 맡기 시작했다.

 

사실 메리 앤 니콜스의 살인 사건이 이 전설적인 살인마에게 '잭 더 리퍼' 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아니다. 당시의 수사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바로는 범인은 창녀들을 위협하여 돈을 뜯어내는 갱단이나 섹스 매니아 정도로 정도로 간주되었고, 종종  '가죽 앞치마 Leather Apron'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워 졌다.

 

 

 

 

 

그러나 9월 8일 새벽 5시경, 애니 채프만의 시체가 발견된 후 니콜스 사건과의 연결성이 지적되면서

잭 더 리퍼 의 존재가 표면에 떠 오르게 된다. 동료 창녀들에 의해  '다크 애니'  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던 애니 채프만은 니콜스 처럼 굴곡 투성이인 인생 역정을 거친 알코올 중독의 중년 창녀, 빼어난 미모도 아니었고 이빨도 나간 다소 못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애니 채프만은 심각한 알코올 중독과 이른바 '막가파' 인생의 대명사였다. 그녀는 사건 전날 동료에게 몸이 안 좋아 일찍 쉬겠다며 숙소로 돌아갔지만, 사건 발생 불과 두어시간 전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외출했다고 전해진다. 애니 채프만은 리퍼의 잔혹한 시체 유린이본격적으로 시작된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니콜스의 사체에 비해 애니는 상당히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당시 검사관이었던 필립스 박사에 의하면 "시체의 다리는 위로 들려져 있었으며 얼굴은 바닥을 향해 뭉개져 있었고 혀는 앞이빨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였다. 출혈량은 상당히 많았다. 소장과 다른 내장들은 밖으로 꺼내어진 채 사체의 오른쪽 어깨 부근에 진열되어 있었고, 위의 일부분이 왼쪽 어깨 위에 놓여있었다.

성기는 2/3 이상이 도려내어져 있었지만 다른 장기처럼 전시되지 않았으며 자궁을 손상시키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도려내어져 있었다." 내장을 꺼내어 전시를 한 점이나, 성기를 도려낸 점은 당시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고, 이러한 살해의 수법은 정교함으로 인해 해부학적 지식이 뛰어난 인물이 용의선상에 오르기 시작했고. 성기를 도려냈다는 점이나 창녀들만 노린다는 점은 당시만 해도 빈번했던 변태성욕적 살인으로 간주될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간의 흔적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리퍼의 살인을 다른 사건과 구분지어 주었던 또 다른 요소다. 의사,도살꾼, 박제사 등이 용의자 영순위로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또한 화이트채플주변에 밀집했던 유태인들과 이민자들도 용의선상에 올랐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희생자 역시 리퍼의 살인수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나  '이중사건 double event' 라 불리우는 이 사건은 대중들을 가장 공포로 몰아간 사건으로 기록된다. 우선 두 사람이 살해된 시각은 

리즈 스트라이드 가 밤 12시 30분에서 새벽 1시 30분 사이로, 그리고 케이트 에도우즈가 새벽 1~2시 사이로 두 사건의 추정 시각이 지나치게 짧다는 점이 가장 놀라운 점. 스트라이드의 시체가 발견된 화이트 채플과 에도우즈가 발견된 미터 스퀘어는 1/4 마일 가량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거리였지만, 같은 수법으로 한 시간 간격으로 자행된 두 사건에서 수사팀은 결정적인 증거도 발견해 내지 못했다. 단지 스트라이드의 사체에서 조금 떨어진 부근에서 가죽 앞치마가 발견되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사건은 최초로 리퍼의 것으로 추정되는 진술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다. 스트라이드의 시체근처의 벽에는 리퍼가 쓴것으로 추정되는 문장인  "유태인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 The Jewes are The man That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 " 는 진술이 발견된것. 그러나 분필로 쓰여진 이 문장은 당시 런던 경시청의 국장이었던 찰스 워렌경의 명령에 의해 지워져 버린다. 유태인들에 대한 위협을 고려한 워렌 경의 이 행위는 후에 상당히 오랫동안 비판받아왔다. 두 시체 중에서 더욱 잔혹하게 파헤쳐 진 쪽은 에도우즈였는대, 스트라이드의 사체는 리퍼가 미처 작업을 하기 전 무언가로부터 방해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에도우즈의 사체는 4명의 다른 시체들 중에서 가장 저항의 흔적을 크게 보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전반적인 사체의 상태는 애니 채프만과 유사하다. 얼굴은 눈 주변을 중심으로 난도질 되어 있었고, 턱 아래의 깊은 상처가 직접적인 사인으로 지적되었다. 역시 하복부는 절개되어 있었고, 신장의 일부가 절단되어 사라져 있었다. 자궁은 1/2정도가 잘라져 있었지만 질과 자궁경부는 손상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에도우즈의 사체 역시 리퍼의 해부학적 지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중 사건의 여파는 애니 채프만의 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이중 사건 이후, 화이트채플은 인적 자체가 끊겼으며 거리에는 사복과 제복 차림의 경찰들로 가득했다. 매춘부들은 될 수 있는 한 집안에서 머물렀고, 심지어 여성이 한명도 없는 런던 경찰은 창녀로 변장한 잠입 경찰을 거리에 포진 했을 정도. 그러나 경비와 방범이 강화되면서, 매춘부들은 다시 생계를 위하여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채, 방값조차 없었던 메리 켈리 역시 생존을 위해 다시 공포의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5명의 매춘부 중에서도 가장 잔혹하게 살해된 희생자로 유명하다. 그녀는 5명 중에서도 가장 젊었으며, 또 아름다웠던 여성이라고 기록은 전한다. 특히 술을 마시지 않았을 경우에는 단정한 차림과 밝은 성품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인물 이었다.

 

 

 

 

 

 

메리 켈리는 다른 시체들과는 달리 자신이 머물고 있던 거처의 침대 위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그녀를 최초로 발견한 인물은 메리의 밀린 방값을 받기 위해 보내진 하수인 토마스 보와이어. 그의 신고에 의해 앨버린과 필립스 박사, 그리고 본드 박사가 뒤이어 현장에 도착했다. 메리의 사체는 보와이어가 "죽는 날까지 잊을수 없는 처참한 광경" 이라고 까지 이야기를 했듯이, 끔찍하게 난도되어 있었다. 옷이 벗겨진 채 침대의 가운데에 눕혀져 있었던 그녀의 시체는 복부 부분이 아예 몽땅 사라져 있었다. 가슴은 모두 절단되었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내장은 시체 주변의 여러군데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신장과 자궁은 유방 한쪽과 함께 머리 아래에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 유방은 오른쪽 발아레에 놓여있었으며, 간은 다리 사이에 놓여있었다. 뭉개진 것으로 보이는 얼굴의 각 부분은 모두 절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후에 밝혀졌다. 그녀는 임신중이었다. 필립스 박사의 진술서는 남아 있지 않지만 본드 박사는 그의 진술서에서 기존의 가설을 뒤집는 말을 했는데, 그의 진술에 따르면 혐의자는 해부학적 지식은 커녕 도살의 경험도 없다고 일축해 버렸다. 그러나 이는 다른 검시관들과는 달리 저명한 의사이기도 했던 본드 박사가 점차 의사들에게까지 좁혀 들어오는 용의망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꿍꿍이를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지적되기도 한다.

 

 

 

 

잭 더 리퍼의 사건일지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수사관들 뿐 아니라 목격자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 리퍼의 외형에 대해서는 정확한 단서를 포착하지 못했다. 일단 범행 당시의 목격자들도 드물 뿐 아니라, 설사 범행을 목격했다고 할지언정 당시 화이트 채플의 뒷골목의 조명은 상당히 어두웠을 뿐 아니라 리퍼가 검은 옷을 입었다고 가정한다면 형체 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인 상황 이었기 때문에 목격자의 증언이 신빙성을 얻지 못했던 것. 하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이나 당시 수사관들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리퍼의 신상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이 발견된다.

 

 

 

 

 

 

평균이나 그보다 작은 신장의 백인

1888년 당시 2~40대 사이의 연령

노동자나 하층민의 복장을 하지 않았음

이스트엔드 지역에 거주지가 있음

의학적 시술의 경험이 있음

외국인 일수도 있음

오른손 잡이임

모든 사건이 주말에 벌어진 것을 보아 일정한 직업이 있음

범행은 혼자 저지름

 

 

 

 

공식적으로 리퍼 케이스는 1889년 6월에 수사가 종료되었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총책임졌던 찰스 워렌 경에 뒤이은 멜빌 맥너튼 경은 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위해 계속 수사를 진행 시켰다. 맥너튼 경의 보고 결과에 따르면, 당시의 용의자는 크게 세 명으로 좁혀지는데, 이들 용의자들은 모두 자살이나 정신이상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었기 때문에, 메리 켈리로 마감된 리퍼의 살인 일지와도 맞아 떨어진다.

 

 

 

 

세 명 중 처음으로 떠오른 용의자는 의사인 몬타큐 J. 드루이트.

 

평범하고 부유한 가정의 가장이자 의사였던 그는 살인이 시작되던 시기에 자취를 감추었으며, 메리 켈리의 살해 한달후인 12월 31일 템즈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사적인 정보에 의하면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고, 심지어는 가족들조차 그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두 번째 용의자는 폴란드 출신의 유태인인 애런 코즈민스키.

 

화이트 채플 거주자였던 그는 오랜 기간 동안 군에 복무하면서 점점 정신이상 증상을 보였다. 그는 여성, 특히 매춘부들을 극도로 혐오 했으며, 따라서 살해의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용의자다. 그는 1889년 3월 결국 정신 병원에 감금 되었고, 그후 28년을 더 살았다. 코즈민스키는 정신병원에서의 진료 기록이나 강한 살인 충동에 대한 스스로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심증이 많이 가는 용의자 였다.

 

 

 

맥너튼 경의 보고서에 거론된 세 번째 용의자는 러시아 출신의 의사인 마이클 오스트로그.

 

그는 세 명의 용의자들 중 가장 정보가 불확실한 인물인데, 어느 기록에서는 그를 폴란드 출신의 몰락한 귀족으로 밝히고 있다. 오스트로그는 절도죄로 10여년간 감옥 생활을 했던 경력이 있으며, 지적인 편이었고 스스로를 의사라고 이야기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당시의 행적이 묘연한데다가 계속된 거짓 진술로 인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큰 신장과 고령이었다는 점에서 범인으로 확신하는 데에는 역시 어려움이 따랐다. 결국 오스트로그 역시 코즈민스키와 마찬가지로 정신병원 행을 피할 수 없었다. 한편 맥너튼 경의 최종 보고서와는 달리, 앨버린 수사관은 조지 채프먼 이라는 인물을 제 1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채프먼은 아내의 독살 혐의로 1903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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