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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 20. <그녀의 행방>

스토커 |2007.03.29 10:08
조회 503 |추천 0

그녀의 행방

  이경아의 소식이 끊긴 지 벌써 열흘 째……. 1년이나 된 것처럼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 그 열흘 동안 오승구는 단 한순간도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뽀얀 안개를 뿌리며 내리고 있는 창 밖의 진눈깨비를 바라보면서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필터까지 타 내려온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끄고 나서 오승구는 이경아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 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그녀의 핸드폰으로, 다음엔 레코드 가게로, 마지막으로 그녀의 원룸으로 전화를 했지만 그녀는 그 어떤 곳에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앉아서 이경아의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무력감에 오승구의 가슴은 강한 통증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경아가 속칭 ‘외로운 남자’라고 전화질을 해대던 그놈에게 해를 당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승구를 괴롭히고 있었다.

  오승구는 책상 서랍을 열고 수북히 쌓인 명함들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박철승의 명함을 찾았다. 벌써 그에게 일을 의뢰한지 한 달을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다 할 실적 하나 올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경아의 실종을 방관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의 변명에 의하면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남자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그녀가 실종되리라는 것을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철승의 명함을 찾은 오승구는 수화기를 들고 일곱 개의 전화번호 숫자를 손가락에 힘을 주어 하나 하나 꾹꾹 눌렀다.

  “여보세요? 박철승입니다.”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박철승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오승구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치 이경아의 실종과 관련된 원인 제공자가 박철승인 것처럼, 그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오승구는 험악한 표정을 짓고서 왈칵 화를 내며 물었다.

  “휴-! 죄송합니다. 지금 부지런히 이경아 씨의 행방을 찾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까지 오리무중입니다. 휴-!”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박철승은 말을 하기 전에 한숨을 길게 내뱉더니 말을 끝내고 나서도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이경아의 행방을 찾느라 지친 그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여전히 험악한 표정을 하고서 오승구는 사뭇 시비조로 물었다.

  “…….”

  박철승은 오승구가 듣기에 심한 욕설을 퍼붓는다고 해도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아직까지 의뢰 받은 일을 해결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이경아를 보호하지 못한 것도 자신의 책임이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상대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럴 때에는 상대방이 계속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좋다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터득한 그였다.

  “앞으로 이틀 간의 여유를 더 주겠는데, 만일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을 경우엔 우리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렇다할 소식이 있을 경우엔 약속한 금액에 두 배를 더 주겠습니다.”

  오승구는 사뭇 명령하듯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까짓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괴상한 전화을 걸고 사진을 보낸 그 놈은 다음의 일이었다. 이경아만 찾을 수 있다면, 다시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보다도 더한 돈도 아낌없이 줄 수 있었다.

  

  박철승은 답답한 가슴을 달래느라고 가슴 위에 엇갈리게 팔짱을 낀 채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하면서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오승구의 전화를 받은 박철승은 그와의 통화가 끝나자 피우던 담배를 종이컵에 넣었다. 필터까지 타 내려온 담뱃불은 종이컵에 남아 있던 커피 찌꺼기에 닿으면서 치직 소리를 내며 꺼졌다.

  열흘 전,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당한 기세로 레코드 가게 안으로 들어선 중년부인과 만난 이경아는 손에 든 CD를 바닥에 떨어뜨릴 정도로 당황해 했다. 마침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고 있던 박철승은 중년부인이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취조실에 끌려가 형사에게 심문을 당하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서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었다. 어느 새 그는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이후부터 박철승은 이경아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경아가 감쪽같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고, 그 이유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오승구의 당황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박철승은 그에게 ‘당신 부인이 레코드 가게로 찾아가 이경아를 만났다’고 간단명료하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곧이곧대로 사실 그대로 말을 해준다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그가 이성을 잃고 무슨 일을 어떻게 저지를지 모를 일이었다. 그로서는 모르는 게 약이었다.

  그때 오승구는 제발 이경아를 찾아 줄 것을 박철승에게 영국 신사처럼 매우 정중히 부탁을 해왔었다. 그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그는 우선 그녀의 행방을 찾는 것으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박철승이 이경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녀의 레코드 가게와 그녀의 원룸이 전부였다. 겨우 그것으로 바람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 그녀의 행방을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

  적어도 자신은 프로라고 자부했었는데……. 박철승은 처음 이 일을 오승구로부터 의뢰 받았을 땐 무척 쉬운 일이라 아주 간단하게 한치의 실수도 없이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더더구나 오승구의 아내 등장으로 이경아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바람에 그의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앞으로 이틀 간의 여유를 더 주겠다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경우엔 우리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 오승구의 최후 통첩을 받은 박철승은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그였다. 그는 뭉그러진 자존심에 뽀얀 안개를 뿌리며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는 창 밖으로 몸을 던지고 싶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어두워지면서 시퍼런 칼날 같은 혹독한 추위가 들이닥쳐 거리는 낮에 내린 진눈깨비가 얼어붙어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오승구의 마음은, 오늘은 제발 이경아가 원룸에 돌아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사무실 건물 지하의 카페에서 철 지난 논가의 허수아비처럼 쓸쓸하게 혼자 앉아 칵테일을 마시다 그녀의 그리움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택시를 타고 그녀의 원룸으로 달려온 그였다.

  이경아의 원룸은 빨간 벽돌로 외장을 한 5층 짜리 건물이었다. 원룸 주변에는 높은 건물들이 많았는데, 그 뒷골목에는 단란주점과 호프집이 즐비했다. 가끔 그녀를 이곳까지 바래다 줄 때 오승구는 그 뒷골목에서 나오는 술 취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들이닥친 혹독한 추위 탓인지 사람의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둠의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오승구는 이경아의 원룸 앞에 서서 고개를 쳐들고 불꺼진 창문을 바라보다 계단을 올라가 305호 앞에 멈췄다. 안에서 아무 대답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먼저 초인종을 눌렀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구멍 속에 넣고 오른쪽으로 돌리자 찰칵 하고 잠금 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열흘 가량 사람 없이 비워 둔 탓에 싸늘한 공기가 오승구를 맞이했다. 순간 추위를 느낀 그는 몸을 움츠리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손을 뻗어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룸 중앙에는 2인용 소파와 텔레비전 그리고 오디오가 놓여 있었다..

  오승구는 구두를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주인이 잠깐 여행이라도 떠난 양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원룸 한쪽 벽면에는 침대가 자리잡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 벽면에는 옷장과 화장대가 놓여 있었다.

  오승구는 옷장 문을 열어 보았다. 옷장 안엔 이경아의 옷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도로 문을 닫고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원룸 안을 둘러보았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그녀가 없다는 것밖엔.

  경아야, 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오승구는 이경아의 그리움에 가슴이 아파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러자 원룸 안에 숨어 있던 그녀의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의 달콤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그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오승구는 팔을 벌리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하얀 천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듯 이경아의 벌거벗은 몸이 눈앞에서 아른거렸고, 섹스를 할 때 흘러나오던 그녀의 신음소리가 귓속에서 맴돌았다.

  오승구는 거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이경아가 선물한 라이터였다.

  오승구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고통스럽게 빨아들인 담배연기와 함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여러 번, 담뱃불이 필터까지 타 내려올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담배연기와 함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단 1분이라도 이별을 생각했었더라면 이렇듯 허망하지는 않으리라.

  이경아의 원룸에서 30분 가량 머물렀다 나온 오승구는 술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날씨가 아까보다 더 추워진 것 같아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바람까지 세게 불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이경아를 만난 후부터 예전의 감정을 되찾은 최성희는 현관으로 들어서는 오승구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맞이했다.

  “먹었어.”

  오승구는 짧게 대답하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최성희를 가볍게 안았다. 그의 입에서 몇 잔 마신 칵테일 때문인지 술 냄새가 풍겼다.

  “술 마셨어?”

  최성희가 얼굴을 찌푸리고 오승구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물었다.

  “조금 마셨어.”

  최성희는 요즘 오승구에게서 불안정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의 감정은 기복이 심했다.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버린 이경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 술을 마신 듯 더 심한 것 같았다.

  오승구의 품에서 빠져나온 최성희는 거실에 서서 어둠 속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유리창 밖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오승구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창밖에 시선을 주고 있는 최성희의 옆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오승구가 물었지만 최성희는 대답 대신 쓴웃음만 지어 보였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혹시 그녀의 입에서 ‘젊은 년하고 놀아난 재미가 어땠어?’ 라는 말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오승구는 최성희가 전혀 내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자신과 이경아의 관계를 눈치 채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실종까지도…….


  얼마 전 이경아의 레코드 가게 옆 약국이 있던 자리에 신라명과라는 빵집이 새로 생겼다. 빵집은 며칠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출입구 앞에 어른 키 만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세워 놓았다.

  남들은 크리스마스다 연말 연시다 하여 신바람이 나 있었지만 장성우는 아니었다. 구주가 오셔서 기쁘다는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사랑하는 이경아에게 반지나 목걸이를 선물하는 일 따위는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그에게 서울은 폭격 맞아 폐허가 된 유령도시 같이 삭막하기만 했다.

  크리스마스트리엔 금종이와 은종이로 만든 별들이, 붉은 모자를 쓰고 흰수염을 기른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인형들이, 꼬마 전구들이 매달려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맘때면 시골길에 널러져 있는 소똥만큼이나 흔해빠진 캐럴이 빠져있어 도리어 허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건 이경아의 레코드 가게문이 열흘 동안 꼭꼭 닫혀 있기 때문이라고, 장성우는 먼지가 쌓인 레코드 가게문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드디어 닷새 전에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자유인이 된 장성우는 열흘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레코드 가게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서성거렸지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던,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이경아의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녀의 원룸에도 가보았지만 어둠 속에 고요히 묻혀 있을 뿐이었다. 그는 멀찌감치 서서 불꺼진 창만 멍하니 바라보다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경아가 이대로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든 희망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며 보낸 날이 벌써 열흘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어요. 사랑……. 주술을 외우듯 자신도 모르게 절로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러면 이경아와 정신적 교감이 이루어질 것 같아서 장성우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건 그녀가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름대로의 기도이기도 했다.

  처음엔 이경아가 오승구와 먼 여행이라도 떠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장성우를 절망시키고 분노케 하였다. 그런데 레코드 가게 앞을 서성이다 오승구 역시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후 그는 절망이 희망으로, 분노가 행복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장성우는 이경아가 이제는 정말 오승구와 헤어지려고 한다는 것을, 그래서 자취를 감춘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장성우 역시 이경아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안타깝게도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쥐꼬리만큼도 없는 거였다. 영원히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만 하면 그는 절로 온몸이 떨려왔다.


  장성우는 신사동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겨 여러 꽃게탕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 중 제일 먼저 눈에 띤 곳으로 들어갔다. 술 마시기엔 좀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종업원인 듯한 아주머니가 물컵을 탁자에 내려놓자 아주머니가 묻기도 전에 그는 꽃게탕과 소주를 주문했다.

  아주머니가 김치와 콩나물 등 몇 개의 반찬이 담긴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은 다음 곧 꽃게탕이 담긴 전골냄비를 들고 와서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권총 같이 생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작은 것을 주문했지만 꽃게탕은 혼자 먹기에 양이 많았다.

  장성우는 꽃게탕이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가 숨을 크게 몰아 쉬며 내뿜는 담배연기가 푸른 불꽃을 뿜어대는 가스레인지 위의 전골냄비 근처를 감싼 후 공중 위에서 흩어지며 사라졌다.

  담뱃불을 노란 플라스틱 재떨이에 비벼 끈 장성우는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이렇다할 일이 없어 가스레인지 위의 전골냄비 안에서 부글부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끓고 있는 꽃게탕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주문한 소주를 아주머니가 아직까지 가져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 깜박 잊은 듯했다.

  “아주머니, 소주주세요!”

  장성우는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며 손님이 자리를 비운 식탁의 그릇들을 치우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그때서야 생각이 난 듯 아주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소주와 술잔을 가져와 식탁에 내려놓고 금방 국물이 넘칠 듯이 끓고 있는 전골냄비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줄이고 수저통에 꽂혀 있는 집게와 가위를 꺼내 전골냄비 안에서 통째로 익어가고 있는 꽃게를 집어먹기 좋은 크기로 짤라주고는 다시 빈 그릇을 치우다 만 식탁으로 갔다.

  먼저 장성우는 소주병 마개를 돌려 따고서 잔에 소주를 붓고 빨갛게 부글부글 끓고 있는 꽃게탕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얼큰한 게 그의 입맛에 딱 맞았다.

  어디 가서 이경아를 찾아야 한다 말인가? 장성우는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탄식하듯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경아를 찾는 신문광고라도 크게 내볼까? 장성우는 꽃게 다리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껍데기를 이빨로 씹어서 깨뜨리고, 그 속에 있는 알맹이를 꺼내 먹으면서 현실성 없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는 홍경래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화가 나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오승구를 반쯤 죽을 정도로 병신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언제 했는데 지금까지 그 놈은 깜깜 무소식이었던 것이다. ‘그 작자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하면서도 장성우는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홍경래에게 준 천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경아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오승구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전화를 해 빨리 일을 처리해주기를 닦달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장성우는 그를 대할 때만큼은 고등학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장성우는 꽃게보다는 국물 위주로 안주를 하며 소주 두 병을 마셨다.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이경아를 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가슴 한구석에 텅 빈 것 같은 허탈함과 외로움이 밀려들어올 뿐이었다.

 소주 두 병에 취기가 오른 장성우는 돈을 지불하고 식당을 나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신사역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뒤를 검은 그림자 하나가 따라오고 있는 것을, 온통 머릿속에 이경아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레코드 가게를 바라보며 버스 정류장에서 서성거릴 때부터 그 그림자가 자신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던 것도 그는 까맣게 몰랐었다.

  장성우가 신사역 지하계단을 막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등뒤에서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발소리를 듣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죽잠바 차림의 남자가 표정 없는 얼굴로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한 눈빛으로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그는 등골이 오싹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취기가 싹 사라지면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바로 박철승이었던 것이다.


  여러 대의 버스가 도착하고 출발을 해도 타지 않고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한 시간 가량을 서성거리는 장성우를 발견한 박철승의 시선은 그에게 박혀 떠날 줄 몰랐다. 그리고 이경아의 레코드 가게에 계속해서 시선을 주고 있는 그를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놈이, 이경아에게 전화를 해대며 자칭 ‘외로운 남자’라고 지껄이던 그놈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저놈이라도 잡으면 조금이나마 오승구에게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접근하다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아 박철승은 장성우를 계속 주시하면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터였다. 그는 오랫동안 서 있어 딱딱하게 굳어지는 몸을 여러 번 힘껏 기지개를 켜면서 장성우가 가스레인지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꽃게탕을 안주로 해서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음식점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하지만, 지금 몇 시나 됐습니까?”

  드디어 내가 꼬리를 잡혔구나, 하는 장성우의 염려와는 달리 박철승은 정말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처럼 정중하게 물었다.

  “아, 예…….”

  장성우는 박철승이 자신을 알아본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가 다른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태연한 척 애쓰며, 안심하면서 왼쪽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눈앞으로 들어올렸다. 어두워 시계판이 잘 보이지 않아 그가 몸을 불빛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찰나 박철승의 손이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는 박철승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단단히 움켜잡은 채 워낙 힘을 세게 주고 있어 어찌하지 못했다.

  “나하고 같이 가볼 곳이 있습니다.”

  박철승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감돌았고, 범인을 검거하는 경찰처럼 목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당신이 누군데 나한테 이러는 겁니까?”

  그러나 이미 박철승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장성우이기에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는 나하고 같이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사람들이 지하철역 입구에서 싸울 듯한 기세로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힐끗 쳐다보며 지나치고 있었다.

  “좋습니다. 순순히 당신을 따라갈 테니까, 우선 이 손부터 놓으시죠.”

  박철승을 안심시키기 위해 장성우는 불쾌하거나 두려워하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성우의 부탁에 처음엔 망설이던 박철승은 남의 이목을 의식해서 억센 손길로 움켜잡았던 그의 손목을 풀었다. 그에게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였지만, 박철승에게는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눈 깜박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두 팔을 휘저으며 난생처음 죽기살기로 뛰기 시작했다.

  방심하다 졸지에 장성우를 놓친 박철승 역시 도망가는 그의 뒤를 죽기살기로 쫓아갔다. 귀가를 서두르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걸음을 멈추고 무슨 일인가 하는 호기심으로 두 사람을 그저 멀거니 구경하고 있었다.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뜀박질을 남보다 잘했던 장성우와 그렇지 못했던 박철승의 거리 간격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장성우의 눈에 논현역이 보였다. 그는 그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박철승에게 붙잡히지 않고 충분히 지하철을 탈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장성우는 지하철역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날다시피 뛰어 내려가면서 1분 1초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내면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박철승이 보였다.

  운이 좋은 걸까. 이미 도착한 지하철이 장성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문이 닫히면서 지하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

  긴장이 풀린 장성우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고,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을 놓친 박철승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하철만 들어와 있지 않았다면 그놈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숨이 목까지 차 올라 헐떡거리며 박철승은 절대 그놈이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손목을 놓아주면서 방심했던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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