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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신교 신학 부재 최악

교독기 |2006.09.09 17:42
조회 168 |추천 0

 

 

한토마 게시판 펌...(한계레신문)

 

***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 

등급   토끼풀 셋   필명/아이디  산돌 / sandol40   
 
  조회수  198   추천수  4   
 
 
나는 먼저 내가 기독교인임을 밝힌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신학의 부재라고 본다.

 

한국 개신교회는 교회의 가장 근본이 될 신학이 없다.

 

왜 신학이 없다는 소리를 내게서 듣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자.

 


1. 한국 개신교는 정통기독교 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통 신학은 종교개혁 이후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신학의 한 갈레이다.

 

이 정통신학은 신의 계시가 성서를 통해서 가장 완벽하게 전해지지만

 

자연을 통한 계시도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회는 자연계시를 철저하게 부정한다.

 

그러면서 자연계시보다 더 미신적인 성령의 역사로 통한 개

 

인에 대한 계시는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

 

정통 기독교 신학은 신의 무감정성을 주장한다.

 

즉, 절대적이고 전능한 신은 인간의 약점이고 저급한 능력인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사랑의 감정을 포함한 모든 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정통신학은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회는 하나님이 사랑 뿐만 아니라 노여움을 타기도 하고

 

급기야는 아부와 아첨과 물질적 뇌물까지 즐기는 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래서 교회는 황금만능주의의 최대 생산지이자 소비자로 변해왔다.

 

 

정통신학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영향이 어거스틴에까지 다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거스틴에 의하면 악이란 선의 부재라고 한다.

 

즉, 선이 결여된 것이 악이지 악이라는 것이 현실적이고

 

실체적인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악의 존재는 물론이고 사탄의 존재까지 실체로서 인정한다.

 

 

그래서 사탄이 실제로 어떤 악한 일을 도모하고 인간을 그 악한 일에 끌여들이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참으로 어이가 기가차서 웃지도 못할 노릇이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이러한 정통 개신교 신학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불신지옥을 외친다.

 

지옥은 이 세상에 이미 있는데, 이 세상에 있는 지옥에서 자신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한 생각은 안 하고 황당한 죽음 이후의

 

지옥에 대해서만 온갖 묘사를 덧붙여서 협박하듯 강조한다.

 


2. 한국의 개신교는 근본주의 신학도 없다.

 

 

근본주의 신학이라 함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오로지(거의 오로지)

 

미국에서 그것도 19세기에만 성행한 한 신학의 조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미국의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와

 

선교를 하는 바람에 한국 교회는 일단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다.

 

19세기에도 미국 신학의 주류는 자유주의였다.

 

근본주의는 남부와 사회적 하층 및 비교적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던 신학이었고 주류신학은 자유주의였다.

 

지금 부시가 저렇게 문제투성이인 것도 그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전임인 레이건과 함께 근본주의 신학에 물들어 있어서 그렇다.

 

근본주의 신학은 성서의 축자적 영감설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성서의 한 글자도 있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개신교회는

 

성서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진리이고 한 자도 고칠 수 없는 완벽한

 

진리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그 속에 있는 말씀을 너무나도 쉽게 무시해 버린다. 그

 

래서 말만 근본주의자이고 실제로는 자유주의자보다 더 자유주의자이다.

 

신앙은 근본주의로, 그러나 삶은 자유주의자로 살자!

 

이것이 우리나라 개신교인들의 모토이다.

 

 얼마나 편한가? 근본주의 신학을 가지고 신앙을 가지면 참으로 마음이 편하다.

 

죽어서 천국갈 것이고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서 잘 먹고 잘 살 것이니

 

 마음이 편할 밖에.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끊어도 되니

 

세상을 위해서 고민하고 염려하는

 

일은 안 해도 되니 꿩먹고 알먹기이지.

 

그리고 삶은 또 자유주의자로 살면 근본주의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생활과 청빈, 희생, 자기절제, 근면, 이런 것들과 담을 쌓고 살아도 되니 또 편리하지.

 

그래서 근본주의 신학을 신봉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반쪽짜리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인다.

 

 아니 진짜 중요한 근본주의의 핵심인

 

 청빈, 희생, 봉사, 근면, 성실 이런 것들을 내챙개쳤으니

 

4분의 1쪽짜리 근본주의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개신교회는 근본주의 신학도 없다.

 

근본주의 신학은 또 순복음교회식의 성령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크건 작건 순복음식의

 

오순절 교회적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즉, 그나마 4분의 일쪽 남은 신학에 또 절반은 오순절 복음주의로

 

 오염시켜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어떻게 근본주의 신학이라도 가지고 있다고 하겠는가?!

 


3. 한국의 개신교회는 해방신학도 없다.

 

해방신학은 크게는 민중의 해방을 구원의 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신학을 지칭하며 좁게는 남미의 해방신학을 말한다.

 

그래서 큰 의미에서 해방신학은 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아프리카 신학, 아시아 신학 등 모든 억눌린 자들의 외침을 담은 신학을 통괄한다.

 

한국 개신교회에 이런 신학이 있는가? 있다고 대답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한국 교회는 진정으로 업압받는 자들에 대한 함께 아파하는 모습,

 

함께 그 아픔을 이겨나가려는 연대의 모습, 진정으로 십자가를 지는

 

 예수를 따르려는 이런 모습이 없다.

 

그들에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예수는 편안히,

 

공짜로 천당가는 통로를 제공하는 편리한 십자가일 뿐,

 

내가 그 십자가에 동참해야 한다는 참된 신앙의 모습은 없다.

 

기독교에는 권력을 장악한 전통 기독교 외에도 2천년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힘 없는 자, 고통 받는 자, 억압받는 자, 수탈 당하는 자들을 위하고

 

그들의 편이 되며 그들 자신들의 종교인

 

해방적 전통에 선 신학을 가진 기독교가 존재해 왔다.

 

그들은 권력의 뒤안길에서 권력자들에 의해서 불에 태워지고,

 

물에 수장당하고, 사지가 찢겨지면서 죽음을 맞이해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웠던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어처구니 없게도 이런 전통에 선

 

민중신학이 싹도 튀우기 전에 밟아 죽여버렸다.

 

심지어 여성신학도 한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전체 기독교인의 60% 이상이 여성인데 그 여성들의 입장을 전하는

 

신학조차 설 자리가 없는,

 

마초적 쇼비니스트적 교회가 바로 한국의 기독교인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평화통일을 반대하고, 미국에 읍조리며,

 

삼일절에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휘날리고, 개천절날 월드컵 경기장이나

 

 잠실 경기장에서 미국 만세를 외칠 때마다 개신교의 수명은 급속히 단축될 것이다.

 

교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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