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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투데이... 27

송수민 |2003.05.06 11:13
조회 102 |추천 0

"..어. 뭐? 내일?"

준은 레슨실 문을 다시 한번 돌아본 다음, 반대편 복도를 따라 걸으며 나갔다.

"갑자기 부산을 왜 내려가, 내가."

준은 복도 끝 쪽, 층 계단 앞에 섰다.

"됐다, 됐어. 모레 올라 올 거라면서, 뭐하러 내려가."

"야, 그냥 좀 오면 안되냐? 꼭, 이유가 있어야 돼? 그럼, 사진 구상하러 온다고 생각하고 오면 되겠구만. "

민혁이 테라스 난간을 뒤로하며 섰다.

"치사하게 너, 그럴래? 그러지 말고 ... 바람도 쐬고 좋잖아 ..응?  올 때, 채현이도 데리고 내려 와라."

민혁은 어색한 표정이 되자, 왼손으로 눈썹을 만지작 했다.

 

"그럼, 그렇지. 니 녀석이 다 이유가 있으니깐, 나한테 이러는 거지. 으이구.
친구 도와주는 샘 치고, 이 형님이 크게 한번 도와주마."

준의 얼굴이 웃음 지며 변했다.

 

"뭐? 누가 뭘 도와주고, 이유가 있긴 무슨 이유가 있다고 그러냐?"

민혁이 발끈해서 말했다.

 

"그럼, 가지 말까....?"

준이 재미있어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맘대로 해, 임마. 이상한 소리하고 있어, 이게. 오지마, 그럼."

민혁은 괜한 화를 내고 있었다.

 

"일단 내가 채현이랑 통화하고 나서 내일 출발하기 전에 너한테 전화해 주마.
그러니 두 발 뻗고 편안~히 자라~~~."

준은 계속해서 놀리듯 웃으며 장난을 쳤다.

 

"치, 자식."

민혁은 전화를 끊고 나서 두 뺨을 얼굴로 비볐다.

 

*

준은 계단을 내려 걸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뒤로 보이는 건물의 한 층을 올려다보고 서서, 전화기를 다시 빼어 번호를 눌렀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안내 메시지가 들리자, 준은 버튼을 한 번 더 누르고 음성을 남기기 시작했다.

[준이 오빠야.. 열심히 하고 있지? 괜히 땡땡이 치고 그러는 건 아니지? 오빠가 다 보고 있으니깐, 알아서 열심히 해. 알았지? 열심히 한단 소문 들리면, 오빠가 맛있는 걸로 몸보신 시켜줄게.]

 

준은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와 내용을 확인한 뒤에 저장했다.
그리고 픽하는 웃음을 낸 뒤, 준은 예대 건물을 뒤로하며 걸었다.

*

 

현주는 가방에서 띠딕 하는 소리가 들리자, 탈의실로 들어오자 마자 가방을 열어 휴대폰의 액정화면을 확인했다.

음성메시지표시가 반짝이자, 현주는 버튼을 누르고 귀에 전화기를 대며 음성메시지를 확인했다.

점차로 웃는 얼굴로 변하던 현주가 빙그레 웃으며 전화기를 귀에서 떼었다. 정리해야할 옷가지를 가방에 챙긴 다음, 현주는 문을 닫고 레슨실을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해가 진 하늘은 별들로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현주는 싱그런 여름 내음을 맡으며 블록을 따라 걸어 내려오며 교문을 나갔다.


*

 

채현은 들뜬 마음에 걸음을 깡충거리기도 모자를 뒤로 앞으로 눌러, 고쳐 써보기도 하며 집 앞에서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오는 차의 앞머리가 보이기만 해도 빼꼼히 쳐다보던 채현은 준의 차가 아니면 실망해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러기를 몇 번.

채현은 준의 차가 골목으로 들어오자, 좋아하며 차가 앞에서 멈추기를 기다렸다.

 

"조금 늦었지? "

차문을 열며, 채현을 향해 준이 차안에서 말했다.

"뭘요.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닌데."

채현은 얼른 차에 올라탔다.

채현이 차에 타자, 준은 차를 돌려 골목을 빠져나갔다.

*

 

톨게이트에서 주행권을 뽑자, 채현은 드디어 부산에 가는 기분이 나는 것 같았다.

"무슨, 소풍가는 기분 들어요."
"그래? 하긴, 그럴수도 있겠다. 민이형이랑 현주도 함께 갔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만 좋네."

채현은 준이의 입에서 현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민감해지는 기분을 또 느꼈다.

"담에 같이 갈 기회가 있겠죠."

채현은 어색해 지는 말투를 조심스럽게 누르며 말했다.

"그래야지. 현주 대회 끝나면, 어디로 한번 정말 정해봐야 겠어."

채현은 준을 물끄러미 옆으로 봤다.

왠지 생각해 주는 범위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면서 불안했다.

혹시 현주를 준이오빠가 달리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채현은 준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소풍가는 기분 든다면서, 김밥이나 그런 거 준비 안 했어?"

준의 갑작스런 질문에 채현은 시선을 고쳤다.

"김밥요?"
"그냥 한 소리야. 놀래긴. 가다가 휴게실에 들려서 우동이랑 김밥 먹자. 아침을 못 먹었거든. 또 그렇게 해야 기분도 나는 거니깐. 안 그래?"
"..그렇죠."

채현은 즐거운 표정의 준을 보면서 어색했던 마음을 정리했다.

 

*

"케이블 티비 인수절차는 조금 더 일이 걸릴 것 같습니다. 상호 조건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시간을 끌수록 초조한 건 저쪽이니까요."
"어차피 인수하게 되면 그쪽 일은 너가 맡아 하게 될 테니깐, 조급하게 성사시켜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처리해라."
"네."

무현은 양복 단추를 채우며, 서류철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현아."

무현은 아버지가 부르자, 멈춰섰다.

"지나하고는 회사 밖에서도 만나고 그러느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식사하면서 시간을 따로 보낸 적은 있습니다."
"그래. 이번 케이블 건이 마무리되면, 약혼부터 했으면 하는데.. 니 생각은 어떠냐?"
"....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사업하는 사람한테는 일 적으로써도 동행이 되어 줄 수 있는 아내가 필요한 거다. 그렇게 볼 때, 지나야 말로 너한테 적임이야. 너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수월하게 넘어가는거라 믿는다."
"바로 기획실 미팅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항의 말씀이 아니시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이사진들한테 니 칭찬의 소리를 요즘 부쩍 많이 듣게 되더구나. 열심히 해. 앞으로 니가 다 맡아 할 일이 아니냐."

무현은 짧은 목례를 한 뒤 문을 열고 나왔다.

*

 

무현이 들어오자, 지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 시간 이후에 특별한 스케줄 잡힌 거 있나요?"

무현이 지나의 책상으로 가까이 가서 물었다.

"더 이상의 스케줄 오늘은 없습니다."

"알겠어요."

무현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무현의 방문이 열리자, 지나는 바로 선 자세로 일어났다.

"그렇게 일이리 때마다 반복해서 일어나고 하지 않아도 돼요."

무현이 편안한 미소를 잠시 그렸다.

"전, 지금부터 기획실 미팅에 들어간 걸로 해주세요. 급한 전달 사항이 있지 않다면, 전화연결도 안 됐으면 하구요. 그리고 나 신경 쓰지 말고, 정리하고 들어가요."

무현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실장님!"

무현이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실장님이 가시는 정확한 행선지를 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지나가 망설임 없이 무현을 보며 말했다.

"개인적인 시간을 쓸 겁니다. 그 정도는 저도 보호받을 수 있는 거죠?"
"하지만..회장님께서.."
"회장님 때문이라면 지나씨가 잘 해줄거라 믿는데, 내가 착각한 건가요? ..부탁하죠. 오늘뿐입니다, 이런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쓸 일."

지나는 무현의 말 뒤로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실장님! 마무리 잘 지으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

지나는 꼭 그렇게 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무현을 향해 편안한 미소와 함께 목례를 했다.

"고마워요."

무현은 순간 지나가 오늘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꽤 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묘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맘을 편안하게 해주었음을 느끼면서 방문을 열고 나갔다.

 

*

 

"채현이는 오늘 통 안보여?"

주민이 현주의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채현이 오늘 부산에 갔어요. 신났죠, 뭐."

현주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주민을 봤다.

"그래? 설마, 벌써 피서를 간 건 아닐 테고 의리 없이. 널, 학교에 두고 혼자 놀러 간 거야?"
"그러게 말이에요."

현주가 주민을 향해 섭섭해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 지우면서 다시 말했다.

"아니구요, 선배 오빠가 부산에 일 있어서 내려가 있는데, 겸사겸사 함께 내려갈 오빠까지 생겨서 동행한 거에요."

현주가 다시 말을 고쳐 말했다.

"암튼, 좋겠다. 아직 피서철이 아니라, 제법 멋질텐데... 파란 바다. 출렁이는 파도.. 그리고 그 위를 나는 기러기와 맨발로 딛을 때에 그 느낌 사는 백사장의 모래.."
"언니야말로 한번 갔다 와야 할 거 같아요."
"정말, 우리 대회 끝나면 가자, 가."
"좋죠."

현주는 주민의 팔을 잡으며 좋아했다.

"그런데 현주 너, 혹시 그 몰려다니는 남자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 있니?"
"에? 아뇨."

 

현주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다들 한 멋짐하던데, 그중에 한 사람 정해보지 그래."
"에이. 오빠들이에요."
"첨엔, 다 오빠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럼, 선배도 그렇게 시작한 거였어요?"
"그럼. 우리 오빠 친구였는데, 암튼 만난 다음날부터 그냥, 죽자 사자 따라 다니는 데.. 어쩌지 못하겠더라."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런데. 전 아니에요."
"너, 미팅도 안 해 봤지?"

현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민이 다시 말을 했다.

"혹시, 너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 아니니?"

주민이 현주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현주는 그 시선을 피했다.

"너, 있구나. 정말?"
"언니, 교수님 곧 오시겠어요. 그만하고, 저 동작이나 체크해 주세요."

현주가 음악을 틀기 위해 오디오 쪽으로 걸어갔다.

"정말, 그런가 보네.. 현주. 누군지 정말 궁금하다~."

주민은 현주의 뒤로 크게 말했다.

현주는 입을 부풀이면서 창피해 했다.
괜한 말로 들통날 것 같은 분위기를 빨리 없애고 싶은 마음에 일어섰던 건. 사실 현주의 가슴이 주체할 수 없게 콩닥 콩닥 뛰었기 때문이었다.

 

*

 

무현은 다시 한번 전화기를 들어 재다이얼 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무현은 전화를 끊었다.
무현은 왼손을 차창으로 기대 세우고 머리를 만졌다.

"어디로 사라진 겁니까, 소진씨.."

무현의 차는 도심 속으로 묻혔다.


*

 

"민혁이한테 전화 좀 해볼래? 거의 다 왔으니깐, 나와 있으라고 해."

준은 안내 표시판에 표시된 호텔의 거리가 얼마 안 남자, 채현에게 말했다.

채현은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오빠야..? 나, 채현이. 거의 다 왔는데, 밖으로 나와있으라고."
"길어야 5분이면 도착한다고 해."

준이 채현에게 말했다.

"오빠, 한 5분이면 도착하겠다고 하네, 준이오빠가. 어, 그래? 알았어."
"민혁오빠, 벌써 나와 있다고 빨리 오기나 하라는 데요."

채현이 준을 보며 말했다.

"녀석, 꽤 급했던 모양이네."

 

준이 픽 하고 웃었다.

"네?"
"아니야, 그런 게 있다~!"

준은 채현의 얼굴을 보고 슬쩍 웃으며 넘겼다. 그리고 페달을 더 밟아 속도를 내었다. 

 

*

호텔 입구에 차를 세우자, 민혁이 보였다.

채현은 차에서 내려 민혁이 걸어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어이!"

창문으로 준은 먼저 손을 들여 보였다.

"고생했다."

민혁이 차로 걸어와서 창문으로 준에게 말했다.

"주차장에 차 세우고 올테니깐, 로비에 들어가서 기다려."

준이 차를 앞으로 몰고 나갔다.

"고생했다, 이 채현."

민혁이 채현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웃었다.

"알면, 이 시간 이후의 스케줄은 오빠가 신나게 만들어서 준비해."

채현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걱정 마라. 신선한 회 먹으면서 짜줄 테니깐."
"기대해 보겠어."
"부모님한텐 말씀드리고 온 거지?"
"엄마한텐."
"그래."

민혁과 채현은 자동 출입문 사이로 나란히 들어가며 계속 이야기했다.


*

 

준은 주차장을 나오며,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망설이듯 하던 준은 그냥 전화기를 끊고 주머니에 넣었다.

"연습 벌레 같으니라고.. 잠깐을 안 쉬네."

준은 아쉬운 표정의 얼굴로 혼잣말하며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음악과 함께 마지막 연습 횟수가 끝나자, 현주가 김교수에게 달려가 인사를 했다.

"현주야."
"네."
"음.. 가장 슬프게 봤던 영화 있니?"

현주는 갑작스런 김교수의 질문에 눈을 크게 떴다.

"가장 슬프게 봐서 여운이 참 오래 갔던 영화 말이야."
"... 음, 7일간의 사랑이요."
"그래? 그럼..오늘 집에 들어가기 전에 비디오 샵에 가서 그 테잎 빌려다가 봐라."

현주는 여전히 멀뚱하게 눈을 뜨며 김교수를 쳐다봤다.

"이제 모든 동작을 다 익혔다고 봐도 틀리지 않아. 그런데...

여전히 감정이 메말라 있어. 특히 나타내 줘야 할 부분의 동작들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구나. 너의 감성을 적셔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니깐, 지금 말한 영화뿐이 아니더라도 그런 류의 영화를 찾아서 너의 감성을 적시는 노력을 해보도록 하자. 이건 특별 과제야."

현주는 김교수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

쉽지 마는 않은 과제였다.
메말라 보이는 무용을 하고 있었다는 걸 현주 자신도 솔직히 동감하고 있었다.
그 춤 속에 빠져 움직였다기 보다는 순서 익히기에 더 바빴다는 걸 누구보다 현주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현주는 탈의실에 들어와서도 바닥에 앉은 체로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감성을 적실 수 있을까..."

현주는 손에 턱을 괴며 쭈그리고 앉았다.

'띡'

 

순간적으로 탈의실에 울리는 소리에 현주는 가방 쪽으로 시선을 두며 쳐다봤다.

 

*

 

계단을 2개씩 건너뛰며 내려가는 현주는 넘어질 듯이 불안하게 보였다.
뛰어 달리기 때문인지 가볍게 묶인 머리 끈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자,

현주는 잠시 멈춰서 머리 끈을 주어 손에 쥐고 또 다시 뛰어 내려갔다.

 

 

[현주야, 무현오빠야. 대회연습으로 바쁘다더니, 그런가 보네.

지금, 오빠. 학교 연못 벤치에 있다.

미리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못하고 와서 자청한 기다림이니 하는 수 없지, 뭐.

연습 끝나면 이쪽으로 와줄래?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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