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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꽃게찜 중(中)자를 시키면

남경직 |2009.06.02 14:02
조회 1,086 |추천 0

 


 


 

 
 






스무 살이 되면서 떠나온 고향집은 이제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쯤 들르는 정도. 가족들의 생일이면 인터넷 뱅킹으로 선물
값을 송금하고, 명절이면 원고마감을 핑계 대고선 저렴하게
나온 여행상품을 고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가끔 혼자 사는 내 집의 냉장고를 열어 본 친구들은 입을 짝
벌리며 놀라곤 하는데, 바로 냉동고를 가득 채운 동글동글한
비닐팩들 때문이다. 비닐팩에는 포스트잇이 하나씩 붙어 있다.
어떤 것에는 ‘된장찌개’, 또 다른 것에는 ‘오징어볶음’, 어떤 것에
는 ‘전복’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그건 도통 집엘 다니러
 가지 않는 나이든 딸을 위한 엄마의 상차림이다.

평일은 보통 밖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주말이나 되어야 느지막
히 일어나 밥을 해먹는 정도인데, 뚝배기에 물을 담아 가스
불을 켠 뒤 ‘된장찌개’ 팩을 하나 꺼내 물에 퐁당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된장에 멸치 가루, 표고버섯 가루 그리고 데친 냉이와
달래, 또 양파와 감자, 마늘까지 다 넣어 동그랗게 뭉쳐 놓은 것이
바로 엄마의 ‘된장찌개’ 팩. ‘오징어볶음’ 팩도 마찬가지여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팩에 든 빨간 덩어리, 즉 잘게 썬
오징어를 고추장에 재워 각종 채소까지 한번에 뭉쳐 놓은 그것만
넣으면 되는 것. 전복은 버터 한 큰 술만 넣고 지지면 되도록 칼집
넣어 가지런히 썰어 놓았고 조기며 갈치조림도 나는 언제나
냉동실에서 꺼내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고향집엘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꽃게장이다. 그것도 다니러 가기 사나흘 전에는
 반드시 미리 이야길 해 두어야 한다. 이번 주말에 갈 거야.
비행기 예약을 끝내고 그렇게 전화를 넣고 나면 엄마는 그 다음
날 새벽 어시장에 나가 산 꽃게를 한 바구니 사오는 것이다.
끓인 간장을 부어 사나흘쯤은 숙성을 시켜야 제맛이 나므로
행여 예고 없이 집에 가게 되면 오히려 욕을 먹기 일쑤였다.
입술이 얼얼하게 달아오를 만큼 하루 종일 꽃게장을 쭉쭉 빨아
먹는 둘째딸을 도무지 그냥 보낼 수 없는 엄마의 마음 탓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엄마에게 꽃게장을 보냈다. 태안의 토담집은
30년간 꽃게장을 만들어 온 곳이다. 메뉴는 단 두 가지. 태안 봄
꽃게로 만든 꽃게장과 꼬득꼬득 말린 우럭으로 뽀얗게 국물을
낸 우럭젓국이 그것. 알이 꽉 찬 꽃게장은 1인분에 2만 1,000원,
우럭젓국은 9,000원이다. 게딱지에다 뜨거운 밥을 비벼 살짝
구운 김에 싸 먹으니 공깃밥 한 그릇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이 다 그러하듯이 토담집도 택배 주문이
잇따랐다. 나도 포장을 부탁해 엄마에게 보냈다. 1킬로그램이
면 꽃게 네 마리가 들어가는데, 6만 5,000원.
 
 












태안의 꽃게 식당들은 다들 봄 꽃게를 쓴다. 꽃게는 4월부터
10월까지가 산란기이긴 하지만 7월과 8월은 조업을 할 수 없는
 금어기인데다 그 이후에 잡힌 꽃게들은 껍질이 물렁하고 맛이
 덜하단다. 그래서 꽃게 제철은 알이 꽉 찬 무렵인 단연 4월
부터 6월. 그때쯤 되면 태안의 신진도항이나 안흥항, 그리고
채석포까지 꽃게를 사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신진도항과
안흥항에는 수산물 집하장이 있어서 싱싱한 꽃게를 골라 살 수
있다.
 
항구는 작고 아담한 편이지만 꽃게탕이며 꽃게찜을 내놓는 식당
들이 지천이다. 4인 가족이 즐길 만한 꽃게탕은 6만 원 선이다.
하루에 두 번 떠나는 유람선도 탈 수 있으니 날이 포근할 무렵에
 가족들과 함께 떠나면 괜찮은 여행 코스가 될 수 있다. 비싸지
 않은, 깔끔한 펜션도 많다. 성수기에는 매기는 가격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이번 여행, 신진도항 바로 앞, 주방 딸린 열아홉
 평 펜션의 하루 숙박비로 4만 원을 냈다.


태안이 조금 멀다 싶으면 인천 소래포구에 들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주말, 소래포구의 어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갈치와
우럭, 숭어와 간재미, 또 무더기로 쌓아둔 홍합까지. 어느 것
하나 눈이 안 가는 것이 없다. 광어 한 마리가 몸을 뒤척이면
비린 물이 튀고 어시장 바닥은 질척거리지만 찌푸릴 일이 아니다.
고등어 10마리에 5,000원, 대하 쉰 마리에 만 원인 것을. 양동이를
가득 채운 새우젓과 멸치젓 냄새도 나쁘지 않다. 꽃게도 지천이다.
1킬로그램, 네 마리에 만 원이면 소래산 냉동 봄 꽃게를 고를 수 있다.
덤 한 마리씩 끼워 주는 것은 물론이다.

꽃게를 사서 근처 식당으로 가면 꽃게탕을 끓여주기도 하고 꽃게
찜을 해 주기도 한다. 횟집에 들어가 먹는 것보다는 훨씬 값이
싸기 때문에 늘 가족 단위의 손님들로 박작거리기 일쑤다. 소래
포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바로 돗자리 손님들. 어시장에서
떠준 회를 횟장과 함께 들고 와 포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먹는 것
이다. 나 역시 오래 전 어느 봄날엔가, 당시 연애를 하던 애인과
그렇게 돗자리에 앉아 먹은 적이 있었다. 소래는 그때와 별반 달라
진 것이 없었다. 옷자락을 붙잡는 상인 아낙의 목소리도,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는 거친 소음의 오토바이도.
 

나도 사람들 틈을 비집고 꽃게를 샀다. 덤으로 얹어 준 것까지 다섯
마리였다. 꽃게탕을 끓이기 전, 집게발을 조금 바수었어야 하는데.
그걸 까먹어서 요리 도중 손가락을 여러 번 찔렸다. 오랜만에 끓였
더니 영 서툴긴 했다. 남은 네 마리는 비닐팩에 하나씩 담아 냉동실
에 넣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된장찌개’ 팩을 끓일 때에 한 마리씩
넣어도 감칠맛이 그만일 것이다. 꽃게에는 글루타민 산과 글리신,
구아닌산, 알기닌 등의 아미노산 성분이 많은데, 그것들이 꽃게
특유의 향과 맛을 낸다. 꽃게 자체가 하나의 천연 조미료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요리 솜씨가 젬병이라 할지라도 꽃게
한 마디 툭툭 토막 내어 함께 끓이면 대충 먹어 줄 만한 음식이
나오게 마련이다. 나처럼 일 년에 두어 번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재료인 것이다.
 

서울 이화여대 근처의 밀리네 해물탕집에서는 꽃게찜을 독특하게
내어왔다. 보통 꽃게찜이라 하면 물기 없이 찜통에 꽃게를 쪄내서
하얀 속살을 발라먹게 될 터인데, 이 집은 뽀얀 국물이 가득하다.
무얼 잘못시킨 것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소주 손님들이 많잖어. 술 드시는 손님들은 국물이 없으면 허전
하거든. 그래서 이렇게 국물 그득하게 내가면 다들 좋아해.”
그러니까 보드랍고 찰진 꽃게살은 그대로다. 담백하고 깊은 꽃게
국물은 덤인 셈이다. 놀라웠던 점은, 이 집의 종업원들이 거의
대부분 이 집에서만 20 년 넘게 일해 온 베테랑 근속자들이라는
점. 한 집에서 20 년을 넘게 일을 하다니. 그러니 사람이 바뀔
때마다 맛이 변한다던가, 주인이 잠시 식당을 비웠다고 해서
서비스가 달라진다던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늘 한결
같을 뿐이다. 꽃게찜 중(中)자를 시키면 어른 서넛은 충분하다.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배가
부르다고 안 먹겠다 했지만, 아주머니가 밥뚜껑을 긁어 준 누룽
지를 한 술 떠본 순간 그만 변덕쟁이가 되어 버렸다. 결국 한 그릇
더 추가하고야 말았다.












지난 번 목포로 홍어 취재 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목포 전복을 한


상자 사서 집에 보냈더랬다. 하필이면 전복이 도착하는 날, 엄마와


아버지가 집을 비우게 되었다. 별 수 없이 근처에 사는 사돈댁으로


전복을 보내 달라 부탁을 했단다. 산 전복을 며칠 동안 집 밖에 둘 수


는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뜻밖의 선물을 받으신 사돈어른들은


사돈처녀의 마음씀씀이에 감탄을 하셨겠지만 나로서는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엄마가 꽃게장을 하나도 손대지 않았다니! 나는


태안의 꽃게장집에 전화를 걸어 2킬로그램을 더 주문해야 했다.


아끼지 말고 엄마나 먹으라고, 좀! 이번 달에도 원고료는 또 거덜이다.


글·김서령 | 2003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를 펴냈으며, 월간 『현대문학』에 장편소설 『티타티타』를 연재 중이다.

사진·이승무 | 스튜디오 파라포토를 운영하며 광고 및 잡지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리터칭에 관한 책 『색과 빛, 구도를 살리는 포토샵 사진 클리닉』을 공저로 펴냈다.

[출처] 길따라|꽃게찜 중(中)자를 시키면|작성자 mog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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