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새롭게 열린 또 다른 나날 ( 6 )

푸른바다 |2003.05.04 13:20
조회 342 |추천 0

                                  새롭게 열린 또 다른 나날  6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2)

 

   가을 참 잘 익은 날이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소슬한 바람 눈에 가득 청량하게 담아지는 아름다운 날 우리
집 마당의 단풍도 제 각각 옷깃 자랑하느라 기세 등등하였다. 피어날 때부터 단풍
곱게 단장하고 잎새 내미는 적단풍이야 예외라 하드라도 감나무의 넓은 이파리 누
렇고 붉게 익은 모습과  황토 빛으로 변한 목련 이파리는 구수함이 더하기만 하였
다.    
  

   붉게 익어 가는 감의 모습을 완상 하기만 위해 따지 않아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
런 감이 내뿜는 자태가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다.
   시장에서 파는 대추는 유통기한 때문에 의도적으로 붉은 물이 덜 배인 대추를 출
하 하여 설익은 대추가 주종이지만 대추나무 가지마다 붉게 잘 영글어 매달린 녀석
들을 나는 심심하면 따서 먹는다. 달콤하고 풋풋한 나의 즐거운 간식이었다.
   서툴게 배워가며 가꾼 고추도 농염하리만큼 빨갛게 가지가 부러질 듯 힘 겹게 매달려 있었다.

   지난여름 틈틈이 술 안주로 삶아 먹은 풋콩도 이제는 콩깍지가 누렇게 익어
지금 거두어들이지 않는다면 툭 터져서 멀리 날아갈 듯 아슬아슬 익어 있었다.
 
   크고 작은 햇살의 줄기가 손에 잡힐 것처럼 단풍잎 사이사이로 스며 다녔다. 가
을과 어우러진 투명한 햇살은 내 혼과 교감하여 넘실거리는 걸 보는 듯했다. 아직
은 낙엽이 지기전이라 마당이 깨끗하였지만 단풍이 낙엽 되어 흩날릴 때는 가히 가
을 저물녘 슬픔은 우수의 창가에 그리움으로 잉태되어 내게 젖어오곤 했다.
 
   단풍이란, 신록의 찬란한 유년기의 푸르름에서 출발하여 한여름 녹음의 청량한
청년시절을 지나 모든 대지의 미움과 언짢음을 씻어내고 마침내 화려하게 만개하여
그리움만 남기는 그 생명력의 유연성 때문에 빛나는 것이리라.
   초목이 계절을 따라 변하여 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네 사람들의 인생과 견줄
수 있음을 보고 배운다.
 
   세월은 자연같이 자정능력을 갖는지 민들레 홀씨 날리고 봉숭아 톡 터져 건강한
씨앗 사방 흩뿌리고 단풍씨앗 멀리 비행하여 다시 돌아 올 새봄에 싹 낼 준비를 한
뒤면, 미련 없이 깨끗하게 떨어진 낙엽은 어머니 대지의 품으로 되돌아가 다시 내
년을 기약하며 마침내 그리움만 남기고 엄동설한의 휴면기 긴 한 철을 숨죽여 보낸
다.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모든 정겨움은  우리들의 그리움으로 기억에만 아스라니 남
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나는 습관적으로 마당을 비질한다.
   아직은 낙엽이 질 때가 아니라도 불어오는 갈바람에 급히 지는 놈들이 있었다.
한 잎 두 잎 마당에 굴러다니는 것은 가히 보기가 좋지도 않지만 스산해 지는 마음 
때문에 아침이면 비질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벼운 운동이 되기도 하지만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어수선함을 못 견뎌
하는 나의 오랜 습성이기도 하다.
 
   비질을 하기 위해 뒤란의 창고로 가다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정화조 묻어 놓은 곳에 붉은 야채와 희고 푸른 야채를 투명한 랩에 모양도 곱게
내어 정성 깃들여 정화조 뚜껑 위에 앙증맞게 올려놓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
이다.
   소위 민간신앙의 한 형태인 "양밥"이라는 주술적인 저주를 담은 의식의 흔적이었
다.
 
   주술에는 모방주술과 감염주술이 있다. "양밥"은 감염주술의 전형이다.
   사극에서 많이 들 보았을 것이다. 저주하고 싶은 사람의 "제웅"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허수아비)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거나 화살로 쏘기도 하고 칼로 베기도 하는
것이 바로 "양밥"과는 다르지만 그것도 모방주술의 한 형태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 것은 홍당무이고 희고 푸르게 보이는 것
은 굵은 파였다. 그것들을 만두 속처럼 곱게 다져 떡집에서 파는 시루떡 한 장의
크기로 갖은 정성을 다 들여 파가 아래에 있고 홍당무는 위로 정화조 위에다 곱게
모셔 놓았다.
    나는 얼른 마당 한 구석에 묻어버리고 아내에게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시골 와
서 살다보니 아련히 어릴 때 기억에 남은 "양밥"을 그날 나는 다시 보았다. 씁쓸한
웃음이 났다.
 
    만약,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자란 아내가 그것을 먼저 보았기라도 하면 그 주술
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에 담긴 뜻을 내가 어떻게 해석을 해 줄 것
인가?
   우리 가족을 저주하기 위해 누군가 의식을 치르고 난 흔적이라고 말을 해야 할
것인가?
    만약 아내가 사실을 알고 난다면?
    분명 정나미 떨어지는 흉악한 인심이라며 당장 이사가자 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
기 때문이다.

   

    넓고 푸른 꿈을 키워 주던 고향.  동심이 뒹굴던 고향.  한없이 너그럽게 포용해
주리라 생각했던 고향.  그렇게도 티없이 순수하던 고향.  이제 그 고향은 예전의
그 고향이 아니었다.  물욕의 이기가, 이유 없는 질시가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
황량한 고향.  
   그러나 나는 그 요람의 고향을 영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다. 내 유년을 돌
아볼 수 있는 추억의 샘이 고향이 아닌가.

  

    또 친구를 불렀다. 친구는 그날도 그대로 넘어가자 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것도 없으니 벙어리 마냥 지내자 했다. 나도 그러자 했다.

  

    그날 나는 또 슬픈 노래를 불렀다.
    불쌍한 영혼이여 왜 이다지도 부끄러운 춤을 여기서 추는가!
사람들이 믿고있는 전능한 신들에게 저들을 용서해 줍시사 하고 빌고 또 빌었다.
    가엾은  슬픔이 하루종일 나를 따라 다닌 지난가을 내 마음을 붉게 물들인 단풍
이었다.

 

                                                                푸 른 바 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