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한가해요
프리랜서(free lancer)
일정한 집단이나 회사에 전속되지 않은 자유기고가나
배우 또는 자유계약에 의하여 일을 하는 사람.
영어로는 프리랜스(free lance)로 표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프리랜스는 어떤 영주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free) 창기병(槍騎兵:lance)이라는 뜻으로,
중세 서양의 용병단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들은 보수를 받고 이곳저곳의 영주와 계약을 맺고
그 고용주를 위하여 싸웠다.
이들은 대의명분이나 고용주가 어떤 사람이건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보수만을 위하여 여기저기로 몸을 팔고 다녔다.
현재는 특정한 사항에 관하여 그때그때...
......
프리랜서라...
나이 스물 넷에다 대학까지 간 녀석이
프리랜서의 뜻을 모를 리는 없으므로
굳이 네이버 백과사전을 찾아볼 필요는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프래랜서를 파헤치고 드는 것은
혹시나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이다.
그녀들이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그 일이 아니었으면.
역시나
프리랜서의 의미는
내가 알고 있던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없이 주욱-
읽어내려가다가
마지막 줄에 눈이 멎는다.
‘오로지 보수만을 위하여 여기저기로 몸을 팔고 다녔다...’
......
꼭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을 못하겠냐.
망할 네이버같으니;
여기서 말하는 의미가
그런 뜻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적나라한 표현이 가슴을 후벼판다.
좀더 정화된 언어로 설명해줬더라면.
교대자가 들어온다.
언제나처럼 화장실청소를 마치고
퇴근을 한다.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다.
삐딱하게 서 있는 ‘딸기’가 눈에 들어온다.
간밤에 우리 사장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탓일 듯.
간판 앞으로 다가서서 반듯이 세운다.
‘딸기’라는 두 글자가
점점 더 커지는 듯하다.
흠칫 놀라
나도 모르게 얼굴을 돌린다.
정말로 저곳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녀들이 저 곳에서
무언가 성적인 일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일 것,
이토록 아무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누고
장난을 치고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렇게나 가방을 던져두고
곧바로 잠자리로 들어간다.
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음에도
집에만 들어오면 피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랜 기간
햇볕을 보지 못한 탓일 듯.
푹 자고 일찍 일어나 버리는 편이 좋다.
.
.
.
매일같이 푹 잤기 때문일까.
얼굴은 확연히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입술 위쪽으로 딱지가 앉긴 했지만
거의 아프지도 않다.
스스로도 이 놀라운 회복력이
감탄스러울 따름.
이건 뭐 사람새끼가 아니라
조카 잡초다.
2년 1개월 1주의 군생활을 하는 동안
이 나메크성인같은 회복력 덕택에
한 번도 의무대 검진을 간다거나
일과시간에 내무반에 드러눕지 못했던 것을
얼마나 한스러워 했던가.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일찍 출근해줄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일찍 가봐야
별로 보기 싫은 사장과
못난이 경림이 기다릴 뿐.
한참이나 컴퓨터를 켜고 놀다가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한다.
마스크는 놓고 나간다.
가게로 들어서니
사장과 경림이 나란히 앉아 있다.
눈대중으로 가게 안을 둘러봐도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역시 월요일의 힘인가.
“저 왔습니다.”
“......”
“나 왔다.”
“......”
......
이것들이 아주
쌍으로 꼴깝을 하는구나.
그래도 사람이 인사하는데
아는 척은 해줘야지.
사장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킨다.
인수인계를 하라는 뜻.
저녁시간까지의 매출을 계산하고
돈을 세는 동안
경림은 한 마디도 없다.
쳇,
술 안 먹겠다는게
뭐가 그리 잘못됐냐고.
“저 들어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라. 내일 보자.”
인수인계가 끝나자
경림은 곧바로 퇴근한다.
자기들끼리는 잘만 말하는군.
의도적인 따돌리기인가.
경림이 나가기가 무섭게
사장도 퇴근할 준비를 한다.
없어도 그만이긴 하지만
직장동료들 간에 불신이 이렇게 쌓여버리니
이거 참 일할 맛 안나는구만.
사장이 퇴근하고 나서
가게 안을 둘러본다.
새벽시간도 아닌데 손님이 거의 없다.
이런 날은 드문데.
카운터로 돌아올 때쯤
그녀들이 카운터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볼륨녀와 채연.
수정은 정말로 오지 않는 건가.
“두 자리요.”
“네.”
오늘도 두 자리를 요구하는 것을 보니
안 오는 게 맞나 보다.
하긴
자기가 이제 안온다고 했으니.
볼륨녀가 혼자 자리로 가고
채연은 카운터 앞에 남는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
하루 중 두 차례의 경우에
대화를 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이제는 어색하지도 않다.
“어? 멀쩡해졌네요?”
“네.”
“거봐요. 약 바르니까 금방 낫잖아요.”
“네, 그 그러네요.”
내 회복력이 더 영향이 컸다고 생각되지만
그녀가 건네준 연고의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한다.
“이제 안 아파요?”
“네.”
“하나도?”
“네, 전혀 안 아파요.”
“흐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 입술 언저리를 유심히 쳐다본다.
카운터 안쪽으로 머리를 바싹 들이밀고
내 입쪽을 쳐다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야릇해진다.
“이제 약 안 발라도 돼요?”
“네...이제 다 나은거 같은데...”
“그럼 약 줘요.”
“네?”
“약. 내가 줬던 거. 가게에서 몰래 가져온 거라 다시 갖다놔야 돼요.”
“아...”
그렇구나
하고 수긍하려다 멈칫한다.
가게라면...
‘딸기’를 말하는 거겠지.
아침에 머리 속을 맴돌던
쓸데없는 상상들이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다.
역시나 그런 것일까.
카운터 구석에 놔둔 가방을 들고와
보조포켓을 열고 손을 넣는다.
그러나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어?”
“......”
“어 어라? 여기다 넣어뒀을 텐데.”
아무래도
아침에 잠들기 전에 약을 바르고는
그대로 방치해둔 모양.
다 나았다는 생각에
마스크와 함께 집에다 놓고 온 듯.
“아...저기...집에 놔두고 왔나 봐요.”
“흐음...”
“아 저...내일 갖다 드릴게요.”
“뭐, 그래요 그럼.”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대로 돌아선다.
하기야 연고 그거 얼마나 한다고.
돌려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채연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나서
티비를 켠다.
손님도 없고 사장도 없고
오늘은 상당히 한가할 거 같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볼만한 것들이 꽤나 많이 나오고 있다.
내가 드라마라도 즐겨봤더라면.
그래도 내가 볼 건 스타중계뿐.
조금 있다가 게임이나 해야겠다.
아직 사장이 퇴근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벌써부터 게임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티비를 끄고 카운터의 메인컴퓨터로
인터넷 창을 연다.
여기저기 유머게시판이나 돌아보면서
시간을 때울 생각.
여느 때와는 다르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손님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기존에 있던 손님들이 나가는 경우는 없고
모두들 새로 들어온 손님들.
오늘따라 한가하다 싶었지.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나가는 손님은 없었으므로
출근해서 지금까지 한 일은 없다.
여전히 한가한 건 마찬가지.
얼핏 그녀들 쪽을 보니
두 여자 모두 특별한 뭔가를 하는 것 같진 않다.
가끔씩 마우스만 클릭하는 걸로 봐서.
카트라이더는 아예 안하는 걸까.
사람이 기껏 가르쳐 줬더니.
열두 시가 됐음을 확인하고
일어나서 가게 안을 한 바퀴 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가만히 앉아만 있기는 따분하다.
돌아보면서 몸이라도 움직여야지.
카운터로 돌아와 앉은 다음
게임이나 해볼까 하여
자리에서 일어난다.
막 카운터를 나오는데
‘또로롱’ 소리가 울린다.
[뭐하세요?]
다시 돌아와 확인해보니
채연이 보낸 쪽지.
매일같이 하는 일 없이
인터넷만 하고 앉았으니 심심한 모양.
[아무 것도 안 해요]
게임하려구요.
라고 쓸까 하다가
혹시나 그녀가 미안한 마음에
그럼 게임하세요.
라고 할까봐
그냥 아무 것도 안한다고 답변한다.
[오늘 한가하신가 봐요?]
[네 한가해요]
하는 거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쪽에서 지켜본 모양.
잠시 동안 대답이 없다가
조금 후에 다시 쪽지가 온다.
[심심해요]
그럴 줄 알았지.
그러게 가르쳐준 게임이라도 하지.
[카트라이더는 안 하세요?]
[그거 재미없어요. 맨날 져요]
처음 할 때는 꽤나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게 되니
그녀도 수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긴 지기만 하는 게임이
재미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수정도 하지 않겠다고 했었지.
[다른 게임 가르쳐줘요. 한가하잖아요]
[네. 잠깐만요]
마침 한가하던 차에 잘 됐다고 생각하여
카운터에서 일어난다.
무슨 게임이 있을라나.
시간 때우기 좋은 온라인게임이라도...
막 카운터를 나서려는데
문이 열리고 남자 둘이 들어온다.
다부진 체격에 눈매가 심상치 않다.
형님들 벌써 영업 끝나셨나?
“어서 오세요.”
“......”
내 인사에는 답변도 없이
두 사람 중 한 남자가
카운터 쪽으로 바짝 다가서서
지갑을 꺼내 앞으로 내민다.
“경찰입니다.”
“......”
“잠깐 좀 둘러 보겠습니다.”
“아...네...”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아 돈다.
내일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