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삼국사기, 신라 지증왕 본기, 이사부 열전
신라 지증왕 13년(512) 이사부가 울릉도(우산국)를 흡수한 이래
한국의 고유 영토가 되었다.
2. 고려사
독도가 우산국 영역임을 밝히고 있으며, 고려 고종 때 최우가
우산국에 사민정책을 시도하였으나 풍랑으로 실패하였다.
3. 조선 태종(1417)
섬 주민을 본토로 옮겨 살게 하는 공도 정책(空島政策) 실시로
울릉도와 독도 관리가 소홀해졌다.
4.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조(條)(1454, 독도 관련 최초 기록물)
무릉도(울릉도)와 별도로 우산도(독도)의 존재를 형제섬으로 처음 기록하였다.
5. 동국여지승람(1481), 신증동국여지승람(1531)
독도(우산도)와 울릉도는 행정 구역상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다고 명시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에서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별개의 두 섬으로 구성되었다고 기록하고 그려 넣고 있다.
6. 은주시청합기(1667)
울릉도(당시 일본 호칭 竹島)와 독도(당시 일본 호칭 松島)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은기도(隱岐島)를 한계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7. 숙종 19년(1693) 안용복
울릉도 부근에서 조업하다 일본 어부의 불법 어로를 발견하고 일본으로 가
조선 영해임을 주장한 바 있는데, 숙종 22년(1696) 울릉도에서 조업 중
다시 일본 어부의 불법 어로를 확인하고 스스로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
가칭하고 일본에 다시 건너가 호끼주(島根縣 소속) 태수에게 일본 어선의 범경 사실을 항의했고 이에 사과받고 돌아왔다.
8. 1691년
에도(도쿠가와) 막부 관백(關白, 집정관)은 울릉도(및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들의 독도 출어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음을 조선 측에 알려왔다.
9. 헌종 15년
독도가 유럽에 알려진 것은 1849년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 호에 의해
리앙쿠르 암초로 불리면서이다.
10. 명치 초기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로 진출하여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고 불렀다.
11. 1881년
울릉도 공도 정책을 지양하고 육지 사람들이 건너가 개발을 시작하면서
독도를 울릉도민의 여름철 어업 기지로 이용하였다.
12. 대한제국(1900)
울릉도를 울릉군으로 승격시키고 독도의 두 개 섬인 죽도와 석도를 울릉군에서
관할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관보(관보 1,716호)에 게재하였다.
13. 러일 전쟁 중(한일 협정서 이후)
일제는 독도를 1905년 2월 한국 정부 몰래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시네마현(島根縣)에 불법 편입시켰다.
을사조약 이후인 1904년 4월 비로소 한국에 편입 사실이 알려졌다
(울릉 군수 심흥택에게 편입 사실 고지).
14. 광무 10년(1906)
독도는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 왔는데,
오늘날의 명칭인 독도로 처음 쓰인 것은 울릉도 군수 심흥택의
「울릉 군수 보고서」에서 「本郡所屬獨島」라는 기록과
한말 지사 황현의 「매천야록」에서였다.
15. 1946년
연합국 최고 사령부는 지령(제677, 1033호)에서 독도를 본래 한국 영토로
확인해 일본 영토에서 제외하였다. 그 국제법적 효력은 아직도 살아있다.
16. 1952년
연합국은 일본을 재독립시켜 주기로 하고 이에 앞서 1951년 대일본 강화
조약을 체결하려 하였다. 연합국은 그 준비로 1950년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이 합의서 제3항에서
한국에 반환할 영토는 한반도 본토와 그 주변의 모든 섬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이라는
서양 호칭으로 명기하여 한국에 반환해 한국 영토로 처리됨을 극히
명료하게 밝혔다.
이렇게 보듯 아름다운 독도는 우리땅입니다!
우리 모두 독도를 지켜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