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방장이다. 횟집 주방장
횟집이나 일식집은 주방장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음식만 맛있게 만든다고, 회만 잘 뜬다고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일명 '마스크'
잘생길 필요는 없지만 너무 못생기면 곤란하다.
내 동료중에 '못생겨도 맛은 좋은' 친구가 있는데 어느 가게에서 일하든 칼춤은 안추고 안주방에서 불쇼만 한다.
그런대로 준수한 얼굴로 손님이 부르면 웃으며 달려가야 하고 단골손님이나 단체손님이 오면 서비스 들고 직접 테이블로 가서 술도 한 잔 먹어주고 나도 한 잔 따라주고 뭐~ 그래야 한다.
오늘도 단체손님이 한 팀 있었다.
우리가게는 크다보니 10명 정도 까지는 단체로 치지도 않는다.
20면 정도는 되어야 단체손님축에 낀다.
근데 오늘 단체손님은 좀~ 뭐랄까~~~ 남는게 없다.
스무명이 넘는 노인분들께서 우르르 몰려오셨다.
홀의 여직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능숙한 직원이 20개가 넘는 물컵을 쟁반 위에 쌓아서 나른다. 동작 무지 빠르다.
난 정신없이 회를 뜬다.... 가 아니다.
우리나라 노인분들은 대부분 돈이 없다.
재산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주머니에 현찰이 별로 없다.
드라마보면 노인들이 먹고 싶은것 맘대로 먹고 택시 편하게 타고 다니면서 손주들 선물도 가끔 하면서 살지만 내가 느끼기에 현실은 그렇지 않은것 같다.
하긴 우리나라 드라마가 현실과 맞는게 있던가?
내가 왜 이런 야그를 써는가~ 하면~
20명이 넘는 인원이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이고 앉아 2인분짜리 회를 5개 시켰다.
두명이 먹으면 알맞는 양을 넷이서 먹는단 얘기.
그정도 회뜨는데 얼마 안걸린다.
하지만 기본 스끼다시는 다 나가야 하니 홀의 직원들은 바쁠 것이다.
불쇼하는 친구들도 바쁘긴 마찬가지.
근데 여기서 우리 사장의 멋진 면이 보인다.
"야, 정실장. 노인분들 잘 해드려라..... 우리가게처럼 싼데 아이면 어디가서 회 드시겠노? 서비스 많이 드려라이~"
"넵!"
아마도 그 손님들은 오고가는 얘기의 내용으로 보아 오늘 관광이라도 다녀오는 길인가보다.
관광 다 끝내고 집에 가기 아쉬운 상황.....
훗~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어느 횟집이나 다 그렇듯이 우리가게도 서비스로 생선구이가 나간다.
한 테이블에 한마리가 정석이고 가끔 추가가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숫자를 대충 세어보니 벌서 20마리 이상의 청어가 뼈만 남기고 사라져 간다. 머리도 없다.
유독 한 할아버지가 내 눈을 자꾸 잡는다.
못진 중절모를 쓰신 할아버진데 밤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에 파란색 멜방, 그리고 녹색 넥타이를 하셨다.
오늘 새로 산 것인지 검은색 중절모를 벗지 않고 계시다.
식사하실때 불편하실텐데.....
내 생각이 틀렸다.
한참 청어머리를 씹고 쪽쪽 빨고 하는 것 보니 전혀 불편하지 않은가보다.
둥근 회접시가 식탁위에 사뿐히 착륙하자 외계인을 사냥하듯 수많은 젖가락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
10분정도 지나자 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무덤처럼 보이는 무채만 대머리처럼 빛난다.
생선구이 외에도 많은 스끼다시가 추가로 날라간다.
과일샐러드, 도토리묵, 메추리알, 튀김, 무침등 거의 모든 스끼다시가 최소한 3회 이상 추가주문을 받는다.
이슬도 많이 나간다.
다행히 돈받는 품목이다.
할아버지들께서 취기가 오르는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오래된 친구들...... 같이 주름살을 만들며 살아온 분들이신지 듣기 거북할 정도의 욕설이 오가지만 다들 웃기만 한다.
매상은 별로지만 보기 좋은 장면.....
전부 낡거나 유치한 칼라의 복장들........ 결코 부자처럼 보이는 분은 없다.
하지만 전부 넉넉해 보인다.
해삼과 멍게 그리고 게불까지 서비스로 팍팍 썰어주었다.
'주방장 최고~' 하고 소리지르시는 할아버지.... 기분 조오~타.
회는 착륙 즉시 전멸을 당하고 이젠 매운탕 타임~~~
육수 좀 더 부어달라고 주문하기를 여러차례.....
아까부터 내가 주시하는 중절모 할아버지는 배가 많이 부른대도 계속 드시는 듯 하다.
마지막 상추쌈을 큼직하게 싸서 입에 넣다 말고 트름을 "크어거러러럭" 하더니 입맛을 쩌업 다시며 푸르고 싱싱해 보이는 자신의 작품을 입으로 감싸버린다.
뱀이 개구리를 삼킬때도 저렇게 와일드하지는 못할거란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들께서 가게에 들어온지 약 한시간 정도 흘렀을까.......
20명의 인원이 10인분의 회를 주문하고 실제로는 50인분의 음식을 처치했다.
엄청 까지는 장사를 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뭐 어쩌랴...... 먹는 장사 아끼면 망하는 법!
그리고 사장도 나도 노인분들께 잘 해 드렸다는 작은 기쁨이 있어서 무엇보다 좋다.
그런데.......
좋은 결말은 왜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가?
내 인생만 그런가?
아님 우리 가게가 돼지머리 놓고 콧구멍에 만원짜리 팍팍 꽂아가며 굿을 해야 할 때가 되었는가?
사건이 터졌다.
하마터면 식욕 왕성한 할아버지 한 분 우리가게에서 저세상으로 차원이동을 할 뻔했다.
이젠 어느정도 배가 부른지 할아버지들께서는 다들 담배를 피우며 이런 저런 말씀들을 하시고 계신데 그 중절모할아버지가 안보인다.
화장실에 가셨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어디선가 조금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들 외에 다른 손님은 다 돌아가고 몇명 없었다.
이상한 소리는 화장실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가게는 화장실이 총 세군데다.
1층에 하나 이층에 두개의 화장실이 있다.
소리는 1층의 화장실에서 들리는데 뭐랄가... 좀 이상하긴 한데........ 무슨 신음소리같기도 하고......
난 설마~ 하면서 확인을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가보았다.
대변을 보는 화장실 안쪽의 작은 문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크게 들린다.
"허어어엇! 끄으응! 헛 헛 허어어어엇"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 했다.
노인분들은 힘이 없어서 그런가..... 엄청난 기합소리....
아니, 기합이라기 보다는 처절한 비명에 가까운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힘주는 할아버지의 이마에 튀어나온 힘줄이 상상되며 웃음이 막 나오려고 하는데 기합소리의 레벨이 상승한다.
"헛! 허어어엇! 하아~ 하아~ 하아~ 이야아아아압~~~~~!!!!! 하아~ 하아~ 하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무리해서 많이 드시는 것 같았다.
무슨 작정을 하신 듯 한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먹어대더니 들어간 음식물에 순차적으로 밀려서 뱃속의 내장 맨 마지막 단계에 있는 진갈색의 물질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힘이 넉넉치 않으니 저렇게 처절한 투쟁을 하며 사생결단을 내듯 무언가를 내쫒고 계시구나~ 하며 억지로 웃음을 참고 얼른 화장실을 나왔다.
"실장님, 왜 그러세요?"
호기심도 많은 보조...... 내 표정을 읽고 물어본다.
"할아버지 다 죽어간다."
"에?"
"지금 할아버지 한 분이 화장실에서 다 죽어가신다."
"무슨 소립니까?"
"엄청 드시더니 지금 밑으로 보내고 계시다. 근데 디게 힘드신가보다. 네가 응원 좀 해드려라."
보조녀석... 확인하러 간다.
바로 웃음보를 터트리며 나온다.
"크하하하하..."
"얌마, 니 그러다 손님 들으면 어쩌려구 그래?"
손님이 웃기는 옷을 입었어도 화장이 번져서 입술이 두꺼워 보여도 절대 웃거나 자주 쳐다보면 안된다.
그건 당연한거다.
근데 보조녀석이 눈치없이 웃고 있다.
이번엔 조용히 타일렀다. 물론 한손은 초밥통 뚜껑에 올려놓고.....
"조용히 해라...... 손님 들으시면 기분 나쁘다..... 쪽팔리고......."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나무래서 그런지 바로 웃음을 멈추더니 안주방으로 들어간다.
"푸하하하하"
우라질 놈...... 안주방으로 들어가더니 방금 들은 할아버지의 비명을 흉내내며 지금 화장실에서 거의 실신해 가고있는 가여운 손님얘기를 하고 있다. 으이그.....
근데 ..... 좀 이상하다.
아무리 노인분이 뒷심이 없어도 저정도의 피나는 노력이면 이마에 땀방울 맺힌 얼굴로 나오실 때가 지났는데 계속 비명 비슷한 기합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나오질 않는다.
그리고 그 기합소리도 점점 기운이 빠져가고....
난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다시 화장실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아직도 사투를 벌이고 계시다.
순간, 난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힘이 없는 노인들이 대변을 보다가 너무 힘을 주면 탈장이 일어날 수 있다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저 할아버지 저러다가 어떻게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큰일이다.......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다 사라지고 메운탕 냄비도 닥닥 긁혀서 모든 상황이 종료되자 할아버지들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셨다.
아쉬움이 남는지 어떤 할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상추 한장을 잘 접어서 초장에 담근 후 그냥 씹어드신다.
대표로 생각되는 할아버지 한분이 카운터에서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계산을 하고 서서히 몰려들 나가는데 ............
계산을 마친 할아버지가 고개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신다.
"어이! 박가 어디갔디야?"
"아까 화장실 갔어~ 근디 그놈 디게 오래싸네~"
"아 빨리 가자고 햐~"
할아버지 한분이 화장실로 가신다.
그리고 잠시 후......
중절모 할아버지를 찾으러 들어가신 할아버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동료를 부르셨다.
"어이! 박가가 이상혀~ 아 빨리들 와봐~"
"왜그런디야~ 아 빨리 나오라고 햐~"
"글씨 이놈이 주저앉아있어~ 눈이 이상혀~"
"뭐여?"
할아버지 몇분이 화장실로 들어가셨고........
곧이어 중절모 할아버지가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기다시피 나오고 있었다.
순간, 난 걱정하던 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두분의 할아버지가 중절모할아버지를 의자에 앉혔다.
중절모 할아버지는 계속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신음소리를 내고 계셨다.
"허어어~ 허어어~ 허어어~"
"아이고 이놈아 왜그려~ 왜 그러는겨~ 아 정신 좀 차려봐~"
"하아... 하아.... 허어어어~"
"아 저리 비켜봐."
다른 할아버지가 다가갔다.
"아무래도 체한 것 같은디....... 급체....... 아 바늘 좀 있소?"
옆에서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던 우리 사장..... 서랍을 거칠게 뒤지더니 작은 상자를 건넨다.
상자에서 바늘을 꺼낸 할아버지가 중절모할아버지의 팔을 어깨에서부터 손쪽으로 쭈욱 쭈욱 주무르시더니 손가락 열개 전부 찌르신다.
그리고 중절모할아버지의 등을 계속 두드리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지켜보던 사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섰다.
"아무래도 119에 연락을 해야겠습니더...... 조금만 참으이소~"
그때.......
나의.............
머리속에................
무슨 영상이 스쳐갔다.................
난 급하게 사장에게 뛰어갔다.
"사장님, 지금 119 부르면 늦을지도 모르니까 택시 부르고 사장님께서 업고 뛰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뭐?"
"제가 보기에 아주 단단히 체하셨거나 어쩌면 더 심각한 상황일지도 모르니까 얼른 업으세요....."
내가 다급하게 성화를 부리자 사장이 중절모 할아버지를 들쳐 업고 다른 할아버지 몇분이 친구 떨어질까봐 한손으로 보조하며 가게를 나섰다.
홀의 여직원은 핸드폰을 꺼내 택시를 부르고 가게 안의 모든 이들이 손님까지 포함하여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사장이 할아버지를 업고 뛰어가신 병원에 나머지 할아버지들도 전부 가시는 것 같았다.
난 한마디 크게 내뱉으며 주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에이..... 할아버지 너무 과식하셨네....... 그 연세에 체하시면 고생하실텐데......."
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할아버지를 병원에 빨리 모시고 가라고 사장에게 업기를 재촉한 것이 아니다.
119 엠블런스....
만일 그것이 우리 가게 앞에서 번뜩거리며 서있다가 들것에 사람이 실려나가면 ...... 만일 그런사태가 벌어진다면........ 분명 소문 이상하게 날 것이다.
횟집에서 회를 드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다........
그 횟집 망한다.
누가 그 가게에서 회를 먹겠는가?
난 그 점이 순간적으로 마음에 걸렸고 나의 직장과 나의 수입을 지키기 위해 119만큼은 오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나와 앉아계시던 의자 옆에 검은색 중절모가 떨어져 있다......
난 그 중절모를 집어서 비닐 봉다리에 담은 후 카운터 밑에 잘 넣어두었다.
삼일 후 그 할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분이 찾아와 그 중절모를 찾아갈 때까지 난 불안했다.
만일 그 할아버지께서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였는데 내가 119를 부르지 못하게 해서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 내 얄팍한 생각으로 고통의 시간을 더 늘려드린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한 마음에 편하질 못했다.
할아버지 괜찮으시냐는 나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괜찮아요 하고 모자를 챙겨가신 그 아저씨한테도 미안했다.
나중에 사장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얘기하자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아주 자알~했다며 좋아한다.
하긴 그때 119 떴으면 정말 안좋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근데........ 왜 이리 꿀꿀하냐........
어쩌면 난 그 순간 그 할아버지의 안녕보다는 나의 이익이 더 우선시 되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정말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결말이 좋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꿀꿀하다..........
정말 죄송하다...........
............... 꿀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