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IMF...나에게도 크나큰 변화가 있었다.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명퇴..
이후 경제적 문제로 배우자가 직장생활을 한후 늦은 귀가, 외박이 이어지더니 99년 8월 가출로 인한 가정 붕괴..
그당시 찾아나서지 않은 나의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나 자신이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긴하다.
왜? 그랬을까?? 머리가 텅빌 정도의 감당하기 어려운 큰 충격으로 아무 생각도 없었기에 그랬던것 같다.
가출 신고를 하고 새로운 직장생활등으로 신세 한탄할 시간 여유도 없이 살다
혼자라는 것을 인지하고 배신감과 외로움에 몸서리 칠때 '채팅'이란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을 들을수 있다는 매력에 컴 앞에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대한민국에서 믿음을 가질수 있는 여성이 아무도 없다라는 생각에 채팅을 하면서도 만남, 모임등의 off-line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중 우연한 기회로 마음을 주고 받을 정도의 여인을 2004년 5월 만날수 있었다.
그녀는 40의 미혼녀..
남은 인생의 동반자가 될것을 서로 약속하며 지내던 어느날..그녀에게 불행의 싹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유방암 진단'
그후 그녀는 내곁을 떠났다. "중국에 갈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며.....
1999년..2005년..두번의 충격으로 사람을 만난다는것이 겁이났다.
이전의 충격이 두번씩 있었기에 나의 마음을 절대 열지 않을것이라고 다짐 했었는데 나에게 또하나의 인연이 다가왔다.
나의 Daum 프래닛에 실려 있는 하고픈 이야기, 음악등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한 여인이 나에게 손짓을 한 것이었다.
메일로 대화를 시작 했었는데 몇일만에 나의 마음을 쪽집게 처럼 집어내던 그녀..
프래닛의 하고픈 이야기를 몇번씩이나 읽었기에 많은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나를 훤히 들여다 볼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그녀..
나의 생각과 동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그녀도 돌싱 이었기에 서로의 외로움, 고독, 행복을 찾아줄 자신이 있다고 당당히 말한 그녀..
어떤 사람일까? 매우 궁금했었다.
12월..우리는 첫 만남을 약속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가 있는 해운대로 향했다.
한달여 메일을 통한 대화가 있었기에 첫 만남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는데 막힘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내가 있는 집을 둘러보고 싶다고 하기에 함께 아파트로 돌아왔다.
8여년을 혼자 지냈지만 언제, 누군가가 보더라도 깔끔하게 지냈던 터라 부담은 없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메일과 전화통화(그녀가 하던일이 있어 시간 관계상 만나지는 못했어도 매일 통화) 주말과 휴일의 만남을 이어가며 더 많은 대화와 마음을 주고 받았다.
그러던중 그녀가 생활하던 오피스텔의 전세 만료일이 2월 인것을 알았고, 그 이전에 아파트로 이사 올것을 제의했다.
(모아나운서와 모 재벌가 아들이 갑작스레 결혼했었던것과 같이 우리들의 경우도 너무 빠르다 보니 주위에서 우려의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랜 기간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너무나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대화가 오갔다.
서로의 마음이 일치하고 결정을 내린후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 드린후
12월 중순에 그녀의 부모님, 형제 가족들과 함께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고
성탄절을 앞두고 그녀의 오피스텔에서 출퇴근을 하며 더 많은 대화와 사랑을 나누었다.
2007년의 떠오르는 첫 태양을 해운대 백사장에서 함께 바라보며 서로가 외롭지않게 해주기로 다짐하며 잃었던 행복을 찾아주기로 약속도 했었다.
1월초..나는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그녀의 의사를 100% 반영한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고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동안 그녀는 공사 진행을 꼼꼼이 챙기기도 하고 원활한 공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공사가 완료된후 그녀는 새로운 생활 집기(장롱, 침대, TV, 냉장고등....)를 구입했고 그녀가 해운대를 떠나 이사를 왔다.
깔끔하게 고쳐진 아파트와 집기 비품의 배치후 나의 모친, 누님내외, 형님내외분이 오셔서 보시더니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불과 4~5개월 전만 하더라도 퇴근길 발걸음이 무거웠으나 이제는 퇴근 시간이 기다려진다.
아침 출근길에 나누었던 포응과 입맞춤을 저녁에 집에 들어설때도 똑같이 하고있다.
정말 사랑스러운 그녀...그녀의 행복과 우리들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은 지나왔고 이제는 밝은 태양아래 소리쳐 웃을 일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