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건국 60주년에 새로 출발하라
재취임 한다는 자세로 과거 실패와 단절 결단해야
大화합 大포용 大은사로 나라와 경제에 成就의 새 엔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기념식이 1948년 8월 15일 오전 11시 20분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총독부 광장으로 불리던 중앙청 광장은 진작 인파로 메워졌다. 중앙 단상 이승만 대통령 곁엔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앉았다. 두루마기 차림의 대통령은 자신보다 다섯 살 손아래, 그렇지만 패전국 일본에서 살아있는 신(神)으로 모셔진다는 맥아더를 옛 양반의 넉넉한 기품(氣品)으로 응대하고 있었다.
3·1 독립운동 33인 중의 한 사람인 오세창씨가 '신생(新生) 정부 대한민국을 갖게 된 감격 비할 바가 없다'며 식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이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해방과 동시에 민국(民國)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는 것입니다" 하고 입을 열었다. 전쟁 중 단파방송 '미국의 소리(VOA)'를 통해 떨리는 듯 유장(悠長)한 음성으로 찾아와 일본의 패망과 민족의 소생(蘇生)을 예언하던 그 목소리다.
대통령은 인권과 자유, 자유와 책임, 통상과 공업 진흥, 근로자와 기업의 공존(共存), 통일 방략(方略)등 신생 대한민국의 포부를 밝힌 다음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 대통령 이승만'이란 말로 연설을 맺었다. '대한민국 30년'은 대한민국이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하고 있다는 선언이다.
신생(新生) 대한민국은 노인들의 나라였다. 대통령 이승만 74세, 부통령 이시영 81세, 기념식 대회장 오세창 85세, 독립협회와 독립문 건립의 주역 서재필 83세,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기념식에 불참한 김구 74세, 또 다른 남북협상파인 김규식 72세였다. 이 노인들의 나라가 미·소가 부딪치는 냉전의 험한 격랑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신생 대한민국은 가난과 질병의 나라였다. 1946년 4월 이후 한동안 울릉도 모든 학교에는 한 명의 학생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쌀이 동나 산나물로 배를 채워 학교까지 걸어갈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 거리에선 굶어죽고 얼어죽은 시체가 흔하게 발에 밟혔다. 쌀 싣고 오는 배를 덮치는 해적선이 마포 한강가에 출현하기도 했다. 콜레라가 1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것도 그해다. 굶주림에 쫓겨 일본으로 밀항(密航)한 숫자는 1946~1947년 최고에 달했다. 이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생 대한민국은 유혈폭동의 나라였다. 해방 이듬해 46년엔 3·1절 기념식을 우익은 보신각, 좌익은 남산에서 따로 차린 뒤 피범벅의 대결을 벌였다. 대구폭동, 농민봉기, 총파업 등 좌익 주도의 대소란이 연이어 휩쓸고 지나갔다. 이 바람에 남한 교도소는 수용 인원이 넘쳐 기능을 상실했다. 이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온갖 의문들을 딛고 대한민국은 살아남았고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치르며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후 이런 자랑스러운 성적표를 손에 쥐고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식전(式典)의 중앙 단상에 올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의 다음 행선지를 밝히고 이 나라에 새 기운을 지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역사적 자리를 주관할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는 지금 10%대 후반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고 있다. 나라를 이끌어야 할 대통령의 리더십 엔진이 꺼져가고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은 건국 60주년 기념식장을 대한민국이 재출발하는 자리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못하면 이 나라는 발동 꺼진 차처럼 내리막길을 굴러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 말이 곧 진실'이라는 믿음이 번져가도록, 대통령의 한마디에 천 근의 무게가 실리도록, 나라 안팎에서 나라의 품격(品格)을 높일 수 있도록, 종교와 정치를 공연히 뒤섞지 않도록, 인사(人事)가 국민을 나누지 않고 합치는 계기가 되도록 지난 150일의 온갖 실패와 높고 든든한 칸막이를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 법통(法統)을 부인하고, 국법(國法)의 근본을 훼손하고, 국민의 생업을 짓밟는 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건국 60주년의 대은사(大恩赦)를 베풀어 재출발의 분위기가 온 나라에 감돌 수 있도록 하라. 세계 13위 경제규모에서 한 계단 오르는 길은 20년 전 한 번에 10계단을 건너뛰던 길보다 몇 배 가파르다. 경제 주역들이 흥(興)에 겨워 그 가파른 길을 마다 않고 내달을 수 있도록 그들 마음에 성취(成就)의 엔진을 새로 달아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오는 8월 15일을 자신의 '진짜 취임식'으로 삼겠다는 심기일전(心機一轉)의 각오부터 먼저 다져야 한다.
강천석·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