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키스 할 때는.....
“잘 들어, 민승아. 지금부터야 너랑 나 지금부터 시작이야. 넌 처음부터 내거였어.”
“!!!”
지완의 말에 회상에서 번쩍 정신이 든다. 그렇게 짧고도 긴 첫사랑은 끝났는데 아픈 사랑이 지금 내 앞에 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웃고 있다. 앞머리가 멋대로 내려와 있고 내려 보는 눈빛이 따스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또 아픈 첫사랑이라 치부하고 잊었는데 한참이 지났어도 지완을 보고 있으려니 바보처럼 두근거린다. 아마도 이런 자세라면 누구든 심장이 뛸 것이다. 숨 막힐 듯한 상황에 침도 삼키지 못하고 있는데 지완은 연신 미소를 띠고 있다.
“너 지금 겁먹고 있지?”
분명 이런 자세에 겁먹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을까 싶다. 한마디 쏘아주려 할 때 문밖에서 아주머니 소리가 들린다.
“저기… 지완아, 문 좀 열어봐. 과일 좀 가져 왔는데…….”
아무래도 아줌만 갇힌 내가 걱정 돼 과일을 핑계 삼아 지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분명 아직 내가 들통 나지 않았다 생각하시고 저런 뻔한 행동을 하시는 것은데 지완이 입 꼬리가 또 다시 올라간다. 우리 두 사람의 꾀를 다 뚫고 있는 것이다.
지완이 일어서고 날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잡은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문을 열고 있다. 문 밖에서 과일 접시를 들고 계시던 아주머닌 잡혀있는 나를 보곤 바로 낙담의 표정으로 바뀐다.
“도둑고양이 한 마리를 잡았어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저기 지완이 그게 말이야, 승아는 금방 떠나려고 그러니까… 원래 금방 가려고 했는데 내가 붙잡았어. 좀 더 머물다 가라고 또 언제 올지도… 어! 승아 미국에 들어가거든 그러니까 언제 나올지 모르고 그래서 내가 더 있다가 가라고…….”
연신 설명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아마도 지완이 그 일을 빌미로 또 뭔 꼬투리잡고 난리 피울까 괜한 우려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끄집어내며 긴긴 설명을 하고 계신다.
“알아요. 승아 미국 들어가는 거. 또 이 바보가 날 피하려고 하는 것도 알고 나와 말조차 하기 싫어하는 것도 알고 아줌마가 나 같은 놈에게서 떼어 내려 하는 것도 다 알아요. 헌데요…….”
말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난 그 옛날 보릿자루처럼 또 잡힌 팔목을 빼내지도 못하고 지완 옆에 서있다. 도대체 키가 몇인 건지. 그 작던 녀석이 너무 커버려 고등학교 때도 꽤나 크다 생각했는데 지금의 지완인 떡 벌어진 어깨며 군살 없는 몸매가 더 더욱 커보이게 하고 있다.
“헌데요 제가 놓아 주기 싫은데 어떡하죠?”
아주머니께 묻고 있지만 그 질문은 나에게 하고 있다. 지완을 돌아보지만 표정은 알 수 없다. 다만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고 뚫어지게 나를 보고 있다. 분명 보지 못한다는 걸 아는데도 저 눈길에 움츠려 든다. 그에 비해 아주머니는 알 수 없는 지완의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걱정 마세요. 제가 눈을 다쳐서 우려처럼 말썽 피우려고 해도 못 피우니까 걱정 마시고 그만 가보세요. 대신…….”
허! 여직 눈을 다쳐서 그 정도였어? 매일 아침 마법의 성이 떠내려가게 음악을 틀어 대고 뻑 하면 소리 지르고 산책하다가도 제 성에 안 맞으면 그 난리를 피워댔으면서 뭐? 눈이 안 보여 말썽을 피우고 싶어도 못 피워? 기가 막히군. 아줌마 표정도 나와 같다. 그럼 그동안 네가 보여준 행동은 뭐냐고 묻고 계셨다. 헌데 다음에 들리는 지완의 말에 우리 두 사람 눈이 동시에 커진다.
“대신… 승아는 여기 남아요.”
“!!!”
“!!!”
여기 남는다니? 그게 무슨 망발인지 그 말뜻을 모르고 지완을 쳐다본다.
“솔직히 별채가 너무 떨어져 있어서 소리 지르기도 힘들었고 그게 귀찮아 혼자서 해결한 적도 많아요. 특히 눈이 보이지 않아 작은 일에도 도움을 청해야 했는데 멀리 계신 아저씨나 아주머니께 그딴 일로 일부러 부르기도 뭐해 더듬거리며 혼자서 했었어요.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나이도 많으신 두 분 때문에 제가 참았었죠.”
뭐 꽤나 편의를 봐준 것처럼 말하고 있다. 늦은 시간, 장소 때 가리지 않고 불려 댔던 걸 뻔히 하는데 전혀 그런 적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다. 또 어찌 됐건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내가 여기 남을 이유는 없다.
“또 일이주면 눈이 낫는다니까 그때까지만 승아가 저를 도와주면 돼요. 두 사람이 날 속인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두 사람 모두 큰일이나 난 것 같은 그 표정들 좀 어떻게 해보죠?”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지 의심스럽다. 아주머니와 내 표정을 그대로 읽고 있다.
“저기 그래도 지완아, 그래도 이건, 승아는 내 손님이고…….”
“승아가 손님이기 전에 이 별장 주가 누군지 잊지 마세요.”
“!!!”
굳이 저런 식으로 말할 필요도 없는데 제가 주인인양 들먹이고 있다. 아주머니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고용주나 고용인 관계가 아닌 것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곳은 아줌마나 아저씨 두 분의 집과도 같다.
아저씨네는 지완의 그 윗대 손부터 이곳에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저씨의 윗 대손과 지완의 윗 대손과 그 윗대 손과 또 그 윗 대손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이어온 관계과 굳이 그 관계를 딱히 정의 내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오래되 이제 이분들에게 이 모든 살림을 맡끼고 있는 정도인데 웃기지도 않게 별장 주를 운운하는 지완이 놈이 괘씸하다.
4대부의 선비 집안으로 꽤나 많은 땅과 종을 거느렸던 지완의 선조들이다. 일제 침략이 일어났고 그즈음 지완의 선조부께서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셨다. 그때 당시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거기에 파란 눈의 며느리까지 데리고 왔단다. 그게 지완이 친 할머니인 것이다. 당연히 가문에서 반대는 심했고 이곳 별장이 그 부인의 거쳐였고 그때 그분을 감싸고 보셨던 분들이 아저씨의 어머니다.
이 얘기를 하실 때 아주머닌 핑크빛 로맨스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얘기하시곤 하셨는데 시어머니에게 들으셨다면서 심취해서 얘기하실 땐 분명 조금은 보테 진 얘기가 있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로맨스에 치중해 말씀하셨기에 가끔 듣다보면 도저히 우리나라 얘기 같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걸 뻔히 알면서도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지완에게 화가 나 잡힌 팔목을 빼내는데 더욱 움켜잡으면서 귓속말을 한다.
“네가 그럴수록 아주머니만 힘들어 지는 거야? 내가 순순히 가만있을 것 같아?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나야.”
‘헉!!’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묻고 있다.
“어떻게 할래 울보? 네가 정해. 여기서 내가 눈 나을 때까지 있을래? 아님 별채로 갈래?”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언제까지 끌려 다닐 나도 아니기에 강하게 내 의사를 내비추는데 지완이 말을 끊는다.
“결정하기 전에 한 가지. 네 대답에 따라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힘들어 질수도 있어. 잘 결정해.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내 눈이 나을 때까지 만이야.”
나쁜 놈. 세월이 지났어도 저놈에 성격엔 변화가 없다. 오직 자신만이, 저만이 전부인 놈이다.
“지완아…….”
지완을 부르는 아줌마의 목소리엔 힘이 없다. 난처하게 나를 보며 지완에게 말도 않되는 억지에 대해 묻지만 목소리엔 힘이 묻어나지 않는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난 안채에 머물러야 했다. 아주머니의 걱정은 태산이었고 나 또한 불편하고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닌데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고 뒤돌아 설수가 없었다. 머물러 봐야 일이주고 또 길어봐야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다. 그때까지만 참아주면 된다.
별장의 1층은 보통에 가정집처럼 거실과 2개의 방과 주방으로 이뤄져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응접실과 테라스 그리고 몇 개의 작은 방이 있다. 물론 2층이 전망이 훨씬 좋았지만 지완이 눈을 다쳐서 주로 1층에서 생활 했다. 전망을 핑계 삼아 2층으로 몇 안 돼는 짐을 옮기는데 지완이 자신의 맞은 편 방문을 열어 재낀다.
“울보 여기야!”
“헉”
그렇게 거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완과 같은 지붕에 있게 됐다. 하지만 우려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서로 존재를 의식하면서도 서로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지완도 우려처럼 자주 불러 대거나 귀찮게 하지 않았다.
매일 음악을 틀었고 뭔가를 끄적였다. 이젠 눈에 안대 조차 하지 않았고 어렴풋이 보이는지 가끔은 미간을 좁히고 한 곳을 응시하기도 했다. 또 그러다가도 짜증내며 돌팔이 의사 놈이라고 한바탕씩 욕설을 퍼부어 댔다.
한날은 요즘 한참 쓰고 있는 시대극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쿵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지완의 비명이 곧이어 들려 왔다. 놀라서 뛰어 나왔지만 지완은 보이지 않고 맞은 편 방에서 끙끙거리며 옅은 신음 소리만 들린다.
“지완아……?”
대답이 없다. 빼꼼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지만 어디에도 지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살며시 안으로 들어가 기웃거리는데 그때 방안에 딸린 욕실 문이 열리며 지완이 나온다.
“!!!”
헉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놀라 입을 막았다.
욕실에서 나오는 지완의 모습이 거의 나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허리에 수건만 걸친 채 쩔뚝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샤워하다 뭔가에 부딪혔는지 머리엔 아직도 거품이 남아 있고 종아리를 부여잡고 쩔쩔 매고 있다. 방안에 들어온 날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선 저렇듯 반나체의 모습으로 내 앞에서 끙끙거리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기다시피 더듬거려 침대로 향하고 있다. 아직도 상반신에 물기와 거품이 그대로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연신 욕설을 내뱉고 있다.
“이 놈에 돌팔이 의사 놈!!! 벌써 몇 주가 지났는데도 왜 보이지 않냐 고!! 내일 오기만 해봐 면상을 짓이겨 놓을 테니까!!!”
침대에 걸터앉아 부여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또 다시 놀라 입이 벌어 졌다. 도대체 어떻게 부딪혔길래 종아리가 저 지경이 되는지 심하게 불거져서 튀어 나와 있었고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흐르며 발을 적시고 있었다.
다음 순간!!!
미처 뭘 하는지 깨닫기도 전에 허리에 감겨 있던 수건이 풀렸다.
“으악!!!”
난 그만 소리를 질러 버렸다. 당연한 거 아닌가? 성인 남자의 나체에 어느 여자가 소리를 지를지 않겠는가? 나의 반응은 당연한 결과다. 흐르는 피의 끈적함을 느껴졌는지 수건을 풀러 종아리를 눌러 댄것이고 그로 인해 지완의 완전한 나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누, 누구야???!!!!”
지완이도 놀랬는지 허겁지겁 시트로 허리를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얼마나 놀랬는지 제 멋대로 인 지완이도 가리려던 시트에 걸려 고꾸라지며 바닥을 뒹굴고 정신이 없다.
“젠장!! 눈 돌려!!! 눈 돌리란 말야!! 보지 마!!!”
반나체에 머리엔 거품을 묻히고 바닥에서 파닥거리며 연신 소리를 질러 대는 모습에 커졌던 눈동자가 웃음으로 바뀐다.
“울보 너 보지 마!! 민승아 고개 돌려!!”
쩔뚝거리며 일어서서 시트를 온 몸에 칭칭 동여 메고 있다. 얼마 동안 우왕좌왕 하더니 벽을 잡고 일어선 지완의 모습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시트가 허리춤을 감싸다 어깨 위로 둘려져 내려와 굳이 연관 지으려 하지 않아도 딱 신화의 주인공 그 자체다.
“언제 들어 왔어? 네 전공이 몰래 숨어들기야? 옛날부터 지금까지, 아니 요즘만 봐도… 너 뭐야?”
얼마나 당황하는지 평소 같지 않게 버벅거리고 있다.
“울보, 너 변태야?”
“헉!!”
걱정돼 들어 와 본 것을 고마워하지는 않고 오히려 변태로 몰고 있다니. 마음 같아선 나 몰라 하고 나가 버리고 싶은데 무릎 아래로 흐르는 피가 나를 잡는다.
“피 나… 어떻게 된 거야?”
“젠장!! 욕실에서 비누를 떨어뜨렸는데 그걸 주우려다 오히려 밟아서 넘어졌어. 재수가 없으려니 넘어지면서 욕조 걸리고…….”
흘러내리는 어깨의 시트를 연신 올려 대며 허리춤의 시트를 부여잡고 투덜거리고 있다.
“아씨 더럽게 아프네…….”
그리스 로마의 제왕처럼 하고선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칠기만 하다. 그 모습에 화가 나기보다 웃음이 났다. 결국 말없이 다가서 지완을 욕실로 이끌었고 변기 위에 앉혔다. 서둘러 약 상자를 가져오고 상처 난 곳에 연고를 바른다.
나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완이 내려 보고 있다. 어느새 머리 위에 허연 거품도 사라지고 촉촉하게 물기를 떨어트리며, 아직도 그리스 신화의 모습으로 그 긴 속 눈썹을 껌벅이며 내 행동 하나하나를 눈 여겨 보고 있다.
머리위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아! 따가워 좀 살살 못 하냐?”
바로 지완의 타박이 들린다.
“하지 말까? 자꾸 아프다고 하면 안 한다?”
호호 불며 소독과 연고를 바르고 있는데도 움찔 움찔 아픈 척을 하고 있다. 내가 지완에 대해 모르면 몰랐지 순 싸움을 밥 먹듯이 하는 녀석이 이 깐 연고하나에 아프다 투정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어색한 상황에 나 또한 툴툴거리고 있다.
“머리 숙여봐”
그냥 나가고 싶은데 오지랖 넓은 내가 문제다. 이 놈에 성격 어디 갈 리가 없다. 지완이 지랄스런 성격을 탓하기 전에 나의 오지랖을 먼저 탓해야 할 것이다. 다친 상처를 치료해줬으면 그냥 나가면 될 것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난 감지도 못한 지완의 머리를 걱정하고 있다.
“왜?”
“머리… 거품이 그대로야…….”
“하긴. 나의 벗은 몸을 봤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암… 자!”
아까 까지 감겨주고 싶고 아니 마음 같아선 앞으로 눈이 나을 때까지 내내 돌봐주고 싶던 마음이 한순간 싹 사라진다. 말을 내뱉은지 일분도 안돼서 후회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보란듯이 다리 벌리며 고개를 숙인다. 하는 행동이 얄미워 샤워 꼭지를 차가운 쪽으로 최대한 돌리고 물을 틀었다. 바로 지완의 비명이 들린다.
“앗 차거!!”
고개를 번쩍 든다. 좀 차가웠나 보다. 하지만 또 그 꼴이 통쾌하다.
“민승아!! 죽을래? 똑바로 못해!!”
“좀… 차가웠나?”
입을 삐쭉 내밀고 메롱까지 해보이면서도 난 태연한척 말한다.
“뭐? 좀 차가웠나……? 너 이루와 봐.”
그리곤 벌떡 일어서더니 호수를 잡고 내 쪽으로 뿌려 댄다.
“아! 차가워 치워!! 어푸~ 야!! 윤지완 치워!! 차가워!!”
연신 손으로 물줄기를 막으며 몸을 피해보지만 지완의 물 사례는 멈출 줄을 몰랐다. 다친 발로 쩔뚝거리면서도 내 쪽으로 계속해 샤워 호수를 들이 대고 있었다.
“그러게 왜 덤벼, 덤비길? 하하하 맛 좀 봐라. 이 울보야!!!”
아예 호수를 머리 위쪽으로 향해 내 온 몸을 젖게 하고 있었다. 그대로 있다간 온 몸이 젖는 것 뿐만 아니라 좁은 욕실에서 나가기도 힘들겠다. 샤워 꼭지를 잠그려 해도 지완이 뒤쪽이다. 결국 호수를 잡기위해 앞으로 다가섰고 겨우 호수 끝에 손을 대보지만 지완이 알아채고 더욱 손을 높이 들어 올린다. 그 올라간 손을 따라 뛰며 계속해 버둥거린다. 그러는 동안에도 물줄기는 나를 향해 뿌려지고 있다.
“어, 어. 어쭈 민승아? 푸하하 계속해봐 너만 힘들지 하하하”
“차가워! 그만 해!! 지완아…….”
지완이 바로 머리 위에서 호수를 비처럼 뿌렸다. 우리 둘의 몸 위에 호수 물줄기가 뿌려졌고 그 차가운 물줄기에 서로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세어 나오지만 지완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환하게 웃으며 장난치는 모습이 어린 아이 같아 보였다. 다 큰 어른이 물놀이를 하며 좋아라 웃어대는 모습이다.
어느새 나도 장난으로 변해 지완을 따라 웃으며 호수를 잡기에 여념이 없다. 도망가고 뺏고 뺏으려 발버둥대고 뺏기지 않기 위해 좀더 높이 손을 올려대고 좁은 욕실에서 몸을 피하며 서로 샤워 줄기를 뺏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다.
다시 한 번쯤은 지완에게 물을 뿌려야 할 것 같은데 워낙에 큰 키에 쉽지가 않다. 높이 점프를 해서 손을 잡아 보는데 결국 잡은 것이 어깨의 시트 끝자락이다. 끝자락이 잡아지고 땅으로 발이 닿으면서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순간은 벌써 지완의 어깨에 걸쳐 있던 시트가 내려지고 난 뒤다.
“!!!”
물을 뿌리던 지완도 그대로 얼어버리고 매달리던 나도 그대로 얼어 버렸다. 다행스러운 것은 허리춤에 동여매고 있던 시트는 그나마 머물러 있었지만 어깨에 걸려 있던 시트가 물줄기에 젖어서 그 무거움으로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어서 붙잡아야 할 텐데 지완은 내려가는 시트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대신 제 앞에서 당황해 하는 나를 덥석 잡는다.
지완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나의 눈은 지완의 얼굴 옮겨졌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던 지완이 내 양손을 잡고 벽 쪽으로 밀어 붙인다. 가슴 아래로 온 몸을 밀어 붙이며 벽과 제 사이에 나를 가둔다. 그리고 비스듬히 고개를 숙이며 귓가에 속삭인다.
“아직도… 나 좋아하는 거 맞지?”
‘헉 저 놈에 왕자 병’
하지만 난 어떤 말도 못하고 그대로 정지 됐다. 지완의 입술이 차가운 물줄기에 얼어버린 내 입을 덮쳐 왔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놀라고 있었다. 처음엔 분명 그냥 입술을 누르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혀의 놀림은 빨라지고 점차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계속해 애무를 해댔다. 서서히 물드는 느낌에 이젠 찬 기운에 허연 입김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에 헉헉거리며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입술을 꽉 다물고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내게 지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키스 할 때는 어금니 깨무는 게 아니라고 말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