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수가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려고 한다.
짐정리를 돕기 위해 동료 교수들이 그를 찾아와서는,
왜 종신직과 우대도 만류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하냐고 아쉬운 마음에 그를 붙잡는다.
그 많은 혜택을 뿌리치고 왜 그는 정든 장소를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10년마다 한번씩 주거지를 옮겨 다녔다는 그는, 알고보니, a cave man, 원시인 이었다.
추정상 크로마뇽인인듯하다.
처음에 동료들은 믿지 않는다.
처음으로 자기 자신으로서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는 그의 설명은,
점점 시대적 상황들과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설득력을 발휘한다.
나도 도입부에는 이게 대체 뭔 영화인가 싶었다.
뜬금없이 자기가 원시인이라느니,
10년마다 주거지를 옮겼다느니-
어떻게 혼자서만 천연두, 흑사병 이런걸 다 물리치고 살 수 있는걸까?
노화도 안되고 -
더 믿기 힘든건, 상처가 안난다는 거다.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본인이 그리스도라는 설정이었다.
나야 뭐, 불교인지라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서양 세계에 전파했다는 내용이 그닥 거슬리지도 않았고,
또 여러 소설책들에서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성서의 잘못된 점을 익히 꼬집어 왔던 터라 그 설정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이니스였던가, 그 분 처럼 독실한 신자라면 기분이 많이 상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 개봉됐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그랬다면 상영금지가처분신청 뭐 이런거 내려오지 않았을까.
어쨌든, 역사속의 심리학자 프로이트까지 등장시킨 건 정말 멋진 발상이었다.
마지막이 더 황당했지만.
프로이트의 아빠였다니.;
심장마비로 죽은 프로이트가 불쌍할 따름이다.
내용은 이정도에서 각설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저 원시인이었다면,
내가 만약 타격없이는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사람처럼 모질게 살아오지 못했을 것 같다.
나를 낳아준 부모가 죽고, 나와 함께 커 온 자매도 죽는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내 자식도 모두 죽는다.
나는 그것을 볼 수 밖에 없다. 그들을 도울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처럼 학구파인 것도 아니다.
아마 그가 했듯이 새 언어를 배우고, 새 집단에 적응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 보다
나는 뭔가 다른 것을 했을 것 같다.
작곡을 한다던가, 내내 술을 마시고 음주 가무를 즐긴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모르겠다, 그러다 지겨워 지면 공부를 했을지도.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마음에 큰 비중을 두는 나인지라,
어쩌면 계속 반복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몇만년이 될지도 모르는 삶을 이제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구에서 온 사나이.
생존력도, 진화력도, 친화력도 뛰어난 것 같은 사나이가
나는 그닥 부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