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_
아픔을 기억하는 이
내 손은 지금 멀쩡하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질 않다.
피를 흘린 기억이 언제였던가
아무래도 떠오르질 않는다.
내 손톱 끝 어느 모세혈관이 찢어지고,
갈라지면서 흘러나오던 서캐 같은 말들....
나는 그것들을 내 손으로 잡아죽이지 못했다.
어느 골을 마구 돌아다니며
가려움증을 일으킬지 알 수가 없다.
아픔을 기억하는 이만이 나의 가려움증에
면역을 갖게 될 것이다.
서류를 묶어놓은 스테플러침에 찔려
사흘밤낮을 피 흘리리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우유대금을 받으러온 청년에게
거스름돈을 챙겨주다 천 원 짜리 신권에
새끼손가락을 베이리라.
그때 문득
어릴적 앓던 홍역을 다시 앓게 된다면
온전히 앓아 버리자.
아스피린 한 알도 먹지 말고
꼬박 앓아 버리자. 앓고 난 후 당신은
당신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무엇이
부서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허브화분, 애써 모아놓은
수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전 바꾼 새 차 일수도
어렵게 얻은 새 집 일수도 있다.
그것을 내어주고 당신이 앓은 병은
참을 수 없는 가려움뿐이다.
손톱 밑에 잔뜩 끼인 하얀 부스럼.
오래 전 당신의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각질 덩어리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증거이다.
당신이 살아있음에 대한
아무도 증명하지 못하는 당신만의 아픔.
그리고 나서 찢겨나간 몇 점의 묵은 세포 따윈
잊어버려야 한다. 깔끔히.
아픔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 혹은 당신.
우리 중 어느 누구는
항상 그것을 잊고 지낸다.
통감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삶은
각성의 연속이다.
헤어나오지 못하는 각성의 바다.
아무 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면 쓸수록 더욱
헤어나올수 없는 진창으로 도망치는 것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음을
소용없는 짓이다.
그렇게 오래오래 아픈 영혼들.
그런 무수히 아픈 영혼들을
누군가는 달래 주어야 한다.
살아있으면서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아픔을 기억하는 이만이
진정한 삶을 살 자격을 갖는다.
'진정' 은 멀지 않지만 쉽지도 않다.
같이 아파하는 것.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면서
아픔은 치유된다.
까닭 없는 고통은 없으므로.
내 손은 지금 멀쩡하지 않다.
온통 피투성이.
살아있는 세포들은 아주 오랜 옛날,
서랍에 찧인 그때부터
조금전 차 끓이던 물에 데인 그때까지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 작은 아픔들은 내가 나태해 지거나
조금이라도 나를 팽개쳐버리고 싶을 때,
나를 위로해 주었다.
무엇 때문에 아픈 것인가?
왜 나는 상처 없는 고통에 이렇게 시달리는가?
그것은 숙명적인 것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만약에 그것을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더 멀리 달아나, 혼자 더 많이
아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찾아 오는 집 잃은 고양이들.
휴식을 잃은 영혼의 지친 모습 때문에
아팠다.
하지만 실은 그들을 위해 먹다 남을 생선뼈를
쓰레기 봉투 옆에 놓아두는 일이 더
아픈 일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비까지 오는 밤이면,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그들의 젖은 울음소리를 듣는다.
그 젖은 울음이 잠자리까지 흠뻑
적셔놓는 밤이 이틀 넘어 계속된다.
이제 시궁쥐들마저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된다.
그들의 아픔은 도미노처럼
나에게 온다.
부디 더 많이 아파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