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연탄보일러를 때는 집에서 살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연탄 아궁이 위에 올려둔 솥에서
뜨거운 물을 퍼내어 세숫물을 만들어 주셨고
밤마다 자다말고 일어나 연탄불을 갈러 나가는 엄마의 수고로움도 보았다.
백장, 이백장 단위로 창고에 가득 쌓아 올려지는 연탄을 보며
전래동화책 한구절, "곡간에 들어찬 쌀"이라는 말이
이런 기분이구나를 실감케 했던 연탄 들이는 날.
어제 쌓아올려진 모양새와 뭔가 달라진,
한두장씩 비는 연탄 때문에
사소한 시시비비와 뒷담화가 어우러지던 동네 아줌마들의 풍경,
하얗게 타버린,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연탄에
오줌을 갈겨대며 키득거리던 남자 아이들,
그러다 밤에 오줌 싼다며 타박하던 어른들..
눈오는 날이면 동네 골목마다 연탄재 찾아다니며
발로 밟아 깨는 재미도 있었고
연탄재를 눈위에 굴려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고
연탄재 누가 더 높이 쌓나 내기하다
골목에 지저분하게 연탄재 깨놓는다며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던..
내가 아주 어릴 때,
갓난 아기였던 남동생의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에 잠에서 깬 엄마가
연탄가스가 퍼지고 있음을 알았다던 이야기.
만약 그때 남동생이 그렇게 울어대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 식구들도 어찌됐을지 모를 거라던 엄마의 말처럼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큰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던 시절..
단돈 130원으로 살 수 있던 연탄의 따스한 온기란
자칫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조금은 서글픈 것이기도 했다.
어려웠던 시절, 집집마다 대문 앞에 쌓아두었던 연탄재들,
바삐 연탄을 나르던 시커먼 재투성이의 연탄가게 아저씨들...
연탄값 10원,20원 오른 것을 두고 한숨 짓던 엄마의 모습..
내가 기억하는 연탄이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열심히 살아보려던 서민들의 모습이 투영되는 그런 것이다.
오늘 아침 뉴스에도 어제와 다를 바 없이,
그제와 다를 바 없이 자살 뉴스가 채워졌다.
사업실패로 자살한 남성,
신변을 비관한 20대 한의사 모두
연탄불을 피우는 방법을 썼단다.
얼마전 강원도 동반자살 사건들 역시도
대부분 연탄불 이었다지.
안재환 사건 때 언론이 그렇게나 상세히 떠들어대지만 않았어도
연탄불 자살이 이렇게나 유행(?)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싶으면서도
이제는 '연탄' 하면 자연스레 '자살'을 떠올리게 된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잠자듯 편하게 죽을 수 있다고 연탄을 썼다지.
편하게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열심이던 서민들을
잠에서 깨지 못하게 했던 서글픈 연탄가스였는데..
땅속 깊은 곳 지하 막장 갱도에서 매몰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폐증의 위협에 늘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연탄 한장 만들기 위해 애쓰던 광부들의 땀방울,
연탄 한장 한장 일일히 손으로 나르며
겨울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희망찬 땀방울,
행여 내 자식들 감기 걸릴라, 연탄 아궁이에 솥을 올려
따뜻한 세숫물을 만들어 주고
밤마다 몇번씩 억지로 눈을 떠 연탄을 갈아주시던
어머니의 수고로움을
잠자듯 편하게 죽는데 썼다는 사람들..
아직도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있고
아직도 연탄 한장에 겨울을 버티는 이웃들이 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아직도 힘들게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광부들의 땀방울을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의 땀방울을
어머니의 수고로움을 조롱이나 하는 듯
연탄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따뜻한 온기를,
서글픈 그 삶의 의지를
너무도 쉽게 악용한 듯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연탄불을 앞에 두고
한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그 작은 연탄에 담긴 많은 추억들, 많은 사람들의 노력,
삶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었더라면
그들이 그렇게 쉽게 세상을 놓을 수 있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할 만큼의 여유와 지혜가 남아있었다면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연탄 = 자살"이 되어버린 요즘의 인식..
연탄에게 너무도 미안한 일이다.
연탄아. 미안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연탄 가지고 장난 치지 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베어 있는지 아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