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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불멸의 여인에게 남긴 편지

박철영 |2008.07.31 19:08
조회 285 |추천 0


베토벤이 불멸의 여인에게 남긴 편지 베토벤이 죽은 다음, 그의 서랍 속에는 다음과 같은 세 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연대도 수신인의 이름도 적히지 않는 이 일련의 편지는 다만7월 6일 아침에서 7월7일 아침까지 이틀동안에 걸쳐 쓰여졌다는 것이 명백할 뿐이다, 흔히 meine unsterbliche Geliebte 에게 보낸 서신으로 알려진 이 세 통의 연 문을 받은 수수께끼의 상대 그 불멸의 여인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수많은 베토벤 연구가들이 각각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쉰들러는 쥴리에타 기차르디(Guilletta Guicciardi)라고 말하는가 하면, 토마스 싼 갈리(THOMAS-sAN-galli)는 베를린의 소프라노가수 아말리 제발트(Amalie Sedald)라 단정했고 세이어(A. W. Thayer) 와 로망 롤랑은 테레제 부룬스빅(Therese von Brusvik)을, 그리고 라 마라(La Mara)는 그녀의 동생 요세피네(JOSEPHINE VON Brusvim)라 추정하고 있다. 특히 베토벤이 요세피네에게 보낸13통의 비공개 서한이 발표되자 요세피네가 가장 유력한 불멸의 여인의로 클로즈업되었으나 명확한 것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 ***불멸의 여인에게 향한 편지*** 불멸의 여인에게 7월 6일 아침 나의 천사, 나의 전부, 나의 분신이여, 오늘은 몇 마디만, 그것도(그대의)연필로........ 겨우 내일쯤에는 거쳐가 정해질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건 정말 공연한 기간의 낭비입니다........ 숙명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깊은 고뇌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리들의 사랑은 희생과 단념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도 없을 것인지.......... 그대가 나만의 존재가 아니고 내가 그대만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영영 변치 않을 것인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당면한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며, 나는 그대를, 그대는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한 마음 한 뜻으로 될 수만 있었던들 나도 그리고 그대도 이렇게 괴로워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여행은 지긋지긋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저께 아침 4시에야 겨우 이 곳에 도착했습니다. 말을 구할 수가 없어 합승 우편마차를 탔는데 그것은 엉뚱한 코스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얼마나 험했는지........ 종점이 가까웠을 때, 사람들은 길이 험하고 숲이 위험하니 밤에 여행하는 것은 피하라고 말해 주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내 모험심을 돋구어 줄뿐이었습니다. 허나 역시 그 밤 여행은 잘못이었습니다. 마차는 진창길에서 처박히고 말았으니까요. 마부가 능숙하지 못했던들 영영 헤어나지 못할 번했습니다. 내가 탄 마차는 사두마차였으나 에스테르하지(Esterhazy)는 팔두마차를 타고 오다가 같은 처지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난경 을 뚫었을 때는 만족감이 뒤따르게 마련이어서,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했지요......... 여담은 그만 해두고............. 조만간 만나겠지만 오늘도 이 몇일 동안의 내 생활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이 서로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따금 나는 말이란 전혀 쓸모 없는 것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명랑한 마음으로........… 내가 그대에게 있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나의 진실하고 유일한 보물, 나의 모든 것이 되어주십시오. 그 이외의 것은 무엇이나 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지요. 그대의 성실한 루드비히 7월 6일 월요일 밤 나의 귀중한 분, 그대도 괴로워하겠지요, 이 편지는 되도록 빨리 아침 일찍 투함 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월요일과........목요일........우편마차가 여기기에서 K로 가는 것은 두 번 뿐입니다. 그대도 괴로워합니다. 내가 가는 곳, 그대는 항상 나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의 일을 원만히 처리하고 어떻게 하면 그대와 함께 지낼 수 있을지 궁리해 봅니다. 그대가 없는 삶! 그것은 얼마나 비참한 삶인지!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어도........ 그다지 고마운 일도 아닙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굴종........... 그것이나를 괴롭힙니다. 그리고 나와 우주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나는 도대체 무엇인지, 사람들이 말하는 위인이란 무엇인지 그럼에도 그 곳에 인간의 신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요일이 되기 전에는 그대가 나의 편지를 받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날 지경입니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할지라도, 나의 사랑은 훨씬 더 강렬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 것도 감추지 말아 주십시오. 안녕히......... 탕지를 위해 이 곳에 왔으니 나도 인제는 쉬어야겠습니다. 아아, 이렇게도 가까이 있으면서, 이렇게 멀단 말인가, 우리들의 사랑이야 말로 참으로 천상의 전당이 아닐지........ 그리고 천국의 성세와도 같이 견고한! 안녕 7월 7일의 아침 잠자리 속에서도 생각은 이미 그대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나의 불멸의 연인이여, 생각은 이미 그대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나의 불멸의 연인이여, 때로는 즐거우면서도 운명이 우리들의 소망을 들어줄지 어떨지 생각해보면 또 다시 우울해집니다.......... 나는 그대와 완전히 함께 지낼 수 있던가, 아니면 그대와 모든 관계를 끊고 잊어버릴 수 없다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그대의 팔에 안길 때까지, 그대 곁을 나의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나의 넋이 그대의 보호를 받고 정령의 세계로 옮겨갈 수 있을 때까지는, 그날이 아무리 멀다 할지라도 방황을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날은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대도 알고 있듯이 그대에 대한 나의 성실성은 결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대치될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오오, 신이여! 이렇듯 사랑하면서도 왜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V(혹은W?)에서의 내 생활은 여전히 비참합니다. 그대의 사랑은 나를 더없이 행복하게 하지만, 동시에 가장 불행하게도 합니다. 내 나이쯤 되면 생활의 안정이 필요한데도.............. 우리들의 관계에서 그것을 바랄 수 없는 것일지............ 나의 천사, 방금 들은 바로는 우편마차는 매일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대가 편지를 조금이라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이만 그칩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리들의 현상을 냉정히 관찰함으로써만 함께 맺어질 수 있는 우리들의 목적이 성취될 것입니다............마음을 진정시키고.........나를 사랑해주십시오, 오늘........ 내일........ 그대에의......... 그대에의......... 그대에의......... 눈물겨운 동경, 나의 생명, 나의 전부여, 안녕...........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해주오,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성실한 진심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언제까지나 그대의 언제까지나 나의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 ''불멸의 여인''은 누구? 베토벤이 죽은 후에 그의 유품 속에서 3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날짜는 적혀 있지만 연도가 없고, 발신지도 확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편지를 받을 상대편의 이름도 없는, 이른바 사랑의 편지였다.이것은 어느 젊은 날의 것임에 틀림없는데, 한 통은 ''7월6일 아침''이라고 씌어 있고, 또 한 통은 ''7월 6일, 월요일 밤''이라고 씌어 있으며, 마지막 것은 ''안녕하십니까, 7월 7일 아침''이란 글귀로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연상케하는 열렬한 사랑의 글이다. 세 번째의 편지 맨 처음에는 ''나의 불멸의 애인''이란 호칭이 있는데, 이후부터 이 세 통의 편지를 ''불멸의 애인에의 편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편지의 마지막은 ''영원히 당신의, 영원히 나의, 영원히 우리들의 L로부터''라고 되어 있다. 과연 베토벤의 불멸의 애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모든 전기학자가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지금까지 백 수십 년동안 여러 가지로 논쟁이 계속되어 왔으나 현재까지 확정적인 근거는 없다. 여기서 여러 학설을 종합해 보면, 줄리에타 구이차르티와 테레제 브룬슈비크중의 한 사람으로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브룬슈비크 백작은 헝가리의 귀족이며, 테레제 자매는 1799년부터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테레제와의 교제는 약 10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베토벤은 테레제에게서 그녀의 등신대의 유화 초상화를 받았다. 이것은 오늘날 본에 있는 베토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뒤에는 ''드물게 보는 천재, 위대한 예술가, 좋아하는 그대에게, T.B로 부터''라고 씌어 있다.베토벤 연구의 권위자인 세이어는 여러 가지 사실과 이유를 들어 예의 서한은 1806년에 데레제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1806년이라면 7월6일은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이므로 서한의 날짜하고는 부합되지 않는 점이 커다란 약점이 되고 있다. 줄리에타 구이차르디도 백작 가의 태생으로 1800년부터 빈에 살았는데, 어머니가 브룬슈비크 가문 출신이기 때문에 곧바로 베토벤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미인인데다 쾌활하며 음악의 재능이 있었다. 만년의 그녀의 말에 따르면, 베토벤은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수강료도 받지 않았다. 베토벤은 1801년에 작고한 ''월광곡''을 줄리에타에게 바쳤지만, 그녀는 양친의 뜻에 따라 1803년에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해 버렸다. 만일 베토벤 연구학자인 신틀러와 마르크스의 말처럼 예의 서한이 1801년에 줄리에타에게 보낸 것이라면, 그 해의 7월6일은 틀림없는 월요일이었다. 어쨌든 베토벤이 마음을 쏟았던 여성이 귀족 출신이거나 상류인이었던 것은 주목할 만한 일로서, 괴테의 사람의 상대가 언제나 서민 계급이었던 것과는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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