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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한계

정혜정 |2009.06.09 10:09
조회 114 |추천 0

 

행복하자면 두가지 길이 있다.

욕망을 줄이거나, 소유물을 늘리거나 하면 된다.

어느쪽이라도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

 

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부에도 한계가 있소?"

관중이 답했다.

"물의 한계는 물이 없는 것이고 부의 한계는 사람이 부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고 부를 탐하여 마침내는 몸을 망칩니다. 어쩌면 이것이 부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부의 한계, 한비자-

 

18세기의 자수성가의 대가, 프랭클린씨는 자본주의 사회(그 때 이미 미국은 자본주의의 선두두자였으므로, 아니

미국이라는 나라의 태생 자체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 볼 수 있으므로)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역설하였다.

욕망을 줄이거나 소유물을 늘리거나 하면 된다고.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후자의 방법에 약간의 반감이 든다.

전자의 방법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몸소 실천 중이므로, 뭐. (나? 백조-_-)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행복해질만큼 소유물을 늘리는 게 과연 가능할까?

며칠 전 <해피투게더>에 지석진씨가 나와서 동료 김용만씨가 전자제품을 사기만 하면 바로 새 제품이 출시된다, 고 말해서 좌중을 웃겼다.

전자제품을 샀는데 그 뒷날 새 제품이 출시 되었다고 해서 그게 웃긴 일인가?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럴 수 있다.

끊임없이 주체에게 여러 경로로 무한한 욕망을 일으킨다. 거리에 나서도 tv를 켜도 온통 이거 사라, 저거 사라는 외침 뿐이다.

며칠 전에 42인치  pavv 평면 tv를 샀는데 이제 대세는 아무래도 LED tv라고 한다면 나는 내 평면 tv에 과연 얼마나 만족할 수 있을까?

 

욕망을 줄이거나 소유물을 늘리는 것, 두가지 중에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욕망을 줄이는 것'을 권하겠다.

하지만 답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내 삶도 당신의 삶도 프랭클린씨나 수도승 못지 않은 영적 충만감에 쌓여 살진데, 아마 누구나 그런 영적 충만감에 도달할 수는 없나보다.

  

하여 '욕망을 줄이는 것'의 징검다리로써 '만족'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만족하자.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팔다리, 온전히 키보드를 누빌 수 있는 튼실한 열손가락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성경말씀에도 가난한 자들이야말로 행복하다, 라는 말씀이 있지 않은가.

비어 있는 병 안에 콩 한알이 떨어지는 것과

팔할이 차 있는 병 안에 콩 한알이 떨어지는 것, 을 생각해보자.  

내 안이 채울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소유물을 하나 늘린다고 해서

표나 날까, 과연 행복에 이룰 수 있을까?

 

행복하자고 소유물을 늘리다보면 <한비자>에 나와 있는 말처럼 언젠가는 마음은 물론이고 몸까지 망치게 된다. 그것이 한계다.

행복해지려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영속적으로 불행하게 되고 만다.

 

 

 

*벤자민 프랭크린과 한비

 

벤자민 프랭클린: 1706~1790 벤자민 프랭클린은 1706년 가난한 양초 · 비누 제조업자인 조사이어 프랭클린의 열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그는 열 살 때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해 열두 살때 형의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감으로써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정치가, 인쇄인, 작가, 과학자, 교육자, 계몽사상가로 두각을 나타냄으로써 '자수성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프랭클린 난로, 피뢰침, 이중초점 안경, 시게의 초침을 최초로 발명하고 회원제 도서관 창립, 의용소방대 창립, 방위군 조직, 필라델피아 병원 설립, 펜실베이니아 대학 설립, 미국 철학협히 창립에 각각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주 의원, 식민지 협상 대표로 활약했으며 독립선언문 기초위원으로 토머스 제퍼슨을 도왔다. 이후 독립전쟁에서 프랑스가 미국 편에 서게 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71년부터 쓰기 시작한 그의 자서전은 위대한 인물들의 자서전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가 창안한 열세 가지 덕목은 200 여 년 동안 미국인들에게 수신교봍처럼 읽히고 있다. 84세로 사망한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뤄졌으며 그의 사후에도 '미국의 정신은 프랭클린의 정신'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다.

 

그는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묘비에 단지 '인쇄인 프랭클린'이라는 글자만 남기도록 했다. 그의 묘지는 필라델피아 시내에 있으며 지금도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혹 어떤 사람들은 벤자민 프랭클린을 미국의 대통령으로 알고 있지만 아니다. 그는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한비: 韓非, BC 280?~BC 233 법가(法家)의 사상을 대성한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진의 시황제는 한비의 고분(孤憤), 오두의 논문을 보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하기도 했다. 유저에 《한비자(韓非子)》가 있다.

 

한(韓)의 왕족으로, 젊어서 진(秦)의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에게 배워 뒷날 법가(法家)의 사상을 대성하였다. 이사가 간지(奸智)에 뛰어난 변설가(辯說家)인 반면, 한비는 타고난 말더듬이였으나 두뇌가 매우 명석하여, 학자로서는 이사가 도저히 미칠 바 못 되었다. 진의 시황제는 한비의 고분(孤憤) ·오두(五蠹)의 논문을 보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하였다 한다. 한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누누히 왕에게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끝내 진의 공격을 받자 화평의 사신으로서 진나라로 갔다. 시황제는 한비를 보자 크게 기뻐하여 그를 아주 진에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이사는 내심 이를 못마땅히 여겨 시황에게 참언하여 한비를 옥에 가두게 한 후, 독약을 주어 자살하게 하였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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