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진 이는?"
"어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다고... 조금 전에 간다고 갔다."
"그래?! 음.. 그래 우리도 들어가자. 오늘은 나도 좀 피곤하다."
"그래. 오늘 찬 바람에 수고 많았다. 빨리 들어가서 쉬자."
"어.."
동민은 말없이 그냥 가버린 미진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을 위해 이 시간에 커피까지
준비해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몸이 좀 안 좋다 해도 그냥 말없이 갈 미진이 아
니라는 것 정도는 동민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말없이 그냥 가버리고 없었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가 않았다.
'그래 미진이 성격으로는 그럴 수 있어.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성격이니깐...'
동민은 애써 그녀의 성격을 떠올렸다. 언제나 자신만만함과 도도함으로 넘쳐흐르는 그녀의
성격을... 동민은 앞서 가고 있는 동석을 바라보았다.
'그래 동석이도 아직은 모르고 있는데... 그녀가 알았을 리는 없어... 아니 설사 알았다 해도..
얼마 전에 일을 생각한다면 예전과 같은 실수는... 또 다시 저지르지 않을 거야.'
동민은 그런 생각을 하며 미진에 대해 쉽게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자꾸만 스며드
는 안 좋은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찬바람을 맞으며 그날에 촬영을 끝낸 세 사람은 그들만에 보금자리로
들어 가자 바로 쓰러져서들 잠이 들었다.
다음날. K대 캠퍼스...
촬영 준비를 하느라 그런지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신기
한 듯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조금 있으니 촬영 준비가
끝났는지 하나둘 연기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중엔 동민의 모습도 보였다. 대학
생답게 캐주얼 한 차림에 배낭을 메고 있는 그의 모습은 지금의 스타나 연예인이 아닌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을 지라도 여학생이라면 누구나가 그와 미팅 한번 해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니게 하고도 남을 정도의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 인지 촬영을 구경하고 있는 학생
들 중에 남학생들의 모습보다 여대생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였다.
'참.. 여기가 공학인지 여대인지 구별이 안가는 구만... 뭔 여학생들이 이렇게도 많이 모였
데... 이게 다 저 곰탱이 보려고 모여든 여자들이겠지.. 아주 눈들이 반짝반짝 하네...'
주위에 몰려든 여학생들을 보며 승희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 게?"
갑자기 뒤에서 자신의 눈을 가리며 누구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승희는 놀란 나머지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선은 손부터 떼어내려고 했다.
"어허! 내가 누구.. 게?"
'이 사람이 미쳤나?! 벌건 대낮에 그것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누구 망
신 주려고 작정을 했나.'
승희는 손을 떼 내려고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 갈수록 자신의 눈을 가
리고 있는 손에도 같이 힘이 들어갔다.
"어허! 힘으로 하려고 하면 안 되지. 내가 누구..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누군지 모르지만 이손 빨리 풀어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뭐?!... 또 그 어설픈 이단 옆차긴지 뭔지 하는 걸로 돌려 차기라도 할거야?!"
그때쯤 되니 왠지 모르게 그 목소리가 낯설지가 않았다.
"누.. 누구세요?"
"잘났어. 그새 내 목소리도 잊어버렸냐?"
"너.. 너! 차 승우!... 승우 너 맞지?!"
그때서야 얼굴에서 손이 풀어졌다. 승희는 뒤를 돌아 누구인지 확인하려 했다. 힘이 가해져
서 그런지 쉽게 눈에 초점이 맞지가 않았다. 조금 있으니 짧은 머리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야! 너!"
"실망이야 누나.. 그새 동생 목소리도 잊어버리고.. 그리고 오랜만에 보면서 동생한테 한다는
소리가 야 가 뭐고 너 가 뭐냐."
승우는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쓰고는 있었지만 눈빛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야! 인마!"
"헤헤 그 동안 잘 지냈어? 누나?!"
승우는 당연 그의 누나인 승희가 반가움에 포옹이라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반가움은커녕 뜻밖이라는 듯 자신에게 물어왔다.
"누나가 여기에 있다고 해... 잠깐.."
말을 하던 승우는 중간에 말을 끊었다. 누나의 표정이 불안하다는 듯 의심스러운 눈빛이었
기 때문이었다.
"말이 어째 좀 이상하다. 꼭 군에 있어야 할 놈이 여기에 왜 있냐는 식이다."
"내 말이?!"
승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우시 나 진짜 삐졌어... 하나밖에 없는 동생 목소리도 잊어버리고.. 나라 지킨다고 그 먼 타
지에 가서 뺑뺑이 돌다가 이제야 첫 휴가 나오는 건데.. 언제 나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단 말
이잖아. 이.. 나 진짜 삐짐이야."
그때서야 승희의 얼굴이 좀 펴지면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 그랬구나 미안. 오늘 나온 거야?"
"아니 어제."
놀라는 표정으로 다시 바뀌는 승희.
"뭐?! 어제?! 근데 왜 집엔 안 왔어."
"내가 집에 안 간 게 아니고 누나가 날 못 본 거겠지."
그랬다. 승우가 집에 들어온 시간은 승희가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첫 휴가로
오후가 조금 안 되서 서울에 도착한 승우는 그 시간에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
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고 오랜만에 본 친구들은 그를 늦게까지 잡아두었던 것이었
다. 해가 뜰 무렵이 다 되서야 집에 들어온 승우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 해서 그냥 자신에 방
으로 들어가서 잠을 잤고 그 덕에 보고픔과 걱정으로 애를 태웠던 그의 어머니 마저도 생각
지도 못하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방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들을
반겨야 했다.
"그래?! 그랬구나... 근데 휴가 나온 놈이 이 시간에 여기는 웬일이냐?"
"누나 여기에 있다고 친구들이 얘기해 줘서... 누나 일하는 것도 볼 겸. 친구 녀석들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함 와 봤지."
"그래?!... 이 학교에 네 친구들이 많이 있는 줄 몰랐네."
"와 진짜 너무하네.. 누나 내 친누나 맞아? 고새 동생 목소리도 잊어버려.. 또 그 동생이 첫
휴가를 나오는데 그게 언제 인지도 모르고 있고.. 이젠 그것도 모자라서 동생이 다니던 학교
가 어느 학교였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소리까지... 진짜 너무하다."
"네가 다니던 학교?! 아! 맞다 이 학교였구나. 야.. 정말 미안하다. 그 동안 이 누나가 정신이
좀 없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됐어. 나 누나 동생 안 해.. 엄마한테 누나 호적에서 빼라고 할 거야."
정말 삐졌는지 몸까지 옆으로 휙 돌리면서 승우가 말했다.
"야 바쁘게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사내자식이.. 뭐 그런 일 같고 삐지고 난리야...
그리고 호적에서 빼려면 너나 빼 달라고 하지 왜 죄 없는 나를 빼 달라고 하냐?"
잠시 승우에게서 말이 없었다. 그런데...
"누나.."
좀 전과는 다른 투로 승우가 말을 꺼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함이 느껴졌다.
"왜?!"
"누나 코디라고 했지?!"
"어. 왜?!"
"그럼 지금 일하는 중이었어?"
"어. 왜...?!"
"저기 그럼 혹시.. 누나 차 동민의 코디야?"
"어! 어떻게 알았어? 그것도 네 친구들이 얘기해 주데?"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지금 저기에서 한 아저씨하고 그 차 동민이라는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
고 있거든."
"뭐?!"
'이런.. 이 놈아 자슥 때문에 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승우란 놈이 이상한 질문을 해 왔다.
"누나. 이건 느낌상으로 물어보는 건데? 혹시.. 저 차 동민이라는 사람하고 무슨.. 사이야?"
'이 자슥이 누구 염장 지르려고 작정을 했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야!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말고.. 아직도 보고 있냐?"
"아니. 나하고 계속 눈 마주치고 있다가 누나한테 얘기하는 거 보고 좀 전에 돌렸어. 근데
저 차 동민이라는 사람하고.."
승우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중간에 승희가 말을 가로 챘기 때문이었다.
"야! 차 승우. 네 눈에는 네 누나인 내가 잘나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별로거
든?! 특히나 저런 사람들한테는.. 그러니깐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빨리 가! 너 때문에 일
도 잊고 있었잖아."
"그래?!... 그럴 거야. 내 눈에도 별론데.. 저런 사람이 누나 같은 여자를 쳐다볼 리가 없지..
알았어. 나 갈께. 나중에 집에서 봐 누나."
승우는 약간에 비아냥거림으로 말을 하곤 뒤돌아서 걸어갔다.
'저 자슥이 끝까지 염장 지르고 가네.. 너 이따가 죽었어.'
승우의 말에 기분이 상한 승희는 잠시 승우의 뒤통수를 노려보다 몸을 돌렸다. 그런데 또
다시 승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승희는 기분이 상해 있었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고는 그냥 앞
으로 걸어갔다.
"나 바뻐! 나중에 얘기해!"
승우는 씩씩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누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렇게 피식 웃고 몸을
돌리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승우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음... 역시나 뭔가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