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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 전상서

김정미 |2003.04.15 20:58
조회 147 |추천 0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긴 헤어짐의 시간으로 치자면 인사가 너무 간단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표현할 길도 없군요

지금도 바람처럼 구름처럼 전국의 명산을 두루 돌고 계시리라 믿어집니다

도사님과 작별을 하고 흐른 세월이 길었습니다

이젠 절 기억이나 하실지도 궁금은 하지만, 그래도 제가 이렇게 잘 기억하고 있고

심지어는 잊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살아가면서 문득 문득 도사님을 떠올리게 된답니다

특히 먼 산을 나선 날

 멋스런 산장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제 마음 혹시나 해서 기웃거려 보기를

얼마나 했는지 알고나 계십니까

잠시 도사님과 저와의 만남의 인연을 떠올려보려구요

왜냐면요...도사님은 워낙 만인의 연인이시어서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까봐요

몇 해전이었죠  늦은 가을 혼자 지리산을 찾아 들어갔었지요

처음 찾은 큰산을 겁없이 나선 제가 대견하기는 하지만 한편 두려움도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에서 연화천 산장에 이르게 되었어요

날씨는 춥고 해는 지고 피로는 전신을 휘감던 그 시각 그 자리에

긴 수염에 댕기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도사님이 반갑게 저를 맞이해 주셨잖아요

"여자분 혼자서 대단하시네요  어서 오십시요"

평범해보이지 않는 외모가 산 분위기에 잘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지요

어떤 분들은 도사님과 구면이었는지 모두들 하나같이 "도사님! 도사님!"하시더군요

느낌으로나 보여지는 작은 부분에서도 뭔가모를 위엄이 서려있는 듯도 했구요

저 도사님이 있어 이 산장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것이고 그것은 저만의 느낌이 아니었음은

등산객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어요

지리산 깊은 산중...연화천 산장...수염긴 도사님...그리고 홀로 나선 간 큰 아줌마..

그것이 도사님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여기까지 설명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거에요

산중에 혼자 나선 여자가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어제 그 산장에 묵은 사람이 있었나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닌 것이라곤 용감밖에 없는 간 큰 제가 다시 설악산을 찾아 나섰지요

단풍철도 설경의 계절도 아닌 늦은 가을 이었답니다

다행히 첫째날 몇분의 등산객들과 함께 밤을 새게 되었고

둘째날이 문제였어요

산행시작 한시간여 만에 그해 겨울 설악의 첫눈을 맞이하게 되었지요

말이 첫눈이지 워낙 높은 산이다보니 눈사태가 날 정도로 마구 퍼붓었답니다

다음날은 입산통제가 되었을 정도니까요

그날중으로 귀가까지 계획된 산행이었는데 폭설로 인해 대청봉조차도 오르지 못하고

소청산장에 머물게 되었지요

도사님...지금쯤 기억이 나실법 하지 않나요

어느해 겨울...첫눈이 내리고...혼자 나선 한 여자...그리고...

아직도 기억이 가물 가물 하시다면 좀더 설명을 드리지요

산장에 들어서니 가뜩이나 차거운 날씨에 안방이라고 제공된 공간마져 냉기가 흐르더군요

그도 그럴것이 등산객 한명 없고 군불마져 지펴지지 않았으니까요

저를 첫손님으로 해서 이번타자가 들어섰으니

바로...도사님이었잖아요

역시 긴 수염에 댕기머리를 길게 늘어뜨리시고 엄청난 양의 베낭을 짊어지시고 말이죠

이런 만남도 가능할까 생각하고 놀란 저를 향해 태연하게 또 그러시더군요

"여자 혼자서 이렇게 눈도 내리는데 어찌..."

도사님...아직도 긴가 민가 하실테니 제가 결정적인 증거를 말씀드리죠

갑작스런 폭설에 단벌옷 모두 젖어 오돌 오돌 떨고 있는 저에게 도사님은 베낭속에서

준비해 오신 여벌의 옷을 꺼내 저에게 건네주셨잖아요

두툼한 바지와 웃옷을요

남자옷이라 망설이는 저에게 괜찮다고 하시면서요

그 옷으로 그날밤 얼마나 따스하게 지냈는지요

밖엔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또 쌓여가고 우린 밤새워 대화를 나누었지요

"혼자 그렇게 산을 다니는 이유나 좀 물어봅시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로 인해

오랫만에 누구에게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저의 아픔들을 내 놓기에 이르렀지요

너무나 솔직했던 저의 고백들은 봇물이 터진 듯 쏟아졌고

저의 이야기에 성심성의껏 조언을 해 주셨잖아요

그 순간에 지으시던 도사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진실로 저의 아픔을 감싸주려고 하시던 그 자애스러움이요

오랫만에 마음을 열었기에 더 기억에 남은 순간이었을거에요

전국의 산이 쓰레기더미로 인해 죽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와 하시면서

열번을 토하시던 기억도 생생하구요

참으로 뵙기 힘든 귀한 분임을 충분히 입증시켜주던 설악의 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전국 명산을 돌며 인생공부도 하고 약초도 채취하면서 신선처럼 살아간다고 하시던 도사님...

미안해요...오염된 세상 살면서 제 두뇌도 모두 오염이 되어 버려 도사님의 귀한 말씀 한자락도

이곳에 재대로 옮겨놓지 못하네요

하지만 많이도 경외스러웠고 닮고픈 부분들로 인해 지금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잖아요

깊은 산...폭설...따스한 옷...인생이야기...산장의 분위기...등등

제 어찌 이런곳 용감히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런 경험 가능할 수 있었으리요 생각하니

귀하고도 귀한 시간들이라 여기며 보낸 밤이었지요

"어디가면 도사님을 다시 만나질까요"
"전국의 산이 다 나의 집인걸요...일년의 절반은 지리산과 덕유산 향적봉산장에 머물지요"

 

 

또 얼마의 세월이 흐르고...

우연히 먼산을 등산할 기회가 또 주어지자 도사님 생각이 나더군요

일박을 할 예정으로 용감한 산행길에 올라 향적봉 산장을 찾았답니다

무주구천동을 구비 구비 돌아 또 걸어서 신작로길 한시간반

백련사를 뒤로돌아 덕유산을 오르기 시작했지요

만약에 행운처럼 도사님을 또 만나진다면...몇가지 물어볼 말도 준비해 간 저에게

근엄하면서도 약간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멋진 대답을 주시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힘든 산행길을 기대의 풍선을 띄우며 그렇게 정상을 향했었지요

향적봉산장...그러나...

오늘 아침 진주로 내려가셨다고 하더군요

기억나세요? 그날 어떤 아가씨 중매를 서러 부랴부랴 떠나셨다구요

정말 한발이 늦었더군요

차라리 그런분 모른다고 했다던가, 요즘은 이곳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했었다면

이런 실망감은 다소 줄어들었을텐데요

도사님...그날의 중매는 잘 되었나요

이제 확연히 아시겠지요 저를...

만약에 그래도 기억에 없다면 저도 눈물을 머금고 이제부터는 도사님을 잊을래요

그러시지는 않으리라 믿어지기에 이렇게 글 쓰고 있잖아요

요즘 청학동에서도 인터넷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도사님 계신곳 그 어디에 인터넷이 가능하길 진심으로 빌께요

제 글 혹시 발견하시게 되면 반가히 연락주세요

이제 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철없어 여쭈어보지 못했던 더 깊이 있는 물음들 도사님앞에

서리 서리 펴놓고 해답 들어보고 싶거든요

하늘이 무너질 듯이 힘들어지는 날은 어찌해야만 하는지...

왜 가슴이 자꾸만 두근거려지고 세상에 자신이 없어지는지...

도사님~어디계시나요

우리나라 말에 많이 등장하는 삼이란 숫자처럼

세번의 만남은 주어져야 할 것같아요

올 가을엔 어느산을 떠나면 도사님을 만날수 있을지 다시 길 떠나볼려구요

인터넷에서 보다는 그래도 깊은 산중 낭만적인 산장이 더 어울리겠지요

기다리고 소망하며 기약있는 이별의 글 접을께요

만남의 그날까지 몸 건강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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