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는 'ㅐ'와 'ㅔ' 발음 구분에 문제를 가지고 살아 오게 되었습니다. 사람 이름을 말해 놓고 (예를 들어 '재민'이라는 이름을 말해 준 후) '아이'냐 '어이'냐 하고 확인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표음문자의 창제 논리를 본다면, 문자는 존재하고 있는 발음의 표기를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분명히 모음 'ㅐ'와 'ㅔ'의 구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구분은 우리의 부모님대까지는 잘 지켜져 왔던 것 같습니다. (서울, 경기 지방에 국한합니다. 다른 지방은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 토박이나 경기도 어르신들은 확실하게 'ㅐ'와 'ㅔ'를 구분하십니다. 'ㅔ'는 우리가 쉽게 낼 수 있는 발음이고, 'ㅐ'는 영어의 apple이나 cat의 'ae'발음과 비슷하게 입을 좀 더 크게 벌리고 '아에'를 빨리 강하게 내는 발음입니다. 방송국 아나운서들도 표준어 교육을 받기 때문에 이 발음을 확실히 구분지어서 합니다. 방송 들으실 때 유의하여 들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예로 단모음 'ㅚ'와 'ㅟ'가 현재는 거의 이중모음으로 발음되는 현상을 들 수 있습니다. 단모음은 발음시 처음과 끝의 입모양이 변하지 않는 것이고, 이중모음은 중간에 입모양이 바뀌는 것입니다. 지금 한번 '외' '웨' '왜'를 발음해보신다면 대부분 스스로가 결국은 '웨'를 세번 발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원래 'ㅚ'는 입모양은 둥글게 하고 혀의 위치는 'ㅔ'로 하여 발음하는 것으로 독일어의 'oe' (o Umlaut)와 흡사하게 들립니다. 오늘 당장 아홉시 뉴스에서 '북한 외무성'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아나운서가 어떻게 발음하는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실제 생활에서 흔히 발음하는 'ㅚ'는 사실은 'ㅞ'입니다. 'ㅞ'는 입모양이 'ㅜ'로 시작했다가 'ㅔ'로 끝나는 이중모음입니다. 우리가 '외교'라고 발음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웨교'라고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또 한가지 특기할 사실은 요새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ㅖ'나 'ㅒ' 발음도 상당부분 'ㅔ'로 발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 자음이 오지 않는 '옛날'이나 '얘기' 등의 경우에는 덜하지만 자음이 오게 되는 경우 또는 두번째 글자에 오는 경우, 즉 '혜택'이나 '경계' 등의 경우 거의 대부분 '헤텍'이나 '경게'로 발음하고 있지 않습니까?
위의 예들을 가만히 살펴 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원래 철자대로의 발음을 고수하려면 좀 더 힘을 들여서 입을 크게 벌린다거나 오무린다거나 하는 노력이 수반되며, 이러한 수고를 덜기 위하여 편하게 발음하다 보면 'ㅔ'와 같은 쉬운 발음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목 깊은 곳과 입 전체를 활용하여 발음하던 표준발성법에서 입끝으로만 우물우물 움직이게 되는 요새 발성법으로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좋다 나쁘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언어는 사회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바람직하다고만은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좀 힘들더라도 입과 목을 많이 움직여서 다양한 발음을 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요새 추세는 우리가 혀 짧다고 흉보는 일본사람들 말하는 것과 점점 비슷하게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사람들 보고 우리나라 '애', '에', '얘', '예' 발음하라고 하면 전부 '에'라고 합니다. (원래 일본 철자법에 '야' '요' '유'는 있어도 '예'는 없습니다. 굳이 하라고 하면 '이에'라고 밖에 못합니다) 그리고 '외', '웨', '왜' 발음하라고 하면 '에'라고 하거나 '우에'라고 밖에 못합니다.
위에서 쓴 바와 같이 표음문자의 기본 임무인 '존재하고 있는 발음의 표기'의 측면에서 본다면 언젠가는 'ㅐ'와 'ㅔ'의 구분이 없어지게 되고 'ㅐ'라는 모음은 사라져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세계 어느나라의 언어에서도 100% 순수 표음문자 체계를 고집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영어는 이미 발음과 철자법의 대응 원칙이 붕괴된 지 오래인 대표적인 표음문자입니다) 'ㅚ'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나 아직 표준어 발음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나라에서 판단하니까 계속 정확한 사용을 장려하고 올바른 발성법을 보급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금만 더 국어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