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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나라에 가다 1

하니 |2006.10.03 12:22
조회 331 |추천 0

파란 나라에 가다



  

                                                                

  나는 실직하지 않는다. 



*


  ―이상해. 붙을 거라고 호언장담한데는 떨어지고 떨어질 것 같은데는 붙는단 말이야.

  그것은 딜레마였다.

  타인에게 선택받는다는 것은 선택받는 자는 쉽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어렵다.

  이런 고민은 자살까지 생각했던 고3수험생 시절에도 겪어 본 적이 있다.

  나는 추가합격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전전하는 중에 삼류대에는 떨어지고 이류대에는 운 좋게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첫 번째 절묘한 전략이며 예기치 않은 행운이었다.

  다수의 인원들과 경쟁할 때는 이변이나 틈새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지는 개개인의 재량에 달려 있었다.

  모든 회사에서는 분명 유능한 재원을 원할 것이다.

  유능하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

  학벌이며 밉지 않는 외모, 기왕이면 성격 서글서글하고 조직에 잘 융화되고 귀여운 신참이 아니겠는가.

  ―백 번 공부하면 뭐하니. 면접에서 떨어지면 그만인데. 사람 좋은 척을 해야 해. 잊지 마. 회사에선 사장을 뽑는 게 아니라 수습을 뽑는 다구. 난사람보다도 된사람을 원해. 최고보다는 최선. 너 같으면 뺀질뺀질한 애랑 일하고 싶겠니. 

  선배는 마치 혼자만의 노하우인양 떠들어댔다.

  대기업의 최종면접 전형에서 세 번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이러한 처세를 알게 된 모양이었다.

  면접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보여 줘야할 것은 인간성이다.

  사회는 보수적이고 그 사회에 잘 적응할 착한 신입사원을 원한다.

  중소기업 간부의 외동아들인 선배는 성실했으며 내 주변에서 가장 유망한 취업후보였다.

  그의 앞날은 그의 투지와 함께 장밋빛 인생 같아보였다.

  나와는 속을 터놓을 정도로 친밀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도 얼마 전까지는 도서관의 자리 맡기에 바쁜 고시생 신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늘 입고 다니던 트레이닝복을 벗고 말쑥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밝은 갈색머리도 검게 염색하고 구레나룻을 잘라냈다.

  그가 정장을 입고 있는 날은 면접을 본 날이다.

  나도 취업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아니, 누구보다도 취직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나다.

  하지만 나는 원서를 집어넣은 것과 결과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탕한 선배는 자신이 어느 회사에 원서를 썼으며 시험과정은 어땠는지를 아끼지 않고 이야기해주었다.

  친구들은 그를 신뢰했지만 그의 일은 의외로 잘 풀리지 않았다.

  그가 선망하는 국내 대기업인 U회사에 떨어진 것은 아마도 자신이 면접 때 벌였던 지나친 자만심 같다고 했다.

  그리고 U회사에서 경영하는 체인점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했다.

  7급 공무원 면접에서 미끄러진 동기 녀석도 같은 말을 했다.

  ―똑똑한 척은 말이야. 그저 사장한테나 하면 돼.

  내가 국가고시로 따낸 자격증은 운전면허증 뿐이었다.

  나는 딱히 자격증 시험이나 고시공부를 하지 않았다.

  특별히 부전공이나 복수 전공조차 하지 않고 성적은 무난했다.

  나는 대학교 교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 중의 하나이다.

  졸업을 앞둔 나는 다음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그럴싸한 이력서 양식을 다운 받고 있었다.

  대학원 진학도 고려해보았지만 역시 취직하는 편이 내 스스로에게 훨씬 더 큰 포만감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는 에이포 용지의 반절을 넘기지 못하고 막히고 말았다.

  나는 대입 때 썼던 자기소개서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학창 시절의 이야기, 나만의 특별한 경력. 겸손하게 시작해서 경력은 살짝 부풀린다.

  힘들긴 했어도 동아리 활동이나 학보사의 수습기자로 있었던 것은 여백을 글씨로 채워주게 만들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여자 야구선수였다.

  그 무렵에는 나는 운동신경이 좋아 동네 남자아이들을 주름잡고 다녔다.

  중학생일 때 어머니는 내게 여자 직업으로는 약사나 초등학교 선생님만한 게 없다고 하셨고 고등학교 내 꿈은 육군 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나는 스무 살이 되었고 졸업을 앞두고는 전공에 맞는 회사를 찾아 다녔다.

  그 무렵 나는 들떠 있었고 가끔 세 살 터울의 언니는 나를 핀잔했다.

  ―얘. 직장 들어가면 뭐 좋은 거 있는 줄 아니. 그저 학생 때가 가장 좋은 거야. 결혼이든 직장이든 매일 수밖에 없는 거니까. 입사 그날부터, 부케 던지는 그 날부터 내 인생은 없어지는 거야.

  취업불황이라고 하지만 막상 취업정보를 뒤져보면 취업 자리는 넘쳐 났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많지만 세상은 분명 정보의 바다였다.

  다들 자신이 들어갈 곳은 결국 한 자리인데 그 한자리를 찾지 못해 아비규환이었다. 

  입사지원 자체는 간단명료하다.

  요즈음 인터넷으로 접수를 많이 받기 때문에 클릭 몇 번으로도 입사지원이 가능하다.

  영어 시험을 안 보고 필기시험이 쉬운 곳은 경력자를 요했다.

  나는 현재 모집 중인 웬만한 회사마다 거의 서류를 집어넣었다.

  내가 적임자라도 생각되지 않는 경우에도 무람없이 접수했다.

  회사마다 반드시 적임자를 뽑는 것은 아니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직장을 옮겨 다닐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기소개서도 죄다 같은 것으로 문장 몇 개만 고친 것뿐이었다.

  회사마다 자기소개서를 다르게 쓸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가끔 똑같은 자기소개서를 일괄적으로 접수시켰다가 비난을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나마 입사는 대입처럼 전형료가 없는 게 참 다행이었다.

  졸업생의 취업은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이런 문어발식 접수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문어발식 원서 접수는 세상의 많은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방법임에 자명하다.

  다들 스스로의 운명을 점쟁이처럼 찍어내지 못했고 칼자루는 회사 측이 쥐고 있는 거니까.

  어쨌든 사람들은 연봉이 높고 노후가 보장되며 휴가와 보험이 잘 구비된 회사를 좋아한다.

  나의 진로는 순풍이었다.

  결과 발표 일까지 나는 몹시 초조했지만 그것은 조금만 견디면 되는 일이었다.

  사회 경험은 없지만 갓 졸업한 대학생은 환대를 받았다.

  회사에서는 너무 나이를 먹은 사람도 너무 어린 사람도 선호하지 않는다.

  눈치 빠르고 유들 맞으며 빠른 시간에 일을 터득해 밥값을 할 만한 신참을 필요로 한다.

  물론 나도 불합격의 쓴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 없고 연봉도 형편없는 회사에서는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한 반면 가장 유망하고 연봉이 높은 회사에는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도 다른 이들과 같은 딜레마를 가지고 있었으나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오래 입어 겨드랑이 땀이 밴 셔츠를 벗었다.

  나는 아직 순결한 속옷을 입고 있었다.      

  내 취업은 취업전쟁 시대에 무색할 만큼 빠르게 이루어진 셈이다.

  해외연수조차 다녀오지 않아 내 경력 란은 빈칸이었다.

  다른 취업준비생에 비하면 나는 좀 사소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지나간 나의 노력을 너무 헤깝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겪었던 고통은 추억하지 않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나는 나의 취업을 숨겼고 조용히 살아가려고 했다.

  가끔 자격증이 많고 내리 장학생이었던 친구들은 나를 보며 더 큰 딜레마에 빠졌다.

  불합격의 매너리즘 속에서 꿈을 잃거나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는 그 기분이 나를 버린 남자가 나보다 못한 여자와 사귀었을 때 내가 느꼈던 비참함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합격 노하우를 떠벌리고 다닐 생각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내 인생의 조커를 거머쥔 셈이다. 화투에서 고도리나 오광을 획득한 셈이다.

  ―축하한다.

  가장 먼저 소식을 알린 이는 태준이었다.

  막 제대를 한 태준은 까까머리였다.

  나는 태준을 내 인생에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 그를 친구로도 애인으로도 가족으로도 삼지 않았다.

  그래서 태준과의 인연은 뽑지 않은 새치처럼 희고 굵게 이어졌다.

  태준에게 내 소식은 소문이 아닌 내 입으로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

  자랑을 떠벌리느라 맡겨놓은 고양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인은 내장에 묻힌 헤어볼 때문이었다.

  털을 쉴 세 없이 핥던 고양이는 몸속으로 털이 들어가 그것이 공처럼 뭉쳐버린 것이다.

  사람도 이것에 걸리면 야위면서 죽어간다.

  새로 갈아입은 셔츠에는 향긋한 땀내가 났다.

  입사를 두 번째로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내 꿈이 육사진학일 때만해도 살쩍이 허예졌던 아버지가 이제는 백발이 되었다.

  아버지는 입학식 때처럼 새 구두를 사주었다.

  공무원 25년 재직 내내 단 한 번의 승진도 거부한 아버지.

  대학 입학식 때 사준 그 카키색 구두는 아직도 신발장을 지키고 있다.

  나는 새 구두보다도 그 카키색 구두를 신고 첫 출근을 할 셈이었다.

  아버지는 알고 계실까.

  아버지가 구두를 사주고 나서 내 발은 성장을 멈추었다는 것을.

  신발은 너무 낡았고 너무 편해져버렸다.

  이 신발을 신으면 나는 사라졌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곤 했다.

  그렇다.

  황사가 일던 봄날.

  나는 그때 졸업을 앞둔 스무 세 살의 사회초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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