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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산다오

solo flight |2003.03.31 20:13
조회 17,176 |추천 0

어느 날 갑자기 한 중년의 여인을 만났다.

내 머리도 반백을 지나 걸핏하면 “할아버지”라는 멋적은 호칭을 동네 아이들로부터 듣게 될 즈음에 만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이제는 눈가의 잔주름이 지나온 세월을 웅변하고 있었고, 나 또한 시간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담박에 나를 알아보았고 나도 그녀가 누구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첫 만남은 그냥 그렇게 약간은 서먹서먹한 채로 지나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녀로부터 한 장의 청첩장을 받았다. 그 청첩장의 발신인 주소에는 그녀 부군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故“라는 단어가 갑자기 커다란 글자로 내게 다가왔다. 내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이상한 청첩장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잊었던 옛 일들이 떠오른다.


추억.

그냥 내가 스러질 때 가슴에 품고 갔을 기억들. 가슴이 아려 온다.

사십년의 풍상이 할퀴고 지나간 내게 남아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나는 그녀 딸의 예식장에 갔었다. 곱다랗게 성장한 그녀의 모습은 중년의 화사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내게는 얄궂게도 아픔이 느껴졌으니 ----.

이렇게 고운 그녀를 남겨두고 먼저 간 그 형님은 누구실까?

왜 그녀에게 이런 견디기 힘든 아픔만을 남겨두고 ---.

애잔한 마음에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가 없어서 다른 친구들을 뒤로하고 약속을 핑계로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는 퇴역 군인이다.

60년대 말의 혼란스럽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지극히도 어렵던 시기에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라고 - 사실은 선택의 여지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 군에 입대해서 30여 년의 군 생활 끝에 퇴역했다. 이제는 다시 고향 인근 마을에서 내 목을 죄어왔던 그런 생활을 접고 여유로움을 만끽하면서 나 좋을 대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살려고 애쓰고 있다.

 

내 결혼생활? 평범하게 그저 그렇고 그렇게 살아 왔었고 또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내와 심하게 다툰 적도 없었고 약간의 불만이야 있겠지만 큰불만은 없이 살았다. 애들도 특출 나게 잘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서도 손가락질 받을 그런 행동을 하는 녀석은 없었으며 그래도 제 갈 길을 알고는 있는 것 같은 그런 평범한 애들로서 녀석들은 남 신세는 지지 않으려고 하니 다행이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앳된 긴 머리 소녀와 깍가중 머리의 소년이 있었다.

게네들은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억에 남을 그런 평범하지만 다소는 뇌리의 어디엔 가의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런 정도의 사이였다. 소년은 반장이었고 그래서 질서를 유지한다고 급우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개입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그 소녀를 조금은 도와주던 것이 한참을 지난 오늘에도 그녀의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서로의 그 모습들을 이제는 손자나 손녀가 그때의 우리 또래가 되었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것도 없을 것 같은 때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녀 딸의 혼례식에 다녀와서 나는 한 참을 가슴 아파 할 수 밖에 없었다. 행복이 넘쳐 나도록, 부러울 정도로 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벌써 혼자되어 저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서 난 그녀에게 위로의 편지를 썼다.


어느 늦은 밤 자지러지듯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내게 그녀가 던진 한마디,

"나 힘들어.“

난 내 가슴이 철렁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새 나는 그 옛날 짓궂은 친구들의 괴롭힘을 하소연하던 친구의 “반장”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늦은 밤 나는 그녀와 여러 가지를 얘기했고 그 날 이후 나는 여러 날을 혼란과 곤혹스러움 속에서 보내야만 했었다. 그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친구로서 가능한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그녀는 나를 친구가 아닌 남자로 본다기에 나의 고민은 더욱 컸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나는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재된 체로 깊은 잠 속에 빠져있던 머나 먼 옛적의 나를 그녀는 갑자기 깨웠고, 이제 여러 날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不惑을 지나 知天命의 나이를 지나고 있으면서도,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맞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깨어나 되찾게 되어버린 이 생각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대로 써서 그녀에게 편지도 보내고 또 다른 생각들은 차마 보내질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늦은 밤의 많은 대화 끝에 어느 날 그녀의 집 근처에서 만나 저녁도 같이 하면서 술잔도 나누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느 한 순간 공감한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밝은 미소로 수줍은 듯 나타난 그녀. 짙은 화장으로 모습을 가리지 않아서 청초하고 곱다라니 패인 잔주름은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으니 오히려 정겨웠으며, 우린 거의 오십여 년을 뛰어 넘어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었다.


길다고 할 수는 없어도 잠시나마 정겨운 모습과 고운 웃음으로 우리의 만남을 자축하고는 '싫지만 이제는 보내 줘야지' 하고는 버스에 오르는 나를 안타까운 듯 바라보면서 ‘안녕’이라고 손을 흔들던 그녀의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거란 걸 이미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인생의 반을 넘어 살면서 너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경험은 사십 년도 더되어 이제는 그 기억마저 아물거리는 어릴 때의 추억이었고 그 것이나마 어쩐 일인지 뇌리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십 년이면 세상이 변한다는 시간을 네 개 이상을 뛰어 넘어 이뤄진 게 우리의 만남이었다. 아마도 오래 전에 예정되었던 운명의 만남인지도 모르겠다. 다소는 늦은 것 같기는 하지만 ---.


그 사이에 옛날의 앳된 소녀의 눈가 가장자리에는 잔주름이 생겼고 가는 세월의 더딤을 탓하던 소년의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려서 봄에도 녹을 줄을 모르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 만남은 오히려 성숙한 만남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소는 유치하고, 조금은 불안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절제를 알고

용서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우리가 알고 있기에 가득 차서 넘칠 것 같지만 넘치지는 않을 것이니,

아쉬움을 즐길 줄 아는 현명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 속을 내어 보여도 이상할 게 없고 더더구나 문제라는 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넌 나를 걱정하고, 우리의 현실을 인정하고, ‘너무 티 내지 마’라고 오얏 밭에서 갓 끈을 매는 愚를 犯할까 나를 경계했다.

그리고 마음으로만 서로를 품어 주기로 했다.


오십 년이란 세월은 그렇게 보다 성숙하고 좀 더 사려 깊은 모습을 만들었나보다.

고맙단 말도 새삼스러워서 하기가 멋 적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그리고 생각은 알기 쉬울 리가 없지만, 짧은 시간이었으나 비교적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 이제는 서로가 이해할 수 있다고 난 믿는다.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게도 아내와 나누기 어려운 생각이 있고 아내 또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아내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면 내 아내도 그녀처럼 따뜻하게 정을 나눌 수 있는 나 같은 친구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조금은 더 즐겁게 살수 있다면 좋겠다. 다소라도 형제나 여타의 친구, 또는 제 자식과 나누기 어려운 얘기도 나누면서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옆에서 보는 그녀는 아직도 내게 제대로 된 자신의 가슴을 열어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와의 대화에서 조금은 위로를 받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혹은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의 양손의 떡과 같이 이런 모든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지나친 나만의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를 아끼기에 우리는 아주 좋은 친구로 지날 것을 약속했지만 마음은 허전하다.

이미 시작에서부터 우리는 우리의 정답을 알고 있었다.

명확한 한계가 있고 또 우리 중 누구도 그 한계를 부정하거나 넘기를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이미 알고 있는 정답을 쓰기위한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나를 들키는 것이 그녀를 또 하나의 가슴앓이로 밀어 넣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에 나 혼자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수도 없이 연습해야만 했고 불면의 밤이 여러 날 지나고 대강의 정리가 된 후 우리는 기나긴 전화통화를 했다.

정답을 찾는 과정을 서로 확인한 것이다.

머리로 확인은 했지만 가슴이 완전히 받아들이려면 또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그녀나 나나 보여지지 않을 가슴앓이를 당분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애잔함이 가시지 않는 깊어가는 봄의 한 옆에서 괜시리 시려오는 마음만을 원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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