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주말입니다.
추석 준비는 잘 하고 계신지.
시골에 내려가시는 분들
모쪼록 안전운전하시고
몸 건강히 돌아오시길 바라겠습니다.
========================== 전 방콕입니다 ============================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녀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난 알지 못했다.
하지만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한 심장은
본능적으로 다음 행동을 알려주고 있었다.
악마1 - Okay 신호잖아! 돌격 앞으로!!
악마2
- 야만스럽긴! 이럴 땐 천천히
상황을 음미하면서 분위기를 달구는 거야!
악마3
- 자~ 일단 천천히 손을 놓아 봅니다.
그래도 그녀가 그대로 있다면
그것은 Okay 신호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손을 빼려 한다면
바로 다시 잡으세요.
그럴 땐 유감스럽지만 강행돌파를 시도해야 합니다.
간만에 검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타난 악마 세 마리.
대체 내 마음 속에 있는 갈등이란 건
어느 악마를 따를 까 밖에 없는 걸까?
일단 난 그녀의 한쪽 손목을 놓아준 뒤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언제고 그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날 밀어낼 수 있도록...
기억 - .........
서로의 콧숨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갔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내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오케이라고 봐도 되는 거지?
그렇게 확신한 난
조금 고개를 돌려 각도를 맞춘 뒤
남은 3cm를 접근해갔다.
2cm.... 1cm... 0.5cm....
피부 겉에 있는 작은 각질들이 스치는 느낌이
짜릿하게 뇌리를 스치는 순간,
동시에 내 손 밑에 깔려있던 그녀의 손목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 안 돼!!!! =
그 때 쨍하고 귓가를 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이 목소리는.... 민아?
그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난
황급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고요하기만한 방안.
들려오는 건 거실 한 쪽에 놓인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뿐이었다.
이런 내 행동에 놀랐는지 눈을 뜨고 날 올려다보는 한나.
기억 - 하아... 하아....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가누고 있는 날 보던 그녀는
착잡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놓인 술잔을 들어 한 모금을 머금었다.
한나 - 너무하네요....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기억 - 하악.....! 하악....! 하악....!!
몹시도 기분이 상한 듯한 그녀의 말에
난 어떻게든 변명할 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숨을 쉬는 일이 더 급했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분명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뭔가 이상하다....
아파...!
폐가.... 너무 아파!
기억 - 꺽....... 한....꺽... 한나....꺽... 한나....꺽....
한나 - 오, 오빠?
기억 - 허헉? 꺽, 헉, 어억.... 꺽....
민아야.... 민아야.... 민아야.....!!
몽롱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민아의 모습이 눈앞에 잡힐 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처음 키스신청을 했을 때
당황해서 날 밀어내던 그녀의 모습,
무대 위에서 나를 돌아보던 그녀의 모습,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눈물 흘리던 모습....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수많은 모습들이
이중 삼중 겹쳐놓은 슬라이드 필름처럼
눈앞을 스쳤다.
기억 - 미안....허헉...꺽.... 미안해.....끄윽..윽... 미안......!!
한나 - 오빠!! 오빠 정신 차려요! 보..봉투! 종이봉투가....!!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액체가
턱 밑에 방울져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난 지금 누구한테 사과하고 있는 걸까?
민아에게?
아니면 한나에게?
.....혹시 둘 다인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그런 의문들을 뒤로 한 채,
내 의식은 끊어져버렸다.
= 기억아, 기억아. 일어나, 기억아.
언제 잠들었는지는 몰라도
난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드는 감각에 몽롱한 눈을 떴다.
부옇게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을 비벼 봐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시야.
하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난 나를 깨운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 ....... 누나?
= 무슨 낮잠을 그렇게 깊이 자니?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다.
= ....... 어디에요 여긴?
= 어머, 얘 좀 봐? 아직 정신없구나?
그제야 조금씩 선명해지는 그녀의 모습.
석양에 붉은 광택을 내는 단발머리가
바닷바람에 찰랑거리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얼굴은 분명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반가운 마음보다 앞선 건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직감적인 판단이었다.
그녀가 내 앞에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떠났다.
내가 결코 그녀를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다신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 이거 꿈이죠?
= 얘가 점점.... 이거 보여? 몇 개야?
= 장난치지 말고요! 이거 꿈이잖아요!
= ....... 그래, 꿈이다. 그럼 이제 어쩔 건데?
..... 맞는 말이다. 꿈이면 뭘 어쩔 건가?
뺨이라도 꼬집어 볼 건가?
= 아무튼... 뜬금없다니까.
그렇게 이야기 하며 내 앞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어버리는 그녀.
그 촉감이 너무 생생하고 그립게 느껴진 난
어느새 꿈이라는 것도 잊은 채
그녀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 누나.....!!
정말로 보고 싶었다.
그녀의 꿈을 꾸고 싶어서
베갯속에 그녀의 사진을 넣고 잠들었던 게 몇 밤이었던가,
그녀가 보고 싶다는 기도로 하얗게 새운 게 몇 밤이었던가...
그 꿈이 이제 이루어지다니...
= 요즘도 싸움만 하고 다니니?
= 아녜요. 안 그래요.
= 그럼 어떻게 지내는 데?
이 장면, 참 많이 생각했었다. 민아가 내게
=그 사람이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야?=
라고 물었던 그 때부터, 수도 없이 상상해봤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리라 다짐했었다.
= ......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 어쩜, 나랑 결혼할 거라면서?
= 미, 미안해요, 그렇지만....
= 에이, 그래. 다 먼저 떠난 내 잘못이지.... 어떤 아이야?
= 작고, 귀엽고, 토끼 같은 눈을 가졌어요.
늘 생기 넘치고, 밝고, 해맑은....
잠깐, 내가 왜 지금 민아 이야기를 하고 있지?
그녀랑은 이미 헤어졌는데....
= 해맑고, 또?
= 아, 아니에요. 잘못 말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지금 좋아하는 사람은 한나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곁을 지켜준,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니까....
= 제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 어렵게 생각하지 마.
자기감정에 솔직하기로 약속했잖아?
내 눈을 봐, 기억아.
= ........!
그녀의 손길을 따라 고개를 들었을 때 난 깨달았다.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번져 보이고 있다는 걸.
그건 결코 석양의 역광이나 시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또렷하게 떠올리려 해도,
그녀의 얼굴이 정확하게 기억나질 않았다.
지워져버렸다.
내 기억 속에 있던 그녀의 모습이....
= 미안해요..... 누나.....
= 아유, 왜 또 갑자기 울고 그래?
= 누나 얼굴이 생각나질 않아요....
= .......
= 누나가 있던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버렸어요.
그 사람 얼굴 밖에 떠오르질 않아요.
= 다행이구나.... 누구니? 기억이의 날개를 되찾아준 사람은....
= 민아가.... 민아가 보고 싶어요.....!!
내가 다시 웃을 수 있게 해준 사람.
내가 다시 눈물 흘리게 해준 사람.
내가 다시 꿈 꿀 수 있게 해준 사람.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사람.
내게 처음으로 전율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사람.
내게 처음으로 입맞춰준 사람.
내게 처음으로 아이들이 귀엽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
나의 공주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만의 공주님....
= 공주님이....... 보고 싶어요!!!
소중했던 그녀와의 추억들.
이젠 깨진 유리조각처럼 아픈 기억이 되어버린 지난 일들이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놓을 수가 없었다.
단 한 조각도, 아무리 날카로운 조각이라도 버릴 수가 없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됐다고 끊임없이 되뇌면서도,
한구석에선 주섬주섬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춰보고 있었다.
시아노아크릴레이트로 붙이면 되지 않을까,
에폭시로 붙이면 되지 않을까....
조각들을 집을 때마다 상처만 늘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끊임없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진 아픔에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엎드려있는 나를
누군가 뒤에서 따듯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 ..... 나도 보고 싶었어, 기억아.
이 목소리는.....?
= 민아야!!
흠칫!!!!!
꿈속이라도 얼마나 놀랬는지,
경련하듯 몸을 떨며 잠에서 깨어나 버린 나.
하지만 아무래도 기억 일부가 뭉텅 잘려나간 듯
난 내가 방금 전까지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 뿐만 아니라
난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지금이 몇 시쯤인지 등등
내가 처해있는 상황 일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일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생면부지의 큼직한 토끼인형.
기억 - 뭐, 뭐야 이건....
코앞에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토끼인형의 눈빛에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낀 난
서둘러 인형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제야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파악이 된 나.
여긴... 민아의 집 거실이구나.
한나 - 일어났어요?
그 때 소파 위에서 들려오는 한나의 목소리.
놀란 가슴을 달래며 올려다본 그곳엔 눈물 맺힌 눈으로
TV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