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영전야 》
2002년 4월 29일...
입대 전날 나는 집에서 나와
4월 30일 13:00 의정부 306보충대라고 명시된
입영통지서를 들고 수원행 기차를 탔다.
집이 대구라 입대당일 올라가기엔
시간대가 어중간했고
마침 학교를 수원에서 다녔던 탓에
하루 정도 후배놈 자취방에 신세를 지고
바로 보충대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절친한 친구인
진수를 만나서 감자탕집에 들러
밥과 함께 소주를 시켰다.
한달 전에,
우리 삼총사의 한명인 영욱이가 입대했다.
영욱이가 입대하기 전날
우린 셋이 모여 오전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자그마치 18시간 동안 술을 퍼마셨다.
-_-
오늘도 그럴거 같다.
씨바...난...조땐거다... -_-;;
영욱이가 빠진 우린 이미 삼총사가 아니었고
다만 덤앤더머로 불리워지고 있었다. -_-
진수 : 이새키 수업은 안들어가던 놈이 그래도 군대는 가겠다고 왔네. 케케케
알랑 : 난 예전부터 모두가 나의 입대를 슬퍼해주는 환상을 가져왔어.
이제 그 꿈을 이루는거야. 우헤헤헤
진수 : 맞아맞아!! 이럴 때 아니면 누가 우리를 위로해주냐?!!
알랑 : 쿠헤헤헤 군대라도 안가면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 따윈 갖지 않아. 쿠헤헤헤헤
-_-
우린...
덤앤더머다 -_-
그렇게 점심때부터 한잔 두잔 술잔을 기울이다보니
어느새 시계는 5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둘 다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진수 : 어? 어라? 벌써 5시가 넘었네?
알랑 : 닥쳐 이새키야. 니가 언제부터 시간봐가면서 술먹었냐? -_-
진수 : -_-;; 그게 아니라 5시부터 동아리 일정이자나 쪼다야.
알랑 : 아...그렇구나...월요일...일정하는 날이구나...
진수 : 야 빨리가자~너도 애들이랑 인사는 해야지.
그렇게 우리는 술을 먹다 말고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술냄새 펄펄 풍기면서...-_-
동아리방에 도착했을때
일정은 이미 끝나가는 분위기였고
1년 후배인 회장넘이 말했다.
회장 : 아...랑이형 오셨는데...마침 끝내는 분위기니 랑이형 한말씀 하시죠?
알랑 : 먼 말을 해? 됐어~ 뒤풀이나 가자~쿠헤헤헤
진수 : 그래그래. 저새키 말 졸라 많잖아. 이미 10년치 할말 다했어. 뒷풀이 가자~쿠헤헤헤
알랑 : 나 할말이 있다. 십새키야 -_-
진수 : -_-;;
회장 : 자~내일 입대하시는 우리 알랑 선배님의...작별인사가 있겠습니다..^^
뭐? 작별인사?
내가 뭐 죽으러 가나? 에이~암튼...
군대간다 그러면 꼭 영원히 못볼것처럼
그런 식으로 얘기 좀 안했음 좋겠다. 금방 갔다 올텐데 머. 쿠헤헤
알랑 : 음...나...음...그래...내가...내일이면...이곳을 떠나는데...음...
그래...이런 식으로 심각한 척 하다가...
알랑 : 금방 갔다올테니 요 앞 겜방에 가서 스타라도 한겜 하고 있어~쿠헤헤헤헤
-_-
어...어라?
이렇게 농담따먹기하면 여자애 한둘쯤은 웃어주고
선배들은 바보새키라고 비웃어야 정상인데...
모두들 조용할 뿐이다.
알랑 : 하하...왜...왜 이렇게 침울하냐? 나 아무렇지도 않아. 좀 웃어봐 이새키들!!!
회장 : 형...그렇게 안하셔도 되요...내일부턴 못보는데...저흰 형의 진지한 인사말이 듣고 싶어요...
어어...이런...분위기가 이상하다...
알랑 : 어? 어...그럼 머...하하...그래 내일...가는데...
어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소리가 떨린다.
왜이러지?
알랑 : 그래...너희랑 같이 동아리생활하면서 즐거웠고...이곳이 항상 내 집이다 생각했는데...
어? 도대체 왜 이럴까? 목이 메이기 시작한다.
난 괜찮은데...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알랑 : 음...잘갔다올께...
목이 메이면서 머리 속이 멍해졌다.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서운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나는 다만 잘갔다오겠단 말밖에 해줄수 없었다.
이게...헤어지는 거구나...이별이라는 거구나...
후배 : 오빠...울지 마세요...
무...무슨 소리야? 울긴 누가 울어?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구...
난 울지 않았다.
그냥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있는 물방울들을
아무도 모르게 스윽 훔쳐냈을 뿐이다.
회장 : 자자~ 랑이형 가는 것 때문에 분위기가 너무 침울한거 같은데...뒷풀이나 하러가죠?^^
그래...역시 넌 회장의 자격이 있어. 이럴 때 분위기 조절도 잘 하고...
그럼...누구 후밴데...자식...
내가 없어도...동아리는...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자주 가던 대학가 술집에서 뒷풀이가 이루어졌다.
이미 진수와 난 얼큰히 마시고 온거였지만...
내일 입대하는 녀석을 그냥 놔둘 정도로
캠퍼스의 정이 끈끈하지 못한 건 아니다.
선배1 : 랑아...일루와라...형 잔 한잔 받아라...
선배2 : 랑아...누나잔도 한잔...^^
후배1 : 형~ 제 잔두요...
후배2 : 오빠 제 잔도 한잔 받아보아요~
동기1 : 임마...우린 그래도 영원한 동기지? 자 한잔 받아라.
동기2 : 랑아...잘갔다와야돼...자...내 잔 한잔...
진수 : 쿠헤헤헤 오늘 그냥 먹고 죽어버려!! 그럼 군대안가도 되자나 쿠헤헤헤~
알랑 : @_@ 야아~ 이 개쉬키야아~ 이제 도어히 모머게어~
(야 이 개시키야~ 이제 도저히 못먹겠어)
동아리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 과 사람들 모두가 한번씩 찾아온 것 같다.
누가 연락을 한 것인지...
평소에 그리 친하지 않던 선배들이나 동기들도 찾아와
격려의 말을 하며 술잔을 건넸다.
선배1 : 쿠헤헤헤~ 랑이 너 해보고 가냐? 쿠헤헤~
알랑 : 쿠헤헤~ 뭘 해봐요 형? 쿠헤헤~
선배2 :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쿠헤헤헤~응응응응*-_-* 이거...쿠헤헤헤~
알랑 : (왼쪽 주먹을 오른손바닥에 부딪치며) 푸히히힝 이거?이거?
선배 1 : 쿠헤헤~ 그거그거~쿠헤헤~
음...격려의말...;;
이미 우린 제대로 미쳐 있었다. -_-
알랑 : 아뇨...-_-
선배들 : -_-
난...
군대가는 그날까지도
숫총각이었다. *-_-*
취했다.
아주 많이 취했다.
이미 취한줄 알면서도 난 죽어라 술을 부어댔고
몇 번의 오바이트를 하고 후배들이 사다주는 우유를
수없이 마시면서도 영원히 취하고 싶었다.
군대라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 따윈 없었다.
다만 슬펐을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시간이 좀더 지나면 이들에게서 잊혀져야만 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슬펐다.
그렇게 미친 듯이 술을 마셔대고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취해
중간중간 기억이 끊어지고 있을때
그녀가 나타났다.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수미...
같은 과 1년 후배로서 내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 그녀...
그녀가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진수녀석이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
우리 삼총사는 서로 숨기는 것이 없었기에
진수녀석은 자신의 감정을 우리에게 털어놓았고
진수녀석 때문에 우리들마저도 그녀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수녀석이 다가갈수록
수미는 진수에게서 한 걸음씩 더 멀어져갔다.
그녀는 진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에게 분명히 말했었다.
나는 진수오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진수오빠가 부담스러워서 자꾸 멀리하게 된다고...
그녀가 진수에게서 멀어지는 만큼
나와는 더욱 가까워졌다.
나에겐 죄악이었고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녀석이 좋아하던 그녀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 맘은 그녀를 향해갔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린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진수녀석과 단둘이 술을 마셨다.
녀석은 술을 마시는 내내 수미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밤새 술을 마시는 동안
화제를 수미에게 집중시키던 진수녀석은
끝끝내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그런 진수의 모습을 본후로
나는 그녀와 멀어지기 위해 노력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이후 우리 모두에게서 멀어졌다.
서로 마주치는 일도 잘 없었고
어쩌다 마주쳐도 어색한 인사만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지금...
그녀가 찾아왔다.
내일 입대하는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일까...
이미 나는 취했다.
이대로라면 내 속마음을 말해버릴 지도 모른다.
수미가 나타나자
내 옆에 앉아있던 후배들이 자리를 피해줬다.
그래...이미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고있는 얘기겠지...
그녀가 내 옆에 앉았고...
나는 조심스레 진수의 눈치를 살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진수는...
아무 말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둘밖에 없다.
그 시끄럽던 테이블에...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녀와 나 단둘만 앉아있다.
수미 : ...많이...취했어?
알랑 : 어...하하...좀...많이 마셨네...하하...
수미 : 내일...가는거지?
알랑 : 그래...오빠 내일 간다...하하...잘지내라...
수미 : .........
아무 대답이 없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수미 : 내일 갈때...누구 따라가주는 사람 있어?
알랑 : 어...진수녀석이랑...민희랑...니 동기 두놈이랑...그렇게 같이 가준다네? 쓸데없이...하하...
수미 : ...미안...오빠...나도 같이 가주고 싶은데...내일 마침 마지막 시험이 있어서...
알랑 : 괜찮아...많이 따라가서 뭐하냐? 저녀석들만 해도 귀찮아...
수미 : ...미안해...오빠...
도대체...
무엇이 그리 미안한걸까?
어차피...우린 아무것도 아니잖아...
수미 : 오빠...미안해...나는 항상...오빠한테 신세만 지고...해준 것도 없는데...
알랑 : 뭐가 미안하냐? 내가 너한테 해준게 뭐가 있다고...
수미 : 음...오빠...
알랑 : 어...
수미 : 오빠...그러니까...음...
망설이는 폼이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도대체...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수미 : 오빠...나...있잖아...그러니까...
알랑 : 엇? 이자식들 다 어디갔지? 이새키들 여기서 먹은 술이 몇 병인데...
설마 술값내기 싫어서 도망간건 아니겠지?
수미 : ......
나는 그렇게...
수미의 말을 끊어버렸다.
듣고 싶지 않았다.
수미가 하려는 말이 어떤 얘기든지간에
지금의 나완 상관없는 일이다.
수미 : 그래...오빠...잘갔다와...자대가면 꼭 전화하구...편지할께^^
알랑 : 그래...이렇게 와줘서 고맙다. 잘 다녀올께...
수미 : 오빠...꼭...건강해야돼? 나...갈께...
그렇게 그녀를 보내버렸다.
그리고나서...다시 미칠듯이 술을 퍼부어댔다.
그녀가 마지막에 하려했던 말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저 끝없이...끝없이...
술을 마셨다.
그리고...
필름이 끊겼다.
입대전날,
아쉬움을
두려움을
슬픔을
그리고 사랑을...
잊기 위해서...
나는
끝없이 술을 마셨다.
By. All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