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내 블러그에 올린 "중국 지진과 한국인의 사고"란 글인데 어제 저녁 북경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서 좀더 손을 봐서 다시 함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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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을 글을 적지 않다 오늘 몇 자 적어보려고 이렇게 펜을 들었다.
대학시절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려 할 때 내가 존경하는 은사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국이란 역사가 5천년, 한국의 역사도 5천년 그 기나긴 세월 중 아마도 해방 후 지난 50여년의 단절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역사는 중국을 떼어 놓고 단독으로 진행되어 온 적이 없다. 92년 다시 수교가 되고 다시 중국과 한국은 역사가 보여주듯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시점이니 앞으로는 반드시 중국어를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을 예의 주시하지 못하면 안되는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한국은 사대주의적인 중국과의 관계가 아니라 중국이란 나라 자체를 예의 주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쨌던 이러한 현 시점에 중국에 지진이 났다. 한마디로 대 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일부 몰지각한 누리꾼들은 그에 대한 서슴없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이것이 오늘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된 셈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10여년을 넘게 중국에서 직장생활을 해오고 있다.
내 30대를 나는 중국에 바친 셈이다.
한마디로 내 중국생활을 요약하자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급변하게 발전해오는 그 시기에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들과 같이 호흡하며 그 변화를 지켜보았다는게 가장 의의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 생활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떻게 그 시간들을 뚫고 나왔는지에 대한 무용담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묻는다.
중국은 어떻냐? 중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느냐? 등등의 질문들 말이다.
학창시절 어학연수의 기간까지 합치면 나도 누구 못지않게 오랜 중국생활을 한 사람으로 나는 이제는 중국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갈수록 솔직히 더 자신이 없다.
예전엔 중국생활 2-3년 정도하고 누가 중국에 대해서 물으면 너무 당당하게 중국은 말이죠라는 서두로 장황하게 말을 쏟아 내곤 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이다.
중국요, 저 솔직히 참 어렵네요. 라고 말한다. 갈수록 중국을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보고 느낀게, 즉 경험이 중요하지만 워낙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이 나라를 한 숨에 몰아 뭐라고 단정 짓는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내 자신이 중국생활이 오래될수록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중국생활 4-5년하고 중국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괜시리 겸면쩍고 쑥스러워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말을 돌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지난 시절의 착오나 과실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함이고, 이에 많은 역사가들은 말한다.
지금도 역사는 발전해 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 지구상에 5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나 민족이 그리 많지 않지만 중국은 나름의 문화권을 확실하게 형성하여 자리를 매김하고 있는 나라 임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중국은 많은 역사적인 문제를 겪어 본 경험과 이를 문자화하여 전해오고 있는 나라로 30여년전 76년에도 탕산 대지진을 겪고 나름데로 잘 극복한 경험도 있다. 당시 외국인들 눈에도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열악한 그 시절에 일사분란하고 누군가의 통제나 도움이 아닌 탕산 주민들 자발적인 사후처리 모습이 감동으로 전해져 지금 현재도 당시의 이야기가 책으로도 출판된 적이 있었다. 비단 이 것 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나름대로 해결하는 나름의 해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는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이에 나는 이번 자연 재해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잘 해결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이런 중국의 재앙은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중국생활을 조금 했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생각을 감정적으로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먼저 한국의 현실도 직시해야만하고 나아가 이전부터 내려오던 역사적인 관계도 보아야 하며 거시적인 시각으로 이 재해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당한 마음과 안좋은 인상과 같은 개인적인 관점으로 이 사건을 보고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당장 중국의 자연재해로 인한 각종 산업시설의 붕괴, 농산품 생산 감소, 기타 여러 제반시설의 마비로 인한 후유증들이 바로 이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나라에겐 현실이 된 것이다. 바로 우리가 느끼는 물가상승의 한 요인이자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미 어제 시작되었지만 올림픽을 치룰 수가 없고, 티벳으로 인한 정치적 분쟁이나 소요사태가 더 격렬이 일어나도 이제는 모두 우리에겐 현실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로 인한 당장의 내밥상에 놓인 양념재료인 마늘이며, 파며, 양파 같은 것들, 심지어 쌀이나 옥수수 같은 것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이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관점과 기준에 서서 우리가 행동을 해야하고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할말을 하지말고 눈치나 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바야흐로 지금 이 시대는 같이 살아가는 공존을 위한 협력을 모색하는 시대인 것이다.
오늘 내가 강조하는 핵심 key-word라고 할 수 있겠다.
반드시 자국의 실리와 실용주의적인 면을 망각해서도 안되지만 이제는 더이상 남을 죽이고 멸망시켜야만 내가 살아남는 시대는 아니다. 물론 지구 저편에서는 아직도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나라들도 있지만 말이다. 서로가 안으면서 부족한 점을 메꾸고 채워주면서 같이 이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얼마전 이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올림픽 성화봉송 관련 중국유학생들의 폭력 사건을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을 했보았다. 물론 분명히 전제를 깔지만 중국사람들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 진출을 할때 부터 중국이 어떻니, 중국가서 속았니 그래서 어쨌니, 중국사람들은 근성이 어떻니, 해오면서도 결국 그런 이야기들이 체계화 하지 못하고 제대로된 정보화를 하지 못해 개개인들의 생각으로, 또는 감정으로만 남겨두고, 또는 그것을 흘러흘러 전하고 전해받기만 해 왔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 자신의 부족한 부분인 것이다. 바로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구가 워낙 많고 지역이 워낙 크다보니 개개인적인 차이도 너무나 크게 나기에 그들이 집단화 되고 모이게 되는 것을 알았다면, 그로인해 발생될 수 있는 일들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이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그렇게 중국진출을 통해 중국이나 중국인들에게 그렇게 당해 본 경험이 있는 있었다면 왜 좀 더 철저하게 좀더 제대로 된 경찰망을 사전에 확보하지 못했나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히려 그들이 어떻네, 땟넘들 어떻네, 하며 그들을 탓하기보다 사전에 미리 준비를 하지 못한 우리 자신이 더 문제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한국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당하고 난 뒤에 난리를 치고 그 다음에는 감정적으로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게 이젠 먼 타국에서 바라볼 때는 보기만 해도 화가나고 더이상 참지 못해 멀미가 나려 하는게 사실이다. 나는 그 사건을 보면서 얻어 맞고 있는 우리나라 경찰이 한마디로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전에 충분히 그런 소요가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면 차라리 그런 것을 원천 봉쇄하도록 해야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순간 80년대 그 데모 시위대를 원천 봉쇄하던 백골단들은 다 어디로 사란져 버린 것인지...(촛불 집회는 잘도 봉쇄하더니만...) 지금 북경시내를 한번보라...그런데도 그런 북경의 치안강화를 전두환시절과 비교하며 게엄령이 내렸다는 둥 일부 네티즌들은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것도 감정적으로....
이런 식으로 감정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면 안 된다고 본다. 나도 장기간의 중국생활 중 분통터지고 억울하고, 황당한 사건이 왜 없었을까만, 그들도 개개인적으로 대하면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인 것이다. 중국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중에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동양사람이나, 서양사람이나 동서고금 사람은 다 똑 같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개개인적인으로 다 별반 차이가 없다. 국가라는 것은 국가와 국가간의 이익과 이해관계 때문에 오해와 갈등과 반목과 협력관계가 수시로 변화하고 달라지지만 사람과 사람이 순수하게 만날 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지진 사태는 인간본성의 개념으로서의 시점으로 자연의 재해가 사람에게 닥쳐와 가족을 잃고 터전을 잃었을 때 개인, 자연인들의 모습으로서 말하는 것이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적하고 건의 해야되지만 우리보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같이 교육해주고 지적해야 하는 동시적인 의무감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번 지진을 보고 우리가 이웃국가로 그런 재해를 당해 도움을 받을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도와줄 여력이 있을 때 그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가져야지, 이 마음에 다른 색칠을 하고 중국이 어떻니 중국사람들이 어떻니라고 말하는 것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나라의 사람들로서 그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의 수준을 올려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나라에 그렇다면 그들도 우리에게 마찬가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관계를 끊고 냉전으로 치닫던 시대는 이제 지나 갔다.
서로가 상생하고 공존하려면 더 많은 서로간의 대화와 노력이 필요 한 법이다.
중국이라는 나라 안에 제일 많이 있는 나라의 사람이 바로 한국사람들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제대로된 중국을 볼 줄아는 중국통이 몇 명 없는 것도 사실이고 이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이 한국의 서글픈 현실도 잘 직시해야 된다고 본다. 한중간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제대로 이해하며 그들을 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만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
어제 개막식 광경을 보면서 느꼈던 솔직한 감정은 한국선수단의 입장은 초라했다는 것이다.
sbs에서 개막식 리허설 몰카가 현재 북경에서나 중국에서는 화두다. 한국사람과 부딪히는 중국사람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다 한마디씩 하고 있다. 뭐라 할말이 없다. 진실이 어떻던 간에....
sbs가 한 순간 시청율 때문에 그랬던 아니던 이로인해 그 뒤에 중국에 남아 있는, 중국땅에서 남아 공부하고, 또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다른 한국사람들에게 오는 여파나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어제 개막식에 그렇게 미워하던 일본 선수단입장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선수단에게는 박수소리 환호소리도 굉장히 미비했다.
나라가 안밖으로 어렵고 혼란스러워서인지 선수단의 모습도 미국이나 여러나라 사람들처럼 그리 밝은 웃음도 없었고, 밝은 모습도 아니였다. 비교적 큰 규모로 선수단을 파견하고도 입장식 참가선수단의 적은 인원 모습과 행렬은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기 까지 했다. 게다가 처음 외국 올림픽에 참가한 대통령의 모습도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과 중국이 정말 역사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동반자라는 입장과 전략이 있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해본다.
이럴때 제대로 전략적 관계를 위한 위용의 선수단 모습도 갖추고,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좀 더 노력도 많이 하고 해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손실은 없도록, 우리나라에 더 많은 이득 가져올 수 있도록 이럴때 제대로 생색도 내고 진짜 실용주의적 외교를 한번 해보라고 말이다. 참석한 외국 대통령 몇몇 만나 자원에 관한 이야기한다고 자원외교가 되는 것일까? 조용히 반문해 본다.
아마도 70년대 80년대 미소중심의 냉전체제일 때부터 중국이 제3외교라하여 아프리카와 소외받는 국가들에 대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아프리카에 엄청난 중국인들이 지금 뛰고 있다. 게다가 개막식에 보이는 소수지만 참석한 아프리카와 여러 섬국가들을 보면 더욱 잘알 수 있을 것이다. 88올림픽 때 참가국이 159개국인데도 사상최대니 어쩌니 그랬지만 어제는 중국포함 205개국이 참가했다. 이 이야기는 일단 여기에서 접고....
어제까지도 중국과 대만은 연일 있지도 않은 한국 매체를 들먹이며 병마용을 한국인이 만들었다는 둥, 석가모니도 한국사람이라고 우긴다는 둥, 공자, 맹자, 노자도 다 한국인의 뿌리라는 둥 다 자기 것으로 우기고 있다며 중국인들에게 반한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고 있나....
우리는 또 이렇게 당하고만 있나....
나의 대학 은사는 내게 그랬다. 중국의 문화는 2자로 표현하면 "동화(同化)"이고 한국의 문화는 두자로 이야기하면 "심화(深化)"라고 말이다. 누구던지 중국에 오면 중국화되어 버린다는 의미다. 문화가 강하면 동화성이 그 만큼 크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그렇다. 대표되는 햄버그 문화나 청바지 문화로 누구나가 쉽게 즐기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문화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중국도 문화적으론 강국이다. 누구나 중국 수도꼭지를 조금만 빨아보면 그 물 맛을 알듯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중국넘 다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는 심화다. 자기문화의 뿌리나 기반이 약하기에 외래문화를 수용하더라도 그 원 문화의 발원지 보다도 더 깊이 심화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불교가 그랬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유교가 그랬다. 심지어 성균관의 공자가례가 산동성 곡부의 공묘에서 문화대혁명으로 소실되어 우리 것이 제일 원형에 가깝다고 배워서 다시 가지고 갔다고 한다.
우리와 중국이 유네스코에 문화 등재 때문에 이도 갈등의 소지가 되고 있다.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원래 자기 것이니 당연하고 우리입장에서는 우리가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을 해온 것이기 때문 이다. 이도 니것, 내것이니 보다 서로가 더 멋있는 방법으로 해결책이 있을 터인데 이게 한중간의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이외에도 기독교도 그렇다 유일하게 동북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에서 묘하게 뿌리를 강하게 내렸다. 전세계 어디에도 새벽기도니 천일기도니, 무슨 기도니 하는씩의 믿음을 강요하고 실행하는 나라는 없다. 게다가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에서 처럼 오직 한 모습의 예수만이 이땅에 있는 것이다. 종교에서의 다원주의적 이라는 게 이미 이땅에서는 죽었다는 의미다. 좀더 개방적으로 볼 필요도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한중간에는 서로의 문화가 다르게 형성되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두나라를 보는데 기본적인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로써 서로 인정할 부분과 이해 시킬 부분을 가지고 접목해 간다면 논리적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세우면서 상생할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토대 없이 감정으로 나간다면 우리는 어느 분야를 제외 할 필요도 없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과 충돌을 피할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다.
지나온 시대를 기반으로 앞으로 올 미래에서는 불가분의 관계이자 우리에게는 지정학적으로나 절대적인 동반자의 관계로 중국을 인식을 한다면 근시안적인 행동이나 말로 그들과 감정적인 충돌을 할 것이 아니고 비록 몸짓은 작지만 공자가 예의 바른 그 나라에 나도 가서 살고 싶다던 나라, 명, 청시대 북경의 유리창 지역에 앉아 문답필을 주고 받아도 더 한자에 대해 요해가 깊고 더 많은 한자를 구사해서 존경을 받았다는 선조들 처럼, 우리도 그들을 존중을 해주데 같이 존중을 받을 수 있고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본다. 절대 사대주의적으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기에 새롭게 우리의 모습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절대 굳힘없이 당당한 우리의 모습을 우리가 만들어서 가져가야 된다고 본다.
실용주의라는 것이 청대 말기 외국문물의 들어올 때 부터 실사구시란 이름으로 나온 말이지만 등소평이도 오랫동안 추구하고 행동으로 옮겼던 정치노선이자, 외교노선이다.
진정한 실용주의는 지금 자신의 주어진 상황과 처한 그 모든 상황을 직시하는데서 부터 온다고 본다.
이를 토대로 한 실용주의인 것이다. 주어진 것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 눈앞에 득이 된다고 하여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실용주의가 될 수 없다. 이는 장기적으론 전체를 불행에 빠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한국인인 우리의 모습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싶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무시하고, 당장 눈앞에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안목은 가지지 않고 말이다.
이런 때일수록 항상 모든 일에 있어 그 사건에 대한 본질을 잘 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 한국의 촛불집회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내가 하고자 하는 내용은 전달 되었으리라 본다 그래서 다시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 본다.
중국지진에 관해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애정어린 손을 내밀며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여기에 감정의 색깔은 당분간 보류했으면 한다.
비단 이 일에서 뿐만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떤 말이나 모습이나,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분명해졌다. 올림픽이던, 북한문제던, 경제적인 문제던, 대일 접근이던, 대미접근이던 진정한 동반자고 우리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필요불가결한 국가로 제대로 인식한다면 어떠한 감정적 태도보다도 좀더 냉철한 시각으로 우리전체에 좀 더 나은 방향을 가지고 좀 더 계획적이고 장기적 안목으로 그들을 대했으면 한다. 앞에서도 말햇듯이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듯이 그들도 우리를 똑같이 대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진짜 그들보다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인 측면에서 좀더 나은 위치에 있다면 그 위치에서 나를, 우리를 한번 쳐다봐야 하지않을까....싶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지진의 재해로 돌아가신 그들의 죽은 영혼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며, 진짜 빨리 회복하고 복구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그리고 어찌되었던 전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이 또한 성공적으로 마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쪽 팔리지 않은 조국이 되기를 바라면서...
홍콩 하늘아래서
와설 장성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