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교회] 신천지 교회<칼럼>목이 곧은 선민의 최후
[신천지 교회] 신천지 교회<칼럼>목이 곧은 선민의 최후
신앙의 역사는 곧 하나님의 역사다. 이 역사는 얼마나 될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마치 흙과 같은 인생 중에 한 목자(아담)를 택하시고, 생기(生氣)인 생명의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창설하시고, 그 곳에 말씀을 받은 목자를 세우고 만물을 그 손에 붙이셨다. 그러나 사단이 함께하는 목자 곧 뱀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불순종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마귀의 나라로 변질되고 말았다.
창세기에 출현했던 이단 즉, 뱀의 교단은 초림에도 정통이며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던 당시 종교지도자들로 나타났고(마 23:33), 다시 오시는 때인 요한계시록이 열리는 이때에도 진리가 아닌 주석과 사람의 계명으로 만국 즉, 종교세상을 미혹케 해 하나님 대신 귀신과 교제하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이 시대 종교지도자들임을 계시록은 정확히 밝히고 있다.
바로 이들이 뱀의 교단이며 일천년 동안 결박당할 존재(계 20:2~3)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로 보아 분명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빛(요 8:12)’으로 오신 예수님의 3년 공생애를 빼고는 ‘내가 가면 다시 밤이 온다(요 9:4)’는 말씀과 같이 마귀의 나라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종교(宗敎) 즉, 신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는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아 하나님을 가장(마 23:2, 살후 2:4)한 사단의 가르침인 진리가 아닌 비진리였으며, 창세기와 같이 미혹의 역사 곧 마귀의 나라였음을 깨닫게 한다.
이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빼앗긴 하나님나라를 되찾고자 이 시간도 주무시지도 않고 일해 오시니, 이 어찌 회복의 역사요 ‘광복의 역사(光復: 잃어버린 빛을 다시 찾는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얼마 동안 일해 오셨을까.
노아는 아담의 9대손이며,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이다. 그리고 모세는 아브라함의 4대손이다. 이같이 오늘날까지 계수를 따져보니 하나님의 역사는 육천년이란 계산이 나온다.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깊을 대로 깊어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서 잠시 사도바울의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참고해 보자.
사도바울 역시 ‘때’를 언급하며 오래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신앙의 역사가 깊고 내 신앙 연조가 깊었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 그 뜻을 잘 전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나,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그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성도들이 말씀이 없는 것은 목자가 말씀이 없기 때문이며, 목자가 말씀이 없는 것은 신학교에 말씀이 없기 때문이며, 신학교가 말씀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진리를 생각나게 한다.
그 결과 말씀의 갈급함을 견디지 못한 신앙인들은 이 바다 저 바다를 왕래하며 마실 물을 찾으나(암 8:11~12), 이미 종교세상은 먹지 못할 물이 넘치는 마치 바다 같이 세상화 되고 말았음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미 예언해 놓았다.
그리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 ‘누구’ 즉, 마실 물인 영적 해갈을 가져다 줄 목자가 나타나면, 그 물을 나눠 줄 목자를 찾아 나서라는 게 하나님의 법이다.
그러나 양떼를 맡은 목자들은 꼴을 가진 주인이 함께하는 목자에게 양들을 넘기기는커녕 잡아 가두고 죽이는, 시대마다 나타났던 일이 마지막 때인 오늘날도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 그 길을 막는 그들의 무기는 진리 대신 핍박과 저주 그리고 인신공격뿐이다.
스데반은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라는 경고의 외침을 이때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성경말씀이 또 있다.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을 만들고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갔다가 때가 되어 자기 실과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으나 농부들이 오히려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치니, 다른 종들을 많이 보내자 그들에게도 그리하니,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아들은 공경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아들을 알아보고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 시대에 또 다시 응하는 강퍅한 종교적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내가 다시 올 때에 믿음 가진 자를 보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이 왠지 귓전을 맴돈다. 그러나 한편에선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내 말을 전하라’는 간곡한 명령이 있다. 그러나 목이 곧은 자칭 선민들은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일러 주셨다.
끝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하고 싶다. 구약 요나서에는 회개한 백성 즉, 니느웨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신약에선 이방 ‘두로와 시돈’이 아닌 예수께서 권능을 많이 베푼 ‘고라신과 벳세다’가 등장한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이 고라신과 벳세다보다 심판 날에 견디기가 더 쉬우리라는 경고가 있음을 보게 된다. 결국 회개치 않아 화를 자초하는 마지막 때 나타날 선민의 자화상임을 마음깊이 간직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