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부터 까불 까불
어딜가도 나불 나불
맨 처음 그렇게 다가오더니
1년
2년
3년
그 녀석의 까불까불은 사람을 참 좋아했기에
그 녀석의 나불 나불은 사람을 참 좋아 했기에
시간이 지나서야
그런 녀석인걸 알았다.
대외적이지만 내성적인 나에게 항상 많은걸 물으며, 조언을 구하며
"역시 넌 항상 형 같아....."
그렇게 말했던 녀석 (사실 내가 한살이 많긴 하다......)
고등학교 2학년때
어머니가 큰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마음이 참 힘들고 아플때
친한 친구에게도, 선생님 에게도
힘들다고, 아프다고 내색하기가 싫어 멍하니 창 밖을 보던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날
그 녀석 하는 말.....
"너 무슨일 있냐?"
"아니 아무일 없어.."
"아니야 너 분명 무슨일 있어.. 집안일이니?"
집안일이니? 그 녀석의 질문을 듣자 마자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인데
눈물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멍한 눈에 눈물이 계속 주룩 주룩
그걸 본 그 녀석 놀라면서 하는말
" 많이 아팠구나... 야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선 울지 마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가 그러면 다들 많이 놀랄거 같다!! 어머니 병원에 나두 자주 갈께....."
고등학교 2-1반 큰 창문이 있는 복도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주룩 주룩 흘리고 있는 나에게
그 녀석의 말은 창 밖에 햇살 만큼이나 따뜻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를 지나고 바쁘다는 핑계아래
6개월에 한번 안부 전화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어도
그 녀석도 나도 그때의 마음은 항상 그대로 여전히 고딩때의 그 모습......
그렇게 20대 후반이 되어 갈 때쯤
난 "뮤직홀릭" 이라는 바를 열게 되었다.
나름 구리시에서는 음악이라는 카테고리 에서는 자신있었던
나의 뮤직홀릭....
돈이 없어 외진곳에 차렸지만
음악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항상 나의 로망같은 뮤직홀릭......
음악을 듣던 손님들이
다 떠나는 새벽 2시경
바에 걸쳐 앉아
Mal waldon의 - left alone
을 들으며 잭다니엘 한잔을
털어 넣을 때쯤
쓱 들어오더니 그 녀석 하는말
"야 장사가 이렇게 안되서 어떻하냐, 그래도 나밖에 없지!!.."
그렇게 둘이 바에 걸쳐 앉아서
술을 한잔 하며 시시 콜콜한 삶의 이야기를 새벽까지 주고 받던 녀석......
여자친구 문제나 기타 여러 문제로 고민이 생길때
아이처럼 달려와 상담을 하던 그 녀석.......
어느 날인가
술이 잔뜩 취해......
소주 한잔을 먹자고 달려온 그 녀석을 데리고
근처 포장마차로 데려가
눈을 보니
이미 풀린 눈........
이 녀석 무슨 이야길 할까?
"야 원준아....
내가 있잖아...
야 내가 있잖아........
야 야 내가 있잖아
참 사랑한다........."
"날?"
"병신 너 말고....
내 여자친구 내가 참 사랑한다........"
며칠전
그렇게 맘 고생할거면 헤어지라고 한 내 얘기가 맘에 그렇게 걸렸나 보다.....
그 새벽에
술에 젖디 젖어......
빗방울에서도 소주 냄새가 날거 같은
모습으로 한다는 말이..........
"야 야 내친구 원준아 원준아~~~
내가 있잖아 있잖아...
참 사랑한다............."
"씨발놈........
이 빌어먹을 새끼.......
니 빌어먹을 사랑............
씨발 내가 응원한다............."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사랑을 했던 그 녀석.......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구리시에 사장님과 프랜차이즈 술집을 낸다고 했을때......
(구리시 동신문고 옆 럼보트)
내심 맘은 참 좋았다......
10년동안 일하면서
지 좋아하는 거 제대로 해보지 못하면서
맨날 집안 걱정, 아버지 걱정, 동생 걱정에
마를 날 없던 녀석 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가 활동하던 곳에서 가게를 낸다고 하니까
비록 자기 돈은 아니지만 점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첨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거니까......
친구로써 그동안의 그 녀석의 모습을 아는 친구로써
뿌듯하고 참 좋았으며
꼭 성공시켜야지 하는 눈빛이 좋았다........
새벽에 라디오 방송이 끝나고
구리시에 오면 새벽 3시경........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불쑥 찾아가 이번엔 내가 말한다
" 야 니네 이렇다가 망하는거 아니야.."
그렇게 낄낄대다가
소주 한잔 먹다보면 금방 날이 밝는 날이 많아진 2007년.....
2008년이 되고 낮에 하는 일로 정신이 없어
일주일에 3번 가던 그 녀석의 가게의 방문이 한달의 한번정도 쯤 되었을때
일주일에 2-3번 전화해서는 하는말.......
" 야 안오냐..... 안오냐구.....
보고싶다 새끼야......"
그런 이야기를 툭 툭 던지던 녀석
7월이 되고 8월이 되서야
조금 시간을 내어 그 녀석의 가게로 출동.....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낄낄되는 우리.......
2008 년 8월21일 오전 6시
문자가 하나왔다
"일어났냐 잠깐 집앞으로 나와 보고 싶다"
이게 아침에 왠일이래 우리집까지.....
그런 생각으로 문자를 보내고 출근 시간이 촉박해....
통화만 하고 보낸 후........
그 날 저녁
친구들이 그 녀석과 다 같이 술을 먹고 있다는 정보 입수......
갈까 말까....
심각히 고민하다가
피곤한 몸을 토닥이며 집으로 고고씽........
그렇게 잠을 자고 있다가
억수 처럼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깬 시각은 오전 4시30분 경.......
"거 참 시원하게 비 내리네.......
애들 아직까지 술먹고 있을까 ?"
전화기를 만지작 만지작....
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오전 10시 업무로 전화통화로 정신 없을 때쯤..
딩동 하는 문자 하나........
"오늘 새벽에 창용이 죽었덴다 정말 당황스럽다......"
문자를 보고 또 보고
원래 시시껄렁한 농담을 잘하던 녀석이었기에
"장난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전화기를 누르는 손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
"병원인가요?
김창용씨 장례식장이 어딘가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무적인 목소리.....
"예 제 3분향소 입니다"
"개시끼 씨발놈 미친놈............니가 왜 죽냐.......이 병신아............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이제 잘 살아 볼려고 했는데 니가 왜 죽냐 이 병신아..........."
눈물반 콧물반
그런 마음으로 길거리에 슬픔 흘리며
도착한 장례식장...
그 녀석이 그렇게 사랑했던
아버지와 , 동생 지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 본다....
10년 간이나 동고동락 했던
창용이의 사장님이자 파트너 세호형의 눈빛도 참 아프다.......
수십년이나 친구였던 친구들의
곡 소리도 참 애닮다....
하루가 지나고
장례 이틀째
창용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날......
차갑게 누워있는 녀석 믿기질 않지만 믿어야 하는 현실....
얼굴을 보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질것 만 같은데....
"우린 여기까지야....."
라고 이야기 하는 듯한 모습.....
파랗게 질린 모습 한번 안아주고 싶지만
강철처럼 차가운 그 녀석의 피부는 ........
날 자꾸 뒤로 밀며 얘기한다.....
"가족들도 잘 부탁하고 내 마지막도 잘 부탁해......"
병신 이 병신아.....
살아만 있지..
팔 다리 하나만 없어도 살아만 있지........
오열하고 비통해 하는 가족들.........친구들.......
염을 마치고..
그 다음날....
창용이 승화하는 날.....
생전에도 그렇게 좋아했던, 함께 했던 친구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 까지 가는 구나......
납골을 한후
모든 절차를 마친 후.......
세호형의 한마디.....
"그 녀석은 제대로 좋아하는 사람 한 사람만 서로 마음맞는 한 사람만 있으면
아무 욕심 없이 그렇게 사랑하며 살 녀석이었는데....."
"사랑 하나 그렇게 믿던 녀석이었는데......"
어릴적부터 어머님의 부재로
정 많고 사랑에 약했던 우리 창용이........
마지막 까지
사랑을 선택했던 내 친구 김 창용
"영원히 추억하마..끝나지 않은 우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중에 보자 나중에 꼭 다시 하자..."
2008년 8월22일 새벽 4시39분
한살 많은 나보다 먼저 좋은 곳으로 간 내 친구 김 창용군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2006년 뮤직홀릭에서 찍은 창용이의 단 한장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