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쓴 사람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오늘의 톡"이 되었군요..
많은 분들의 관심 감사드립니다. ^^
관심만큼 또 많은 댓글이 달렸던데요.
제 글에 거짓은 추호도 없고요..
글이 너무 길어져 오히려 많은 부분들을 잘라내고 쓴 글입니다.
아마도 지난 10년간의 일을 쓰라면 책 한권은 될 듯 하네요.
저희 큰형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큰형은 사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바로 결혼해서...
저희 가족들을 도울 입장이 안되었구요..
작은형의 편지 말미에 나온 XX와XX ==> 제 조카들을 말하는 겁니다.. (얼마나 귀여운데요~^^)
정말 가진것 하나 없이 결혼한터라 저희들을 도울 입장이 아니었구요.
아마도 큰형님이 저희 가족들 일로 마음 고생 많이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음.. 그리고..
1학년 빵꾸난거 어떻게 메꾸었냐고 하셨던데요..
사실 복학해서 빵꾸난거 때우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F나 D로 깔아두었던 과목들을 죄다 학기중 재수강을 하던지..
아니면 방학때 계절학기를 들었지요...
게다가 가게가 바쁠때면 시험때라도 가게일 도우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복학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몇배는 더 힘들었던듯 합니다.
뭐.. 아무튼 많은 분들의 관심 감사드리구요...
모두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벚꽃이 팝콘처럼 만개한 완연한 봄이군요.
일단 이 글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행복이 깃들기를 바라며, 지금의 나를 있게한
우리 가족들의 사연을 올려볼까 합니다.
일단, 제 소개먼저 해야겠지요?
전.. 30살 남자구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게다가 정말 괜찮은 부서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뭐, 자랑하려 제 소개를 하는건 아니구요.(요새 대기업에 들어가기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저처럼 힘들고, 어렵게 살았던 사람에게도 이렇게 볕 뜰날이 있다는 것을, 비록 지금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괴롭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답이 있을거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해들 하시죠? ^^
거두절미 하고 모두들 귀 쫑긋~~ 두 눈 부릅~~ 부탁드리며, 자~ 자~ 이제 시작하렵니다.
1983년 강남 개발 붐을 타며, 우리 가족들은 부모님의 뜻에 의해 강남으로 이사했습니다.
(재개발 붐을 타고, 현 시가 17평에 13억 이상 하더군요. 물론 제가 초등하교,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면서 근처 더 넓은 평수로 이사를 했지요.)
당시 아버지께서는 사업을 하시면서 뭐 가족들 먹고, 입고, 자는거 걱정 없이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정말 힘든거 하나 없이 유복하게 자랐던것 같습니다.
1996년 대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집, 나이트, 미팅, 소개팅 등등에 나가느라
공부는 뒷전이었죠.
1학년때 평점이 1.0 미만이었으니.. 2학기 연속 학고를 맞았던 기억이 나네요. --;
학고를 맞고 군대나 가야지~ 라는 생각에 전 휴학을 하고 있었구요.
당시 작은형은 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에 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1997년 그.. IMF...
그때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IMF로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은행 대출로 정말 힘들어 하셨거든요..
뇌출혈로 쓰러지시자 마자 채 일주일도 안 되어 돌아가시고는 저희 집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께서는 가족들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 하셨던 겁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은행 대출금 약 1억2천 만원이라는 부채는 고스란히 저희 가족들이 떠안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너무나 막막하더군요.
사실 사람맘이 그런가 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사실..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그런 생각에 더 힘들었던것 같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려 해도 제게 벌어진 일이 사실이 아닌 것만 같았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 한, 두 달간 내 몸과 마음은 너무나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주부셨던 어머니, 군인이었던 형, 그리고 대학생인 나.
작은형을 제외한 남은 두 명의 가족들이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남은 가족들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습니다.
역시나 세상은 쉬운 곳이 아니더군요...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하며 짭짤하게 돈을 쥘 수 있는 곳이 소위 말하는 3D 업종이었습니다.
약 1년간 일주일에 6일을 하루 5시간씩만 잠을 자며 막노동, 닥트청소, 물탱크청소, 자장면배달,
리서치조사, 양말판매, 서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낮에는 일용직 노가다를 나가고, 또 밤에는 물탱크 청소, 닥트청소, 철거등의 일을 했습니다.
닥트 청소를 하다가 합판에 손이 베기도 하고 한여름 폭염 속에서 곡괭이질을 하거나,
한여름 열대아에 건물 천정의 닥트를 기어다니다 보니 온몸에(얼굴포함) 땀띠가 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새벽에 신문을 돌리셨고, 낮에는 집 근처 마트에 나가셨습니다.
어느새 일년이 지나, 내 입대할 때가 되어 형이 제대를 하더군요...
형은 제대한 바로 다음날부터 나를 따라 노가다를 나갔고, 그렇게 나는 군대를 갔습니다.
군대를 가던날 어머니께서는 저를 붙들고 통곡을 하셨습니다.
고생만 하다가 간다고...
군대에서.. 형한테 편지를 받았는데...
형이 학교를 그만둔다는 얘기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어야 겠다고..
T.T 편지를 읽는데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나더군요...
(나중에 다시 방통대에 들어가서 졸업을 했습니다.)
나 제대하던 그날까지 형과 어머니는 열심히 일을 하셨고,
저 역시 제대하던 그 다음날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나 군대가기전 1년, 군대있는2년, 군대 다녀온 1년 그렇게 가족들은 정말 먹을거 못먹고,
입을거 못입고, 정신없이 일만 했던것 같습니다.
나 군 휴가때 자장면 한그릇 시켜먹지 못했으니까요...
아.. 군 휴가때 노가다를 나갔던 기억이.. --;
그렇게 살다보니...
돈이 어느 정도 모이더군요...
그렇게 대략 5년 정도를 일하다보니 모아놓은 돈으로 식당을 하나 차리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기쁘던지...
그리 큰 식당도 아니었는데...
살던 집 처분하고.. 집값이 싼 곳으로 옮기며, 벌어놓은 돈 보태서 가게를 차린거지요.
가게를 차리며, 저는 복학했고... 학교를 다니다가도, 가게가 바쁜날은 가게에 나가서 일을 도왔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 2006년에 졸업을 했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취업을 했습니다.
저희 가족들도 이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구요.
이제는 2주에 한번씩은 맛있는 것을 먹으러 찾아다니기도 하고, 어머니랑 쇼핑을 다니기도 하고
그러니 많이 좋아진 거지요.
형은 그때 못다한 공부 다시 시작한다고, 새롭게 사범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작은형 공부하는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내가 책임지고 있구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느덧 10년이 지났네요...
정말 정신없이 달려온 10년인데...
앞으로는 우리 가족들 더욱 똘똘 뭉치고, 멋지게 살아보렵니다.
아.. 엊그제 형한테 편지가 왔네요..
편지내용 공개합니다.
아무튼!! 전 제 가족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들도 부러우시죠?? ^^
=======================편지===========================
보낸 멜은 잘 받았다.....
어떤 이들은 이게 더 위험하다며 하지 말라고 권하기도 한다더라.....
가게 땜시 마음이 완전히 놓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젠 많이 홀가분해졌다....
학교생활도 힘든 건 없다... 오히려 나이 먹었다고 (예비군들 같은 경우는)
더 깍듯히 인사를 하며 아는 척을 한다...
지나가다가도 먼저 인사들을 하는 지지배들이 있는데 한 두 명이 아니다보니 내가 오히려
몰라보고 `생 까는 경우`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다...미안한 일이지.......
교우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좋은 일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일이 아는 척,친한 척 하는 것 보다 2년 후 목표한 바를 이루고 떳떳히 교문을
나서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그렇다고 무뚝뚝한 `아저씨`가 되진 않을게다,,,,
3명의 편입생(나만 남자다)들끼리(수업시간에) 잘 어울리니 맨 뒷자리에서
초라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형을 상상하며 우울해 하진 말거라,,,,,
수업은 잘 따라가고 있다....
xx이 한테 물어보면 알겠지만 수업을 못 따라가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이 과엔 너무나 많은듯 하다.
어제는 소식(소동파)의 적벽부를 외우는 과제를 내주며 담당교수가
`이제부터 포기하는 애들이 삼분의 일씩 나올거`라며 `썩소`를 날리더구나...
xx이한테 물어보면 알겠지만 외우기에는 좀 많은 양이기 때문이지....
형은 이런 류의 과제를 받으면 너무 좋다.... 그 전엔 그런 거 외우고 익히는 게
형을 남들에게 현학적으로 보이게 할 뿐 아무 소용도 없었지만
이젠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서(삼경)중 대학을 배우는 데 진도도 너무 느리고 해서 논어를 혼자 독파 중이다,,,,,
읽다보면 자꾸 자신감이 생기며 .....
xx이 나이 때 xx과라도 진학을 했더라면 뭔가 이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어김없이 봄은 왔고, 온 땅과 온 물의 생물들이 분주해졌다...... 이들은 낮지만 질긴 생명의
소리로 죽어있는 것들, 죽어가는 것들의 이름들을 자꾸만 불러댄다........삶과 죽음이 같이 할 때
비로소 생명이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봄이다.................................................
어머니와 형님,형수님,xx이 그리고 우리의 xx와 xx에게 형 몫까지 더 챙기고 아껴주길 바란다...
독수리로 이만한 양을 씀을 자축하며 XXX 대학교의 정문 앞 XXXXXX 뒤102호에서
봄의 소리를 들으며 웅크려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