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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버린 여자

신혜인 |2008.10.07 15:05
조회 241 |추천 2


故 최진실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버린 여자

오랫동안 최진실 이름 석자는 해피엔딩의 상징 이었다.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며 영호(최수종)와의 포옹 장면을 찍을 때 (MBC ) 그랬고,

당대의 톱스타 강민(안재욱)이 콘서트중 사랑을 고백하며 포옹할 때도 그랬고(MBC )

첫사랑이자 톱스타인 동철(정준호)과 가족이 될 때도(MBC 그랬다.

 

우여곡절 끝에도, 마침내 사랑은 이루어지더라는.

꿈 속 같은 많은 이야기들이 그녀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 후로 오랫동안’을 알 수 없었다.

조명이 꺼지고 환호가 잦아든 자리에

홀로 남아있던 그 캔디의 행복은 짧았고,

불행은 오래 지속됐다.

 

 

그녀로부터 90년대가 시작됐다
 
 

최진실은 세상을 놀라게 한 연기력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모두가 닮고 싶은 초절정의 미모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빼고는 90년대의 대중문화를 논하기 어렵다.

 

 

트렌디 드라마의 전설이 된, 의 젊음은 가벼웠다.

질곡의 가족사도 역사의 상흔도 없이,

일하고 사랑하는 도시의 젊음을 말했다.

 

올림픽 이후, 어쨌거나 이전에는 없던 낙관적 정서가 퍼져나가던 90년대 초반, TV는 가 장악했고 스크린은 신드롬에 사로잡혔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오직 최진실만을 위해 태어난 듯 했다.

 

책받침 코팅용 사진에서, 연습장 겉표지에서,

잡지 부록 브로마이드에서,

그녀는 언제나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의 이면에는, ‘

생계를 위해 연기를 해야 하는’

소녀 가장의 고단함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대중은

최진실의 신데렐라 같은 등장을 반기는 한편,

동시에 늘상 비슷한 그녀의 연기를 성토했다.

연기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이,

처음부터 ‘주연’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녀에게

연기력 논란은 꽤 강도가 센 콤플렉스였다.

 

90년대가 중반에 이르렀을 때,

‘최진실이 한물 갔다’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이 시작된다.

가 나왔고

영화 가 나왔던 바로 그 해,

최진실은 그야말로 한 판 역전승을 거둔다.

 

이 후 최진실은 MBC ,

MBC 등에서

똑부러지는 며느리이자 아내 역할로

팬 층의 저변을 넓혔지만,

사실상 와 는

대중이 그녀에게 허락한 두 가지 전형적인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제 2의 전성기는,

어이없는 파국을 맞았다.

해피엔딩의 완성처럼 보였던 극적인 결혼이

독한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병원에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을 모든 매체가 찍어 보낼 때,

국민요정의 지위는 그야말로 영구박탈 되었다.

 

그런 최진실에게 다시,

KBS 이 주어진 것은 운명 같았다.

겹겹이 둘러싼 불행을

가슴을 쥐어뜯으며 돌파해가려고 했던

‘아줌마’ 맹순이에게서,

시청자들은 최진실 개인의 삶을 쉽게 대입하곤 했다.

 

마침내 아줌마가 된 국민요정이,

아줌마를 응원하고 위로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의 연예계는

갑자기 신데렐라가 등장하기 어려운 구조로

재편성 되었다.

 

키워진 아이들은 피부뿐만 아니라

태도나 입장 역시 관리 받는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연예인의 사생활은 노출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최진실은 전 매니저의 사망,

혹은 괴한의 납치 미수,

파경과 이혼에 이르기까지

연예면과 사회면을 오갔던 큰 사건에

대부분 피해자였음에도

늘상 죄를 지은 사람처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요즘처럼 기획사 대표가

당사자보다 먼저 입을 여는 상황과는 달리,

언제나 그녀는 홀로 외롭게

비난처럼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대중은 그녀의 작품을 즐겨봤지만,

그 연기에는 좀처럼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똑같은 연기’라고 질책하거나

명료하지 않은 발음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캐릭터를 찾을 때

그런 배역은 대중이 정작 환영하지 않았다.

 

최진실과 비슷한 또래의 여배우들,

예컨대 하희라, 김혜수, 김희애, 채시라 같은 배우들이

아역 배우의 경험 혹은 연극 영화과 출신이라는

나름의 경력을 토대로,

부침이 있더라도 안정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최진실의 자리는 늘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연기 면에서나, 매니지먼트 면에서나

심지어 가정사 면에서나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거나,

가장이었다.

 

그녀가 기댈 사람은 없고,

그녀에게 기대는 사람들은 많았다.

 

극중에서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대부분 예비된 해피엔딩을 위한 전주곡이었지만,

2008년 10월 2일 새벽,

최진실이 홀로 흘렸을 눈물은,

끔찍한 비극으로 끝났다.

 

최진실을 만인의 연인이라 칭송하던 이들은

다음 날이면 그녀를 둘러싼 험하고 흉흉한 루머를

쉽게 믿어버리고 수근거렸다.

 

그 때 마다 천국과 지옥을 왕복하던 그 여자는,

피로한 왕복 주행을 스스로 중단시켜 버렸다.

그녀는 가고 추억만 남았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한 여자,

쉽게 사랑 받았고, 쉽게 버림도 받았던 여자,

눈물도 웃음도 많았던 그 여자가 떠났다.

 

우리는, 요정으로 나타나

연인이었다가 누이이자 언니였고,

아내 혹은 며느리이자 엄마가 되어 주던 사람,

언제나 돌아보면 거기 있어줄 것 같았던,

대체 불가능한 한 시대의 아이콘을

그토록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글) 조지영 출처: 매거진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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