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는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로서로 빛을 내는 조명들과 신나게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보자, 직접 경험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은 즐겁고 좋은 것 같았다. 이번에는 바이킹 타겠다면서 줄을 서고 있는 채현과 눈이 마주치자, 현주는 손을 높이 들어 보였다.
"이거 좀 마셔요."
민이 현주 옆으로 앉으며 캔 하나를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현주는 민으로부터 받은 음료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전혀, 못 타요.. 놀이기구?"
현주는 민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모두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갈걸 그랬네."
민이 바이킹 쪽으로 시선을 바꾸며 말했다.
"전, 보는 것도 타는 것 못지 않게 좋은데요..?" 현주가 살며시 웃어 보였다.
현주와 민은 그 뒤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보고 있는 시선의 끝이 채현과 민혁이 타고 있는 바이킹을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그 둘이 소리지르거나 놀라는 표정을 볼 때면 현주와 정민의 달라지는 얼굴 표정의 변화가 비슷하게 지어졌다.
"야 - 너무 오랜만에 타서 그런가..예전하고는 기분이 다르네, 영."
"타기 전에 나더러 겁먹지 말라고 하더니만, 출발하자마자 손잡이 꽉 쥐고 소리 꽥꽥 지른 사람이 누구지? 하긴 달랐겠네, 기분은.... 큰 소리 치고 탔다가 큰소리친 만큼 무서워서 고래고래 소리질렀으니."
채현이 민혁을 뒤 따라 오면서 민혁의 말에 응수했다.
"한 마디를 안 져요, 한 마디를."
"넘어가세요, 오빠."
채현의 귀엽고도 애교스러운 표정과 억양에 민혁이 못 당하겠다며 웃었다.
"그나저나, 민이하고 현주 때문에 이거 엄청 미안하네. 꼭 우리 경호하러 온 사람들 같잖아."
"아니야. 타는 사람들 보는 것도 꽤 재밌었어."
정민은 민혁에게 말하고 나서 현주를 보며 웃었다.
현주는 민의 말에 조금 늦게 생각이 난 듯, 뒤늦게 말의 뜻을 알아차리곤 웃었다.
"채현아, 우리 꽤 많이 탄 거지?"
"그럼, 현주한테 미안할 만큼 탔지." 민혁의 말에 채현은 현주를 보고 말했다.
"이제 그럼 나가서 저녁 먹자. 배고프네.. 타는 것도 열량 소비가 많은가 보다. 지치네."
"오빠가 사는 거지?" 채현이 민혁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저녁은 아까 학교에서 말했듯이 내가 살게요." 민이 말했다.
"아뇨, 아뇨. 민이오빠가 사면 안돼죠. 재밌게 즐기면서 신났던 민혁오빠가
사야죠, 안 그래 오빠?"
"나만 신났었니? 넌?"
"음... 난 디저트로 차를 살게, 됐지?" 채현이 환하게 웃었다.
"민이야, 넌 다음에 사라. 날이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니깐."
민혁이 정민의 등을 토닥였다.
"자, 자. 이번엔 현주가 가장 먹고 싶어하는 걸로 메뉴를 정하자, 어때?"
민혁이 현주에게 물었다.
"그래, 현주야. 너 뭐가 가장 먹고 싶어?" 채현이 현주의 팔을 흔들었다.
"아냐, 왜 내가 정해. 난 아무거나 잘 먹잖아. 채현이랑 오빠들이 정하세요."
현주는 당황한 기색으로 채현과 민혁, 정민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그럼, 내가 제안 해볼게."
"현주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의 요리로써, 나도 지금 꽤 먹고 싶은 게 있거든?"
채현이 현주를 의미 있게 보며 다시 말했다.
"닭 샐러드하고 오리엔탈 소스의 치킨 파스타."
"현주가 닭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구나."
민혁은 정민과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가 현주를 향해 말했다.
"역시, 눈치는 빠르셔." 채현도 현주를 향해 보며 말했다.
"그럼, 그거 먹으러 가자, 민이도 괜찮지?"
"어."
결정되어지자, 채현은 현주를 향해 씨 - 익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테이블 사이로 마주 앉은 현주와 정민에겐 어색함 속에 맴도는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현주의 굳어버린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민도 자연스레 표정이 점차 굳어버렸다.
레스토랑에 도착해서 각자의 주문을 막 끝냈을 때, 채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민혁은 전화를 받자 마자, 표정이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채현을 보고 놀라, 전화를 채현의 손에서 뺏어서 바꿔 받았고, 그리고...난 후, 민혁은...
민에게 채현이한테 급한 사정이 생겨 가봐야 해서 그러니... 저녁식사는 현주와
마치고 오라 부탁하며 얼음장처럼 하얗게 변한 얼굴의 채현을 데리고 나갔다.
남아 있는 정민은 앞 뒤 사정을 모르고 있으니, 민혁이 부탁한데로 현주와 남게 되었지만, 현주는 사정이 달랐다.
채현이에게 급박하게 생긴 일이란 무얼까 하는 수많은 추측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현주의 뇌리에서 돌고 돌았다. 혹시라도 무현오빠의 일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불안한 현주는 여기 이렇게 남아 있는 게 더 불편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민혁이가 부탁했지만, 맘이 불편하면 그냥 나가도 돼요."
현주는 민의 말에 그 제야 정민과 함께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현주 자신이야 걱정되는 일들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라지만, 암 것도 모르는 정민이 자기 때문에 불편해하고 신경 쓰고 있음을 깨닫자, 현주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해요, 오빠.. 채현이가 그러고 나간 게 맘에 걸려서 그랬어요."
정민은 현주가 말하는 모습을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주문한 그 많은 음식 어떻게 다 먹죠?" 현주가 애써 웃었다.
정민은 현주의 그 미소가 슬프게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식으로 나간 친구가 걱정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오히려 불편하면 나가자고 한 자신의 말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심난해 하고 있는 현주에게 자기까지 거들며 신경 쓰이게 한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오빠랑 저, 엄청 폭식하겠어요." 현주는 아무 말 없는 정민을 보고 다시
한번 말을 건네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음.. s.o.s 해야겠는데... 어때요?"
맞추어 웃어주는 것이 채현을 걱정하고 있는 현주의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정민도 맘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누구, 같이 음식 먹을 사람 있으세요? "
"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곧 음식들 나올텐데."
"그럼, 잠깐만 전화 좀 하고 올게요." 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현주는 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간 정민을 보다가 또 다시 얼굴에 그늘이 졌다.
"오빠, 집에는... 엄마한테 만이라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채현은 울먹였다.
"울지마.. 우선은, 도착해서 형을 보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자. 그리고 어머님 지금 집에 계시는 것도 아니라면서.. 공연히 밖에 계신 분에게 오히려.. 암튼, 일단은 형을 보고 어떻게 할지 생각하자구.."
민혁은 일부러 채현을 보지 않고 말했다.
어떤 여자에게로부터 채현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둘은 용인으로 가고 있었다. 무현형에게 일이 생겼다면서 와달라는 말에 다른 확인 없이 용인으로 가고 있는 민혁은 무현이 어떤 상태인지 보다는 지금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채현의 걱정이 앞섰다. 도무지 왜 용인까지 가서 이런 연락을 주는지 형이라고는 하지만 민혁은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으로 늘 식구들에게 아니, 채현에게 걱정거리만 안겨주는
무현에게 몹시 화가 나고 있었다.
민혁의 차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