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당신은 애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부인이였습니다.

꼬맹이를 ... |2003.04.07 20:49
조회 722 |추천 0

저는 많은 분들께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애인이 아닌 부인으로 생각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글을 올립니다. 지금으로 부터 5년(99년)전 저는 3명이 모여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사람은 99년 9월6일 자로 저히 회사로 입사하기 위하여 면접을 보고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사람이 제게 물어 보더군요. 실장님 테이블 아래 있는 사진 실장님 아이(딸) 인가요 하구요. 응, 그래 내딸이네 라고 시작하여 퇴근후 그사람과 마주 앉아 애기를 하게 되었지요.  난 결혼도 했었고 헤어지고 딸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고 그사람과 몆번 그런애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자 마음이 그렇더군요. 제가 불쌍 아니 제가 안되어 보였나 봅니다. 어느날 그사람은 제게 이러 더군요. 좋아한다고 저도 힘들고 어려울때라 내가 더 좋아 한다고 했었죠. 그렇게 저히의 사랑은 1999년 11월21일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제 아이(딸)도 만나게 되었구요. 얼마지나지 않아서 저보다 더 정에 굶주렸던 딸아이는 금새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고, 저히들의 사랑은 평생 몸무게 59kg, 을 넘지 못했던 저를 69kg이라는 몸으로 만들어 놓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히들 서로가 한가지씩의 부담감을 안고 시작했었던것 같아요. 그사람은 처음제게 이랬습니다 . 실장님을 정말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힘들거라고 저는 이혼남에 아이도 있는데 하구요. 그래도 저히의 사랑은 커져만 갖습니다. 그러던 어느날(2001년 말) 아침 전화한통이 왔었습니다. 그사람이 복막염(맹장)으로 새벽에 수술하여 입원해 있다구요. 너무나 놀란 난, 그길로 바로 병원으로 달려 갔죠. 그곳에서 아버님, 어머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인사를 여쭙고 약 일주일간을 병간호 하는 동안 어머님(장모님)과 정이 들었죠. 저두 상당히 잘했던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전 사위 였습니다. 물론 이혼이나 아이애기는 할수가 없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다 저두 처가집을 다니게 되었으며, 사위 노릇을 하였습니다.  서로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 몇년 지나던 2002년 2월에 일이 터졌습니다. 실은 제가 3남1녀중 장남인데 제게 말썽많은 막내동생이 있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하사관으로 입대한 그녀석은 군생활중 여러 차례 사고를 쳐서 중사에서 이등병 강등시켜서 불명예 제대를 시키겠다고 하는 말을 듣게 했으며, 그때마다 저히 가족은 동생을 살리기 위하여 적지않은 돈이 들어갔었죠. 아뭏든 2001년10월달 그녀석은 중사로 제대를 하게 되었고 잘살아주기를 바라던 저히 가족의 소망을 또, 한번 실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느날 결혼하여 아이도 낳구 열심히 광주에서 사는 제바로 및에 동생이 전화가 왔습니다. 형서울 좀 가보자구요. 고속도로를 동생과 달리며,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동생(막내) 일이였죠. 막내 제수씨가 못살겠다고 헤어지고 싶다구요, 일단 찿아가서 달랬죠. 저놈 사람 만들테니까 제수씨 한번만 저를 믿어주세요. 일단, 기회를 주시면, 제가 급한 불부터 끄고 살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어떻게 달래서 그길로 막내와, 재수씨 그리고 조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님이 아시면 힘드실거 같아서 여동생집에 당분간 보내 놓고 그후부터 저는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했으며 전 그사람과 둘이서 카드로 돈을 마련했으며, 부족하여 제가 타고 다니던 찦차까지 팔아서 서울 올라가서 동생네의 빛을 갚아 주게 되었습니다. 그후 동생에게 집과 직장을 마련해 주었으며,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잘살아 달라고 부탁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2002년 7월 초) 서울 처가집에 다녀온다는 말로 제차(카랜스)을 빌려 달라고 해서 주었었는데 약 3개월동안은 아무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던 10월초 저에게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000형님 되시죠 000가 돈을 빌려썼는데 소식도 없고 사라진거 같으니 형님이 갚아야 하는거 아니냐구요. 전 그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사연을 들으며, 7월달에 차를 빌려 줬을때 그녀석이 사채업자에게 차대출을 300만원을 썻던 것을요. 참, 기가 막혔지만 갚아 주겠다며, 일주일 시간을 달라고 하며 나왔습니다. 평상시 갔았으며 300만원 큰돈도 아니 였겠지만 그놈 빛도 같아 줬죠 장남으로 가족들도 있는데 저는 그놈때문에 빛진 돈 갚기도 버거울 때였씁니다. 아버님이 그사실을 아시고 많이 실망했으며, 약속한 날자을 3일앞두고 아버님께서 저에게 이러더군요. 내가 하느님돈을 한번 훔쳐야 되겠다 하구요 전, 아버지 차라리 제가 도둑질을 했으면 했지 평생 신자로서 사회봉사활동만 하신 아버님을 그렇게 할수가 없다구요. 걱정마세요 제가 해결합니다 하고 집에서 나왔습니다. 저라고 뾰족한 수가 없었으며, 괴로워 술도 마시다 처가집에서 자기도 했지요. 정말 장모님에게는 염치도 없지만 참으로 많이 절위로해 주셨죠. 토요일까지 돈을주기로 했는데 목, 금, 토요일 시간은 지나고  전 그사람들에게 2-3일만 시간을 더달라고 전화를 했었고 장모님과 제 사랑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언니집에 가자구요. 처형이 시집을 멀리 갔는데 한번도 못가봤거든요. 너무나 좋아하며, 시골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챙겨서 5시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경주쯤 갔을까  제 매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어디세요. 응, 처가집 가족모시고 처형집에 가네 무슨일 있어 아뇨 아버님이 조금 편찬으셔서요 바로 차를 돌려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차마그럴수가 없었으며,  매제가 큰일은 아니니 잘다녀오라는 말에 당부의 부탁을 하며, 계속 울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전라도 살며, 울진까지는 약 5시간 30분이 걸립니다. 기분이 너무 안좋았던 저는 아버님이 계시다는 병원의 선배에게 전화하여 좀어떠신가 살펴보고 전화를 달라고 했는데 30분이 지니도 연락이 없었죠. 정말 답답해 미치겠더라구요. 그러다 울진에 도착했으며, 도착과 동시에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서는 힘들거 같아서 전남대병원으로 아버님이 가고 계시니 빨리 내려 오라구요. 청천병력과도 같았으며, 그자리에 주저않은 저는 이내 사랑하는 사람과 통곡을 했으며, 급히 챙겨 그사람과 바로 전남대병원으로 갔죠. 응급실로 가보니 참, 말도 나오질 않더군요. 동생에게 물어보니 아버님이 너무나 괴로우신나머지 토요일 저는 울진으로 가고 있는 시간 약을 드셨다구요. 병원에서는 해독약이 발명되지 않았으며, 가망이 없다며 모시고 내려가라고 했고, 눈치가 있으셨던 아버님은 하느님 품안에서 가고싶으시다며, 성가롤로병원으로 가자고 하시더군요. 아버님에 의견을 존중하여 고향병원으로  갔으며, 중환실에서 약한번 써보질 못하고 8일만(10월27일)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로 막내 동생이 있었으며 죽여 버렸을겁니다. 그렇게 속썩였으면 빛도 갚아주며 잘살아 달라고 빌어 봤는데 그 사채 몇푼에 아버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그놈이 너무 미웠으며, 차라리 아버지가 주시겠다던 돈을 받을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천주교(성당)의 사목회장님 이셨거든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5년간 살을 맞대고 살았으며,  양쪽 집안에서 인정한 사위, 며느리로 그사람과 저는 상복을 입고 맏상주, 맏며느리로 아버님의 3일장을 치루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땠을까요. 저는 그날부터 12월까지 술로 폐인생활을 했으며, 그러던 도중 어려서 절친 했던 친구(여자)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친구가 술집을 경한다는 것도 알았으며, 친구들과 매일 친구집에서 술로 집에도 가질않고 차에서 쪼그려 자며, 망신창이 같은 생활을 했죠. 아버님 살아 생전에 부채들도 정리할수가 없었으며 결국 가족들과 상의하여 법원에 상속포기 각서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사랑하는 그사람은 절위로해 주셨으며, 장모님은 저와 같이 아파해 주었죠. 그러던중 술집을 경영하던 친구가 제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넌 너히 가정 잘돌보고 난내가정 잘돌보고 정말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우정을 과시하자면서 저에게 1억7천이라는 자기앞의 건물문서를 주며, 니가 할수 있는 만큼 대출받고 사업을 하라구요. 여기서부터는 줄여서 쓰겠습니다. 15일간 그문서를 갖고 있던 저는 그친구에게 전화해서 문서를 돌려주며, 우정은 고마우나 난 이돈을 쓸 수없다 내가 100%로 성골 할 수 있다면 모를까 실수 할수도 있는데 내가 도둑놈도 아니거니와 너의 우정은 고마우나 이렇게 큰돈은 쓸수가 었다며 돌려 주었습니다. 이런 친구 여러분들께서는 있으신가요. 정말 그친구와 저는 평생 죽을때 까지 우정을 잊지말자며, 그래 언젠가 니가할수 있는 일이 생기면 그때 말해라 손닿는데까지 도와 주마라구요. 고맙다 친구야 잘가라 정말 고맙다 말이라도 고맙다. 그렇게 저히의 우정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던 2월초순 장사가 꾀잘되는 식당이 나와서 알게 되었고 저는 조심스럽게 그친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약 4천만원을 들여서 친구 덕분에 어머님 앞으로 식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저히 가족 모두는 그친구에게 정말 고맙다며, 수십번을 애기 했으며,  꼭 성공하면 은혜을 갚겠다고 하며, 고마워 했습니다. 장사 경험이 있었던 친구는 약한달간 저히 가게에서 일을 도와 주었으며, 제사랑하는 사람과도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또 한번사고가 났습니다. 저녁 9시쯤 꼬맹이(사랑하는사람 애칭)가  얼굴이 하애지며, 빨리 식당 문닫고 나가자고 하며, 팔을 잡고 이끌어서 경황없이 나왔습니다. 그사람 마음이 가라않도록 기다려서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처제가 전화 왔는데 처가집에서 우리의 사정을 다알고 식구들이 식당으로 내려 오고 있다구요. 어떻게 된일이냐고 물었더니 집사람이 다니던 회사 사장이란 작자가 저의 처가집에 저녁에 가서 다일러 바쳤다구요, 오실장 이란놈 결혼도 했으며, 아이도 있고 따님의 카드를 자기가 갔다써서 빛에 힘들어 한다구 비난을 했던 것입니다. 어이가 없데요. 도대체 자기가 저히 집시람 에게 무슨 흑심이 있어서 저러는 건가 마침3일전 회사를 그만 두었거든요. 전 그때 집사람에게 말은 안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되요. 언젠가 저에게 집사람이 애기좀 하자며, 이러는 겁니다. 오늘 차고에서 사장님이 단둘이 애기좀하자며, 3시간을 애기를 했다고 내용은 부채를 다갚아 줄테니 열심히 일하라구요. 전 그랬죠 우리가 현대판 노예가 될일 있냐구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도 않았으며, 도대체 그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기로 몇천만원을 다갚아준다니 그래도 그사람에게는 말씀 이라도 고맙다고 하라고 일러두고 절대 받아서는 안된다고 일러두었죠. 저도 같이 근무할때 그전에 일하던 여직원들과 사장사이에  별로 않좋았던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렇게 그 사장이란 작자의 고자질로 우리둘 정말 힘들었습니다. 전 그사실을 알고 바로 처가집으로 가서 빌고 빌며 한번만 기회를 주싶시요.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사정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실망이 크셨던 가족들께서는 헤어지라고 했습니다. 그길로 바로 사랑하는 사람은 집으로 들어 갔으며, 그일이후로도 저히는 몰래 만나며, 전화도 했습니다. 그런던 이 앞주 목요일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그사람과 저는 같이 함께 있으며, 사랑을 다시한번 확인하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도 만나면서 수만번도 더했을 겁니다.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까지도 통화하며, 사랑을 확인 했는데 오후 갚자기 식당으로 가족들께서 오셔서 저히 어머님께 사정은 들으시질 않고 집사람앞으로 터져 있는 카드빛을 갚아 달라며, 그렇지 않을시 법정에서 보자고 하시고 가셨다고 그러더군요. 전 바로 처가집으로 가서 빌고빌며, 한번 기회를 주시면 행복하게 살겠다며, 사정했느나, 들어 주시질 않더군요. 그사람도 갚자기 변심한겁니다. 물론 주위의 어른들의 의견따를수 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하며 제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내가 다잘못했지만 그사람에게 야속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세상에 그렇다고 어제까지만도 사랑하며, 열심히 살자고 했던 사람이 갑자기 법정에서 보자는 당신이 너무 야속하다구요. 그사람 정말 저하고 5년을 사귀었지만 정말 저에게는 소중한 아내였으며, 딸에게는 좋은 엄마였으며, 정말 좋은 며느리 형수 였습니다. 그 사람 마음 충분히 이해 합니다. 벌써 8일이 지났으며, 어디로 가있는지도 모릅니다. 처가 식구들에게 어제도 죄송합니다 빌고빌었으며,  제발 마음이라도 놓을 수 있게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도 가르쳐 주질 않습니다. 그 사람은 밤마다 술에 취하여 걱정스러워 물어 보는 저에게 단란주점에서 맨날 술마신다며 말합니다. 정말 그 사람 사랑합니다. 전 이렇게 처가 식구들께 말했습니다. 그사람과 저 그 큰돈이 터지도록 우릴위해서 썼다면 모르지만 그사람도 형수, 며느리 소리를 들으며, 우리 가족을 위해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되었기에 평생 한번이라도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해달라구요. 여러분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요. 저 정말 최선을 다하여 그사람 사랑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 사람도 저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아직도 느낄 수 있으며 지금은 잠시 피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도 소중하지만 가족들도 사랑하니까요. 평생 신앙으로 사시며, 봉사활동만 하시다 가신 저히 아버님 천당에 계실겁니다. 어버님의 존함을 걸고 여러분들께 맹세합니다. 저 정말 그사람 사랑합니다. 도와 주세요. 지금 저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사람과 절 애인으로 생각하나봅니다. 그사람은 부인 이였습니다. 부부가 어떠한 이유로 이혼하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도와 주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전 그 사람을 지금까지도 아니요. 평생 부인으로 생각하며, 사랑합니다. 이일이 있기 얼마전 그와 저는 열심히 일하여 내년 봄에는 결혼식도 하기로 맹세 했었습니다. 제발 돌아와 달라고 여러분의 정성을 모아 주싶시요. 일면식도 없지만 바보같은 사람하나 살린다고 생각 하시고 저에게 많은 여러분 들께서 돌아오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사랑하는 사람의 메일주소 입니다.

많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01240627@hanmail.net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