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설적인 구성요인 일까.
살아가는 요소의 궁핍이 늘 산재해 있는 것도 문제임은
기정사실이 아니던가. 보혜미안일까, 아님 센티멘탈인가.
동질의 요건하에서라면 한번쯤은 유의해 보겠는데
인지상정인가, 채근할 기력이 없음이다.
한계에 의존할수도 없는 현실속의 병폐가 아닌가 싶기도 하거니와
포헴처럼 단순하게 넘어갈것도 아닌것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변칙을 남용해서는 않될 이유를 나열하다.
지금의 변이에서 소원하게 된 까닭을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가식과, 타락과...계층간에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은 뭔가.
회전의자 식의 언변에 놀라고 만다.
진위는 무엇이었을까.
대안을 세워라.
의식의 치중에서 벗어나야 할 원인제공에 힘을 쓰라.
형식승인.
회피하는 까닭이 뭘까.
원초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야 했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변명이라도 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싶다.
무지한 노릇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결과에 대한 동기는 무엇으로 하겠는지.
참으로 무서운 노릇이다.
스스로 자해를 하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어떤 소견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정신적인 결핍이 아닌가.
도태되거나 거세되었어야 할 암적요인들이 아니었을까.
물론 구체적으로 혈설하기는 힘이 들겠지만...
고쳐 쓰기라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궁핍하지는 않았을게다.
매섭다고 해야 할 건덕지는 없었을게다
전이되는 과정에서의 나른한 변명도 아니였을게고
해서 게절의 미완을 바라보지만 역시 격이 생기고 만다.
헤짐의 결과인 것이다.
무턱대고 쏟아내는 언어의 유희나 낱말의 홍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아, 무지 하기위해 모든 것을 던져내고 만다.
망각의 다리 위에 섰다.
혁신은 작은 미소의 반항일수 밖에 없는 법.
그것을 가슴에 싸 앉을수 있을까.
과연 어느 만큼의 포용을 이끌어 낼수 있을 것인지.
깨지는 슬픔이다.
점멸로 시작되어 지는 굳은 회상의 끈이다.
누가 서열을 메길것인가.
중세기의 삶을 요구하는가.
순결과 정절과 그리고 순수의 지상과제를 숙지해야 하는 건가.
벗어던질 입성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이 피해망상의 근원은 침묵인가.
무지렁이의 진실을 갖고 싶다.
발하지 않은 자연인 그대로의 자아를 지니고 싶다.
이 보잘것없는 허울의 사치에서 벗어나고 싶다.
동지 ! 재미있지 않소.
결코 시대 발상적인 넉두리는 아니오
운치를 논 할 까닭이 없음인데 불면의 씨앗은 늘 고통을
수반한 채 가까이에 기생하고 있다.
채 정비되지 않은 삼륜거의 통곡이 아닌가 한다.
깨져 버리기 쉬운 언약의 불신이 저질러 논 타성이 아닐까 싶은데
모처럼의 볼멘 소리에 날아가 버린다.
동사다.
책임 질수 없는 에고니스트의 슬픔이다.
벽,
자신을 되 찾고 싶음은 현실이다.
모래 위에 성을 쌓는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던져 버릴 여건이 된다면 오히려 그 과정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의존치 말라, 지인이여 !
아직은 새벽이 오지 않았다.
무심코 젖은 아픔을 통속화하고 만다. 정신없이.....
놀라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의식 중에 서열하는 이 처럼 단순한 사고 처리에....
훔쳐 먹는 술은 맛이 있는 법.
비록 슬픔이 배인 술이지만...
계절이 두렵다.
제멋대로 나불거리는 입술위의 언어로 떠들어 대는 계절이 두렵다.
무엇이든 삼키고 마는 시간마져도 두렵다.
난봉꾼의 치기보다 침묵하는 자신이 더욱 싫다.
내가 차고 있는 이 현명한 죽음의 의식마져도 새롭기만 하다.
깨진 족박이라든가.
표현이 그렇게 어울릴수가 없다.
핏빛으로 날아 다니는 형광체가 아닌가.
무척 거칠은 날을 쏟아 내고 있다.
몇 편의 인생 희곡을 보고 있는 걸까.
애석하게도 끝까지 마주하지 못한다.
내가 무의식 상태에서 주절거리고 있음은 따지고 보면
한낮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어의 없음이라.
치 닿는 음미를 기억하고 싶을 따름이라.
놀이를 시작한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간다.
늘상 제 자리에 있던 인물들이었는데
몇 차례의 기회를 찾기 위해 악을 써 왔을 다름.
내 이름을 제외 시킨다.
언제나 처럼 나는 없으니까.
악을 쓰며 통곡하지만 그대로의 사람일 뿐.
아직도 속은 아리기만 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현실적으로 도태된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거칠게 도용된다면 그것만큼은
생각할 여유가 없어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자의 선택일수 있으니까.
외유내강 한다는데 왠지 두려움을 떨쳐 낼수가 없다.
늘 그자리에 있듯이...
혼용과 혼돈이 싫다.그러고 보면 내 자신은 정박아.
아무런 효용이 없음을 실감한다 하드라도 체면치레는
했다는 결론. 그러나 시셈은 그릇이 아니다.
놀이 한다손 치드라도 이런 황폐함을 인정하겠느냐.
슬픈 현실이 아닌가 싶다.
도외성과 맛 물려가는 슬픔이려니.....
위기 의식을 버릴수가 없다.
모삼모사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