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S#1. 대산그룹 비서실
단정하게 차려 입은 단희와 비서실장이 함께 마주보고 앉아 있다. 서류를 훑어보는 비서실장.
실장 (흡족한) 경애한테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뭐, 괜찮네요.(서류 덮고)
이사 실에 자리가 비어 있다는 건 알고 있죠?
단희 네.
실장 그런데 비서 자리만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이사 실도 비어 있어요.
단희 네?
실장 (웃음) 좀 복잡해요. 당분간은 빈 이사 실을 지켜야 할 거에요. 일어나죠. (일어난다)
단희 (일어나고)
실장 우선, 사장님께 인사는 드려야 되니까.
단희 (긴장한) 네.
S#2. 사장실 앞
입구에 비서가 앉아 있다. 실장과 단희가 나타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비서.
실장 사장님 계시지?
비서 네, 실장님. (일어나 사장실 문을 노크하고, 열며) 사장님, 비서실장님이십니다.
(E)사장 들어오라고 해요.
비서가 문을 비켜서자 실장과 그 뒤를 따라 단희가 들어간다.
S#3. 사장실
문 앞에 단희 서 있고, 실장은 중간쯤 다가간다. 그제야 고개를 드는 태준.
실장 오늘부터 이사님을 모실 비서입니다.
태준 (단희 힐끔 보고) 이사도 없는 이사 실을?
실장 회장님께서 전부터 준비를 해두라고 하셨습니다. (단희에게 눈짓하고)
단희 (다가와 목례) 강 단희라고 합니다.
고개 드는 단희와 시선 마주치자, 약간 놀란 듯 한 표정의 태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태준 앞으로 잘 부탁해요.
단희 네.
태준 그만, 나가봐요.
목례를 하고 돌아서는 실장과 단희. 서류를 훑어 보다 문득 두 사람이 나간 문 쪽을 바라보는 태준.
S#4. 사장실 앞
실장 미스 손, 앞으로 이사님을 모실, 강 단희씨야. 서로 인사들 하라구.
비서 (밝게) 안녕하세요.
단희 (웃으며) 네, 안녕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 드려요.
비서 그런데 이사님은 언제부터 출근하시는 거예요?
실장 글쎄. 그야 이사 맘이겠지. 그럼, 수고.
비서 네.
단희 (목례하고 가는)
S#5. 이사실
실장 (들어오며) 여기가 강 단희씨, 자리예요.
단희 네.
실장 이사가 오기 전까진, 좀 무료할거에요. 미스 손이 그 동안 여길 좀 맡아서 대략 정
리를 하긴 했는데, 한 번 둘러봐요.
단희 네, 실장님.
실장 그럼, 수고해요.
실장이 나가자 단희는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본다. 그리곤 다시 이사실로 들어가 안을 훑어
보다가 나온다. 다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조금 전, 태준의 얼굴을 떠올리며 표정이 굳어진다.
S#6. 회의실.
동섭을 비롯하여 각계 인사들이 모여 앉아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개발팀장의 발표를 듣고 있는 태준.
팀장 국내 기술은 대부분 기존, 선진 기술을 도입해서 개량한 것이 전부입니다. 기존에 가
장 큰 경쟁력을 인정받던 용광로 공법은 환경문제에 한계가 있습니다. 용수도 부족할
뿐더러, 오염물질이 대량으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기술 개발
에 착수한 것이 파이넥스 공법입니다. 자연 상태인 가루로 된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
을 그대로 사용해서 쇳물을 생산하는 기술입니다. 기존 고로 공법에서는 철광석을 덩
어리 형태로 가공하거나, 유연탄을 코크스로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파이넥스 공법
에 비해 설비 투자가 많이 듭니다. 물론 파이넥스는 그런 설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태준 그렇다면, 파이넥스 공법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그때 회의실 문을 열고 태민이 들어온다. 다들 시선이 태민에게 쏠린다.
태민 (여유롭게) 제가 좀 늦었습니다.
태준과 다른 이사들이 사뭇 놀라는 표정. 동섭의 표정은 변함없다.
팀장 (태민에게) 직접 하시겠습니까?
동섭이 고개를 끄덕이자, 팀장이 옆으로 비켜서고, 태민이 나와 선다.
태민 (진지한) 파이넥스 공업은 사전 가공 과정이 없기 때문에 기존 공업에 비해 오염물질
을 덜 배출하게 됩니다. 황산이나 질 소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기존 보다 85%나
적다는 것입니다. 단기간을 보고 하자는 게 아닙니다. 장기간을 봤을 때, 파이넥스 공
법은 기존의 공법에 비해 여러 가지로 효율적이란 것입니다. 물론, 파이넥스 시설 공
사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다른 기업에서는 발 빠르게 기술에 대한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선뜻 내놓을만한 기술이 아직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파이
넥스 공법이 다른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우리 쪽에서 먼저 개발을 하자는 겁
니다. 이 프로젝트를 제가 맡겠습니다.
동섭 규모는?
태민 약 팔만 천 칠백평정도입니다. 그에 앞서 우선 연구 목적으로 시험공장이 시급합니다.
태준 하루 생산량은?
태민 대략 사만 톤입니다.
태민의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이다. 웅성거리는 가운데 동섭이 일어난다.
동섭 위험 부담은?
태민 지금은 오대 오입니다. 그러나 (확신에 찬) 칠대 삼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동섭 팔대 이로 해.
동섭이 나가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분위기다. 우르르 이사들이 나가자 태준이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태준 언제 이걸 준비했어?
태민 (귀를 후비며, 건성으로) 기밀 사항이라, 놀면서 했지 뭐.
태준 (무표정) 앞으로 지켜보마. (나가고)
태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표정 굳어진다.
S#7. 회장실
책상 앞에 동섭이 앉아 있고, 그 앞에 태준이 서 있다.
태준 저한테도 기밀 사항이었습니까?
동섭 태민이가 부탁한 일이었어. 확실하지 않은 이상, 저도 선뜻 내놓기가 그랬지.
태준 (서운한) 그래도, 저는 알고 있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동섭 (일어나며) 서운한, 그 맘 알아. 내가 자네 맘 모르겠나? 그래도 저 녀석이, 처음으
로 일에 의욕을 보인 걸세. 어쨌든 자네가 감싸서 데리고 있어야 할 녀석이야. 나야,
곧 물러날 사람이지만. 앞으론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대산을 이끌어 가야 하지 않
겠나. 그러니, 자네도 그만 태민일 믿어 봐.
태준 (아무 말 않는)
동섭 아무리 그래도 자네가 나만이나 하겠어? 마음 같아선 그만 이쯤에서 은퇴라도 하고
싶어. 자네도 알다시피, 이십년 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지 않아. 그래서 자네
누이하고도 이렇게 된 거고. 이번 프로젝트만 무사히 끝나면, 나는 그만 일선에서
물러 날 생각이네.
태준 회장님?
동섭 놀랄 거 없어. 사람이 때가 되면 떠날 줄도 알아야지. 내가 언제까지 이 자리에 앉
아 있겠어. 태민이도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고, 자네도 어느 정도 자리를 굳혔으니
이제는 나도 좀 쉬어야겠어. 자네가 뒤에서 태민을 좀 밀어주게.
태준 앞으로 십 년은 더 곁에 있으셔야 합니다. 약속하시면, 회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동섭 (너털하게 웃는다) 하하하.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지?
S#8. 이사실
실장이 급하게 들어온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단희.
실장 (이사실 턱으로 가리키며) 계셔?
단희 (? 고개 젓고)
실장 안 오셨어?
단희 네.
실장 회의에 참석 하셨다 그러던데. (기운 빠지는) 그냥, 또 날으셨구먼.
단희 ?
실장 시일이 걸릴 줄 알았더니, 내일부턴 아마 정상적으로 출근 하실 거야.
단희 네.
실장 좀, 별난 성격이긴 해도 까탈스러운 분은 아니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단희 (그저 웃는)
실장 나가고 자리에 다시 앉는 단희. (E)전화벨 소리.
단희 (수화기 들고) 네, 비서실입니다.
(E)태민 누구요?
단희 네?
(E)태민 내 집, 전화 받는 사람이 누구냐구요.
단희 (당황) 오늘부터 이사님을 모시게 된 강 단흽니다.
(E)태민 이사도 비서 있어요?
단희 네.
(E)태민 이사도 없는 이사실 비서는 대체 무슨 일 하는 거요?
단희 (차분하게) 혹시, 이사님이세요?
(E)태민 오늘 들어갈 일 없으니, 기다리지 말고 일찍 퇴근해요.
끊어진 전화. 황당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보며 피식 웃는다. 내려놓자마자 다시 울리는 전화.
단희 네, 비서실입니다.
(E)경애 출근했구나?
단희 경애니?
(E)경애 전화가 없길래, 궁금해서 내가 했잖어.
단희 깜박했다. 오늘부터 근무였어.
(E)경애 어쨌든 축하해. 할만은 해?
단희 아직 잘 모르겠어. 오늘은 내내 졸다가, 인터넷만 뒤지다가, 차 마시고. 그게 다야.
지루한 하루였어. 낼부터 이사님 출근하신다니까, 좀 덜 심심하겠지.
(E)경애 소문으로는 사장 동생이라 그러더라.
단희 그래?
(E)경애 언제 퇴근이니?
단희 (시계 보고)삼십분 뒤에.
(E)경애 그럼 이따 집에서 보자.
단희 오려구?
(E)경애 울 엄마가 너 김치 좀 가져다주라 그래서, 지금 막 차에 실었어.
단희 (고맙고, 미안한) 안 그래도 되는데.
(E)경애 나중에 봐.
단희 응.
S#9. 방배동 집/안방
응접실 앞에 앉아 있는 영희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져 있다.
(E)단희 그 운명, 내가 바꿀 거야. 똑바로 봐 둬. 그 운명이 어떻게 바뀌는지.
갑자기 불안해지는 영희.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돌아본다.
완 (고개 내밀며) 막내 삼촌 오셨어요.
영희 그래? (일어나 나가는)
S#10. 거실
거실로 들어오는 태민,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진. 안방에서 나오는 영희.
영희 (환하게) 어서 오세요, 도련님.
태민 잘 지내셨어요?
영희 그럼요. (진이 보며) 넌, 왜 벌써 들어 와?
진 (태민의 팔짱을 끼며) 삼촌이 데리러 왔길래, 일찍 들어 왔어.
태민 (웃으며) 밥 있어요? 배고픈데.
영희 조금만 기다려요.(웃으며 주방으로 가고)
완 (시큰둥) 우리 집, 상전 얼굴에 웃음꽃 피게 하는 사람은 삼촌 밖에 없군. (소파에
반쯤 드러눕는다)
태민 (옆에 와서 앉으면, 진이 쪼르륵 와서 옆에 앉는다) 입대가 언제야?
완 다음 주.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데, 꼭 보내야 하나? 아버지가 손 좀 써주면 될 걸.
태민 (머리 콩 쥐어박고) 사내로 태어났음 당연한 거지.
진 (밉게) 오빤, 고생 좀 해봐야 해.
완 넌, 고생해서 그따위야?
진 내가 뭘?
태민 (나서며) 니들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유치하게 말싸움이냐?
진 (무시하며) 삼촌, 이제 우리랑 같이 사는 거야?
태민 내 집 두고, 여기서 왜 살어?
진 (삐죽) 그럼 자주 얼굴이라도 보여주던지. 대통령보다 얼굴 보기 더 힘들어.
태민 (머리 쓰다듬고) 이번 수능만 끝나면, 그땐 데리고 여행이라도 가마.
진 정말이지?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기? 약속해. (새끼손가락 내민다)
태민 알았어. (약속 한다)
그때 초인종 울린다. 완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진이는 화들짝 놀라 이층으로 뛰어 올라간다.
진이 (뛰어 올라가며)나 아직 학교에서 안 온 거야.
완 겁을 내면서 저러지.
주방에서 나오는 영희.
완 (인터폰 보며) 사장님이요.
영희 (완이 흘기며) 일찍 오셨네.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앞으로 나가는 태민. 잠시 후 태준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완 (인사하며) 다녀오셨습니까.
태준 응.
영희 수고하셨어요.
태준 (신발 벗고 들어서며) 넌, 언제 왔냐?
태민 좀 전에요.
태준 저녁 먹고, 나랑 술이나 한 잔 하고 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영희 (태민에게 눈을 찡긋하며) 그래요 삼촌. (따라 들어가는)
완 (장난) 잔소리 좀 듣겠는데?
태민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S#11. 단희 집 앞
빠른 걸음으로 올라오는 단희. 대문 앞에 서 있는 경애.
단희 (미안한) 많이 기다렸지?
경애 왜 이렇게 늦었어?
단희 (대문 열고) 오다가, 전에 다니던 회사 언닐 만났어. 서서 얘기 하다 보니 좀 길어졌
어. 미안해.
S#12. 집 안/마루
경애가 내려놓은 김치 통을 단희가 들어 냉장고에 넣는다.
경애 좀 많어.
단희 그런 것 같네. 매번 어머니께 죄송해서 어쩌니.
경애 너, 빨리 시집가래. 나, 이러고 있는 꼴이 보기 싫댄다. 둘이서 같이 늙어 죽을 거냐
구. (웃음보 터진) 둘이서 그냥, 살림 합칠까?
단희 (웃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S#12. 방 안
가방 내려놓고 앉는 단희.
경애 (둘러보며) 허전하겠다 너.
단희 그렇지 뭐.
경애 그러지 말구, 이사해라. 우리 집 들어오는 거, 죽어도 싫다니까 가까운 곳으로 이사
라도 해. 응?
단희 이사할 돈도 없구, 그냥 여기서 살래. 난, 익숙해서 편해.
경애 아버지 계셨을 땐, 모르지만 너 혼자 여기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 맘이 안 편해서
그래. 여자 혼자서, 위험하잖어.
단희 (웃으며) 누가 나 잡아 갈까봐?
경애 그래, 기집애야. 그리구, 혹시라도 너 아프면, 어떡하니? 가까이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구.
단희 너 이럴 때 보면, 꼭 내 엄마 같어.
경애 너, 내 딸 같어. (웃음, 그러다 생각난 듯) 참, 너 어머니 찾는다 안 했어?
단희 (웃음 가시는) 으응.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문을 연다)
경애 어떻게 됐어? 찾았니?
단희 (옷을 꺼내 갈아입는) 응.
경애 (놀란) 근데 왜 말 안 했어? 뭐래? 알아보긴 해?
단희 (태연하게) 아니래.
경애 응?
단희 내 엄마가 아니래.
경애 무슨 말이야?
단희 아니라는데 내가 어쩌겠어. (덤덤하게) 아니라면, 아닌 거지.
경애 (심각) 긴데 아니라는 거니? 이 십년 만에 만난 딸한테 할 소린 아닌 것 같다.
단희 (씁쓸) 내 엄만, 오래 전에 죽었어.
경애 (화난) 그래도 그렇지. 웃긴다 증말. 죄책감도 없대니?
단희 운명이라고 생각하래.
경애 (코웃음) 운명? 운명론자 한 명 나셨네.
단희 (굳어진)그래서 운명으로 받아들이려구. (옷 걸어 넣고, 거울 앞에 앉은)
경애 잘 생각했어. 지금까지 엄마 없이도 잘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엄마라는 것도 우습다.
(언짢은) 너, 잘 살어. 꼭 잘 살아서 보여줘. 그게 복수하는 거야.
단희 (머리를 묶으려다 멈칫)
경애 근데, 사는 건 어떻디? 궁상 맞어?
단희 잘 살고 있어. (의미심장한) 다행이두, 아주 잘 살고 있더라구.
경애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니네 엄마, 아니 그 아줌마 정말 뻔뻔하다. 석주보다 더 뻔
뻔해. 요즘 왜 이렇게 뻔뻔한 인간들이 많아, 신경질 나게.
굳어진 단희의 표정. 아무 것도 모른 채 씩씩대는 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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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 건 했습니다^^
이번 주 토욜부터 월욜까지 글을 못 올릴 것 같아서 쓰는 족족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하루종일 일도 안하고, 이것만 쓰고 있는 게으른 사원....ㅜ.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