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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꽃

이영주 |2009.03.23 16:03
조회 43 |추천 0


 

할매꽃 (Grandmother's Flower, 2007)

감독 : 문정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까?


 

어딘가 강의를 나가서 자기소개를 할 때 꼭 하는 말이 있다. 내게는 억울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그 중 하나는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라고. 여기서 내 억울함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다만 첫 번째 억울함, 분단에 대한 푸념으로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나는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억울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니 부모세대, 조부모세대부터 뼛속깊이 적과 아를 가르는 이분법이 아로새겨진 나의 사고체계가 억울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고, 내가 이기면 누군가는 지는 것이고 누군가가 이기면 내가 지는 제로섬 게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빈약한 상상력이 억울했다. 판단의 재료도 선택의 기준도 없이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부터 배운 나의 성장이 억울했다.
난 왜 그렇게 자라야 했을까? 나는 그 이유가 ‘분단’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는 절대 이런 억울함을 대물림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도 했다.

 

부모의 역사를 들어보셨나요?

 

그러나 ‘분단’이라는 내 결론이 얼마나 추상적인지, 다큐멘터리 을 보며 통곡으로 깨달아야 했다. 지금껏 분단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분단에 대해 억울해하기 이전에, “부모세대는 나에게 왜 판단의 재료도 선택의 기준도 주지 않았는가?” 그 이유부터 알아야 했다.
부모세대의 역사를, 특히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부모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들으며 자란 이가 몇이나 될까? 나의 부모는 그 시기에 대해 그저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동네 앞 냇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창에 찔려 죽어나갔다고만 이야기했다. 죽창으로 찌른 사람은 누구이고 죽어나간 사람은 누구인지, 왜 그렇게 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영화 을 보며 나의 부모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공포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들의 가족사에는 현대사의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비극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문정현 감독은 작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연히 그가 남긴 일기를 보게 된다. 평생 정신병으로 고생하던 작은 외할아버지는 새벽 3시면 교회에 나가 종을 쳤고 붉은 색을 보면 발작을 일으켰고, 간혹 칼로 부인을 죽이려 해서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였다. 작은 할아버지의 일기장에서 시작된 감독의 카메라는 감독의 외가에 숨겨 있던 비극적인 가족사를 마주하게 되고, 기구해도 이렇게 기구할 수 없을 만큼 그 비극은 끝이 없다.
작은 할아버지가 정신병으로 평생을 살았던 것은 ‘밤손님(좌익 빨치산)’ 활동을 하던 형님(외할아버지)이 잡혀간 후 면회를 갔다가 연락책으로 누명을 쓰고 고문과 공포탄에 시달린 후유증이었다.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외할머니의 간곡한 호소에 산에서 내려와야 했던 외할아버지는 고문후유증과 외할머니에 대한 증오로 평생을 술과 함께 보내야 했다.
외할머니의 친정 가족 역시 비극을 안고 있었다. 좌익 활동을 하던 외할머니의 오빠는 자수하러 가던 길에 동네 친구였던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일본에 가 있던 외할머니의 남동생은 형이 그렇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조총련 활동을 했다. 조총련 활동을 하던 중에 가족이 보고 싶어 1970년대에 한국에 왔다가 박정희 정권의 체제 선전에 이용당하는 바람에 조총련에서도 버림을 받았다. 자신의 딸을 북에 보낸 탓에 그의 아들은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아들은 북에 있는 여동생을 위해 지금도 여전히 조선 국적을 버리지 못하고 남도 북도 아닌 ‘교포’라는 지위로 일본에서 모멸과 가난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비극은 이렇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영화를 만들게 한 사람은 감독의 어머니다. 한눈에 봐도 옴팡지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눈에 들어오는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 즉 감독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숨겨진 가족사를 드러내야 한다고 아들에게 말한다. 이제는 세상도 바뀌었으니 말할 때가 되었다고.
그러나 정말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흐른 세월만큼 상처도 아물었을까?
외할아버지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평생 외할머니를 증오하며 술로 여생을 보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정신병에 걸린 시동생을 보며, 그런 시동생과 사느라 고생하는 동서를 보며 외할머니는 또 얼마나 큰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을까?
외할머니의 여동생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들어오라고 해서 한국에 왔다가 오빠(일본에서 조총련 활동을 했던 외할머니의 남동생)가 불행해졌다며 지금도 미안함에 눈이 짓무른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조카손주에게 카메라를 치우라고 역정을 낸다. 아직은 아니라고, 아직은 아니라고.
해방직후의 격변기에나 있었던 좌익 우익 따위는 이제 다 없어진 줄 알았건만, 외할머니가 살았던 산골 마을은 2009년 현재까지도 증오와 원망, 그리고 언제 또 반복될지 알 수 없는 비극에 대한 두려움이 마을을 가르고 있다. 다만, 그저 드러나지 않게 ‘쉬쉬’할 뿐이다.
죄책감이든 증오든 두려움이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 시점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냐?’는 질문은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여전히 색깔론을 들먹이며 비극에 비극을 덧칠하는, 그래서 부모세대가 자식세대에게 자신의 역사를 들려주는 것이 공포가 되게 하는, 그런 세상만큼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농담처럼 “한나라당 대통령 되면 또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아, 어쩌나. 다시 또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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