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훈 그가 궁금하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오해와 진실을 밝혀 드립니다.
o 추성훈이 일본으로 귀화한 진짜 이유
추성훈이 한국 유도계의 파벌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이미 <KBS 스페셜-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 국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참으로 여러 가지 소문이 난무한다. <두 개의 혼>에서 그는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부터 시작해 한국에 오게 된 과정과 일본으로 귀화하게 된 이유 등에 대하여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겪으며 함께 고민하고 가슴아파했던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유도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던 평범한 재일 교포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간 논쟁이 되었던 귀화 이유와 과정에 대하여 추성훈 선수 스스로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훈련을 하기 위해 선수촌에 입촌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아침 6시부터 2시간 훈련 후 아침 식사.
아침 식사 후 10시부터 2시간 훈련.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3시간 훈련.
저녁 식사 후 7시부터 1시간 훈련 후 하루 훈련 종료.
이토록 빡빡한 훈련일정으로 매일매일을 보내는 것이다. 학교 수업만 없다 뿐이지, 고등학교 시절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고등학교 때보다도 더 많은 훈련을 했다. 게다가 모든 훈련을 군대식으로, 정해진 규칙대로 해야만 했다. 선수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서 훈련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야말로 모든 훈련이 ‘남이 시켜서 하는 훈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러닝, 근육 훈련, 식사, 자유 훈련, 목욕.’
거의 모든 선수의 훈련방식과 생활패턴이 기계적이고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래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다가는 유도가 싫어질 것 같았다. 유도가 싫어서 훈련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훈련 때문에 유도가 싫어지다니.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경우 아닌가.
선수촌에서 생활하며 지내던 2001년 4월. 몽골에서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나는 81킬로그램 체급의 한국 대표로 출전해서 전 시합을 한판으로 이기며 우승했다.
그 직후 나는 결국 선수촌에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올림픽이 아닌 다른 대회에는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할 수 있지만, 한국에 용인대학교 학벌 편중주의가 존재하는 이상 내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할지라도 올림픽에는 나갈 수 없는 현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수촌에서의 생활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비겁한 변명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유도 선수로서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뜻을 굳히고 감독님에게 이야기를 하니 ‘두 번 다시 선수촌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라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것은 스스로 국가대표 자격을 포기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국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는 길은 멀어지고 말았다. (cn본문 119페이지)
o 추성훈은 한국에 돈 벌러 온다?
추성훈은 일본으로 귀화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소문에 휘둘렸다. 일본 국가대표 선발을 위한 결정적인 시합에서 유도복에 기름을 발랐다는 어이없는 소문으로 오해를 받았고, 사쿠라바 선수와의 경기에서의 실수로 악역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긴 슬럼프에 선수 생명조차 장담할 수 없을 즈음에 한국에서 재기전이 펼쳐졌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한국 팬들의 응원이 있었다. 2만명이 넘는 관중이 야유를 보내던 일본과는 달리 한국 팬들의 응원은 큰 힘이 되었다. 이후 한국 기업들로부터 C.F 요청이 들어왔고 <무릎팍 도사> 출연 후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깊은 수렁에 있던 추성훈 선수에게는 살아갈 희망이 생긴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깊은 수렁에 있었는지 그리고 한국 팬들의 응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두개의 혼>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세상 모든 이들이 손가락질을 할 때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해주고 진심을 믿어준 이들이 바로 한국의 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팬들이 있는 한국을 이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옳지 않으며 추성훈이 생각하는 진정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단지 한국 팬들의 요구와 요청에 더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는 추성훈 선수가 일본에서 왜 악역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로인해 본인과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뇌를 엿볼수 있다.
그러나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는 그 후폭풍이 점점 더 확산되어 엉뚱한 루머까지 만들어져 퍼져나갔다. 사쿠라바 선수와 싸울 때 착용했던 글러브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소문에는 ‘글러브가 너무 크다’, ‘글러브 안에 브래스 너클싸움을 할 때 손에 끼는 금속제 흉기을 끼고 있는 것 같다’는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사실인 것처럼 점점 확산되어 갔다. 만약 너클을 끼고 상대방을 공격했다면, 상대방의 안면은 주먹 한 방에 함몰됐을 것이다. 나는 그 시합에서 사쿠라바 선수에게 100대 이상의 펀치를 날렸다. 만약 그 루머들이 사실이라면 살인자로 매도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추성훈 에세이 <두 개의 혼>본문 34페이지)
그러나 사쿠라바 전의 후폭풍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 확산되어 갔다. 이미 촬영을 마친 헤어제품의 CM 방송도 모두 취소되었다. 이 CM은 한 개그맨이 출연하여 화제가 된 것으로, 그 후속 시리즈로 격투기 선수들을 모델로 선발했는데 나도 거기에 뽑혀 촬영을 했었다.
제조사, 광고대행사, CM 제작진들에게는 아무리 사과를 해도 모자랄 것이다. TV 광고방송은 취소되었지만 판매점 등에 붙이는 포스터는 그대로 배포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점에 들어가 포스터를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CM에 등장하는 격투기 선수 전원이 찍혀 있는 포스터에서 내 얼굴만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다른 상점도 돌아봤지만 모두 똑같은 상태였다.
‘이 사진을 부모님이 보게 되면 어쩌지?’
아무리 잊으려 해도,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정신은 극도로 피폐해져 갔고 불안과 공포, 죄책감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과 정신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자승자박, 내가 저지른 그날의 실수가 몸 구석구석을 옭아매고 인생을 망치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시간,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추성훈 에세이 <두 개의 혼>본문 37페이지)
o 추성훈은 약한 상대만 골라 싸웠다?
유도선수에서 격투기로 전향하며 그는 초보자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유도를 알리기 위해 시작했지만 유도의 기술로만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정글과 같은 무대였다. 네 번의 경기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이종격투기라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치밀한 마케팅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이종격투기 단체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리며 원하지 않는 경기도 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자서전 <두 개의 혼>에서 추성훈은 결코 약한 상대를 골라 싸우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K-1 주최측에 요구했던 대전 상대 그리고 K-1측이 제시한 상대와 거절 이유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결국 추성훈은 강한 상대와 정정당당히 실력만으로 대결하기 위해 UFC 진출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교섭 테이블에서 대전 희망 카드를 내놓았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연말의 큰 이벤트였기 때문에 오락성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바다 하리 선수와의 종합격투기 경기,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패배한 제롬 르 벤너 선수와의 시합을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다 하리 선수는 헤비급이라곤 해도 100킬로그램을 넘지 않았다. 나와 종합격투기로 대전한다면 흥미로운 시합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타격 기술이 톱클래스인 선수와 맞붙어 보면, 내 기술이 어디까지 통하는지도 시험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때는 바다 하리 선수가 이틀 후 ‘K-1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레미 본야스키 선수와의 경기 중 실격패를 당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벤너 선수와의 시합은 복수전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이 카드라면 12월 31일에 어울리는 이벤트였고, 팬들의 흥미를 끌기에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이러저러한 내 계산과는 반대로, 우리는 깨끗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설명해 왔듯이 나와 주최자의 견해는 너무나 달랐다. 결국 의견을 조율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내 의견을 전달했고, 그쪽의 입장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는 이번 연말 시합은 사양하겠습니다.”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중계 방송사인 TBS에 경위를 설명해 주어야겠다고 말했더니, FEG 관계자가 “됐습니다. 저희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FEG가 나의 결장을 발표하면서 “왜 출전하지 않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앞으로는 일절 교섭할 생각이 없다”고 매스컴에 발표했다. 나는 출전을 전제로 교섭을 해왔는데, 나를 악당으로 바라보는 팬들은 ‘역시, 그렇군! 그럴 줄 알았어’라며 보여지는 사실만을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TV 방송국이나 스포츠 잡지사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이에 대해 반론을 펼칠 수 없었다. 어떤 선수든 계약 이야기는 늘상 하는 것 중 하나인데, 굳이 내 이야기만 이렇게 알려지게 되는 걸까? 만약 내가 어딘가에서 반론을 제기한다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의견만을 내세우게 될 것이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눌러 담고 침묵하기로 했다. 그 편이 훨씬 더 추성훈다운 길이라고 생각했다. (추성훈 에세이 <두 개의 혼>본문 277페이지)
o 추성훈은 왜 연예 활동을 많이 하는가?
추성훈 선수는 자신이 프로라고 말한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이들이 유도와 격투기를 알아주기를 원하고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프로로서 자신의 본업에도 충실하고 또 팬들과 다양하게 만나려고 힘쓴다. 프로라면 보여지는 데 인색하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팬의 존재일 것이다. 나 역시 팬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고 깊게 마음 쓰기 시작한 것은 프로가 되고 난 이후부터다. 아마추어 때는 사실, 나만 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기는 것 말고 다른 것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나는 프로라면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팬들의 관심과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TV, 잡지, 광고 등에 노출되는 기회를 얻는다면 이를 통해 지명도가 높아지고 응원하는 사람들 또한 늘어날 것이다. 이런 응원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에게도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격투기 선수가 경박하게 가수나 모델을 하다니!”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수나 모델에게 무례한 말이 될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다양한 연예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모든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진지하게 임한다.
프로란 무릇, 본업을 잘 소화하는 동시에 팬들의 요구가 있을 때는 언제든 거기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CF에 출연하는 것은 프로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도 되고 효과도 만점이다. (추성훈 에세이 <두 개의 혼>본문 197페이지)
o 추성훈은 치밀한 마케팅 전략가이다?
추성훈은 치밀한 마케팅 전략가여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치밀하게 이용한다는 소문이 많다. 그러나 <두 개의 혼>에는 바보처럼 유도에만 온 열정을 쏟아온 추성훈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우연한 기회에 친분을 맺게 된 한 지인에게 프로 격투기 선수로 전향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게 된다. 매니지먼트회사가 필요하다는 제안에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우연한 기회에 통장 확인을 하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믿었던 후배들의 대전료까지 모두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억엔에 가까운 돈을 사기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여러 가지 C.F 촬영을 하며 한국에서의 매니지먼트를 부탁했던 지인에게도 사기를 당했다.
치밀한 마케팅 전략가이기보다는 운동만 아는 순수한 운동선수에 불과했다. 믿었던 두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게 된 추성훈은 가뜩이나 자신에게 드리워진 ‘악역’의 이미지에 금전적 문제까지 불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냥 조용히 시간이 지나 진심이 통하기만을 기다렸다고 이야기한다.
2004년, 프로격투기 선수로의 전향을 결심한 나는 지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오사카에 한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문제의 ‘그 사람’과 알게 된 것은 내가 헤이세이관재 사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인 8년 전 어느 모임이 주최한 파티 자리에서였다.
그 날의 인연을 계기로 마음이 잘 맞았던 우리는 만남을 이어갔다. 한마디로 그 당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형제가 없었던 내게 그는 마치 친형 같았고, 인생의 어려운 길목에서는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멘토 같았다.
형과 동생이자 둘도 없는 친구로 인연을 쌓은 지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프로로 전향한다고 했을 때 “회사를 만드는 게 좋을 것 같구나”라는 그의 조언은 다른 누구의 말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나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고 회사를 설립했다. 내가 대표, 그가 부대표로. 회사를 세울 때의 우리는 사업상 파트너라기보다 한 가족이 같은 목표를 위해 뜻을 모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세무사와 회계사를 소개해 주었고, 회사의 운영 체계도 설명해 주었다.
이를테면, ‘금고지기’ 같은 존재였다.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졌던 나는 안심하고 모든 걸 맡겼다.
그는 자신의 보수마저 사양하고 내 일을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 미사키 선수와의 시합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때문에 평상시처럼 훈련할 수가 없었고, 그만큼 여유의 시간이 많아졌다.
사실 대전료는 사전에 지불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시합이 끝나고 한 달쯤 후에 입금된다. 미사키 전은 대전료로서는 최고 금액으로 계약한 시합이었다.
‘그래, 그 돈이 들어오면 부모님이 사실 집을 사드리자! 계약금으로는 충분할 거야!’
이렇게 생각한 나는 2008년 봄에 계좌의 정확한 금액을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상당히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눈치챈 나는 거래하는 은행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통장의 금액을 확인한 나는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다. 현실이 아닌 꿈속의 일처럼 느껴져 정신이 혼미했다.
잔액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입금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미사키 전의 대전료까지 모두 빠져나가고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이러든 저러든 결국은 집안싸움이잖아!”라고 말한다면,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매스컴에서 어러쿵저러쿵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 왔다.
사실 마음속에는 사쿠라바 전, 미사키 전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했을 터다. 거기에 사적인 문제까지 가세한다면 완전히 트러블 메이커, 골칫덩어리 선수라는 낙인이 찍힐 판이었다. 프로 선수로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자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니까 말이다. 유도계를 떠나 격투기로 뛰어든 지 4년.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싸워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왔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만 느껴졌다. 동료에 대한 배신감, 세상에 대한 두려움만 남았다고.
그러나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근육은 아직 탄탄하고, 곁에는 응원해 주는 팬들도 있다.
격투기 기술을 좀더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그래, 다시 한 걸음 내디뎌 보자.
후회하고 있어봐야 인생은 정체될 뿐이다. 되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을 무렵, 한국에서 뜻밖의 제안이 밀려왔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성공 뒤에 또다른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본문 251페이지)
위 내용은 추성훈 < 두개의 혼 > 책을 참조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추성훈의 팬으로써, 이 책을 읽어보니 추성훈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진정성을 느꼈고, 그의 삶을 본 받고 싶을 정도로 그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