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들 살콩~~~
평소 시간이 잇을 때마다 어김없이 톡을 읽곤하는 톡 광팬 입니다.
이 글은 제가 5시간을 부지런히 워드쳐서 어려번의 탈고를 거쳐 나름대로는 스크롤의 압박을 줄여드리고자 노력했을음 서두로 말씀드리고 싶네요~ ^^
- 주의 : 장시간 컴퓨터 모니터를 보시면 안돼시는분,
항상 긴 내용의 톡을 걸러 보시는분,
항상 소설이라 우기시는 분,
긴글 봤다하면 주무시는분들.. 제 글이 당신을 강퇴합니다~ㅋ
전 부모님 얼굴 모릅니다. 어렸을적 부모님께서 양육권을 포기하시며 저를 고아원에 보내셨죠. 보통사람들 부모없이 자란사람에 대한 생각은... 내 맞습니다. 모두다는 아니지만 말로만 듣던 고아에 대한 편견을 몸소 체험하니 알것만 같더라고요.ㅜ
생각하시는것만큼 고아가 남보다도 어떤일에 있어 자신감 떨어진다거나 사회나 부모에대해 불필요한 증오를 하진 않습니다. 적어도 저와 같이 살던 친구들은요. 어느 누가봐도 심성만큼은 부모로부터 사랑받은 일반아이들과 다를것 없어보이거나 그 이상으로 밝고 활달하며 낙천적입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고아원에서 12년 넘게 사는 동안 일반 또래아이들과 똑같이 초.중.고등학교 잘 다녔습니다. 특히 고등학교는 졸업과 동시에 홀로서기를 해야하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공고를 다녀야했습니다.
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기술 한개라도 더 배우려 항상 열심히 수업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취미이자 특별활동으로 악기하나를 하였습니다. 제학시절의 애기를 이렇게 끝내기는 아쉬워서 조금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알만한사람들에 한해서 많이들 알고 많이 알려졌습니다. 제가 직접적을 말을 안꺼내지만 글을 읽어보신분들중에 짐작가시는 학교가 있을겁니다. 제가 12년 이상을 몸담던 고아원은 규모가 매우 큽니다. 일반인들 생각하시는것 그 몇십배 이상입니다. 한국에서 이만한 보육시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공고), 병원, 수영장,잔디 축구장 등등...)을 가진 고아원은 이곳밖에 없을거라 전 생각하고요. 거기다 수업외 서클활동도 규모가 꽤 크게 운영됩니다. 전 그중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고 수석을 통해서 악장도 역임했었고요 ㅎㅎ ^^&
초등.중학교 시절애기는 시간상 생략하겠습니다. 영재소리 간혹 듣던 시절이었죠. 평소 제 친구들이 저를 보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알수없는 자신감"이라고..ㅋㅋ 이게 제 별명이기도 했엇습니다. 학창시절에는...^^ 항상 제생각에 모든걸 맞춰나가는 사고방식과 제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밀고나가는 독불장군같은 제 스타일 때문이죠. 살면서 친구를 사겨도 이 성격때문이고 친구를 잃어도 이 성격때문이죠. 물론 저 또한 옳고그름을 알기에 제가 틀렸다고 판단되거나 그렇게 가르침 받으면 그 쎈 자존심 구부리고 인정합니다.
제가 악기를 많이는 안했지만(6년) 나름대로 열심히 또 흥미가 있었기에 항상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악기를 만지곤하였죠. 학교내에서 그런 특별활동에 대해서는 많이 도와주시고요. 덕분에 각종 콩클이나 대회에 나갈때도 성적에 관계없이 수상을 몇번 한적도 있고요. 그때까지만해도 주위에서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음대한번가봐라 했고 저또한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 제가 어릴적부터 품고 있던 꿈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은 남 부럽지않게 제대로 된 교육받으면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친구들은 하나둘씩 현장실습삼아 조기취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또한 갈림길에 섰죠. 대학진학이냐 아님 기술로 밥벌어 먹고사나. 흔히 주위서는 제가 이생각만을 했다고 생각하시지만 그건 주위사람들만의 착각이었습니다.
학교가 보육시설이라 대학을 진학하지않으면 더이상 그 보육시설에서의 생활은 할수없습니다. 저 또한 다큰 어른이 돼어서 그런거 하나 이해 못하는거 아니고 그래서 전 그 갈림길에서 당당히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가졌죠. 대학진학을 목표로하면 4년 전액 장학으로 절 받아줄 음대 2곳이 있었습니다... 네, 어느 누구도 쉽게 결정을 못할겁니다. 어느 대학이라고는 말 못드리나 음대치고는 그래도 인지도가 있는곳이라서.. 그러나 저는 그때 당시 저의 행동에 후회를 않습니다. 전 교장선생님께..
" 전 공부를 하고싶습니다. 음대아닌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싶습니다."
" 어느공부"
" 의대여..."
" --;......."
그때 저는 느꼇습니다. 역시 안돼는구나. 이해합니다. 보육시설에서 어느 한 학생의 꿈때문에 그 학생에게 남과 차별된 대우를 해줄수없다는것을... 그래서 저는 제가 있던 보육시설을 원망하지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까지 크도록 입혀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공부시켜준것에대해 나중에 반드시 갚아야한다고..
그뒤로 몇일뒤 저또한 저의 예비대학생 친구들을 보육시설에 남긴채 산업현장에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습니다. 전 항상 공부에 갈망했습니다. 하루12시간의 노동속에서도 취침전 영어책 한페이지 더 보려고 바둥거렸습니다.
학교애기를 잠시하자면... 아무래도 공고다 보니 선생님들께서는 기술위주의 수업을하십니다. 영어나 수학, 과학.. 물론 열심히 가르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도 계셨습니다. 물론 선생님을 탓하기전에 저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부터 특별활동으로 시간이 많이 뺏겼고 한가지 기술이라도 더 배우려고 기술적인 교육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과목에서 정말 맥을 못 췄구요..ㅠㅜ 지금 후회해봤자 소용없으니 그냥 그런 내모습이 있었구나하고 넘깁니다.
그래도 그와중에 열심히 해서 제가 가질수있는 기술도 많았습니다.
범용 선반과 밀링, CNC 선반과밀링, 자동제어 시스템(PLC), 전자회로 관련 업무, 컴퓨터쪽으로는 엑셀과 비쥬얼 베이직, 씨언어와 포토샾과 CAD,CAM 그리고 컴퓨터 조립, 정보검색, 약간의 네트워크 구축등등.. 지금은 이중 3/4 밖에 못하지만 그당시 그 기술들은 제가 가진 어마어마한 재산이였죠. 올림피아드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대회까지는 제가 나간적이 없고해서..) 전국단위라던가 지역단위로 여러 공계열 과련 대회가 있으면 크고작은 상도 받아오곤 하였습니다.^^ 현장학습시절의 에피소드 하나 애기하겠습니다.
제가 현장실습으로 한 산업체에 갔는데 거기서 열심히 일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제 능력껏 발휘하였고 주위분들 반응이 대단하였습니다. 전기반장님께서 하실 일을 제가 하고, 자동제어와 라인보수팀이 할일 제가하고 즉시 필요한 소가공물도 범용기계에 공구를 물려 곧장 가공해 사용하고, 복잡한 컨트롤박스도 반장님 바쁘시면 제가 다봐주고... 암튼 전 일이 많고 힘들지만 잼있었습니다. 어느날은 회사 기숙사서 잠을 자고있었는데 한밤중 야간팀중 한사람이 올라와서 도움을 청하더군요. 라인에 이상이 있어서 물량을 못뽑는다고... 급한일인데 볼줄아는사람이 없다고.. 전 눈을 부시시 뜨며 5분거리의 공장으로 뛰거갔죠. 저또한 생소한 기계를 단지 도면 하나가지고는 어려웠죠. 한시간을 컨트롤 박스,그리고 라인에 설치된 각종 센서와 씨름좀 하다가 고장난 센서 하나를 찾아내어서 결국 라인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했죠. 일을 마치니 야간 작업 반장님께서 오셔서 넘넘 고맙다는 말을 해주더군요~ 제가 정말 힘겹게 일을하여 들은 따스한 그 말 한마디. 진심된 그 한마디. 받아본 사람은 알겁니다~^^ 물론 몸은 피곤해서 담날 일에 조금 지장은 있겠지만 회사에 조금이나마 제 앎이 보탬이 되고 그거에대한약소한 인정이라도 받았다는데에 저는 참으로 기뻣습니다~. 물론 전공자 입장에서 제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말하건 다 애들 장난으로 보이시겠지만 전 어디까지나 고등학교 실업계 과정에서 배운것만을 가지고 일했음을 한번더 생각해주셔야 할겁니다. 저와같이 일하시는 반장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학교 선배를 많이 받아봤지만 저와같이 살아있는 눈을 본적이 없다면서.. 듣기 싫은 말은 아니였죠~ㅋ^^ 그외에 라인축소로인한 인건비 절감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어서 대 성공을 거뒀지만 저에게는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것과 주위 시기속에서 살았다는 등등의 여러 애기들은 생략하겠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기위해서 회사를 나왔습니다.(현장실습장에 졸업전까지 안 있으면 졸업을 못해서..ㅠㅜ) 회사를 나올때 무엇때문에 그러냐고, 돈때문이냐? 그럼 되도록 빨리 진급시켜준답니다, 공부? 그럼 회사서 시켜준다고. 근데 어쩔수없었죠. 회사서는 공계열에 관한 공부아니면 안되니까 말안해도 알죠. 저의 결심은 공장장님께서 오셔도 못 이기셨죠.
암튼 이 에피소드는 제 자랑좀 하고싶어서~^^ 죄송..ㅡㅜ
드디어 홀로서기가 시작됐죠. 제나이 19살. 가진돈 얼마 없었죠. 당장 100만원으로 어케 삽니까? 조그만한 자취방을얻었죠. 생활비정도만 벌면서 공부하는걸로 초기 계획을 잡았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2년동안일겁니다. 알바하면서 공부하는 생활...
전 6차 교육과정을 받았었고 거기다 기본과목의 내용자체가 제 머리속에는 없었기에 정말 일반 고등학교1학년같은 맘으로 공부에 임했습니다. 학교다닐때 읽던책중에보면 집안사정이 어려워서 알바하면서 공부해서 나중에 좋은직업을 가진사람들이야기가 흔치않게 있더라고요. 괜한 오기인지 모르지만 저또한 쉽게 그것을 흡수할수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사회는 잔혹하더군요. 먼저.. 고아에 대한 편견...
항상 알바를 구할때보면 이력서만 기본이 10장이상이 사용되고..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 호주에 본인을 넣고 초본에 호주가 제 자신의 이름이 올라오면 어느정도 사람을 고용해보신분.. 고아라는거 압니다. 그래서 생전처음 알바구할때 정말 어렵게 구했습니다. 근데 XX텔레콤 아웃바운더라고. 나름대로 전화기에 열나도록 하라는대로 떠들지만. 너무나도 저한테 익숙치 못해서 한달도 못하고 그만뒀습니다.
두번째 구한알바가 XX커피라고..흠.. 그때를 생각하니 어린나이에 참 잼께 알바했단 생각이 나네요. 저한테 그런 업종이 딱 몸에 맞는것 같았고.. 여기에 대한 에피소드도 한다면..
그런거 있잖아요? 직원들 멋진 포즈사진 게시하고 아래에 여백있고 옆에 스티커 잔뜩있고 친절한 직원 추천하기~^^ 참고로 그 커피숖에서 제가 가장 막내였답니다. 전 항상 웃는걸 좋와하고(제가 정말 낙천적이죠~) 말도 시원스리 잘하고 그러는데 가끔오시는 손님들조차 저를 대할땐 단골손님처럼 대하곤하죠. 그래서 한달동안 그 게시판을 걸어놨는데 이틀정도를 남겨두기 까지는 제가 앞도적으로 일등자리를 차지했는데.. 불과 이틀사이에 역전이 되버렸더라고요.. 허걱. 전 제가 그사이 뭔가 실수했나 싶었지만 그런것도 없는데. 일등상품이 영화표 10장인데..ㅠㅜ 앉자서 당할 제가 아니기에 뒷조사를 시작했죠.. 일하는시간도 10명의 직원중에 중간인데다가 저처럼 환한 미소(?)를 짓는 주위 누나 형들도 없었는데...ㅡㅡ 여자 매니저 누나한테 제가 살짝 따지니까 하는소리가..
" 너 원래 여기 들어오면 안됐어. 너받은거 우리가 위에서 뭔소리 참 많이 들었다!"
" 네?"
" 너가 낸 이력서랑 등본 너것 맞지?"
...
순간 전 매니저 누나의 머리속 생각과 그간 나 몰래 커피숖 직원끼리 뒷애기를 한거에 대해 너무 맘이 아프더라구오.ㅠㅜ
전 암말 못했지요. 네. 별거아닌 그 스티커... 저몰래 밤늦게 일하는 직원들끼리 짜고나서 내것을 뜯어내서 다른직원의 빈칸에 채워준것이죠. 근데도 별로 효과가 없자 며칠 앞두고 갑자기 판을 엎어버린거죠. 한달하루남겨두고 무효가 됐습니다. 저 원래 그거에 연연 안하고있었는데. 걍 손님께서 그거보면서 한번더 웃어주고 수고하시라고 말 듣는 그 기쁨때문에 즐거웠는데.. 이런데서 내 출생신분때문에 굴욕을 당해야하나..ㅠㅜ . 일본사람, 중국사람 캐나디안 등등. 외국사람오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안돼는 영어 써가면서 웃음을 주며 오더 받아내서 음료 드릴때 " 해버 나이스 데이~^^" 하면서 외국사람들한테까지 꿀리지않는 서비스 마인드로 일했던 나인데..
암튼.. 그때 또다시 상처 크게 받았어요.. 그게 불과 수능을 앞둔지 한달정도였죠.. 몇일뒤 시험을 한다하고 그만뒀지만 참 많이 아쉬움이 남던 알바였습니다. 에피소드 끝~
입시공부는 제게 산소와도 같은 존재였죠. 그렇다고 제가 항상 책만 붙잡는거 아니였답니다. 공부를 학교가있는 지역으로 내려와서 했기때문에 가끔씩 대학다니는 제 친구들과 식사도 하고 혼자서 산책도 하고 그러죠. 술은 잘 안마시고 여자친구도 안만들고. 아니 못만드는거겠죠!? ㅠ...
학원 수강료 벌려면 일을 더해야하고 일을 더하면 공부할시간 줄어들어서 공부도 안돼고 그럴까봐 그런거 있잖아요? 학원 청소등등 하면서 몇과목씩 수강 하는거.. 그것좀 했죠. 아무튼.. 졸업하고 처음친 수능은 보기좋게 참패했습니다. 2등급이 나온 과목이 단 한과목도 없었고 평균 3.5등급..ㅠㅜ 물론 첫해에는 기본에 충실하기만 했기에. 그렇게 큰 쇼크는 안받았습니다. 비전이 있기에, 그리고 하면 될꺼라는 알수없는 자신감으로 무장이 돼있었기에.. 그리고 다시 생활을 재정비하기 시작했을찰라, 어린나이에 세상을 또한번 얕잡아 보게 할수없던 사건을 격게 돼었습니다.
제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한번 신뢰한 사람을 끝까지 신뢰하는 편이라.. 친구중에 제 명의로 폰 한대만 개통하자한 친구가 있었는데. 전 돈이 별로 없고 해서 용돈도 받을꼄 그렇게 해줬는데.. 그 친구가 다단계에서 일을 하게 돼더라고요.
전 몰랐죠. 폰을 개통한게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 때였으니... 거의 일년을 제 명의로 사용한것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잘 내더니 언제서 부턴가 밀리기 시작했고 나중에 다른친구의 연락으로 알게 돼었죠.ㅠㅜ 전 제 명의로 된 폰에 연체가 80만원이란 소리듣고 돈 액수때문에보다 그 친구를 믿었던데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당장 윗지방으로 올라가 수소문끝에 그 다단계 아지트를 찾아내서 내 친구를 꼬신 놈들 몰래 몰래 한놈씩 손좀 봐주고 내 친구는 다른 친구들이 잘 일하는 공장에 보냈죠. 그러나 그 나약한 제 친구가 그당시 무슨 돈이 있겠어요? ㅠㅡ 전 암말 안하고 신불자가 돼기전까지 제가 해결하려했죠. 이젠 하루 5시간정도하는 알바가지고는 살수가 없었죠. 제가 자존심이 쎄서 그 어떤 친구들한테도 돈한번 빌려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알바를 구했죠.
추운12월 겨울. 이미 여름쯤에 커피숖 알바를 하기위해 차비 아낄겸 그 근처의 고시원으로 이동해서 살고있었죠. 고시원의 난방은 형편 없었지만 전기장판 하나로 그 추운겨울을 지낸게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고시원 건물이 큰데다 주위 학원이 많아서 고시원에 지내시는 분들도 죄다 공부하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공부하는 분위기를 탈수있겠다 싶었죠. 밥걱정없는 고시원인게 매리트 있지만 역시 그만큼의 가치를 가져가는게 당연한 경제상이기에... 월 30만원의 적지않은 돈을 고시원에내면서 책값과 연체금등등..제 나름대로의 계산된 금액을 벌기위해서는 하루 8시간의 일은 불가피 했습니다.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이력서를 뿌려대고 그래서 얻은 알바가 주유원 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었죠. 주유소의 사장님과 사모님, 일하시는 아저씨들은 제 생각과 달리 모두들 따뜻하신 분이시더군요. 제가 식대아끼려고 고시원서 밥 싸가지고 오신다니까 그럴 필요없다고 식대는 따로 매일주고 아저씨들 식사때 같이 먹고, 설 이라해서 돈도 적지않게 주시고.. 집없고 고아라는걸 말안해도 아시기에 참 어렵게 산다고 동정해 주시지만 그렇게 해서 받은 동정이 저에게는 부모님한테서 받는 온정에 가까웠죠.
이렇게 저의 홀로서기 첫1년이 지나 갔습니다. 전 제 나름대로 계산을 하며 살았습니다. 나와 같은또래 애들이 군대에서 2년정도 시간을 보내니 난 그시간에 공부해서 2년만에 대학가면 같이 수준을 맞춰갈수 있을꺼라고... 물론 어떻게 보면 당연한거지만 어떻게 보면 단단히 오해한것일수도 있죠. 제가 올해 한해를 망치게한 주요 생각이기도합니다.
누군가에게서 이렇게 들은 애기가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보면 1년째보다 2년째가 낫고 그 2년째가 가장 성적을 올리기 적절한 시기라고 ... 3년째 되면 장수생은 불가피 하다고.. 저또한 그럴것 같아서 2년째 돼는 해에 완존 뿌리를 뽑고자 마음을 잡았습니다. 주유소 알바를 하면서 쉬는날이 한달에 한번정도... 한달 가져가는 금액이 약 90만원선이였습니다. 몇달더 일하면서 공부하다가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위에서 말한거처럼 제 나름대로의 공부 계획이 있기에 그거에 맞추려다보니 폰 연체금을 갚기도 전에 알바를 그만두어야 했죠ㅠㅜ. 결과적으로는 제 판단이 틀린것 같았습니다.ㅠㅜ 3월이 시작하면서 열심히 또 공부했죠.. 그러나.. 금전적인 압박.. 정말 무시 못하겠더라고요.. 한달 고시원비에 휴대폰은 기본요금에 책값만 5만원 들고..
솔직히 제가 짬짬히 몇푼 더 벌려고 한 일도 있었는데... 오브리라고 해서 음악하시는 분들은 아시는데 음악하시는 분들의 알바라고 해야할까나? 암튼.. 결혼식 반주해주고, 오떤 오케스트라 연주회때 가서 사람수 맞춰주고, 라이브 카페서 조금씩 음악 들려주고 하면서 돈버는게 있는데. 제가 첫해는 악기가 좋와 지역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서 활동을 잠시 했는데.. 사람들 대다수가 저의 살아온 과정 모르고 절 어느 부자집 외아들처럼 생각하더군요. 제가 쫌 차려입고 악기하면 조금 평소와 달라보이고 아주쪼금 인물좀 돼서리.. 제가 악기에서 손은 놓왔지만 돈을 벌기위한수단으로는 계속 사용했었습니다. 근데 1년은 괜찮지만 2년째 접어들면서 서서히 무리가 오더군요. 실력말이죠. 연습을 안하면 악기의 소리가 죽죠? 더이상 일반 초보자의 소리로 그런자리에 서기가 싫어 그만두었어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수입의 일부가 없어진거구요.
생할하다보니 하루 3끼만 먹고살수없고 또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위해 컴퓨터도 사고 스탠드( 처음 1년동안의 이런거 전혀 없이 오로지 책으로만 공부했죠..ㅠㅜ)등등.. 하물면 전자사전은 제가 조금만 노력해서 사전과 씨름하면 될 문제이기에 사지를 않았는데도 생활이 금전적으로 너무 빠듯햇죠. 그래서 결국에 다시 알바를하게돼었고 그게 모고등학교 급식실 알바였죠. 시간은 5시간이지고 시급이 쎗기에 어쩔수없이 했죠. 특히 이때는 저와 같이 공부하는 형의 등본과 이력서를 빌려서 알바를 했죠. 아무탈 없이... 근데 공부만 하다가 갑자기 그 무거운 배식통과 식판, 음식자재등등 짧은시간에 수시때때로 나르다보니.. 그때까지 한번도 앓아보지 못한 몸살을 얻게 됐었더군요..ㅠㅜ 보육시설 안에서는 매일매일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하여서 감기한번 안걸렸는데. 역시 홀로서기는 많은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ㅜㅡ
처음이였습니다 몸살.. 죽을 맛이더군요.. 의료보험? 몸건강하다 자부하면서 보험에 들어갈 돈으로 차라리 간식 사는게 낫다고생각하는 저 입니다. 문뜩 이런 말이 생각났었습니다. 아플때 제일 불쌍한 사람은 혼자서만 아파야 하는사람이라고..ㅜ..완존 OTL이였죠..ㅠㅜ 누구하나 아프다고 달려와서 약사주거나 위로해줄사람 한명없는 저였기에... 한달을 해보니 급식실알바도 딱 그담달 생활할 생활비만 나오더군요. 주유소 알바도 8시간 하고 들어와서 공부할려면 꼭 커피의 힘을 빌려야 했었는데 급식알바는 커피로도 어떻게 못하겠더군요. 결국 그달 어떻게 공부는 하긴 했지만 제 자신이 약한체력이라는 또한번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결국엔 다시 주유소 알바 했구요.
계획을 세웠죠. 주유소 8시간 + 공부 10시간 + 수면 6시간.. 그럭저럭 잘 지켜지나 싶었지만 수능치는날까지 그렇게 해서 살수는 없잖아요? 적어도 수능을 3달 앞두고는 공부에 매진해야하는데... 아무튼.. 홀로서기 2년째 동안에는 모의고사 성적이 그와중에도 점차 좋와 졌습니다. 그렇지만 수학만은 절 계속 괴롭히더라고요.ㅠㅜ 솔직히 2년만에 수학 10-가.나 , 수학 1,2 그리고 심화 미적분.. 어렵지 않으세요? 물론제가 고등학교때 공수에 조금만 투자했다면.ㅠㅜ 수학만 1등급 나온적 없더라고요. 아참..그리고 언어영역은 완존 제꼈습니다. 언어성적이 제외된 대학에 지원하려 했기에..
수능을 3달 앞두고는 주유소도 그만두고 공부했습니다. 주유소 알바할때도 시간대가 저녁이라서 차도 없고 해서 주유소 외부에 책상에 걸상, 그리고 챙겨온 책을 얹혀놓고 공부하다가 차가 들어오면 쪼로록 달려나가 기름넣어드리고 다시 책보다가 쪼로록 달려가서 넣어드리고... 거기다 밤늦게 저녁먹을땐 저녁먹으면서 책보다 차들어오면 쪼로록 달려가 다시 주유해주고..ㅋㅋㅋ 암튼 그때 어느하루는 제 친구가 같이 주유소에 있어줬는데 저의 그모습을보더니 미쳤다고 사람들보기 안 민망하냐면서 당장 공장가서 공돌이하라고 그랬었습니다.ㅋㅋㅋ^^ 저도 제가 그 몇달동안의 제모습을 지금 생각해보면 부질없던거라고도 생각은 하지만..&^^
3달앞두고 정말 항상 학원과 주위 도서관과 고시원. 딱 이렇게 세군데만 돌아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드디어 또다시 한해 지은 농작물을 거둬들일때가 됐습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다소 좋은 결과를 생각해도 된다고 자부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mathmethics가 문제였죠..ㅠㅜ......
시험끝나고 피씨방에 달려가 시험치면서 적어온 답을 체크하는데.. 과탐과 영어.. 과탐 한과목은 2등급이지만 나머지는 1등급 나왔는데.. 수학은 ...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생각했는데...ㅠㅜ ...무튼.. 그해 대학진학 포기해야했습니다. 또다시 자존심에 금이갔습니다. 군대도 안가는 놈이 그시간에 열공해서 남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했다는 자기자신에대한 학대는 물론이거니와(제가 낙천적이지만 제 자신한테는 좀 시니컬하죠.ㅠㅜ) 자살바로 이전까지도 생각해보는 그 순간적인 정신적 헤이함과 피폐... 아~ 혼자라는거에대한 절망감..
아직까지도 변함없이 제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네. 부모밑에서 공부외에것을 신경쓸 필요없이 자기가 원하는 공부 맘껏 할수있는 그런 사람들이 넘넘 부럽습니다.
제가 너무 일을 빨리 처리하려는 그러한 8282심톰이 심해서리..ㅠㅜ 한동안 충격이었죠.. 어째보면 당연한 결과를 저 자신만이 절 너무나도 과대평가를해서 제가 제 자신에게 넘 못씁짓을 해서 제 스스로가 무너진거라 생각합니다. 공부에 매진한 3달동안 알바를 안했기에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고시원 만기일이 돼어서 나와야 했습니다. 겨우 시간좀 되는 거리에 제 학교동기생이 공장 다니면서 자취하길래 거기서 1주일간 신세좀 졌습니다. 친구집에 갔으면 안됐었다는 말을 끝으로 긴 제 현 인생에서 의대에 입학하기위한 도전기의 일부를 마치려 합니다. 친구집에 들어간때가 작년 겨울이구요, 그뒤 올 한해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친구집서 나왔지만 역시나 다시 혼자서 겪어야하는 그 잔인한 고독.. 그 친구도 알기에 절 붙잡았고 전 친구집에 다시는 가면 안되는줄알면서 어쩔수 없었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들어가 살면서 제 꿈을 실현하기위한 공부를 뒷전에 두고 이 한해를 아르바이트와 여자와 도박,사기와 운전면허를 따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나쁜 무리들과 어울리는 등등.. 사회를 더럽히는 악의 존재를 몸소 조금이나마 경험했습니다. 올 한해에 제게 일어난 이일들.. 다는 못 말씀드립니다......... -끝-
현재 : 아직 올해가 안 끝났지만 10월부터 다시 제 본연의 임무이자 반드시 안해서는 안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많이 늦은거 갔습니다. 2년동안 쌓아올린거 반쯤 허물었으니까요. 그래도 전 다시 시작할랍니다. 책 제목을 인용하자면 저한테는 역시 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쉬었습니다. 이제 11월이 지나고 12월. 저에게 말못할 일을겪게 해준 이 06년을 한달 남겨놓고 전 떠나 보낼 올해를 결코 돌아보지 않을것입니다. 단지 제 자신에대한 반성을 할수있는 도구로 생각할뿐. 이젠 저에게 07년이 있습니다. 절대 이제는 순순히 한해를 넘겨보내며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지않겠습니다. 절대로..
현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취하고있습니다. 공부는 하루 하루 절대 빼먹지 않고 8시간씩 하고있고요.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국어를 싫어합니다. 글도 정말 못씁니다. 제글 참 엉망이죠? 죄송.ㅠㅜ 반정도까지는 계속 반복적으로 탈고하면서 고쳐나갔는데 중반들어서는 체력의 한계를 느껴서 넘 성의없이 글을 써내려가 이글을 보신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네요.
대충어떤내용의 리플이 올라올것이란 예상은 하고있습니다. 글길이에대한 욕, 제 자신의 분수, 의대를 넘 과소평가한다느니, 좀더 열심히 하라는등등.. 네.. 다 저에게 피가돼고 살이 돼는 리플들이기에 겸손되이 받아들이겠습니다. ^^
전 지금도 제 생활에대해 불만족 스러운건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않는다는것이 삶에 독과 약, 이 두가지 성질을 띄고있기에 가장중요한건 역시 제 혼자서의 소신있는 생각 결단, 행동입니다. 전 지금 나름대론 행복합니다. 멀쩡한 몸뚱이로 돈벌면서 제가 꿈꿔온 미래를 하나하나 만들어 갈수있으니까요~^^ 그리고 누구보다도 제가 제 자신을 사랑해야하잖아요? ㅋ
제가 살면서 저의 이 스토리를 아직 단 한사람 외에는 애기한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여러분께 들려 드리는겁니다. 글을 쓰는 제 요지를 잘 헤아려 주시길 겸손되이 청하는 바입니다. ^^
모든 네티즌 여러분~~ 사랑해요~~~*^^* ♡~~~~~~~~ from 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