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
양선아와 내가 양수리의 한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네 시 무렵이었다. 내가 그녀와 이곳을 가끔 찾는 것은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도 있지만 창 밖으로 펼쳐 보이는 한강의 풍경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또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연인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남의 눈에 띄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그녀나 나나 함께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는 그 누구에게 들킨다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게 뻔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명인사가 아닌가. 오늘도 사람들 중에 더러 우리 쪽을 보는 사람은 있었지만 다행히 아는 척하면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프런트에서 요금을 지불하고 키를 받아 오는 동안 양선아는 먼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칠층에 머물러 있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와 문이 열렸고, 우리는 나란히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나는 육층의 버튼을 누르고 나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양선아를 등뒤에서 껴안고 그녀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움켜잡으며 말했다.
「사랑해.」
그러자 양선아가 내 팔을 풀고 몸을 돌려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살짝 대었다가 떼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벌거벗은 몸으로 커튼을 열어 젖혔다. 순간 한강을 발갛게 물들인 석양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석양빛을 받으며 출렁거리는 물결이 수많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그 금빛 물결 위를 사공 없는 나룻배 하나가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양선아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난생 처음 보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나는 침대 속에 누워 있는 그녀를 불렀다.
「오랜만에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는 것 같아요.」
양선아가 내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그녀는 벌거벗은 몸을 커다란 수건으로 젖가슴과 아랫도리를 가리고 있었다.
「나도 그래.」
나는 양선아의 뒤로가 그녀를 감싸 안으며 두 손으로 탄력 있는 젖가슴을 더듬었다. 그러자 그녀가 수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몸을 돌리면서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갈증에 시달렸던 사람처럼 탐욕스러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키스가 점점 격해지면서 내 몸은 새로운 욕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가 왼팔로 그녀의 몸을 껴안고 오른손을 밑으로 내려 양선아의 사타구니를 탐색하자 그녀는 몸을 비틀었다. 그녀의 사타구니는 숲 속의 옹달샘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이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석양빛 꼬리에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다리를 벌리게 하고서 새벽에 토끼가 옹달샘에 갈증을 느낀 목을 축이듯 그곳에 입을 맞추고 혀를 내밀어 뜨겁게 달아오른 욕정의 갈증을 풀기 시작했다.
양선아는 온몸을 떨며 내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면서 신음 소리를 거칠게 내뱉었다. 더 이상 버틴다는 것이 불가능했는지, 그녀는 내 몸을 살짝 밀어 바닥에 눕히고 내 몸 위로 올라가 뻣뻣하게 일어서서 숨이 찬 듯 헐떡거리고 있는 내 성기를 자신의 몸속으로 받아들였다.
순간 양선아는 짜릿한 쾌감에 팽팽하게 긴장된 몸을 뒤틀며 떨었다. 내가 두 손으로 꼭지가 단단해져 있는 그녀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면서 허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자 더 굵어지면서 더욱 강렬해진 성기가 그녀의 몸속에서 요동을 쳤다. 쾌감이 절정에 달하자 거친 신음 소리가 울부짖음으로 바뀐 그녀는 목을 뒤로 젖히면서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어 댔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돌려 옆에 누워 있는 양선아를 품에 안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여자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러나 양선아는 자동차에 치여 나 동그래져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녀를 끈질기게 추적해 오던 그 자동차는 도로에 넘어져 있는 그녀를 무참히 깔아뭉개려고 후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동차 바퀴에 깔려 내장이 터지고 피범벅이 된 채 처참하게 죽은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안 돼!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내일이면 양선아는 종합 검진을 받기 위해 류근호 박사가 소개해 준 대학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종합 검진을 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겠지만 나는 실낱같은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희망일지 모르지만 그건 류 박사의 진단이 오진이기를 바라는 거였다.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한사코 종합 검진을 받지 않으려고 버티는 양선아를 강제로 데리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위 전문의인 의사는 손으로 그녀의 배를 눌러보더니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입원허가서에 사인을 했다.
입원실은 특실답게 환자용 침대와 소파가 있었고, 서랍장 위에 텔레비전도 있었으며, 한쪽 구석에는 깨끗한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었다.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창 너머에는 소나무 숲이 무성한 아름다운 공원이 내려다 보였다.
잠시 밖의 풍경을 음미하며 서 있었던 양선아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것이 아니라 마치 어느 관광지의 호텔에 들어온 것처럼 입원실을 마음에 들어 했다.
여기가 병원의 입원실이 아니고, 관광지의 호텔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을 텐데…….
양선아는 구두를 벗고 침대에 올라가 다리를 꼬고 앉았고, 나는 창가에 있는 소파에 앉으며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 줘요. 내 병이 심각한 가요?」
「아니.」
나는 양선아가 모든 걸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그녀를 쳐다보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 말해 버릴 것 같은 충동에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을 맞이하듯 재빨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입원까지 하면서 건강 진단을 받아요?」
「류 박사 말에 의하면 위궤양이 심한 편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확실히 검진을 받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다음날부터 양선아는 파란색의 환자 가운을 입고 내시경 검사를 시작으로 해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
내시경 검사를 할 때 양선아의 위 속의 문제 부위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한 부분은 상처가 이미 아물어 있었고, 다른 한 부분에서는 상처 부위가 돌출 되어 있었다.
의사가 위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개의 위 조직 일부를 떼어 내자 그 부위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밖에 다른 장기로의 전이를 알아보기 위해 X선 조율 검사, 단층 촬영 등의 검사를 했다.
우리는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주 오래 전에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천구백칠십 년대 작품인「러브스토리」였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가 어려움을 딛고 맺어졌으나 불치의 병에 걸려 여주인공이 먼저 죽게 되는 순수한 러브 스토리였다.
올리버는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우수한 청년이었다. 어느 날 올리버는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래드크리프 여대생인 제니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곧 친해지면서 데이트를 거듭할수록 점점 사랑이 깊어 갔다. 제니는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과자가게집의 딸로서 오랜 숙원이던 불란서 유학을 눈앞에 두고도 올리버의 청혼을 거절할 수 없었다.
올리버가 제니를 아버지에게 소개를 하자, 아버지는 두 사람의 신분 차이를 들어 반대했다. 그 일로 인하여 부자지간은 점점 멀어져 가는데, 이에 격노한 아버지는 만약에 올리버가 제니와 결혼을 하면 학비 일체의 송금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올리버는 아버지의 으름장에 굴하지 않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신방을 꾸몄다. 제니는 올리버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직장을 나가고, 올리버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난하지만 두 사람은 행복했다.
드디어 올리버가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개업을 했다. 그러나 이 행복도 잠시 뿐, 제니는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게 되었다. 올리버는 제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제니는 스물다섯 살이란 짧은 생애를 마치면서 사랑하는 올리버에게「밝게 살아요」라고 한 마디를 남겼다.
「러브스토리」는 후회 없는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뜻하고 있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양선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소리 없이 울었는지 그녀의 눈은 발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각종 검진을 받으면서부터 오히려 양선아의 몸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어 정맥주사에 의하여 영양분을 섭취해야 했다.
양선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내가 말을 해주지 않아도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그녀는 자신이 위암에 걸렸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걸 스스로 결론 내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위암은 조기 발견하면 거의 완치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 그녀는 수술하면 완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하루빨리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양선아가 입원 한지 오 일째 되는 날이었다. 담당 의사가 간호사를 시켜 나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나는 곧 늑대한테 잡아먹힐 사람처럼 초조해 하며 간호사가 일러준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은 꼭 사진현상실 같았다. 벽면마다 필름들이 걸려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의사가 의자를 젖히고 드러눕다시피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벌떡 몸을 일으키고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쓱쓱 비비며 말했다.
「알고 계셨겠지만, 위암입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덤덤하게 말하는 의사를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어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냉정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괴로움을 감출 수가 없어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내 심장을 멈추게 한 말은 의사의 다음 말이었다.
「암세포가 이미 간과 십이지장에까지 퍼져 있어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암 환자는 약물요법과 방사선요법이 근본 치료가 아닌 이상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위암의 경우에는 일단 수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양선아는 그 수술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게 의사의 말이었다.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그녀의 마지막 남은 시간은 길어야 반년이었다. 의사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양선아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암을 정복할 수 있는 약품이 개발되었다고 가끔 매스컴에서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암은 여전히 정복할 수 없는 불치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양선아가 그 많고 많은 병중에서 암에 걸린 것이다.
나는 다 타 버린 담배꽁초를 제대로 끄지 않은 채 재떨이 안에 던져 넣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제대로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는 재떨이 안에서 계속 타고 있었다. 나는 입원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다리가 후들거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아 제대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의사가 뭐래요?」
나는 차마 양선아와 눈을 마주할 수 없어 양팔로 그녀를 껴안으면서 머리를 가까이 끌어당겨 그녀의 입술에다 키스를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병세가 악화된 그녀의 입술은 예전처럼 향긋하지도 촉촉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참 동안 서서 그녀와 키스를 길게 나누면서 평생 한 번도 불러 본 일이 없는 하나님을 찾았다.
「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이 가련한 여자를 병마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교회에도 나가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은 물론 착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행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 약속을 어길 시 그 어떠한 고통도 달게 받겠으며, 저의 생명까지 바치겠나이다.」
나는 하나님이 감동하시기를 빌면서 내 생명을 걸고 하나님과 약속했다.
「위암이라고 하죠?」
양선아가 내 품안에서 빠져나오며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녀는 내 눈빛에서 내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으로 말하는지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망설이는 내 표정이 이내 심하게 굳어 버렸다. 이윽고 어쩔 수 없이 나는 혹독한 고문을 못 이겨 범행을 자백하는 죄인의 심정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을 느끼면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 것에 후회하면서, 왜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가 하고 내 자신을 질책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양선아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이미 그녀 나름대로 예상했던 일이었겠지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슬프고 두렵고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품안에 안으며 거짓말을 했다.
「겁먹지 마. 암에 걸렸다고 다 죽는 게 아니잖아. 의사가 그러는데 위암은 다른 암과 달라서 수술하면 거의 완치된다고 했어.」
양선아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계속해서 소리 없이 울음을 토해 냈다. 나는 그녀가 앞으로 어떤 고통을 겪는다 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 이가 갈리도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양선아는 위의 조직 검사를 하고 난 후부터 검은색의 변을 계속 배설하면서 토혈까지 했다. 조직 검사를 할 때 떼어 낸 위의 상처 난 부위가 아물지 않아 계속 나오는 피가 굳어지면서 검은색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조직 검사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그녀가 조직 검사 후부터 검은색의 변을 배설하자 걱정과 함께 당황해진 나는 단단히 항의를 하기 위해 담당 의사를 찾아갔다. 만일의 경우 그녀에게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젖 먹던 힘까지 다 해서 담당 의사를 두들겨 패 줄 것 같은 기세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조직 검사할 때 위에서 떼어 낸 부위에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아무 영향이 없는 겁니까?」
「곧 괜찮아질 겁니다. 조직 검사는 아주 작은 부위를 떼어 내니까 상처는 곧 아물게 됩니다.」
내 걱정과는 달리 담당 의사는 마치 감기 증세를 가지고 얘기하듯 얼굴에 엷은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담당 의사의 말은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 상처가 아문다고 해서 양선아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암세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은가. 다시 입원실을 향해 한 발짝씩 걸음을 떼어놓는 내 마음은 여전히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곧장 양선아의 입원실로 가지 않고 복도 끝 편에 있는 흡연실로 들어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깔려 있었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휴-!」
나는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길게 토해 냈다.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선아가…….」
별안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려 나는 더 이상 창문 밖을 쳐다볼 수 없었다.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고 억지웃음을 띠며 내가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양선아가 와락 달려들어 내 몸 속으로 파고들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예요? 전 선생님이 나 혼자 남겨 두고 집으로 가셨는지 알았어요.」
양선아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선아를 혼자 남겨 두고 내가 가긴 어딜 가. 담당 의사를 만나고 오는 길이야. 조직 검사를 하고 나면 모두 다 검은 변을 보게 되니까 걱정하지 말래.」
나는 두 손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양선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양선아를 마주보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간호사가 문을 노크하며 들어올 때까지 그렇게 서 있었다.
양선아와 간호사의 대화-간호사는 그녀의 수필집인「스물아홉에 느낀 사랑」의 지독한 애독자였다-가 길어지자 입원실을 살며시 빠져나와 담배를 피우기 위해 휴게실로 향하던 나는 새삼스럽게 집에 있는 아내가 생각났다.
집에 안 들어 간지가 벌써 사흘째였으나, 나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연락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아내에게는 내 외박이 다행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큰 소리로 오가며 싸움은 안 했지만 이미 나와 아내 사이에 패인 골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 대화가 끊긴 집안은 벙어리 가족들이 사는 것처럼 적막 강산이 따로 없었다.
어쩌다가 술에 취한 내가 아내의 몸에 손을 대기라도 할 때면 아내는 기겁을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딸이 자고 있는 방으로 가 버렸다. 그러다가 남남처럼 아예 방을 따로 쓰기 시작한 것이 아주 옛날 일처럼 기억될 정도로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내가 이혼을 요구하면 들어주지 않을 게 안 봐도 뻔했다. 자존심이 대쪽같이 강하고 남달리 주위의 이목과 체면을 중요시하는 아내는 절대적으로 이혼은 안 된다면서 대신 나를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고 멸치 볶듯이 달달 볶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것이다.
그러나 양선아가 암에 걸려 나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지금 나는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비록 그녀가 더 이상 살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아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양선아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을 하고 이동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거의 타 들어간 모닥불이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차가운 냉소를 띠며 조금씩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그 위로 눈보라가 매섭게 불고 있었다. 그곳에서 양선아가 속살이 비치는 얇은 하얀 원피스만 입은 채 추위에 바르르 떨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양선아의 얼굴은 여기저기 찢긴 상처 위에 작은 핏덩어리들이 엉겨 있었고, 누구한테 심하게 얻어맞은 듯 눈자위는 시퍼렇게 멍이 든 채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그런 양선아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에 엉엉 큰 소리를 내며 눈물이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양선아가 앞만 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힘이 하나도 없는 그녀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넘어 질듯 비틀거렸다.
양선아를 향해 뛰어가려고 했지만 나는 유리벽에 갇힌 사람처럼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소리를 크게 질러 그녀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구멍 밖으로 개미 소리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을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난 내 몸은 마치 비를 맞은 것처럼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휴-!」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꿈속에서 본 양선아의 모습이 현실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내 마음을 괴롭혔다.
나는 내가 꾼 꿈이 쓸데없는 개꿈이길 빌며 양선아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게 조용히 이동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잠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창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이 그녀의 자는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 그녀의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양선아는 토혈을 한 후부터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반적인 진통제 두 알 정도로 통증을 멈추게 할 수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더욱 강한 진통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양선아의 통증은 암 부위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극심한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진 그녀는 결국 마약성 몰핀을 맞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담당 의사가 양선아에게 항암제를 투여하기 위해 나를 불렀다.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는 항암제 투여뿐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항암제 투여 시에는 약 오십 퍼센트는 생명이 연장되지만 삼십 퍼센트는 효과가 없고, 나머지 이십 퍼센트는 부작용으로 인해 병세가 더욱 악화될 수 있습니다. 항암제는 이런 부작용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를 받은 후 투여하고 있습니다.」
담당 의사는 나를 양선아의 이종사촌 오빠로 알고 있었다.
「항암제를 투여할 경우 약 오십 퍼센트가 생명이 연장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생명이 얼마나 연장되는 겁니까?」
가뭄에 물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메마른 어조로 내가 물었다.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두 배 정도는 연장되거나, 아주 드물지만 완쾌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을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을 느끼면서 담당 의사의 진료실을 나와 입원실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앞으로 겪을 양선아의 고통은 지금껏 내가 상상조차 못했던 고통이 될 것이다.
「암세포는 정상적인 세포보다 분열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세포 분열이 빠른 세포들만을 선택하여 죽이는 약이 바로 항암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체에는 암세포 말고도 머리카락, 소화기 계통, 백혈구 등 세포 분열이 빠른 세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암제를 투여하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소화가 안 되어 구토를 하고, 백혈구의 파괴로 면역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항암제의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어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나는 담당 의사가 한 말을 머릿속에 되뇌며 입원실 문을 열었다.
거의 일주일만에 들어가는 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남의 집을 방문한 것처럼 문을 여는 것조차 매우 낯설고 어색했다. 분명 아내는 마음에도 없는 잔소리를 한바탕 퍼붓고 나서 표독스럽게 화를 낼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내는 나에게 얼굴 한 번 돌리지 않았고, 입도 꼭 다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예상했던 상황이 백팔십도로 빗나가자 어정쩡해진 내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한동안 머뭇거리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내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툭 쏘듯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러면 그렇지, 나를 가만히 놔둘 아내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오늘밤도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벌써부터 몸이 지치는 것 같았다.
「당신 소원대로 해줄게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았다. 아내의 입에서 이혼해 주겠다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오다니, 아내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으려는 배려 같았다.
「하지만 정식 이혼은 안돼요. 그냥 헤어지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지?」
헤어지기는 헤어지는데 정식 이혼은 안 된다는 아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도 정식으로 당신하고 헤어지고 싶지만 애들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자존심이 강하고 주위의 이목과 체면을 중요시하는 아내로서는 그럴듯한 발상이었고, 내가 그러기는 싫다고 하여도 한 번 마음을 굳힌 아내의 마음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좋아. 그렇게 하기로 하지.」
「당신 물건들 대강 싸서 서재에 갖다 놓았으니까, 그 여자한테 가 보세요.」
「그 여자?」
나는 아내의 차가운 얼굴 표정을 보면서 길게 숨을 내뱉었다.
「…….」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날카롭게 쳐다보는 아내의 눈빛에 나는 도저히 아내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지난번 미행 사건 이후로 내가 염려했던 대로 아내는 벌써 양선아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어차피 알게 될 일이고, 어쨌든 한 번은 거쳐 갈 일, 나는 오히려 다행이지 싶은 생각에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비죽 흘러나왔다.
「그 여자 암에 걸렸다고 하는데, 잘 돌봐 주세요.」
양선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한 아내의 목소리는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아주 차분했다.
나는 문득 오래 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최은수를 생각해 냈다. 그는 룸살롱에 다니던 호스티스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가, 그 여자에게 실연을 당하자 처절한 사랑의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다 목숨을 헌신짝 버리듯이 벗어 던진 친구였다.
나는 옷가지와 약간의 사물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이제야 최은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양선아가 내 곁을 영원히 떠나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괴로워도 나는 최은수처럼 자살할 용기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그 호스티스를 사랑했던 만큼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아내와의 이혼은 내가 양선아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루가 맥없이 흘러가는 것을 속상해 하면서도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깊은 무력감에 빠져든 채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선아에게 항암제 치료를 받도록 해야 돼.」
「완치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할 수 있다는 기대조차 가질 수 없는데, 참기 힘든 고통스러운 치료를 선아 보고 받으라고?」
「밑져야 본전이잖아.」
「밑져야 본전이라고? 만약 완치가 된다면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해봤자야.」
「좋아. 그러면 선아에게 물어 볼까?」
「어떻게? 수술하면 금방 완치될 거라고 믿고 있는 선아에게 확신조차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겠냐고, 안 받겠냐고 물어 보라고?」
「그건 안 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으로 내 자신과 목소리를 높여 가며 쓸데없는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