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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김혜자"씨 인터뷰 2

김대현 |2008.08.14 23:36
조회 220 |추천 2



화가에게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처럼 김혜자에게 '연기 잘한다'는 말은 오히려 실례이다. 같은 걸레질을 해도 '전원일기' 김회장 부인으로 시골집 대청마루를 닦을 때와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엄마로서 서울 안방을 닦을 때의 손길은 달랐다. 그가 '전원일기' 극중에서 처음으로 집전화를 개통한 날 밤에 이미 돌아가신 친정엄마에게 "보고 싶어요, 하늘나라에서도 제 목소리 들리세요"라고 전화하는 모습만으로 그날 저녁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게 만들었고, 마닐라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만추'의 정사장면에서 발가락만 꿈틀거리는 것으로도 최고의 에로틱함을 표현했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어린 시절에 김혜자가 서울 동교동 자신의 집에서 슬리퍼를 끌고 나와 근처의 세트장에서 연기를 하고,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후 그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해 꼭 함께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연기자는 자신의 체험이나 주변관찰을 통해 연기를 한다. 굶어 보고, 사랑에 아파보고, 무시당했던 굴욕감을 몸과 머리 속에서 꺼내서 다른 인물로 변신한단다. 또는 기자나 조사관처럼 끊임없이 주변사람들의 행동, 말투를 관찰해서 흉내내면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학 박사 2호이자 미군정때 재무부장(장관급)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딸처럼 완벽히 자신을 보호해준 남편과 남매를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김혜자는 무척 낯을 가려 외부사람들과 잘 만나지도 않는데 어떻게 시골 촌부('전원일기'), 서민층 푼수엄마('장미와 콩나물'), 이기적인 친정엄마(영화 '마요네즈') 등을 신들린 듯 연기할 수 있을까. '전원일기'의 작가 김정수씨가 '입신의 경지에 이른 연기 9단'이란 찬사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연기자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선배이고 숱한 연출가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연기자다.


"좋은 연기란 남들이 보기에 연기처럼 안보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죠. 내가 어떤 역할의 옷을 입은 게 아니라 내가 다 없어져 그 사람이 되어야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요. 그래서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맡은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하고 연습하고 그냥 죽기살기로 연기하는 거예요."


김혜자의 연기력에 대해 주철환 사장은 "독서량도 많고 아이디어도 풍부하지만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소녀다운 상상력"이라고 하고, 김정수 작가도 "영원히 아줌마가 될 것 같지 않은 소녀적 감수성이 표현하는 탁월한 해석력"이라고 분석한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모두 여전히 손상되지 않는 '천진한 순수성'의 원형질에 놀란다. 한 지인은 "대한민국 여성이 자식키우고 살림하면서 나이먹어서 저런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작고한 부군이 남다른 분인 것 같다"며 "남편의 보호가 있었기에 국보급 연기자 김혜자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타고난 재능,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열정, 그리고 가족의 보호까지 갖춘 김혜자는 그래서 단역에도 감사할 나이에 "제가 주연이 아니면 원래 잘 안하는데…"(2004년 드라마 '궁' 출연때)라고 말해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봉사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김혜자를 상징하는 소녀다움의 본질은 뭘까. 그건 아마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일 게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함. 그리고 진실은 타인에게 절대 거부당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진심을 보여주는 사랑스러움. 그런 소녀다움의 원형질로 그는 드라마에서는 한국의 어머니상을 보여줬지만 기아구호활동 등 세계를 누비는 자선봉사활동을 통해 '세계의 어머니'로 거듭나고 있다. 김혜자는 1991년부터 월드비전에서 기아를 돕는 활동을 한다. 사진작가 조세현씨는 김혜자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그녀는 내가 본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여자다. (중략)월드비전과 함께 케냐 북부의 극심한 기아지역에서 1주일간 동행하며 발견한 그녀의 모습은 나의 가치관까지 바꿀 정도로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대중은 유명연예인의 봉사활동에 의례적인 것으로 보기도 하고 그냥 인기관리를 위한 가식적인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나고 지켜본 김혜자는 인간이라기보다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의 김혜자는 지구촌 구석의 그늘진 아이들에게 수호천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열악한 환경과 교통수단에도 묵묵히 몇시간을 버텨내며 강행군을 따라가는 그녀에게 화려한 연예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지금까지 103명(현재는 200명)의 지구촌 가족과 결연을 한 그녀는 그들을 위해 매달 200여만원의 큰돈을 꼬박꼬박 기부하고 있다.(중략) 그뿐만 아니었다. 사막에서 만난 한 어린 여자아이가 심한 굶주림에 내장에 이상이 생겨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즉석에서 100달러가 넘는 병원비를 지불했다. 주위 사람들이 '이런 아이가 주변에 너무 많은데 이렇게 돕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니까 '내가 본 아이인데 우선 이 아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을 이렇게 말고는 달리 표현할 재주가 없다. 깊고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고 순수한 천상의 소녀 같다는 말밖엔…."


그가 먼나라의 굶주린 어린이만 돕는다면 우리는 그를 별로 인정하지 않을 게다. 하지만 김혜자는 바로 주변사람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준다. 언젠가 한 신인탤런트가 분장실에 청첩장을 들고와 "곧 결혼하고 결혼 후엔 주부로 살 것 같다"며 인사를 했다. 탤런트 김수미는 "잘 알지도 못하는 신인이 청첩장을 돌린 것부터 괘씸했는데 혜자 언니는 결혼식날 생각보다 너무 많은 액수의 축의금을 봉투에 넣어 자신은 녹화라서 참석 못하니 대신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신인탤런트, 그것도 은퇴해서 앞으로 볼 일도 없을 사람에게 큰돈을 내냐는 질문에 김혜자의 대답은 이랬단다.


"연예활동을 많이 안했으니 하객들도 별로 없을테고 앞으로 자주 못 볼 사람이니까 더 잘해줘야지."


그는 기아현장을 다녀온 체험담을 펴낸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꽃때말)의 인세를 모두 기부해 공부방을 만드는 일도 한다. 2005년 1월에 강원 태백시에 인세 수입금 5000만원과 각계각층의 정성어린 손길로 꽃때말 1호점이 문을 열었고 지난해 마산에도 공부방을 열어 한국의 어린이들에게도 사랑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처음 봉사활동을 떠났을 때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끝난 직후였어요. 그때 대학 졸업한 딸과 유럽여행을 함께 가려고 했는데 월드비전에서 '우리가 받았던 도움을 다른 나라에 돌려줘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각자 다른 곳으로 떠났죠. 그곳에서 정말 지옥보다 더 비참한 삶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돌아와서는 다시는 안가겠다고 생각해지만 다시 소말리아로 떠나게 됐어요. 내 의지가 아니라 뭔가에 이끌리듯 떠난 거죠. 한 번 가는 데 나흘이나 걸려서 가고 물도 음식도 열악하지만 그곳에 다녀오면 진정한 구원을 얻어요. 지구 곳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연기를 하면서 깨닫지 못했던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그곳에서 내가 사라져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삶이 변해가며 더 많이 웃게 되었고 홀로 있을 때에도 진정한 의미에서 홀로가 아니란 깨달았어요."


그는 언제나 희망이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나눔이라고 강조한다. 주변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은 나눔과 사랑뿐이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울림은 너무나 크다.


어떤 작가는 김혜자의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그동안 참 더럽게 살아왔구나 싶어 가슴이 아렸다"고 한다. 그런 순수함과 진정성이 있기에 그의 봉사활동도, 연기생활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준다. 김혜자가 아니면 누가 시시포스처럼 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에서 탈출하려는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주부의 심정을 그토록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으며, 김혜자가 아니면 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초대 인사에게 "그 소문이 진짜예요?"라고 물어도 전혀 얄밉지가 않을까.


어떤 배역을 맡겨도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믿게 되는 배우, 자선활동을 해도 위선이 아니라 진심이란 확신이 드는 사회운동가, 그 사람 앞에선 어떤 잘못이라도 털어놓게 만드는 토크쇼 진행자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이다. 본인은 "김혜자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다 아는데 왜 기사에 굳이 괄호 열고 숫자를 적느냐"고 불평하지만 68세에도 일곱살 소녀의 순수함과 세포 마디마디가 에스트로겐일 것 같은 여성성이 공존하는 이는 김혜자밖에 없을 것 같다. 김혜자를 영원히 천사 같은 소녀로 머물게 하는 것 역시 우리가 그를 소녀와 천사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가 출연했던 연극 '셜리 발렌타인'의 "자기를 좋아하고 인정해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여자는 다시 피어나는 거야. 열여덟살이든 마흔네살이든 예순두살이든…"이란 대사처럼 말이다. 또 그가 출연했던 다른 연극 '해롤드와 모드(80+20)'처럼 팔순에도 김혜자는 스무살 청년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을 것 같다. 아마도 그 무렵엔 60대 주부의 가출이 아니라 팔순 할머니의 로맨스가 신드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김혜자는 누구인가


22년간 '전원일기' 우리시대 어머니로

매년 아프리카로 달려가 봉사활동도


우리 시대의 어머니로 대표되는 연기자. 1941년생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동갑.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미대 재학 중인 1962년 KBS탤런트 1기로 연예활동을 시작했다. '개구리남편' '사랑이 뭐길래' 등 숱한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22년 동안 장수한 '전원일기'의 어머니역으로 '한국인의 어머니'상으로 대표된다. 동료들은 "평소 집에선 책만 읽지 김치도 못담그는 그가 어떻게 현모양처나 대한민국의 대표 어머니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의 포근한 미소만으로 모든 이들은 모성을 느낀다. 75년부터 27년 동안 한 조미료의 모델로만 활약,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신뢰감을 주는 연예인으로도 유명하다.


국제 구호기관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해마다 소말리아, 우간다, 보스니아 등으로 달려가 기아들을 돕고 결연을 맺고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학생인 손녀손자도 동행해 온가족이 세계 기아돕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자신보다 젊은 유명 연예인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해야 그들도 겸손해지고 파급효과도 클텐데 젊은 스타들과 기획사들이 동참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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