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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심오한 철학, 기독교는 맹목적 신앙?

차윤진 |2009.04.19 10:14
조회 84 |추천 0

 

 

불교는 심오한 철학, 기독교는 맹목적 신앙 ?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글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조선 500년은 배불정책으로 말미암아 불교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태조 자신은 숭불자였으므로 불교재건에 공적도 있었지만, 고려말 부터 내려오던 배불론은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에 의하여 그 실현단계에 다달았던 것이다. 

 

 정도전은 그 박통한 지식으로써 불교를 물리치고 유학을 일으키려고 [심기리] [불씨잡변] 등의 논문을 지어 불교에 대하여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였지만, 그 당시의 왕사였던 무학(1327-1405)이나, 국사였던 조구등은 무일언반구 아무런 변명도 못하였었다."

 

- 연세대 철학개론 1988년판 314페이지 중에서  

 

 

세상에서 잘쓰지 않는 말을 어렵게 표현한다고 해서 심오한 가르침의 종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교부이자 신학자였던 성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젊은 시절 성서의 단순하고 수사적이지 않은 표현을 보고 그리스도교를 경멸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조롱하는 삶을 살았다고 그의 저서 참회록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중에  성서가 심오하지 않았던게 아니라 자신과 같은 교만한 자가 깨달을 수 없도록 성서가 쓰여있었던 것이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불교의 우주론에 대해 깊이 연구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불교의 공무아설과 윤회설이 어떻게 양립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과연 누가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실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생전에 지은 선악업보에 따라 6도 윤회를 하게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그리스도교의 성자강생구속의 교리 같은 것을 수용할 이유도 없다고 합니다.

 

저는 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으며 그 후에는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를 가르는 단 한번의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육신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에서 극락으로 생을 거듭하는 과정동안 왔다갔다하고 여러생 동안 인간이 인간으로 동물로 식물로 귀신으로 태어나기를 반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명백히 반대합니다.

 

정확히 말해 윤회설은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싯타르타(석가모니)에게서 최초시작된 전무후무한 고유한 사상도 아니도 더 나아가 인도종교의 고유한 사상도 아닙니다.

 

불교의 윤회설에 대해 '천주실의'를 쓴 마테오리치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것에 대해 반박한 적이 있습니다.

 

" 윤회설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고 하느님께서 동물이나 식물을 인간에게 봉사시키기 위해 지상에 창조하셨고, 각기 다른 모습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만약 윤회설을 충실히 따른다면 결혼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상대가 이미 세상을 떠나 적 있는 자신의 조상,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 내의 질서도 파괴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부리는 머슴이나 하녀가 자기의 친척이나 돌아가신 부모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농사일이나 짐을 옮기는데 어떤 가축도 이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찍죽거나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의 영혼이 가축안에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역 윤회가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라면 모든 인간에게는 전생의 기억이라는 것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모로 보나 사실이 아니다. "

 

윤회설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 없는 사상입니다. 최면상태에서 피실험자에게서 고백되는 전생체험은 심리과학에서 유사기억의 한 종류로 다루어지고 있는  현상일 뿐입니다.  윤회사상의 직접증거로 말해지고 있는 유체이탈체험이라는 것은 다른 종교임들도 심지어 아무 종교를 가지지않은 사람들도 체험가능한 현상입니다. 그것은 윤회사상의 직접증거가 아닌 영혼의 존재에 대한 간접적 증거입니다.     

 

철학적으로 윤회사상의 진리성을 명증하려면 그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공간적 공간안에서 최초의 윤회라는 사건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해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왜 윤회하는 생물체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왜 윤회하는 인간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윤회에 있어 그 원리가 먼저 있었는지 윤회의 원리는 나중에 생기고 윤회의 대상이 먼저 존재하였는지 해명해야할 것이며 윤회의 원리가 먼저 존재했다면 그 작용인의 실체를, 윤회의 대상이 먼저 있었다면 그 존재인의 실체를 규명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가는 소질과 환경에 달려있는 문제인데 인간의 초기윤회시 다양한 영적진화의 결과들을 예정한 주체(원리)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답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위의 사실과 질문과 반박들에 대해 그 사상을 주장하는 분들은 자명할 정도로 우리에게 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윤회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아마 그럴 것이다" " 그것은 신앙의 영역이다" 라는 말등으로 도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말은 그분들이 맹목적신앙이라 멸시하는 절대자와 절대자의 계시를 믿는 계시종교의 사람들이나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윤회설을 믿고 그것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진리를 배척하는 분들은

그것에 자신의 사후의 삶과 영혼을 걸 수있는 엄중한 근거를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는 단순히 자신의 정서적 안정과 지적유희를 위한 도구가 아니니기에 거기에는 반드시 생명을 걸만한 진리와 구원의 능력이 존재하여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무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자아와 현상의 확고부동함에 집착하는 것이라하며 자아에 대한 집착은 현실이지만 그 집착의 대상인 자아는 현실적인 실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모든 개체적자아는 비본질적이고 우유적인 부분에 있어 변화할 수 있으나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것과 구별될 만큼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절대자와의 인격적 관계맺음이 가능할 정도까지는 늘  존재의 고유성과 지속성과 실재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아의 실재성을 부인하면 자아의 연장으로서 발생하는 자아의 윤리적 책임역시 물을 수 없게됩니다. 불교사상이  '악'의 문제에 대해 결국 '환상설'로 기울게 되는 것은 무아설의 자연스런 논리적 귀결입니다.

 

석가모니는 사성제의 가르침을 통해 집착에 의한 고의 발생을 가르쳤지만 사회구조 자체에서오는 계급적 착취의 계속성 즉 사회환경의 결함에서 오는 고통의 존재에 대해서는 외면했습니다.  저 아프리카에 사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의 고통이 그리고 저 시골에 사는 순박한 농부의 고통이 집착과 탐욕에서 비롯되고 있는 거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석가모니는 12연기설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이 죽는 원인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원인을 단순히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상적으로 볼때 죽음의 원인은 노쇠와 질병 그리고 사고때문입니다. 그리고 노쇠와 질병 그리고 사고의 원인은 신진대사와 바이러스와 신체적기능의 이상발생 그리고 인적물적외부환경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존재의 궁극적원인을 '무명' 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의 지적인 한계를 드러낸 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인을 모른다는 말과 다름아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무명' 에서 행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그러한 설명은 행의 직접적인 작용.존재.형상인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말해주지못합니다.

 

석가모니는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며 우주만물을 창조한 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런 말을 했다면 불교는 스스로 무너졌을 것 입니다. 불교는 힌두교의 신개념과 우주관을 차용하고 석가모니 이전에 존재하던 사상들을 비판적으로 흡수하고 개조수용하여 중관적 입장으로 종합하여 나타낸 사상입니다.

 

석가모니는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영혼이 단순소멸된다고 말하면 자신의 가르침인 '행업의 차이에 의한  윤회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고 영혼이 타력에 의해 계속된다고 말하면 누구나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할 수 있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부정하게 되기때문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인도사상의 성숙기에 나타난 그 시대의 인간적,지역적, 시대적 한계안에 놓여있는 한 인간의 사상이고 철학일 뿐입니다. 석가모니는 우리에게 고통의 문제에 달관하는 방법을 전하여주었습니다. 집착을 버리고 잘못된 말과 행동이 일으키는 업연을 막고 만물을 평등심으로 대하고 자비희사의 삶을 살며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로 나아가는 삶을 살므로 그렇게 될 수있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석가모니가 그 시대 그 지역의 그 어느 다른 사상가보다 지혜로웠고 인간미를 지녔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구원의 길인 예수그리스도께서 강생과 구속사건과 부활을 통해 나타나신 지금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인간이 구원을 얻기위해 궁극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오체투지할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못하던 시대의 잘못은 하나님이 용서하실지라도 성경의 계시와 유대교의 역사와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지금 교만과 무지와 악함 속에서 하나님을 부인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죄는 참으로 크다고 봅니다.               

 

 

P.S

 

" 윤리적 특성은 육체와 정신의 분리가 전제될 때 확고한 뿌리를 갖는다. 정신의 불멸성에 대한 확신은 도덕적 행위를 한자가 그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반드시 받게 된다는 믿음에 확고한 기초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신의 불멸성을 믿을 때 사악한 행위는 모두 벌을 받고 선한 행위도 모두 보상받는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붓다가 정신과 육체의 동일성 논의를 거부한 일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문제들에 대답하지 않음으로 해서 붓다는 불가지론자였다거나 어떤 정립된 형이상학적 개념을 갖고 있지 못했다거나 난해한 존재론적 논의에 정통하지 못했으리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

 

 

- ' 불교와 인도사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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